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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실종된 5계명 (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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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5계명 (출 20:12)

오늘은 부모님 주일입니다. 어느 누구나 부모님 주일에 대해서, 부모님 효도에 대해서 말씀을 들을 때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을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1년에 한번 있는 귀한 날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 마음을 터 놓고 우리 자신을 한 번 돌이켜보고 특별히 우리 부모님에 대한 우리 마음 자세를 새롭게 정리하고, 새 결단을 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먼저 축원합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 동시에 윤리적인 동물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 사회는 반드시 윤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어느 민족, 어느 족속이든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인간이라면 윤리가 있고 도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말세가 되면서 윤리와 도덕이 계속해서 타락해 가고 무쳐져 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윤리와 도덕이 무엇인가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떤 관계 설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떠한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되느냐는 바로 윤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윤리를 떠나서 윤리 보다 차원 높은 신앙 양심의 세계, 또 그 이상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 속에서, 영적인 세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런 윤리적인 세계는 불신자나 신자나 누구나 갖추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윤리적인 범죄에 속한 문제를 우리가 바로 짚고 넘어갈 때 우리의 삶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리라 확신합니다.
 
여러분! 윤리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바로 정립하고, 인간의 사회 질서가 바로 서게 되고, 질서 있는 사회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편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윤리 생활이 무너지면 인간의 질서도 무너지고, 파괴되고, 인간은 아수라장이 되고, 싸움과 전쟁터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이렇게 사회가 혼란하고 많은 문제를 안고 진통하는 이유는 바로 윤리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윤리라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윗사람과 아랫사람과의 관계, 또는 형제간의 관계, 부모 자식 간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윤리관계가 바로 맺어지게 될 때에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되고, 그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되고, 교회도 역시 행복한 교회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인간 사회 속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윤리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부모 자녀간의 관계입니다. 부모 자녀간의 관계가 어떻게 정립되느냐? 이것이 이 사회 생활 혹은 민족과 국가, 전 세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중대한 결과를 가져 오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모든 인간 사회의 기본이 되고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너지게 되면 모든 관계가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부모 자녀 관계가 무너지게 되면 형제간의 관계도, 이웃 간의 관계도, 선후배 관계도 모든 관계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말세의 특징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딤후:3:1) “말세에는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라” 왜 고통 하는가 하면 감사치 아니하며, 감사치 않는 것이 먼저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윤리의 문제는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 하면 감사를 잃어버린 데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십계명이 실종된 것과 같습니다. 특별히 십계명중에 5계명이 실종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부모 공경이라는 것은 하나의 허울에 불과하고, 실제의 생활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분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요, 서글픈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에, 이 문제를 한 번 짚고 지나감으로서 우리의 지난날의 삶도 한 번 반성해 보고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정립해서 하나님 마음에 맞게 살아가느냐? 이것을 결단하는 시간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동물이 아닙니다. 동물은 자기의 본능을 위해서 살아가고 쾌락적인 만족을 위해 살아가지만, 우리는 본능에 의해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또 쾌락적인 만족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바로 맺으므로 거기에서 질서가 오게 되고, 그 질서를 통해서 평화가 유지되고, 하나님이 함께 함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고, 거기에 인간의 삶의 의미가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생활의 행복을 위해서 질서를 만드셨습니다. 질서란 각 분야의 권위자를 주셨습니다. 가정에는 부모님이 권위자입니다. 또 사회에서는 사장이, 나라는 대통령이, 교회는 교회를 지도하는 분이 권위자입니다. 이런 권위자를 통해서 질서를 유지하게 되고, 평화를 이루게 되고 또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부모 자녀간의 관계가 무너지게 되면 모든 관계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를 무시하는 자식이 사회에 나아가서 사람 구실을 할 수는 없습니다. 가는 곳 마다 파괴적이고 공격적이고 불필요한 존재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하게 되면 출애굽기20장에 있는 십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십계명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될,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안 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셨는가 하면, 이 계명을 통해서 우리가 보다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이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계명은 마지못해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의 표시로서 계명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잃어버린 계명을 다시 찾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잃어버린 계명을 찾을 때 그곳에 복이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그곳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내려지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개인의 역사나 민족 국가의 역사나 계명을 잃어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스라엘 암흑시대 사백년 동안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은 무엇이었습니까? 자기의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소견에 좋은 대로, 자기 기분에 따라 이권 따라 감정 따라 살아갔다는 말입니다.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미해졌고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았던 영적인 암흑기를 지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영적 암흑기인 사백년 동안처럼 현대가 영적 암흑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는 말씀이 희미해졌습니다. 말씀이 있어도 말씀을 바로 지키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계명이 실종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시간에 잃어버린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다시 찾아서 이 계명이 여러분의 삶에 등이 되고, 빛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손가락으로 두 돌 판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이 계명을 모세에게 주실 때, 하나님께서 친히 번개와 뇌성과 빛 가운데서 강림하셔서 이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계명을 모실 때, 바로 지성소에 성전의 가장 깊은 곳에 모셨습니다. 지성소라는 곳은 하나님의 임재의 의미를 나타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계명은 영원히 없어져서는 안 될, 영원히 남아야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 부모라는 의미  
 
1. 선조 전체를 뜻한다.

여러분! 오늘 여기에 부모님이라고 하는 것,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면 첫째는 모든 조상들을 성경은 다 아버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1:1)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절 이하를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그 세계라는 말은 조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행7:2) “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절을 보면 스데반이 이 교권주의자들,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순교 당하기 전에 말씀을 증거 할 때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라고 합니다. 영어 성경에는 아버지라고 합니다. 아버지라는 뜻은 넓게 사용되어서 모든 조상들을 다 아버지라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성경이 보여 주는 교훈입니다. 

성경은 부모에 대해서 앞선 자, 주권자, 위에 있는 자를 부모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요한1서에 나오는 소자들아, 아비들아 라는 말은 혈연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인 면에서 자식이요. 아비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왕하5:13) “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하이리이까 하니” 

절을 보게 되면, 이제 나아만 장군이 등장하게 됩니다.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찾아와서 엘리사 선지자에게 치료를 요청할 때, 요단강 물에 가서 목욕을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아만이 화가 났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요단 강 보다 더 좋은 강들이 있는데, 하필이면 여기서 목욕하라고 하느냐고 분노하게 될 때, 그 종들이 아버지여, 아버지여라고 합니다. 이 보다 더 큰 일도 명하면 해야 되는데, 아니 목욕하는 것 못 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거기서 목욕을 하고 치료를 받습니다. 
 
 
2. 위에 있는자 혹은 권위자, 주권자, 앞선자

아버지여! 무슨 말인가 하면 성경은 바로 이 부모를 누구라 하는냐 하면 상사와 종의 관계, 신하와 왕의 관계를 부모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갈4:19) “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절에서 말하기를 내가 너를 해산의 수고로 너희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교인들을 가르치고 교인들을 양육하게 될 때 그들을 해산하는 수고로 양육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어머니라는 것으로 가르치고 교인들은 자녀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엘리사가 엘리야가 받은 그 갑절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 단에서 벧엘로 도착할 때 드디어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하게 됩니다. 그 때 엘리야를 바라보면서 불 말과 불 병거를 타고 회오리 바람 가운데 올라가는 엘리야를 보면서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요’라는 말은 스승이 부모라는 것입니다. 제자는 자녀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원어의 뜻은 바로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혈연적으로 반드시 내 부모만이 부모가 아니라 바로 나를 가르쳐 준 스승도 내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나를 가르치고 여러분을 위해서 봉사하는 분들, 교회 어른들도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조상들도 역시 부모가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3. 혈언적인 관계에서 친 부모를 가르킨다.

1) 하나님은 부모를 이 세상 모든 영역의 대표자로 세웠다.

더 나아가서 부모라고 하는 것은 혈연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혈연적으로 나를 낳아주시고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대표 사자로 권위를 주셨습니다. 우리 삶의 각 영역에서 부모님들이 대표 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회 질서 보존과 일의 효율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대표 사자를 세우셨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 외에 가장 큰 은혜와 가장 큰 감사할 일이 있다고 한다면 부모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부모님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이 땅위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모님에게 주신 권위는 바로 신적인 권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위입니다. 누가 도전할 수 없는 권위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님에게 권위를 주셨습니다. 

(롬13:1) “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바라 ” 절을 보게 되면 ‘누구든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그 권세에 불복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불복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2) 모든 사회와 국가의 기본 단위가 됨. 가정의 권한은 부모들 에게 완전히 위임 - 주 안에서의 권한
왜 우리가 부모님을 받들어 섬겨야 하는가 하면 그 부모님에게 주신 권위는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이기 때문에, 나 보다 똑똑하고 훌륭해서, 인격이 고매해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 내 부모로서 권위를 부여했으므로 바로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권위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피조물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부모님을 잘 섬기지 아니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피조물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된다는 것을 성경은 잘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부모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축복의 매개체
 
◈ 부모공경 방법

① 부모가 원하시는대로 받드는 것

② 노후를 흡족하게 보살펴 드리는 것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부모님은 바로 축복의 매개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부모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자녀들을 위해서 축복 기도를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야곱도 열두 아들에게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 복이 그 열 두 아들들의 생애에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복을 주실 때 누구를 통해서 복을 주시는가? 여러분을 세우신 부모님을 통해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잘 받들어 섬길 때 하나님이 이 부모님들로 인해서 여러분들에게 복을 주실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고전4: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절을 보게 되면, 그러am로 사도 바울은 내 친 아들 같이 양육했다고 말합니다. 교우들을 자기의 친 아들로 생각했고, 교우들은 사도 바울을 영적으로 아버지로 생각했다는 것을 성경은 많이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보게 되면 우리 부모님에 대한 태도들이 너무나 성경과 거리가 먼 사실을 발견할 수 가 있습니다. 정말로 부모님을 아끼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녀들, 그 자녀들이 복을 받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의 가장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왕 중에 순 왕이 있습니다. 이 순 왕은 어렸을 때에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가 들어 왔습니다. 이 계모가 이 순을 너무 미워해서 죽이려고 깊은 우물 속에 은비녀를 떨어뜨리고 그 은비녀를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찾으러 들어가면 흙을 덮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우물 옆에 구멍이 뚫려 있어 살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지붕에서 일을 하는데 죽이려고 그 아래에서 불을 땠습니다. 그 때 큰 삿갓을 가지고 올라갔기에 삿갓을 타고 내려 와서 살았습니다. 하는 말이 나는 부모님에게 효도하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 내가 죽으면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느냐 했습니다. 그 다음에 왕이 되었을 때 그 나라가 가장 태평성대를 이루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위에 이 부모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 여러분들이 섬기는 이 부모님들은 여러분 세대와 지금 젊은 세대의 부모님과 다릅니다. 다른 나라의 부모님과 다릅니다. 과거에는 가장 적은 단위인 가정의 권한을 부모에게 주었습니다. 자녀의 살생권까지 줬습니다. 그건 악한 일입니다. 그런데 한국 부모님은 지나친 관심과 교육열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온갖 것들을 다 투자하고 나중에는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여러분, 한국 부모들이야 말로 자녀들을 위해서 전심을 다해 얼마나 최선을 다합니까? 다른 나라 부모님들과는 다릅니다. 현재의 어른들, 노인들은 우리나라의 가장 격동기를 겪어 온 분들입니다. 지금은 나라가 안정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젊었을 때는 부모님들을 얼마나 잘 섬겼는지 모릅니다. 꼼짝 못하고 시부모님을 하나님처럼 받들다가 노인이 되고, 시부모가 되어서 존경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될 때에 시대가 악함으로 인해서 오늘날 많은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천대를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 불효이유?

① 세계적인 흐름 (타락한 문화)
② 극단적인 인본주의
③ 이기주의, 편파주의
④ 바쁘고 복잡한 업무
⑤ 도덕과 윤리, 인간성 파괴
⑥ 핵가족 제도

핵가족 시대가 되었습니다. 부모들을 떠납니다.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 시대가 되어서 모두 자기만 압니다. 편리하게 안일하게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나에게 잘하고 잘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부모님이 계신다는 자체가 싫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신이 아닙니다. 

어떤 부동산에 한 사람이 보따리 하나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집을 계약하려고 합니다. 내가 곧 올테니 기다리라고 하고는 그 보따리를 자기가 살려고 하는 방에 놓았습니다. 그 보따리가 이상해 열어 보니 바로 치매 걸린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주인이 바로 의사 자식이었습니다. 의사이면 뭐합니까? 우리는 남처럼 특별히 효도 못해도 기본이 되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악하게 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특별하게 효도해서 표창을 받고, 존경은 못 받을지라도 그러나 기본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직분을 받아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고, 충성해서 신앙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인정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는 부모에게 함부로 하고 부모님의 마음에 칼질을 하는 자식들이 있다면 한 번 깊이 반성해 볼 일이 아닌가 합니다.

어떤 부모님이 오남매를 키웠습니다. 논밭을 팔아 서울에서 대학을 다 보냈습니다. 결혼까지 시켰습니다. 모든 재산 다 털었으니 할 수 없이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왔으나 자식들이 모시려고 하지 않습니다. 막내가 빈 방이 하나 있어 두 아들이 십 만원씩 내어 막내가 모시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막내가 겨울임에도 불을 때지 않으므로 냉방에서 지냅니다. 노부부가 마음에 큰 아픔을 가지고 어느 봄날 산에 가서 진달래꽃을 따서 들고서 ‘우리가 지낼 곳이 없어 죽습니다’ 는 유서를 남겼다고 합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다른 나라 이야기도 아닙니다. 내 가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연세가 들게 되면 자연히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누가 잘 상대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노인들 좋아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가진 경제력도 없습니다. 몇 가지의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반겨주는 사람 없습니다. 자식들도 점점 학대합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며 죽음의 공포가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른들이 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새우는 분들이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자살하는 노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부모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우리들입니다. 내 부모 한 사람 제대로 못 받든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어떻게 나타날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나오미를 보십시오. 이방 땅에 갔습니다. 남편도 죽었습니다.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처참하게 맨 몸으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때에 그 이방의 자부인 룻이 어머니를 따라 오지 않습니까? 아무 기대할 것도 없습니다. 노인입니다. 돈도 없습니다. 쫒아오지 말라고 모압 땅에 머물라고 하지만 어머니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물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쫒아가서 그 이방 나라인 베들레헴에 가서 잘 섬기고 받들었더니 이스라엘의 유명한 다윗왕의 할머니가 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기독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론이 있는 대신에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부모님을 섬기는 것으로 표시되어야 합니다. 부모님에게 함부로 하고, 상처 주면서 하나님 잘 섬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는 지난 우리의 삶을 돌이켜 봅시다.

그리고 누구나 다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의 희생으로 수고와, 고통과, 땀으로 현재 우리가 있는 것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편 아버지가 대단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의 대변자가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절대 순종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강대한 나라가 되었습니까? 이만 하버드 대학생 중에 칠천 명이 유대인입니다. 예일 대학 20%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복 받는 민족이 되었는가? 부모를 잘 섬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더 긴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 부모님 주일을 맞이해서 이론적으로 신앙 좋다고 할 것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우리 부모님을 잘 섬김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을 나타내서 여러분의 남은여생을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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