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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의 창시자 (히 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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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창시자 (히 2:5-18)


히브리서는 성경 중에 가장 독특한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예수님을 아주 독특한 관점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구약을 기초로 위대하다고 추앙하던 존재들과 비교하면서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천사와 비교하면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구약에는 천사가 하나님의 특별한 일꾼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하나님처럼 숭배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예수는 이런 천사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를 ‘구원의 창시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 처음으로 구원의 길을 알려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히 그 구원의 길을 여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구원의 창시자이신 예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구원의 문제를 깊이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1. 구원은 무엇인가

‘구원’(救援)이란 사전적으로는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줌”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구원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야구에서 ‘구원투수’라는 말을 씁니다. 선발투수가 상대편에 심하게 공격당해서 더 이상 버티기 힘이 들 때 감독은 다른 투수로 교체해 줍니다. 이 때 투입되는 투수를 구원투수라고 부릅니다. 

노총각과 노처녀가 결혼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향해 자기가 구원해 주었다고 강변하고, 아내는 무슨 소리냐고 자기가 구원해 주었다고 반박합니다. 노처녀 신세를 면케 해주었다고 또 노총각 신세를 면케 해주었다고 구원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어려움 상황 가운데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종교에서도 구원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불교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찰하여 불성을 각성시키고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불교는 자신이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정진하는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에서도 구원을 말합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킴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최선을 다해서 율법을 지킴으로 율법의 의를 얻게 되고, 이 율법의 의를 통해 구원을 받으려고 몸부림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런 구원과 다른 참된 구원을 가르쳐주셨고, 또한 이 참된 구원의 길을 여셨다는 것입니다. 

히 2: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큰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길을 여신 참된 구원이 다른 모든 구원과 비교해 볼 때 큰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구원을 창시하신 분이십니다. 다른 모든 구원과 구별되는 큰 구원을 창시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창시하신 큰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죽음의 세력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본문 14-1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하심이니”

분명한 것은 인간은 죽음의 세력에 매여 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마치 개가 목줄에 매여 살듯 죽음의 줄에 매여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마귀가 죽음의 줄로 인간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큰 구원을 받아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죽음은 단지 나이 들어 그 육체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사건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죽음을 점진적이고 복합적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우선 성경은 첫째 죽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원래 인간은 흙에서 온 육체와 하나님께로부터 온 생기 즉 영이 합쳐져 생령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생명은 육체가 살아가는 생물학적 생명과 그 영이 살아가는 영적 생명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창 2:17을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이미 죽음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바로 영적 생명이 죽음을 맞게 된 것입니다.

롬 5:1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죄가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 때문에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었고,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죽음이 영적 죽음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또 모든 사람이 이미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적 생명의 죽음이고, 그리고 이것이 첫째 사망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또 다른 죽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 21: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 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첫째 사망을 경험한 사람이 이 세상을 살다가 장차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때, 그 심판으로 영원 형벌을 받게 되는 것 이것이 둘째 사망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은 이미 첫째 사망을 당한 채로 살고 있고, 이제 다가 올 둘째 사망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큰 구원이란 이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선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주로 영접하게 될 때 성령이 우리 심령 가운데 임재 하시게 됩니다. 이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다시 살리시사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첫째 사망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주로 영접하게 될 때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이 영생은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까지 이어져 영원 복락을 누리게 해 줍니다. 그래서 둘째 사망에서 벗어날 약속과 소망을 가지게 해 줍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죽음의 세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큰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여기서 거룩하게 하시는 이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죄사함 받고 거룩하게 된 믿는 이들을 말합니다. 또한 한 근원에서 났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고, 우리는 예수 믿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을 받았기에 예수님과 믿는 자들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믿는 이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마 12:5를 보면 실제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이제 예수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고 또 그렇게 부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나면 우리의 신분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형제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적 가족이 된 것입니다.

바로 큰 구원은 우리가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님의 형제자매가 되고 하나님의 영적 가족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적 가족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눈동자처럼 보살피시기 때문에 살면서 겪는 수많은 어려움들도 하나님께서 극복하고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수많은 작은 구원들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이 큰 구원을 이미 받았습니다. 우선 이 점을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의 세력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영적 가족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비로소 구원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임 구원을 받았으나 아직 구원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끝날 까지 우리의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2. 구원은 어떻게 얻게 되었는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구원을 얻게 되었을까요?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의 창시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계획하시고 준비하시고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처럼 되셨습니다.

본문 1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빌 2:6-7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예수님께서 원래 하나님이시지만 자기를 비워 사람들처럼 되셨다는 것입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소방공무원은 아마도 가장 직접적으로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화재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화재를 진압하고 인명을 구조합니다. 재난의 위급상황 속에 직접 뛰어들어 인명을 구조합니다. 그러는 중에 수많은 분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칩니다. 대략 매년 300여명이 화재진압과 긴박한 인명구조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거나 다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허리디스크나 외상 후 스트레스 등 온갖 질병으로 전체 소방공무원 중 40% 정도가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직접 뛰어들어 남들을 구원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위기상황 가운데 일부러 자신을 던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도망쳐 나오고 싶은 그 자리를 자신이 찾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죄악이 가득한 이 인간 세상에 뛰어드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이 되셔서 인간 세상 가운데로 오신 것입니다.

둘째, 우리 위해 죽으셨습니다.

본문 9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그리고 18절은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한 마디로 우리를 죽음의 세력에서 구원해 내시기 위해 우리가 죽어야 할 그 죽음을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대속의 죽음’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일찍이 예수님의 이 대속의 죽음을 예견하고 사 53:4-6에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대신 죽으심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 때문에 구원의 길이 비로소 열린 것이라는 말입니다.

민들레의 꽃말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 꽃말이 붙여지게 된 데는 성경적 배경이 있습니다.

옛날 노아 홍수 땝니다. 40일 동안 온 땅에 비가 내려 온 땅에 물이 가득 차 오르고 있었습니다. 방주에 타지 못한 사람들과 짐승들은 홍수를 피해보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길이 없었습니다.

민들레도 몸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뿌리를 땅에 내리고 있는 민들레는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민들레는 너무 두렵고 애가 탔던지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 보잘 것 없은 식물을 살려 주십시오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바로 그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 바람에 씨가 멀리멀리 날리게 됐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 씨를 방주의 지붕 위에 살짝 올려놓으셨습니다. 민들레 씨는 방주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 안에 구원 받은 사람과 동물들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물이 다 빠진 뒤 다시 바람이 불어왔고 민들레 씨는 그 바람을 타고 산중턱 양지 바른 곳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방긋 웃으며 노란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그 어여쁜 얼굴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지내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큰 구원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민들레처럼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 믿고 큰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큰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님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의 창시자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창시자이신 예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고 또한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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