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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 평화의 복음_ 통일 (눅 19: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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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복음_ 통일 (눅 19:41-44)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6.25전쟁의 교훈

올 해로 6.25전쟁이 발발한지 62주년입니다. 60년이 넘은 지금 금수강산을 할퀴었던 전쟁의 상흔은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 상처와 분노가 남아 있습니다. 1천만 이산가족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도 없이 늙거나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갈등과 험한 말싸움은 갈수록 그 수위가 높아져만 가고 있고, 우리 사회에는 근 몇 달째 지겨운 종북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6.25전쟁만큼 아픈 상처는 없을 것입니다. 사망과 실종으로 이어진 인명 피해가 자그마치 250만 명에서 3백만 명에 달합니다. 당시 남북한 인구가 3천만 명이었으니 열 명 중 한 명꼴로 죽임을 당했다 할 것입니다.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우리 민족은 서로 죽고 죽이는 학살을 자행했던 것입니다. 이 중 남북한 군인들과 유엔군, 중공군이 희생당한 숫자는 8,90만 명이고 대부분 민간인 학살이었습니다. 참으로 잔인한 전쟁이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비극을 유발했던 북한은 여전히 남한이 먼저 공격했다는 북침설을 금년에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야 당연히 북한이 남침했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동안 일부 역사학계나 국제 사회에서는 남쪽이 먼저 공격했다는 북침설, 미국과 남한이 남침을 유도했다는 남침 유도설, 계속된 작은 전투와 갈등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는 내전 확대설 등이 회자되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전쟁 발발의 책임 소재를 따지지 않고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만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북한이 상투적으로 주장하는 북침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북한의 노동신문(1950.6.26, 27일자)에 보도되었던 북한 내무성의 성명입니다. “금 6월 25일 이른 새벽에 남조선 괴뢰정부의 소위 국방군들은 38선 전역을 걸쳐 38 이북지역으로 불의의 진공을 개시하였다. 불의의 진공을 개시한 적들은 해주방향 서쪽에서와 금천방향에서와 철원방향에서 38 이북지역에로 1킬로메터 내지 2킬로메터까지 침입하였다. .... 인민군 부대들과의 협동작전하에 공화국 경비대는 38 이북지역에 침입한 적들을 완전히 격퇴하고 반공격전으로 넘어갔다. 금 6월 25일 현재 공화국 인민군대와 경비대 부대들은 많은 지역들에서 38 이남 지역으로 5킬로메터 내지 10킬로메터까지 전진하였다” 그들은 남한이 먼저 공격했고 그에 대한 방어전의 성격이 6.25전쟁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6.25 직전의 상황과 그 전개 과정을 보면 누가 전면전을 일으켰는가는 분명합니다. 김일성과 박헌영의 북한 공산당이 주도하였고 스탈린과 모택동이 이를 전폭 지지하였습니다. 1990년대에 풀리기 시작한 소련의 비밀 외교 문서들이 이런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을 방문하며 무력에 의한 통일을 이들로부터 확약 받았습니다. 북한은 전쟁 직전까지 소련의 물자를 지원을 받아서 무장을 했으며, 중국의 공산혁명에 참여했던 부대들을 북한 정규군에 편입시켰습니다. 6.25 직전 전 전선에 군대를 전진 배치시키고 공격을 위한 사전 작업을 완료하였습니다. 

북한의 전쟁 의지는 1949년의 중국 공산혁명의 성공에 자극 받았고, 미군 철수를 계기로 노골화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이후 전개된 전쟁 양상을 보아도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어떻게 먼저 공격했다는 남한 정부가 형편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까? 하루만에 패퇴하고, 불과 3일만에 서울이 북한 수중에 들어갔으며 한 달도 못되어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내려 갔습니다. 북한의 침공에 응전하는 남한 정부의 모습은 우왕좌왕했고 미군이 개입하고 나서야 겨우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해방 후 전쟁에 이르는 5년 동안 남한 사회 내에서는 내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이념 갈등이 심하였습니다. 38선을 경계로 작은 전투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작은 내전을 전면전으로 발전시킨 것은 전적으로 김일성과 북한의 공산당이었습니다. 북한이 여전히 북침설을 주장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 전쟁이 얼마나 무모했던가를 보여줍니다. 북한은 민족해방 전쟁을 일으켰지만 실패했다고 규정하는 것이 더 솔직할 것입니다. 김일성과 북한 공산정권의 무장 폭력에 의한 강제 통일 시도가 민족에게 엄청난 비극을 가져왔고 이에 대해서 그들은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제가 6.25전쟁의 책임소재에 대해서 장황히 언급하는 이유는 평화의 길이 아닌 폭력을 통해서 통일을 이루려는 시도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북한이 전면전을 먼저 일으켰다고 하여 모든 악은 북한에게만 있고 남한은 무죄하게 당한 의인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 식으로 북은 악이고 남은 의롭다고 강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김일성이 국토 완정론을 주장하여 무력 통일의 의지를 보일 때 이승만 정권 또한 북진통일을 주장하였습니다. 북침하지 못한 이유는 단지 그럴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북한의 폭력 못지않게 남한의 폭력 또한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전쟁은 6월 25일에 일어났지만 그 이전 남한 사회는 내전 상황을 방불케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948년도에 일어난 제주 4.3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이때 죽임을 당한 사람이 2만 5천에서 3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대부분이 민간인들이었습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남쪽 정부가 했던 가장 잔학한 행위 중에 하나는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학살입니다. 

보도연맹은 좌익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우익으로 전향시켜 관리하던 단체였는데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이들이 북한 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집단 학살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수자가 자그마치 20만 명에서 50만 명에 이릅니다. 북한은 인민재판으로 민간인들을 학살했고, 남한은 군과 반공테러 단체들의 주도로 좌익에 대한 학살을 단행하였습니다.

미군 또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무차별 공중폭격을 한반도 전역에 가했습니다. 미 극동군 폭격부대 지휘관 오도널은 1951년 의회 증언에서 “한반도 전역이 거의 거대한 쓰레기더미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증언할 정도였습니다. 북한 지역은 1평방 킬로미터 당 평균 18개의 폭탄이 투하되었다고 합니다. 이 눈먼 폭격으로 수많은 양민들이 죽어갔습니다. 소련과 미국은 이 외에도 비난받을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이 두 나라는 우리나라를 38선으로 가른 분단의 원흉이었고 결국 6.25전쟁에 이르게 한 근원적 책임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당사자인 일본을 분단시켰어야지 왜 아무 죄도 없고 오히려 피해자인 한반도를 38선으로 갈라 결국 이런 비참한 전쟁에 이르게 한 것입니까?

6.25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디지만 평화의 길이 옳고, 보다 확실하게 통일에 이르는 길입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보다 확실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짐승의 길입니다. 인간성이 파괴되고 승자나 패자나 행복하지 않습니다. 폭력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고 자기가 원하는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팍스 로마나와 팍스 크리스티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길은 폭력이 아니라 평화의 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서 말씀을 읽노라면 이스라엘의 비극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비극을 읽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입성하시기 전에 예루살렘을 보며 울며 탄식하셨다고 전합니다. 41절입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우시는 장면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데 주님은 지금 울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에 닥칠 비극이 곧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류가 줄곧 걸었던 폭력의 길의 결말이기도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방인들이 성도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매우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열심당 운동으로 대표되는 이들의 독립 운동은 무력에 의해서 해방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폭력의 길은 다수의 지지를 받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가장 시원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 돌아가신 후 30여년 후 이들은 로마에 지배하는 무장 독립 운동을 일으켰지만 철저히 패배하고 맙니다. 이때 예루살렘에서만 10만여 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의 비참한 상황을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지붕 위는 탈진한 여자와 아이들로 가득 찼고 길에는 죽은 노인들이 가득했다.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은 흉하게 튀어나온 얼굴로 유령처럼 거리를 배회하다가 고통 속에 탈진하여 여기저기에 쓰러져 죽었다. 모두 지쳐서 자기 가족들을 매장할 수 없었고... 이러한 죽음에는 눈물도 애곡도 없었는데 기근이 모든 감정을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자기 아이를 잡아먹는 일도 발생을 했다고 요세푸스는 전합니다. 그들이 살육당하면서 흘린 핏물로 인해 예루살렘을 태우던 불이 꺼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것을 미리 바라 보았던 예수님은 마지막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서도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 하며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평화의 길을 갈 것을 요구하십니다. 세상의 길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폭력의 길이라면 주님의 길은 평화의 길입니다. 사가랴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렇게 찬양을 합니다.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1:79) 누가복음에서는 ‘평화’, ‘에이레네’란 단어를 14번이나 사용할 정도로 평화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이 높습니다. 누가복음에서만이 예수님이 태어나던 때를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와 관련지어 보도합니다(2:1).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오랜 로마의 내전을 종식 시키고 최초의 황제 정치를 시작한 인물입니다. 

로마인들이 숭상하는 전쟁의 신 중에 야누스가 있습니다. 로마가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에 이 신전의 문은 열려 있는데 로마 역사에서 이 문이 닫힌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문이 잠깐 닫혔던 시절이 있었는데 바로 아우구스토스 황제의 집권기입니다. 이때로부터 시작된 로마의 평화를 ‘팍스 로마나’라 부릅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로마의 무력에 의해서 주어지는 평화입니다. 강자는 행복할지 몰라도 약자는 비참해지며, 끊임없이 더 강한 폭력을 경계해야 이룰 수 있는 위장 평화입니다. 

누가복음은 이런 팍스 로마나에 대항하여 ‘팍스 크리스티’, 곧 주님의 평화를 주장합니다. 로마의 평화는 거짓이고 주님의 평화가 진짜임을 선언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불렸던 천사들의 찬양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2:14) 성탄절의 낭만 가운데 부르는 이 찬양 속에는 세상의 힘과 무력의 논리에 도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평화 체제의 출범을 알리는 선언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도 무리들의 입을 통해 동일한 찬양이 울려퍼집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19:38) 주님은 70인의 제자를 각지로 파송하면서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하도록 명령하십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10:5) 복음은 평화의 복음이며 평화를 가져다주는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모여 있는 데 나타나셔서 하셨던 첫 말씀도 평화의 축복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4:36)

예수님은 무력이나 폭력을 반대하는 길을 가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잡히시던 겟세마네 동산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무리들을 보고 제자들이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22:49) 하고는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쳐서 떨어뜨립니다. 주님은 이 때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는 그 귀를 낫게 해주십니다. 그리고는 비무장 상태의 예수님을 마치 강도를 잡는 것처럼 검과 몽치를 들고 온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을 비난하십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26:52)는 주님의 말씀을 덧붙입니다. 주님은 폭력의 길의 위험과 그 결과가 어떠한지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폭력으로 저항하지 않으시고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평화의 길로 가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들 또한 저항하기보다는 예수님처럼 평화와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자기희생과 십자가의 길을 갔던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결국 로마를 정복하고 말았습니다. 로마의 황제 줄리앙이 죽음을 맞으며 최후로 고백했던 말은 “갈릴리인이여 그대가 정복하였도다.”입니다.

주님의 평화는 어떻게 이룰 수 있습니까? 주님의 평화는 원수 사랑의 길에 있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6:27-29)

주님의 평화는 섬김의 길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5-27) 

주님의 평화는 사랑과 나눔의 길에 있습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19:8) 초대교회는 자기들의 재산을 내어놓아 가난한 자들을 섬겼습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눅14:21) 초대교회는 계급 갈등을 교회 안에서 서로 섬기고 사랑함으로써 해소하였습니다.

주님의 평화는 민족 간의 차별을 철폐하고 하나가 되는 길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던 사마리아에 대해서 제자들은 하늘의 불을 내려 멸하자고 할 때 주님은 이를 꾸짖으시고 막으셨습니다(눅9:54-55).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철천지원수인 사마리아인을 오히려 강도 만난 자를 구원하는 선한 사람으로, 문둥병이 나은 후 돌아와 감사를 표한, 열 명 중 유일한 한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 인들 사이의 갈등을 없애셨고, 로마 백부장도 이방인들도, 죄인들도 다 포용하는 형제 공동체를 만드셨던 것입니다.

평화의 길

주님의 용서와 섬김과 사랑과 형제애로 드러나고 있는 평화의 길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고 특히 한국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한국교회가 이런 주님의 평화의 길을 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용서보다는 오히려 원수를 미워하고 대적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가장 이념적이며 가장 적대적인 공동체가 바로 한국교회입니다. 왜 교회가 앞장서서 극우세력의 지지자가 되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섬김의 길을 가기보다는 권위와 힘을 좋아합니다. 사랑의 길을 가기보다는 앞서서 복지 정책에 반대하고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더 선호합니다. 포용과 화해의 길로 가기보다는 갈등과 자기 독선의 길로만 갑니다. 이러다 예루살렘을 향한 탄식이 한국교회를 향한 탄식이 되고, 한국 사회를 향한 탄식이 될까 두렵습니다. 폭력과 갈등의 길은 결국 파국입니다.

6.25전쟁의 교훈은 다시는 전쟁이나 폭력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6.25 참상을 겪었으면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은 여전히 ‘서울 불바다’란 단어를 거침없이 사용하고 우리 군 또한 ‘강력 응징’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지금 남북한의 태도는 6.25 전쟁 전의 상황처럼 아슬아슬해 보입니다. 평화라는 좋고 안전한 길을 버리고 전쟁과 폭력이라는 어리석고 불안한 길을 선택하려 합니다.

1994년에 미국이 북한과의 핵 갈등으로 북한의 영변 지역을 폭격할 계획을 세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반격이 있게 될 것이고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은 데 그 피해 예상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시뮬레이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놀라웠습니다. 개전 하룻만에 군인 20만명을 포함한 민간인 150만 명이 살상 당하고, 3천억 달러의 경제적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었습니다.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밀집되어 있기에 가능한 수치입니다. 이것이 근 20년 전의 분석이니 지금은 그 피해가 아마 1.5 내지 2배로 더 늘어날 것입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런 막대한 피해를 입고도, 강대국들의 개입으로 계속 분단 상황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한 무력이 아니라 평화에 대한 확신과 의지입니다. 우리가 무장하면 할수록 북한은 핵무기 보유의 유혹은 더 커질 것입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군 기지를 건설하면 우리 해군은 강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연쇄 반응으로 중국과 일본의 경계가 높아지면서 동북아의 갈등이 확대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합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무장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힘은 경제력과 외교력, 도덕성과 민주의식, 평화에 대한 굳건한 의지, 사랑과 인류 형제애의 정신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걸으셨던 평화의 길입니다. 

통일이냐 평화냐 할 때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는 평화입니다. 통일은 한 국가를 이루는 것인데 그것은 세상이 원하는 소원일지 모르지만 신앙적 가치는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의 통일국가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온 인류가 한 형제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목표입니다. 결국 한 국가를 이루려는 염원이나 흡수될까 하는 두려움이 무력에 의존하게 만들고 전쟁도 가능하다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남북한이 영원히 두 개의 나라로 존속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남북한이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공존하기만을 원합니다. 북한의 굶주린 형제들이 배부르게 되며, 그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기를 원합니다. 1천만 이산가족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남북의 형제들이 제한 없이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기를 소원할 뿐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에게 통일이 주어지면 좋겠지만 저는 통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힘쓰고 노력해야 할 것은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주도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통일이라는 귀한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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