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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저주를 받을찌라도 (롬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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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를 받을찌라도 (롬 9:1-5)


오늘 우리는 6.25 전쟁 발발 62돌을 맞는 자리에 있습니다. 지난 분단의 역사는 국토의 분단이 아니라 전쟁의 재난과 이산가족의 아픔 그리고 폐허에서 생존해 가는 고난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북한의 김일성 주체사상은 3대 세습이라는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독재체제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핵무기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지금도 한반도의 평화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평화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정치인들 가운데 공공연하게 북한을 옹호하는 종북 세력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직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있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동조하거나 추종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안에 10%나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런 배경에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부패와 00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저 북한을 보십시오. 세계 200여 국가 가운데 가장 인권을 탄압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것은 유엔 인권보고서에 의한 기준입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인권을 유린하는 집단인데도 국회에서 몇 년째 북한 인권법을 다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국회의원들 가운데도 북한의 사상을 지지하는 진보주의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논리로 인권법 통과를 저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은 말이 아닙니다. 특히 1995년 이후 가장 최악의 굶주림이 북한 땅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북한의 식량 사정이 어느 정도 어려운지 아십니까? 얼마 전에 연변 과기대의 김진경 총장을 만났는데 그분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김책 공과대를 졸업하고 중학교 교장 선생으로 있던 한 공산당 간부가 공무 수행으로 나갔다가 3개월 만에 집에 돌아오니 아내와 아들 그리고 딸 모두가 굶어 죽은 이야기는 어떻게 들어야 할지 통증이 일어나더라구요!! 그러나 그들에게 육체적인 굶주림보다 더 커다란 굶주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굶주림입니다. 적어도 북녘 땅에 내 사랑하는 겨레의 95% 이상이 저들의 생애 속에서 단 한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식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 사도은 자신의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으로 자기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불편한 심정은 1-2절에서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그 고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큰 근심이 되었고, 그 근심이 지나쳐서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되었습니다. 그가 얼마큼 고통했느냐 하는 것은 3절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라는 말씀에서 저주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저주라는 말은 헬라어로‘아나데마’인데, 굉장히 무서운 말입니다. 구약에 보면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명령이 있었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물론, 그 성에 있는 물건 하나까지도 남기지 말고 완전히 불태워서 없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나데마가 여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 ‘저주를 받았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바울은 자기의 사랑하는 형제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목숨을 걸고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내가 �鄕寧�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리 없지만, 끊어진다 할지라도 나의 형제, 나의 친척이 구원만 받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열정이 없다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바울이 그들에게 한 때 도움이라도 받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이들은 바울에게 어떤 관계입니까? 

바울이 피를 토하듯 끌어안고 기도하며 사랑했던 그들은 다름 아닌 바울을 배척했던 자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바울은 일생동안 자기 동족으로부터 쉬지 않고 박해를 당했습니다. 바울은 평생 동안 괴롭히고 해를 끼친 사람은 이방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동족이었습니다. 돌로 친 사람도, 태장을 때린 사람도 동족이었습니다. 재판에 붙인 사람도 감옥에 가두어 놓은 것도 동족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사지를 찢어 죽이겠다고 예루살렘에서 소동을 벌인 자도 동족이요, 사사건건 미움과 박해를 가한 사람도 동족이었습니다. 

어찌 이런 자들을 사랑할 수 있으며 기도할 수 있으며 자기의 단 하나밖에 없는 그 생명을 바칠만큼 희생할 수 있겠습니까? 이를 갈며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죄는 미워했지만 그들의 영혼은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핍박할수록, 견딜 수 없는 자리까지 고난에 빠뜨려도 오히려 바울은 자기 동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더욱더 간청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와 같은 자리에 서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워해 달라고 눈물로 매달렸습니다. 그는 안타가운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밤낮으로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았습니다. 10: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구원받지 못하고 있는 동족을 보면서 바울은 끊임없이 고통하고 괴로워했습니다. 바울의 고통에는 자기 민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원통해서 답답해하는 마음, 무엇이나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 전쟁을 치룬 세대는 다 아시지만, 그 전쟁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6.25전쟁이 남긴 인류사적 교훈이 있다면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6,25전쟁 때 얼마나 많은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까. 그때 우리의 젊은 국군만 185,000명을 잃었고 유엔군이 38,000명, 학도의용군이 2,000명이나 희생되었습니다. 거기에 민간인 150만 명이 죽었고 30만 명의 과부와 20만 명의 고아가 발생했습니다. 

이 전쟁이 이렇게 참혹해서 근대사에서 최악의 전쟁으로 기록되었고 전쟁을 위해서 그 당시 돈으로 150억불을 썼으면서도 남은 것은 참혹한 파괴뿐입니다. 이 전쟁에서 아이젠하우어 대통령도 아들을 잃었고 벤프리트 장군도 아들을 잃었으며,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도 아들을 잃었고, 워커 중장은 자식과 함께 참전했다가 전사했고, 24사단 딘 소장은 전쟁 포로가 되었습니다. 

6.25 동란의 비극으로 한국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온 나라가 폭삭 망해버렸습니다. 전쟁이 끝난 우리나라는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유엔에 등록된 120여 국가 중에 필리핀의 국민 소득이 170달러 태국 220달러일 때 한국은 76달러였습니다. 우리보다 국민 소득이 낮은 나라는 인도뿐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후진 국가였던 것입니다. 국가 경제를 재건하는데 많은 비용이 필요했지만 한국에 돈을 빌려주려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계를 다녀보면 세계의 관문인 각국의 공항에 내려 보면 높이 세워진 우리나라 기업들의 선전간판을 보게 됩니다. 우리민족은 참 대단한 민족입니다. 각 나라 곳곳에 가 보면 요지마다 한국기업들의 간판이 걸려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참 우리민족이 참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참 기업들이 대견하고 고맙기 까지 합니다. 

작년 통계를 모르겠는데 몇해 전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수출한 총 액수가 2,500억불이라고 합니다. 이 금액은 전 아프리 카 53개국이 수출한 금액 1700억불 보다 800억불이 더 많은 금액이라고 합니다. 또 전 남미 32개국이 수출한 금액 2100억 불 보다도 400억 달러가 많은 액수라고 합니다. 이것이 이 조그만 나라에서 이루어 낸 기적입니다. 그래서 지난해 국가 GDP 순위가 11등이었는데 금년에는 10등으로 상향되었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민족입니다. 

우리민족은 참 여러 면에서 대단한 민족입니다. 술 소비량으로도 세계 제일이고 흡연율로도 세계 제일이고 교통사고율로도 세계 제일입니다. 거기다 사건사고도 단연 세계 최고이고 모조품 만드는데도 일가견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우리민족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면 월드컵 때 거리로 몰려나오는 젊은 인파들을 보십시오. 하루 밤에 30만 4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밤새도록 방방 뛰는 민족이 이 지구상에 우리 말고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정치하는 분들이 이런 정열을 가진 국민들을 방향만 좀 잘 제시해 준다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국민입니다. 

그리고 우리민족이 얼마나 우수한 민족입니까. 이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 얼마나 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태어나고 있습니까. 영국 얼스터대학교 심리학 교수 리처드 린과 핀란드 헬싱키 대학의 타투 반하넨 교수가 세계 185개국 국민 평균 IQ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결과 1등은 홍콩으로 IQ지수가 107로 나타났습니다. 2등은 한국으로 106이고 3등은 일본과 북한으로 105이고 21위는 미국으로 98이고 45위는 이스라엘로 94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조사한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고 영국과 핀란드 교수들이니까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통계 아닙니까. 우리나라는 IMF를 2년 만에 극복한 나라입니다. 

이것은 세계에도 없는 일입니다. 1분에 핸드폰으로 문자 300자를 치는 나라는 세상에 한국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민족이 세계 124개국에 나가서 4,687개의 교회를 세워놓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164개국에 20000여명의 선교사들이 나가 있습니다. 이렇게 나가다 보면 정말 언젠가 타골이 예언한 말 그대로 멀지 않아서 “그 등잔에 불이 다시 켜지는 날에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그대로 맞아 떨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내 민족을 사랑해야 하고 내가 태어난 이 나라에 대해서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6,25전쟁은 분명 우리에게는 분명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전쟁을 통해서 우리민족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훈련하셨습니다. 그래서 전화위복의 기회를 주신 것처럼 IMF를 통해서 잃은 것도 많지만 또 생각해 보면 얻은 것이 더 많은 것처럼 이제 우리도 더 뜨겁게 북한의 내 종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이번에 교단에 있는 남북교회 협력위원회에서 해마다 가는 북한 접경지역을 돌아보는 일을 하고 왔습니다. 깊은 이야기는 다 드릴 수가 없고, 무엇보다 중국에 있는 탈북자 문제는 정말 힘든 상황에 있습니다.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 역시 입지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탈북자들을 돕는 분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정말 안타까운 것은 중국 땅에 자유를 찾으로 나온 탈북자들은 정말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탈북 여성들이 우리 돈으로 2000원에 팔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믿으시겠습니까? 그리고 두만강을 넘다 잡힌 가족을 쇠갈고리로 입술을 꿰서 개끌 듯 데려가는 그 현장을 본 사람들의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북한의 실상이 오늘날 적나라하게 보고되고 있는데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제3국에 흩어져 정처 없이 방황하는 탈북민이 30만에 이르고 있으며, 이들의 인권과 생존은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남한으로 갈 목적을 가지고 중국 땅에 와 있는 사람들을 붙잡으면 한 사람당 상금으로 3천 원씩(한국 돈 30만원)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잡히면 그대로 북으로 송환됩니다. 그래서 우리 동포들이 아주 살벌한 가운데서 밤낮없이 일제 강점기도 아닌데 도망 다니고 있다고 하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긴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겠습니까? 

그들이 붙잡혀 북으로 송환되어 돌아가면 어떻게 되고 젊은 여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도망 다니다 잡혀 겁탈당하기 일쑤이고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기약 없이 오늘도 헤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그들도 모두 우리의 동포들입니다. 그런 모습들을 생각하고 있다 보면 참 내 마음도 그렇게 아파옵니다. 우리민족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민족은 왜 이런 전근대적인 정치상황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자탄이 나오고 비애가 느껴집니다. 

내 마음도 그렇게 슬퍼오는데 그런데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인데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그 아픈 마음이 바로 오늘 읽은 본문에서 말한 사도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언약, 이삭에게 야곱에게 주어졌던 양자됨, 영광, 언약, 약속들 얼마나 소중한 축복이었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다 잃어버리고 다 빼앗긴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도바울의 입장에서 얼마나 마음에 안타까움이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그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말씀이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예수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고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내 형제, 골육,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심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마음으로 로마도 품었고 세상도 품었던 넓고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심장 속에는 동포애, 민족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한 심장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가슴에 이런 뜨거운 가슴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마음은 성령이 주시는 마음이고 가슴입니다. 그 마음으로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고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나를 통해서 그 뜨거운 가슴과 사랑하는 마음과 뜻이 이 땅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6월은 내 나라와 내 민족을 생각하는 달입니다. 다시 한 번 이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의 발로가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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