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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마 16: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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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마 16:21-28)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고통과 아픔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라고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남편이 속을 썩입니까? 자식이 말을 듣지 않습니까? 하시는 사업이 흔들립니까?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고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십자가입니다. 기도하십시오. 찬양하십시오.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십자가는 배신과 조롱과 버림받음과 영육간의 고통으로 가득찬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에서도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사랑했던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였습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버렸습니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마 26:15) 

또한 베드로마저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막 14:71) 

병을 고쳐주고 떡을 줄때는 자신들의 왕이 되어달라고 쫓아왔던 대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막 15:14) 

십자가는 배신을 당하는 아픔이 있는 길입니다. 우리들도 삶을 사노라면 배신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입니다. 사람을 믿지 말고 하나님만 믿으라고 교훈하시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마 27:42)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막 15:20)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조차 버림을 받았습니다.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예수님은 영육간에 처절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채찍에 맞고(요19:1), 가시관을 쓰시고(마 27:29, 못 박히시고(마 27:35)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셨습니다(요19:34). 

십자가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지라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하나님은 이토록 처절한 십자가를 우리 모두가 다 짊어지라고 원하십니까? 바로 십자가 이후의 큰 축복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죽는 길 같지만 실상은 사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죽음 후에는 영광의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눅 24:6) 

이 영광된 부활을 얻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삶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 3:10-11) 

또한 십자가는 하나님 앞에서 높임 받는 영광이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십자가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화평을 이룹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6) 

십자가는 승리를 약속합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5) 

이처럼 십자가가 당장은 쓰리고 아픈 것이지만 그 열매는 달고 풍성합니다. 십자가의 삶은 성도가 성도로서 성화되어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며 훈련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들이 십자가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입니다. 여호수아가 오직 믿음으로 여리고성을 돌았던 것처럼 성도들은 자기의 생각, 자기의 경험을 내려놓고 여리고성을 돌아야 합니다. 허무맹랑한 그 짓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십자가는 죽기 위해서 짊어지는 것입니다. 죽음으로써 다시 사는 것이 곧 십자가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이 허무맹랑한 방법으로 사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죽는데 사는 것이 십자가의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면 십자가를 달게 지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면,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수많은 현장이 펼쳐집니다. 그곳에서 차라리 죽으십시오. 손해보고, 양보하고, 낮아지십시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루아침에 십자가를 번쩍 들어올릴 수는 없습니다. 모세도 40년이나 걸린 일입니다. 요셉도 깊은 감옥에서 십 년의 세월 속에서 터득한 것입니다. 오늘 완전히 죽을 수는 없을 지라도 죽는시늉이라도 내 보십시오. "죽어야지!"라는 생각만이라도 잊지 마십시오. 

순간순간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참된 지혜를 배우십시오. 죽음으로서 살아가는 지혜 말입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죽어야 다시 사는 십자가.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끝까지 지고가야 할 십자가. 이리저리 채이고 조롱당하면서도 부둥켜안아야 할 십자가. 십자가 위에서 내 자아가, 내 고집이 갈갈이 찢어지고 부서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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