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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낮은 곳에는 경쟁자가 없다 (눅 10: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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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는 경쟁자가 없다 (눅 10:30-37)


어느 조그만 교회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입니다.
찬양대원들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찬양대원들이 찬양 연습을 하다가 잠간 쉬고 있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와서 지휘자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저도 찬양대에 넣어 주세요.”
지휘자는 어이가 없어서 타이르며 말했습니다.
“얘야! 찬양대는 어른만 하는 것이란다. 어린아이는 받아 드릴 수 없어. 커서 어른이 되면 오거라.”

그러나 어린아이가 말했습니다.
“지휘자님! 주님이 저를 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왔어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왔다는 말에 지휘자는 감동이 되어서 찬양대에서 찬양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꼬마 하나가 어른들 틈에 섞여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 어린아이가 커서 종교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마르틴 루터 이야기입니다.

좋은 곳은 경쟁이 심하지만 낮은 곳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과일수록 경쟁률이 높습니다. 서울대 공대, 상대, 법대, 의대 경쟁률은 바늘구멍입니다.
요즈음 공무원 시험도 수백대 일입니다.
심지어 미화원 경쟁률도 200대 1 정도로 올랐다고 합니다. 좋은 곳일수록, 돈을 많이 받는 곳일수록 경쟁률이 천정부지입니다. 그러나 낮은 곳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850미터입니다. 여리고는 바다 높이 보다 250m 정도 낮습니다. 그래서 1000 m 정도를 내려 가는 길입니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지낼 때 렌트카를 타고 일부러 그 길을 상세하게 탐사하여 본 적이 있습니다. 35km입니다. 성전에 있는 리카놀 문을 열 때 문 여는 소리가 여리고에서 들릴 때도 있다고 하니까 아주 가까운 거리입니다. 가까운 데 1000m를 내려가니까 급경사입니다. 사람들이 빈번이 왕래하고 험하니까 강도가 많은 길입니다. 들키며 숨기 쉽고 도망가기 좋은 곳이라 강도가 많았습니다. 제롬 시대에는 이 길을 <피의 길> 또는 <붉은 길>이라고 부를 정도로 험한 길이었습니다.

강도가 어떤 사람을 잡아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 갔습니다. 
또 한 레위인도 그 곳을 지나가다가 강도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역시 거냥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에 그 곳을 지나가다가 강도만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부었습니다.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 주막이 지금도 있습니다.

이튿날에 다시 둘렀습니다.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예수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시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사마리아 사람은 경쟁없이 일하였습니다. 어떤 자에게 경쟁이 없습니까?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33-35)

이런 일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1. 주는 데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받는 데에는 경쟁자가 많습니다. 많이 받는 곳일수록 경쟁이 심합니다. 치열합니다. 제사장이 지나갔습니다. 제사장은 경쟁속에서 사는 데 익숙한 분들입니다. 제사장이 24,000명이었습니다. 24 반차로 나누어 일주일씩 교대를 합니다(대상 24;7-9) 1년에 두 번 돌아가면 48주입니다. 나머지 4주는 전체 제사장이 성전에서 일하게 됩니다. 유월절, 칠칠절, 대속죄절 그리고 초막절은 모두가 일하는 주간입니다. 서로 좋은 일을 하려고 하기에 항상 제비를 뽑아서 일을 분담하였습니다. 항상 경쟁속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레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위인들도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도 항상 경쟁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부정을 범하면 일주일동안 성전에 들어가서 봉사할 수 없습니다. 부정중에 제일 부정은 시체를 보는 것입니다. 불결하기에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강도를 피하여 간 것은 혹시 죽으면 성전 봉사를 못 하기에 경쟁에 지기 싫어서 거냥 지나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라 하나님의 일을 못 할 것이 두려워서 거냥 지나간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하지 말지니 그의 부모로 말미암아서도 더러워지게 하지 말며”(레
21;1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7일동안 부정하리니”(민 19;11)

사마리아인이 하는 일에는 경쟁이 없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주기만 하려고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본래 조상이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BC 722년 앗수르가 이 지역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래서 앗수르인이 유대인 여자들과 결혼하여 생긴 혼혈민족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피가 섞였다고 하여 상종하여 주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유대인으로 강도만난 자를 사랑하여 준 것입니다. 사랑을 못 받고 있는 데 사랑하여 주었습니다. 멸시를 받고 있는 데 도리어 사랑하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더 감동적입니다. 주는 데에는 경쟁이 없습니다. 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에는 경쟁이 없습니다.

뉴욕 아스토리아 교회에서 부흥회할 때 만난 인상깊은 장로님이 한 분 있습니다. 
장로님은 72살에 결심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앞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 데 하나님 앞에 가서 무슨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가를 곰곰히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교회 화장실 청소였습니다. 장로님은 매 주 월요일이면 교회에 나와 화장실 청소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지금 80세입니다. 만 8년을 한 주도 결석하지 않고 꾸준히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일주일 모든 시간중에 가장 즐거운 시간이란 고백하였습니다. 청소하는 일에는 졍쟁자가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경쟁이 없습니다.

2. 희생하는 곳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받으려고 하는 데는 경쟁자가 쥐끓듯이 끓고 있습니다. 많이 준다고 하면 더더욱 경쟁자가 많습니다. 롯도 복권 1등 당첨율은 비행기를 타고 운동장에 앉아 있는 파리 눈을 화살로 맞추는 것처럼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도 일주일에 수 십만명이 그것을 바라보고 복권을 삽니다.
카지노도 그렇습니다. 미국 카지노는 100년에 한번 100억원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그렇게 몰려 들고 있습니다. 준다고 하는 곳에는 경쟁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희생하라고 하는 곳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경쟁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사람이 표창을 받아 화제거리입니다.
맨하탄 플라자 호텔에서 수위로 53년을 일한 조셉 조렌티니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호텔 수위로 일하면서 드나드는 사람들의 짐을 들어 주고 안내하여 주고 청소하는 일에 53년을 바쳤습니다. 은퇴할 때 기자들이 몰려 와서 물었습니다.

“그토록 단조롭고 추한 일을 그렇게 53년 동안 즐겁게 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지겹다니요?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처럼 즐겁게 만났지요. 그러면 신나고 즐거웠어요.”

그의 별명은 <닉슨 친구>입니다. 미국에서 <닉슨 친구>라고 하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닉슨이 대통령 시절 이 호텔에서 며칠 머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닉슨 대통령은 이 수위를 너무나 좋아 하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끼어 안고 인사하고 좋아 하였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에는 경쟁이 없습니다.

헨리 나우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1996) 교수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는 예일 대학교에서 신학적 심리학을 가르친 교수입니다. 1980년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남미 선교를 하였습니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그는 카나다 라르쉬 공동체 데이브레이크에 들어가서 장애인들을 돌보면서 살았습니다.

헨리 나우웬 교수님은 그 좋은 교수 자리를 버리고 장애인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보람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 때 장애인 아담 아네트(Adam Arnett)를 무척 사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장애인이 1996년 2월 34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때 책을 한 권 저술하였습니다.
<아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탈고한 후 그 해 9월 할 일을 다 하였다는 듯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친구들이 나우웬에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지금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학에서 수많은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면 큰 일을 할 수 있는 데 왜 이런 곳에 있는가?”

이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 더 체계적으로 일할 수 있다. 더 큰 섬김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과연 주님께 어떻게 살아 드려야 할 것인가 고민하였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원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였다.”
대학교수가 되는 길은 경쟁이 심한 길입니다. 그러나 대학 교수를 버리고 장애인을 도우러 가는 길은 경쟁자가 한 명도 없는 길이었습니다.

제사장이 가는 길에는 경쟁이 있습니다. 명예를 얻고 보수를 받고 존경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레위인이 가는 길에도 경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보람이 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재미가 있고, 한 달 일하고 나면 보수가 뒤따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이 가는 길에는 경쟁이 없습니다. 주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고 또 주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알지도 못 하는 사람을 위하여 여행을 포기하였습니다. 여행비를 모두 주강도만난 사람을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틀 후에 또 와보아야 합니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이었습니다. 천안에서 온양으로 가는 데 사고가 나서 두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딩굴고 있었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속에서 어느 차 하나 세워 돌보지 않습니다. 나와 아내가 내렸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두 사람을 뒷 좌석에 실었습니다.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응급실로 옮겼습니다. 경찰이 왔습니다. 우리가 교통사고 낸 범인으로 취급하면서 경찰이 우리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내가 경찰이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우리가 교통사고가 낸 것이 아니라 데리고 온 것뿐이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고 보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의식 불명이라 조사할 수 없었습니다.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내일 조사하자고 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차가 온통 피투성이입니다. 씨트를 갈았습니다. 다음날 일정이 경찰 조사로 엉망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깨어난 사람들이 의식을 겨우 찾아서 진술하여 우리는 풀려 났습니다.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그것이 끝입니다. 본인들이나 경찰에서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들어 본 적이 없이 씨트 갈고, 의심받고 일정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그랬습니다.
여행일정이 엉망되고 여행비가 엉뚱한 곳에 소비되었습니다. 그런 곳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그 보상

낮은 곳에는 경쟁이 없습니다. 주기만 하고 희생하기만 하는 데 무슨 경쟁이 있을 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보상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꼭 보상하십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여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이와 같이 하면 주님이 알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다 몰라 주어도 주님만 알아 주시면 됩니다. 후에 놀라운 상급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순신 장군 일대기를 기록한 책이 있습니다.
<이 순신, 신(臣)은 이미 준비를 마쳤나이다>라는 책입니다.

일본이 우리를 쳐들어 왔습니다. 원 균 장군의 모함으로 이 순신은 감옥에 갔습니다. 이 순신이 감옥에 있는 동안 일본과 전투만 하면 대패하여 겨우 12 척 배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군은 전멸하였습니다. 이 순신이 5년간 양성한 수군이 모두 죽고, 거북선은 바다속으로 침몰되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 순신은 8월 18일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통곡함을 참지 못했다."
나라가 바람앞에 등불처럼 꺼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 지경이 되자 순조 왕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 순신을 고문하고 사형시키려던 계획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순신 장군에게 수군 지휘권을 다시 부여하였습니다. 이 순신 장군은 단 한마디의 불평 없이 바다로 나갔습니다. 나라를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배가 없으니까 순조는 이렇게 작전 명령을 내렸습니다.

“바다에서 싸우지 말고 육지에서 싸우러.”
이 때 이 순신 장군이 한 마디 한 것은 역사에 남는 말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신(臣)에게는 12척의 전선(戰船)이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막아 싸우면 아직도 할 수 있습니다. 전선이야 비록 적지만 신이 죽지 않았으니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바다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모세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 하나로 애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였습니다. 이 순신 장군은 있던 배 12척으로 생명을 걸고 싸워 결국 승리하였습니다. 생명을 걸고 나가는 희생의 길에는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지난 주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곽 선희 목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내 바로 옆에 앉아 게신 곽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대통령과 자주 만나시나요?”
“청와대 한번도 들어간 적이 없지.” “왜요?”
“내가 청와대 한번 들어가봐. 나를 만나려고 사람들이 줄을 설 텐데 어떻게 감당하나? 그래서 단 한번도 청와대에 들어간 적이 없지. 다만 이 명박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갈 때 한번 이 곳에서 같이 식사하면서 말해주었지?”

“무슨 말씀을 하여 드렸나요?”
“세 가지를 부탁하였지. 첫 째는 당신과 나는 자수성가하여 고집이 있으나 고집부리지 마시라고 그랬지. 두 번째로는 사람을 자꾸만 갈아치우지 말라고 그랬지. 레이건은 장관들을 한번도 바꾼 적이 없어. 한번 시키고 믿어주면서 격려하였지. 등을 가끔 두드려 주면서 소신껏하라고 하면서 실수하면 자기가 책임지겠다면 자신감만 주었지. 우리 나라 장관은 너무 자주 바뀌어서 일을 할 수가 없어. 셋째로는 기념비를 세우지 말라고 그랬어. 기념비, 업적을 남기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야. 자기를 드러내려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좋은 일에는 경쟁자가 많지만 낮은 곳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낮은 곳, 경쟁자가 없는 곳으로 가서 일하면 하나님은 알아주시고 사랑하여 주십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이웃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지난 주간 고지전 영화를 보았습니다.

전선에 있는 고지 주인이 하루에도 두 세 번 바뀔 정도로 치열한 전투입니다. 수 만 명이 고지전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렇게 뺏고 빼앗기는 전쟁속에 휴전 협정이 발표되었습니다. 그 때 고지는 북한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전쟁이 끝났다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조인 후 12시간 후 효력을 발생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12시간 전쟁후 그 자리가 휴전선이 그어지는 자리입니다. 12시간 동안 가장 치열한 전쟁이 벌어질 상황입니다. 12시간동안 가장 많은 젊은 이가 죽어야 합니다.

군 사령부보루터 12시간 동안에 그 고지를 빼앗으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만세를 부르던 군사들은 경악을 하였습니다. 더구나 일개 중대로 연대가 지키고 있는 고지를 탈환하라는 명령입니다. 더 이상 병력을 보낼 수 없습니다. 온 전선이 다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한 쪽이 약하면 그 땅은 다 빼앗기는 것이니까 전체 전선이 전쟁입니다.

실망속에 침울한 중대병력앞에서 중대장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러분! 우리 부대를 악어 부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악어는 50개 정도의 알을 낳습니다. 반 이상을 물고기들이 집어 먹습니다. 25 마리 정도 악어가 태어나면 한 두 마리 남고 모두 뱀이나 큰 물고기들에게 잡혀 먹습니다. 한 두 마리 남습니다. 그런데 그 한 두 마리가 온 세계를 지배합니다.”

모두 한 두 명 살아 남겠구나하고 실망하여 있을 때 중대장이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한 두 마리 살아 남은 악어들입니다. 지금까지 전투에서 살아남은 악어들입니다.”
모두 얼굴에 희색이 만만합니다. 그 때 중대장이 또 소리질러 말합니다.
“12 시간만 견디면 집에 갑니다. 12시간...”
그리고 전투에 임합니다. 중대장이 제일 앞 장 섭니다. 제일 먼저 죽겠다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죽겠다는 희생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마지막이 참으로 인상깊었습니다. 격렬한 싸움에서 모두가 죽었습니다. 양쪽 대장만 살아 남았습니다. 양 쪽 대장 모두 총에 맞아 피를 흘리는 상황에서 고지위에서 만났습니다. 서로 맞부딪쳤습니다. 그 때 12시간이 다 되어 방송이 흘러 나옵니다. 

“이제부터 효력을 발생합니다. 전쟁 중지입니다.”

양 쪽 대장은 이 방송을 들으며 마음껏 웃어댑니다. 누가 살아남느냐에 따라 고지가 남한 땅이냐 북한 땅이냐의 갈림길이 됩니다. 적군의 대장이 피를 많이 흘리고 쓰러져 죽었습니다. 한 사람 우리 대장이 살아 남았습니다. 고지는 우리 땅이 되었습니다.

낮은 곳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길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낮은 곳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외치고 싶습니다.
낮은 곳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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