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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삼상 15:34-16:13, 막 4:26-34, 고후 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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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삼상 15:34-16:13, 막 4:26-34, 고후 5:6-10)

 
<아, 낙심천만한 세상이여!>
   
오늘은 오순절 후 세 번째 주일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크고 작은 일에 낙심할 때가 왕왕 있습니다. 큰일을 해보고 싶은데 출발이 너무 시원찮아서 낙심합니다. 자본도 부족하고 기술이나 경험, 인맥, 등등 모든 것이 넉넉지 않습니다. 과연 이런 상태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용기가 서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건강 문제 때문에도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건강할 줄 알았는데, 검사를 해보니 중병입니다. 그 때 그 낙심이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한 쪽 다리가 심하게 아파서 고생하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봤고 좋다는 약은 다 써봤지만 별반 차도가 없었습니다. 장마철이 되니까 통증이 더 심해졌습니다. 견디다 못해 한 병원을 찾아가 젊은 의사에게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의사 양반, 왼쪽 다리가 쑤시는데 요즘같이 장마철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수. 혹시 몹쓸 병은 아닌지….” 할머니의 푸념에 젊은 의사는 건성으로 대답합니다. “할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연세가 들면 다 그런 증상이 오는 거예요.” 
   
그러자 할머니가 갑자기 버럭 화를 냈습니다. “이 보슈, 의사 양반! 아프지 않은 오른쪽 다리도 나이는 같은 동갑이여!” 참 이상하지요. 오른 팔이나 왼팔이 다 동갑인데 오십견도 한쪽에만 찾아올 때가 있지요!
   
오늘 이런저런 낙심거리를 가슴에 품고 교회에 오신 분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비유 말씀을 통해 큰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봉독한 마가복음에는 두 개의 비유가 나옵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
   
먼저 첫 번째 비유는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렸습니다. 씨앗이 자라나 싹을 내고, 이삭을 내고, 낟알을 냅니다. 그래서 추수 때가 되어서 열매가 다 익으면 낫을 대서 거둡니다. 아주 하찮은 이야기이지요. 도대체 예수께서 이 평범한 비유를 통해서 전달하시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이 비유에서 우리는 농부의 처신을 주목해서 봐야 합니다. 27절을 봅니다.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여기 이 농부는 놀랄 만큼 느긋하고 태연합니다. 무심하고 무능하고, 심지어 게을러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냥 땅에다가 씨앗을 뿌려놓은 뒤 밤낮 자고 일어나는 일만 반복하는 듯이 보입니다. 이 농부는 어떻게 씨앗이 싹이 되고, 이삭이 되고, 알곡이 되는지 그 신비한 과정을 모릅니다. 
   
이와 같은 농부의 무심한 태도는 씨앗의 활발한 발육 작용과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28절 전반부를 보세요.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스스로,” 즉 저절로, 자동으로 땅이 알아서 모든 것을 한다는 것이지요! 농부는 그저 씨앗을 땅에 뿌려놓은 채 먹고 자고 하는 일상생활을 단조롭게 하면 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땅이 스스로 알아서 싹이 되게 하고, 이삭을 내고, 마침내 황금의 낟알을 내게 합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열심히 선포하셨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습니다. 세상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실망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급한 기대가 좌절되지 낙심한 사람들을 격려하시기 위해 주님은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노력을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나라요, 눈앞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신비하게 진행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서 하고 그 과정과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라는 충고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어떤 일을 하다가 뚜렷한 진전이나 성과가 보이지 않아 낙심한 분들이 계십니까?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일어납니다. 좋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 것이라는 큰 믿음을 가지세요. 농부가 자고 깨고 하는 가운데에도 뿌려놓은 씨앗은 신비하고도 은밀한 생명 작용을 계속합니다. 
   
마르틴 루터가 이 비유와 관련해서 했던 유명한 말이 있지요. “주일날 설교를 마친 뒤 집에 돌아와 맥주 한 컵을 마시면서 나는 복음이 제 갈 길을 가도록 그냥 내버려둡니다.” 주일날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뒤 루터는 집에 돌아옵니다. 늘 하던 대로 신문도 보고 음료수도 마시고 하면서 자신이 외쳤던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영향력을 미칠까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의 능력을 사람들 마음속에 심으셔서 루터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역사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이와 같은 여유를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루터가 외친 종교개혁의 말씀들은 루터가 아등바등 손을 쓰지 않아도 다 하나님이 저절로 알아서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종교개혁의 불길이 구라파 전역에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습니다!


<겨자씨 비유>
   
그 다음에 30-32절 말씀을 보면 “겨자씨 비유”가 나옵니다. 흔히 사람들은 겨자씨가 가장 작은 씨앗인데 이 작은 씨앗이 자라나 큰 나무가 된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실제로 31절에 보면 겨자씨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장 작은 것을 일컬을 때 “겨자씨같이 작다”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깨알같이 작다” 혹은 “눈곱만큼 작다”는 관용 표현과 비슷하지요. 
   
그런데 식물학적 사실로 볼 때 겨자씨보다 더 작은 씨앗도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난초씨앗이 겨자씨보다 더 작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굳이 겨자씨를 비유의 소재로 삼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겨자씨야말로 이스라엘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잡초이기 때문입니다. 
   
겨자씨는 자라나 큰 나무가 되는 것은 아니고, 한 1-2미터 정도 크기의 관목으로 자라납니다. 겨자씨가 자라난 관목은 레바논의 백향목이나 참나무와 비교할 때 아주 보잘 것 없는 키 작은 관목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아주 하찮고 보잘 것 없고, 팔레스타인 땅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식물이라는데 그 중요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작고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겨자씨가 땅에 심겨져 관목으로 자라나면, 32절 말씀 그대로 어떤 풀보다 더 큰 가지들을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정도가 됩니다. 시작은 미미합니다. 하지만 그 나중은 심히 창대합니다! 눈에 보일락 말락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지요. 그럼에도 기어코 자라나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인 새들에게 은신처까지 제공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남들이 보기에 지극히 작은 것처럼 보여도 기어코 자라나 온 세상을 품게 될 날이 온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희망과 격려를 주시기 위해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제자들은 열심히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영 신통치 않습니다. 적대자들은 자꾸만 늘어나고 하나님의 나라는 영영 실패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지치고 낙심한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겨자씨처럼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겨자씨는 반드시 자라나 가지를 만들고 공중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품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갖고 잘 참아내라!”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도 큰 위로와 소망이 되시길 빕니다!


<꼬마 양치기를 영웅군주로 선택하시는 하나님>
   
이제 우리는 구약성경의 사무엘상 말씀으로 돌아와 제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본문은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을 뽑는 장면입니다. 베들레헴 이새의 집에 가서 일곱 아들을 차례로 봅니다. 마치 미스코리아를 뽑듯이 한 사람씩 나오면 심사를 하는 것이지요. 
   
제일 먼저 장남인 엘리압이 나왔습니다. 건장한 체격에다가 용모가 준수했습니다. 사무엘이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울 사람이로구나!”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7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첫째 아들 엘리압은 나이로 보나 외모로 보나 이스라엘의 군주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중심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후보자격은 둘째 아들에게 넘어가지요. 하지만 둘째 아들, 아비나답도, 셋째 아들 삼마도 하나님이 뽑으시려는 후보는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곱 아들을 차례로 심사를 했지만 누구도 왕이 될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셋째 아들까지는 이름을 밝혔지만 아예 넷째 아들부터는 이름조차 밝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두다 자격미달이었기 때문에 이름까지 밝힐 필요를 못 느꼈던 것이지요. 
   
이제 크게 실망한 사무엘이 마지막으로 아버지 이새에게 묻습니다. “아들들이 다 온 겁니까?” 그 때 이새가 대답합니다. “글쎄요, 막내가 남아 있기는 한데, 지금 양떼를 치러 나가고 없습니다.” 여기 여덟 번째 막내아들 다윗은 이름도 없이 ‘막내,’ 즉 ‘하카톤’으로 등장합니다. 막내, 즉 히브리어 하카톤이라는 말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는 말입니다. 한 집안에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할, 철부지 꼬마에 불과하다는 말이지요.  게다가 하카톤 다윗은 지금 들판에 나가 양을 치는 목동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동 지방에 가보면 양치기는 주로 부녀자들이 합니다. 농장 일 중에서도 가장 힘이 적게 드는 일이요, 잘 하지 못 해도 큰 해를 불러오지 않기 때문에 아녀자들에게 맡깁니다. 다윗은 이와 같이 가장 시원찮은 양치기들 중에 하나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하카톤 양치기, 막내이자 목동인 다윗이 이스라엘의 군주감으로 발탁됩니다! 여기 중심을 보시고 사람을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사람을 뽑으실 때 과거나 현재를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될 미래를 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 잡는 어부들을 제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세리와 창기와 열심당원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무엘상 16장에 하카톤, 꼬마 양치기로 등장하는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뛰어난 영웅 군주가 되었습니다. 구약에서 600번 이상, 신약에서 60번 이상 등장하며, 전쟁에서 패배한 적이 없고 가장 넓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다윗의 혈통을 타고 우리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나, 겨자씨의 비유,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불러주셨다는 이야기는 모두 하나님께서 하시는 신비한 일들을 일깨워주십니다. 오늘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인하여 크게 낙심한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위로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성과도 없는 것처럼 보여도 여러분이 씨앗을 뿌려놓으면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교회의 건축도 꽤 오랫동안 인내하며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고 깨고 하는 동안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건물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고 우리는 다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면 됩니다. 겨자씨의 비유처럼, 지극히 작은 것을 심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큰 것이 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이야기처럼 지금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중심이 바로 되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써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하시는 위대한 일을 믿으시고 여러분 모두 용기와 소망을 얻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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