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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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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1-6) 
    
요즘 새벽 기도회에서 레위기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레위기 말씀을 통해 제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용적으로 조금 어려운 부분도 있고, 대부분이 제사법과 관련되어 있다 보니 지루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깊이 생각하며 읽으면 너무나 귀한 말씀입니다. 레위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사에 대한 의미를 알지 못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레위기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제사에 대해 말씀하시는 가운데 제사장에게 제단의 불이 하루 종일 꺼지지 않게 하라고 여러 번 강조하시면서 명령하십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제사는 아침에 드려지기 시작해서 해가 넘어가면 제사를 멈춥니다. 해가 넘어가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제단의 불을 껐다가 아침에 다시 피워도 됩니다. 그렇게 하면 장작도 절약되고 제단 불을 관리하는 사람도 편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명령은 실용성과 효율성이 떨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를 되새겨 보면 그 안에는 아주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기도회 인도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기도를 하였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성막의 제단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는 말씀의 깊은 뜻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의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는 명령에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기다림과 사랑이 담겨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주신 것이 제사 제도입니다. 사람들은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은 제사를 통해 죄사함을 받고, 감사를 드렸고, 자신의 소원을 올려 드리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는 제단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는 말씀 안에는 어느 누가 어떤 상황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러 오든 그가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제단에 불을 붙여 놓으라는 뜻입니다. 제단에 꺼지지 않는 불은 하나님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제단의 꺼지지 않는 불은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언제나 맞이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입니다. 

성경에 아버지의 재산을 나눠가지고 집을 나간 작은 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간 그 날부터 아버지는 동네 어귀에 나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언덕을 넘어 오는 작은 아들을 어느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데 아버지만은 작은 아들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로 뛰어가 아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도 아랑곳하지 않고 품에 안았습니다. 얼굴을 만져주고 입을 맞추며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목욕을 시키고 좋은 옷을 입히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집을 나간 이후에 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은 죄를 짓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간 인류를 기다리는 하나님이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다림과 사랑을 표현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를 하면서 오늘 본문에서 20절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계십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의 것으로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 드린 탕자의 비유를 다시 조금 더 말씀 드리면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나눠가지고 세상으로 나가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돼지 사육장에 가서 일을 해 주며 돼지 먹이로 배를 채웠습니다. 그는 온갖 고생을 하다가 ‘내가 아버지 집에 있었을 때가 좋았다. 만약 아들로써가 아니라 종으로라도 아버지가 받아주신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작은 아들이 종으로라도 받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뛰어 넘어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주고 잔치를 베풀어 주시며 아들로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아니 비교할 수 없는 사랑으로 아들을 품어 주었습니다. 작은 아들이 아들 됨은 그가 가지고 있는 아들 됨의 자격과 힘이 아니라, 그 아들을 품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바로 그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이 있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에 보면 다윗 왕이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은 오늘 본문과 같은 고백입니다. 이스라엘의 베두인 족들은 손님이 오면 대접을 잘합니다. 손님을 대접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손님의 비어 있는 포도주 잔에 더 이상 포도주를 채우지 않는 답니다. 

그러면 손님은 집 주인이 이쯤해서 일어나기를 원하는구나 알아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날이 저물고 시간이 많이 갔어도 주인이 손님과 함께 있는 것이 즐거우면 계속해서 빈 잔에 포도주를 따라줍니다. 이것은 ‘나는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라는 표시입니다. 

이런 베두인들의 삶의 관습을 알고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는 말씀을 읽으면 감동이 됩니다. 다윗은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너무 사랑해주시고 헤어지기 싫으셔서 계속해서 잔을 채워주시니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사랑이 너무 크고 큽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우리보다 위대하신 분을 갖고 있습니다. 나 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나 보다 나를 더 걱정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탄식하시며 기도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생각하거나 상상하는 것 보다 더 위대한 일이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방식 가운데 거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레위기 7장에 보면 화목 제사를 설명하는 가운데 14절에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 돌릴지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거제’라는 말이 나옵니다. 거제라는 것은 제사를 드리는 네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거제는 제물의 조각을 부위별로 제단 앞에 들어 올린 후에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거제의 ‘거’ 자는 ‘들 거’입니다. 제사를 드리기 전에 제단 앞에서 제물의 부위를 하나씩 들어 올리는 것은 ‘이 제사를 통해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소서’ 라는 기원의 뜻이 담긴 것입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제사에서 집례하는 제사장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서도 안 됩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서도 안 됩니다. 제사를 돕는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서도 안 됩니다. 제사는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거제 방식으로 드리는 제사의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 21절에서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를 하면서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으로 기도를 마칩니다. 즉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하나님께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과 예수님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을 통해 영광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신앙생활의 내용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자신의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된 모세는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율법보다 자신의 얼굴에서 나는 광채에 더 집중 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은혜를 경험한 후에 나타나는 거룩한 현상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위대한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모습을 보여 준 사람입니다. 바울이 바나바와 루스드라라는 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곳에 앉은뱅이가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를 불쌍히 여겨 기도로 고쳐주었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는 모습을 보고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 앞에 제사상을 차리고는 절을 하며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이 강림했다고 외칩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그 당시의 최고의 신으로 떠받드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이 일을 행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셨다고 외쳤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신으로 섬기며 절을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가 군중 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절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겉옷을 찢으며 ‘이렇게 하지 마시오.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일을 행하신 분을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의 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자신은 뒤로 물러섰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바울과 동행하시며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열심히 한 후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한국교회의 문제 중의 하나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려져야 할 영광을 자신에게로 돌리며 그것을 누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분열하고 다투는 가장 큰 이유는 서로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인정하지 않는데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치기 때문입니다. 개 교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분열과 아픔은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한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교회를 통해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것도 한 순간, 한 사건만이 아니라 영원무궁하도록 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안에서 하나님께 거제로 올려져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명예, 사회적인 지위, 재물, 건강, 재능, 자녀 모든 것이 하나님께 거제로 올려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 앞에 높이 들려지는 거제의 제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과 가정, 교회을 통해 하나님께 영원히 영광이 되는 거제의 삶을 살며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는 복된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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