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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법 (창 47: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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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법 (창 47:23-26)


가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고의 가뭄이라고 합니다. 논밭이다 갈라지는 것은 둘째 치고 가로수조차도 다 말라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소방차를 동원해서 물을 주어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가뭄이 심합니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노벨상 수상 작가인 유대인 엘리 위젤이 나치 유대인 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 탈출을 시도하다 처참하게 죽는 유대인 소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절규가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 어디 계세요? 지금 당신은 어디 계시는 것입니까?” 
그때 그에게 이상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는 그 소년과 함께 매달려 있지.”

전쟁이 끝나고 엘리 위젤은 모리야기라는 작가를 만나 그 당시의 신비한 음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모리야기는 
“저는 알 것 같네요. 그분은 바로 당신의 동족인 유대인 예수라고 합니다. 바로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우리의 고난 속에도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통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시기도 하지만 우리의 고통을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진 해일 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펼치시기도 하지만 우리 고난에 함께 하시고 아파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우리가 소망하는 아름다운 날들이 있습니다.
너무도 좋고 행복한 시간들이 이어질 때면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늘만 같아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소망하고 바라는 날들은 비록 크지는 않아도 작은 행복으로 가득한 그런 날들입니다.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우리가 깨닫고 감사함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울 때 우리는 우리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고 가슴 찡하는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안락의자에 앉아서 애독하는 잡지를 펼쳐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다고 가정합시다. 한창 흥미가 절정에 달해 있는데, 그만 “다음 호에 계속”이란 문구가 나오면 얼마나 안타깝고 실망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다음 호에 계속”이란 말이 큰 기쁨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그 예입니다.

스펄젼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님의 자비와 사랑이 계속되고, 또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면 마음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오랜 순례의 생활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은 이제 거의 다 쓰여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는 끝없이 엮어진 줄과 같고, 끝을 모르는 강물과 같고, 끝없이 돌아가는 바퀴와 같고, 영원한 별빛과 같다. 옛날 베들레헴 아기 예수에게 비쳤던 별이 그때로 없어진 것이 아니고, 미래에 언젠가는 우리를 주님께 인도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책으로 기록한다면, 그것은 속편이 끝없이 나오는 만년 연재물에 해당되는 것이다.”

성도의 생활이 재미있는 것은, 날이 갈수록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과거에 경험했습니까? 다음호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구원의 복을 경험했습니까? 다음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도 다음에 계속될 것입니다. 
또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심령에 고통을 주는 것들은 이번 호에서 끝나고, 다음 호에는 계속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찬송 시인이 쓴 대로 “점차로 영광만이” 남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의 광채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영원이 있습니다. 하늘의 광채들은 “다음 호에 계속”될 것입니다. 

애굽에 풍년이 들기 시작하는데 자그마치 7년 동안 풍년이 연이어 계속됩니다. 한 해도 아니고 7년 동안 계속되는 풍년 속에 온 나라가 흥청망청 입니다.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넘쳐나다 보니 그것이 귀한 것인 줄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혹시 내년에는 어쩔지 몰라 하는 마음 때문에 내년을 위한 준비를 하기도 했지만 그런 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다 보니 내일을 위해 준비하는 마음도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내일을 위한 준비는 정말 중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하라고 하는데 이 말은 내일을 위한 준비조차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내일을 염려하고만 있지 말고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모든 것이 좋을 때입니다. 

식당을 가게 되면 자기 몫이 딱 정해져 있는 음식이 나올 경우에는 알뜰히 살뜰히 그것을 먹습니다. 물론 사람들에 따라서는 그것이 모자라서 한 그릇을 더 시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남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뷔페일 경우는 참으로 고민입니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쭉 들러보면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다 먹을 수는 없습니다. 말 그대로 행복한 고민입니다. 마음껏 먹고 싶은 대로 먹었다가는 몸이 감당을 하지 못합니다. 

몸을 생각하면 조금만 먹어야겠는데 조금씩 담다보면 어느새 한 그릇 가득입니다. 다른 사람이 담아온 음식을 보면 “어 그런 것도 있었어요? 어디 있어요?” 그래 또 다시 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한도를 넘겨 먹게 될 경우도 있습니다. 그나마 정말 결심하고 조금만 먹고 말라치면 돈이 너무 아깝습니다. 이럴 바엔 뷔페는 뭐 하러 오나 싶기도 합니다.

청바지가 좋은 것은 아무렇게나 뒹굴어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데나 앉아도 좋습니다. 뭐가 좀 묻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냥 털면 되고 그냥 빨면 됩니다. 그렇지만 고가의 옷을 입었다고 하면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밥을 먹어도 싸구려 막옷을 입고 있으면 뭐가 좀 튀거나 묻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빨면 되지 하고 맙니다. 하지만 고가의 옷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턱받이를 하기도 하고 뭐가 튈까봐 아주 조심을 합니다. 

요즘 명품 가방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형편이 안 되니까 짝퉁을 사서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짝퉁을 들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원래가 있는 사람이기도 짝퉁을 들어도 다 진품을 든 것으로 그렇게 생각을 해준다는 것이죠. 
사실 모든 것이 풍족할 때는 할 말도 별로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그냥 원 없이 잠이나 한 번 자봤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도 며칠 휴가라도 얻어 뒹굴뒹굴 하다 보면 나중에는 좀이 쑤셔서 견디지를 못하게 되지를 않습니까? 그래서 때로는 고난도 복이라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풍족하기에 더욱 내일을 준비하는 요셉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때 요셉은 창고를 짓고 거기에 모든 곡물들을 저장합니다. 내일을 위한 준비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창고마다 가득히 채워 놓고 내일부터는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하였지만 하나님이 막으십니다. 네 생명의 날이 오늘로 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생명의 날이 언제까지인지 모릅니다. 몸이라도 불편하면 그래서 사는 것이 너무 힘이 들면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넋두리라도 하겠지만 모든 것이 풍족하면 오히려 고민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모처럼 하루 이틀 쉰다면 그 쉬는 동안 무얼 할까 하고 나름대로 계획하고 생각이 많겠지만 그렇게 쉬는 날이 열흘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된다면 그때는 쉰다고 하는 것처럼 지겨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년퇴직한 후에도 무언가 일거리를 자꾸 찾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마 우리 향남 교회 가족들만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드물 것입니다. 정말 열심히 사시고 계십니다. 때로는 몸이 힘들어도 아플 겨를도 없이 일하고 계시고 때로는 아픈 몸을 가지고도 참아가며 일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 어떤 경우라고 하더라도 먼저 감사하십시오. 아니 항상 감사하십시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더욱 좋은 날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풍년의 때에 오히려 내일을 준비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건강하기에 더욱 몸을 돌보아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합니다. 언제 그럴 시간이 있느냐고 하지 마시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건강관리를 해야 합니다. 더욱 우리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마음을 짜증으로 채우지 마시고 작은 것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채우십시오. 

“있을 때 잘해”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있을 때 잘 하십시오. 이럴 바엔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고 하는 말처럼 어리석은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풍년은 단순히 즐기라고 주신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풍년은 흉년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저수지가 왜 필요합니까? 단순히 물을 가득히 채워놓고 물고기를 키워 낚시하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오늘처럼 매마를 때를 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평안할 때 고난의 때를 기억하고 모든 것이 좋은 때 어려울 때를 준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시련의 날이 올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성도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핍박과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생각지도 않은 유익을 얻곤 합니다.
야곱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는 가나안이었습니다. 형 에서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 잠시 떠난 가나안이었습니다. 그런데 20년 넘게 삼촌 라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긴 시간은 원래의 사명을 잊고, 안주하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이때 라반과 그의 아들들의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야곱을 바라보는 얼굴빛이 좋지 않았습니다. 라반의 박대는 야곱에게는 복이었습니다. 라반이 환대하고, 친절을 베풀었다면,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났겠습니까? 박대와 핍박이 야곱으로 하여금 라반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생활을 잘하는데, 왜 고난이 있는가라고 의문을 품습니다. 핍박과 고난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로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바로의 핍박을 당합니다. 만약 이런 심한 박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모세의 말을 듣고 출애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핍박과 고난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출애굽하게 만들었습니다. 원수의 대적함도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나를 잘되게 만드는 인도하심이라는 말입니다.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을 느끼십시오. 

야곱은 라반을 떠나기 전까지 부인들에게 하나님을 제대로 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족을 데리고 떠나야 하니까, 비로소 하나님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꿈에 만난 하나님,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을 간증하기 시작합니다. 위기는 전하게 만듭니다. 
가족 중에 중병에 걸린 사람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전도하지 않던 사람이 초조함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병에서 회복되었습니다. 그 가정에 어려움이 없었다면 복음 증거도 없었을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가 머뭇거리는 것을 재촉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야곱 가정은 여러 아내들로 인해서 평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특히 레아와 라헬은 자매이면서 서로 라이벌이었습니다. 의견의 일치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라반을 떠나는 문제를 놓고 서로 하나가 됩니다. 이때 두 여자는 처음으로 ‘우리’라는 표현을 씁니다. 하나 됨을 체험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었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라고 창 31:15∼16은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걸으면 나의 오래 된 문제들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삶의 우선순위에 하나님을 두십시오. 그러면 나의 삶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풍년의 때가 계속되기를 바라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지 못할 때 생각지 못한 일들이 생겨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면 좋겠지만 문제는 우리가 원치 않는 그런 일들이 닥칠 때입니다. 

요셉의 때 흉년이 들기를 시작하니까 언제 일곱 해 풍년이 있었나 싶습니다. 결국 처음에는 돈을 주고 양식을 사다가 돈이 다 떨어지니 짐승과 양식을 바꿉니다. 그 다음에는 땅을 주고 양식을 바꾸고 나중에는 자기들의 몸까지도 다 팔아서 목숨을 연명합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흉년의 때를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보험들을 많이 듭니다. 왜 보험을 듭니까? 만약의 때를 위해서입니다. 건강 보험은 건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건강을 잃게 될 경우를 대비합니다. 

연급 보험은 일거리가 없어질 때를 대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런 대비가 없다면 막상 일이 닥치고 난 다음에 그 어려움을 극복할 길이 막연합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한 가지 귀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고난을 극복하는 지혜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넘쳐나면 웬만한 건 버려, 버려 하지만 아쉬울 땐 하나도 허투루 버리는 것이 없게 됩니다. 우리 몸도 배터지게 먹으면 대강 소화시키고 많은 부분 배설물로 버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금씩만 먹으면 몸이 비상이 걸려서 최대한 영양분을 다 빨아들인다는 겁니다. 그리고 열효율도 아주 높여서 작은 에너지로 큰 효과를 얻도록 그렇게 적응을 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쓸 것이 부족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 꼭 쓸 것만 쓰게 되는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꼭 해야 될 것과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을 그때 구별하게 됩니다. 

또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은 내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어려움을 벗어날 길이 도무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풍년의 때의 많은 곡식을 창고마다 가득가득 채울 때 어떤 사람은 그걸 보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저 사람 괜히 미친 짓 하는 거 아냐?

물론 하나님께서 칠년 풍년과 그보다 더 심한 칠년 흉년을 말씀하셨지만 그래서 요셉을 통해서 그 날들을 준비하게 했다고 해도 막상 풍년이 계속될 때 그들의 마음에는 흉년이 올 것을 잊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요셉이 흉년을 대비할 때 그들도 같이 흉년의 때를 대비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풍년이 계속되니까 그들은 흉년의 때를 대비하기는커녕 그날그날 먹고 마시고 즐기느라 바빴을 뿐입니다. 결국 그들은 덕분에 자기들의 가진 것을 다 팔아먹고 나중에는 다 바로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우리는 다 노예입니다. 여유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쓸 것에 비해서 가진 것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데 정말 그렇습니까? 우리가 결국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모든 것을 풍족하게 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이냐 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명품으로 치장을 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다 멋진 사람으로 보아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내가 명품을 들고 있다고 해서 내가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쓸 것이 부족하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쓸 데 없이 쓰는 일이 있다는 뜻도 됩니다. 꼭 반드시 해야 할 일이냐 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쁘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쁜데 정말 꼭 해야 될 일로 바쁜가, 내가 효과적으로 시간을 쓰고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래서 힘들다고 하지 마시고 이래서 나는 행복하다고 항상 생각과 말을 바꾸십시오. 사막 아카시아 나무 소위 성경에 나오는 조각목이 작지만 단단한 것은 사막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래 쓸데없이 정치를 키우지 않습니다. 작은 물 가지고도 살 수 있기를 위해 아주 그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 벌레조차 먹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랬기에 그 조각목이 성막의 기구들을 만드는 도구가 되지를 않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내일을 준비하는 지혜와 더불어 시간도 돈도 정말 효과적으로 활용하심으로 주님이 내일을 아름답게 이끌어 가시는 귀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결국 7년 흉년이 지나가면서 모든 애굽 백성들이 다 바로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자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몸도 가축도 땅도 다 왕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때 요셉이 어떻게 합니까? 그들에게 종자를 줍니다. 그라면서 너희 앞에 있는 땅에 파종을 하고 농사를 지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노예가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모든 것은 다 주인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무슨 낙으로 농사도 짓고 힘을 내겠습니까? 그래서 요셉의 지혜가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요셉은 노예가 돼 버린 백성들에게 땅과 종자를 주어 농사를 짓게 하며 이르기를 농사를 지어 거두거든 1/5을 나라에 바치고 나머지 4/5를 가지고는 너희 종자로도 쓰고 너희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전통적인 토지법이 되어 오늘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가 회계할 때 주인이 어떻게 합니까? 많이 맡아 충성한 자에게는 더 많은 것으로 맡겼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아 다섯 달란트를 남긴 자에게는 열 달란트를 주었고 두 달란트를 받아 두 달란트를 남긴 자에게는 네 달란트를 주었지만 한 달란트 그대로 가져온 자에게는 그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것에서 하나님 몫이 2/10라는 생각을 우리는 항상 해야 합니다. 1/10은 십일조로 마땅히 하나님께 드리고 또 다른 1/10을 가지고 다른 예물들을 준비하여 드리되 최소한의 몫이 다 합쳐서 2/10라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보장하신다는 것입니다.  
자 요셉이 백성들에게 땅과 거처와 종자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농사를 짓되 거둔 것에서 2/10를 나라에 바치라 그리고 나머지를 가지고 살라고 합니다. 그런데 2/10를 드리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사람은 한 달란트를 맡았던 자처럼 가진 것마저 빼앗기고 내어 쫓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가름대입니다. 하나님 앞에 2/10를 드리면 그 삶을 하나님이 책임지실 뿐 아니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그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내 도리를 다하지 않으면 다 빼앗기는 것입니다. 거기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더더욱 내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건강? 자식? 내가 하는 일? 내 생명, 내 가족 어느 하나 참된 의미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내가 내 것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버리던 말든 내 마음이라고 하시겠습니까? 하지만 한번 잃어보면 그거 내 마음대로 회복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마중물이 없고야 어찌 물을 퍼낼 수 있겠고 심지 않고서야 어찌 거둘 수 있겠으며 새벽잠을 희생하지 않고서여 어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꾸준히 운동하지 않고서야 어찌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으며 시간 관리를 꾸준히 하지 않고서야 어찌 규모 있게 생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 내일을 위해 오늘을 마중물로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요셉은 고난의 사람이었습니다. 욥도 다윗도 모두 고난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들은 이렇게 고난 속에서 인생을 꽃피운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의 성패를 순경 속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성패는 순경 속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고난 극복의 힘은 무엇일까요? 용기입니다. 용기야말로 고난의 벽을 뛰어넘게 하는 삶의 동력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용기 때문입니다.

용기는 고난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극복의 대상으로 보게 합니다. 그리하여 고난과 당당히 맞서 싸우게 합니다. 문제는 이 용기가 믿음에서 온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의 용기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에서 우러나옵니다. 과연 믿음은 삶의 용기를 주고 용기는 삶에 변화를 줍니다. 그리하여 고난의 바다를 기쁘고 당당하게 항해하도록 삶에 힘을 줍니다.
이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마중물을 드리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만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모든 쓸 것을 풍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게 만들어줍니다. 가물기에 더욱 양수기로 물을 대주며 씨를 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음 주 우리는 맥추감사절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거두었는가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고난의 때가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하여 고난 중에도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고 힘들수록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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