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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신경(15) : 성령님을 믿습니다 ③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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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15) : 성령님을 믿습니다 ③ (행 2:1-4)

중국에서 한 평생 선교사로 일했던 허드슨 테일러 목사님에게 하루는 한 젊은이가 찾아와서 묻기를 “내가 이렇게 교회를 들락거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세례도 받고 정식으로 믿고 싶습니다. 성경을 몇 번 읽어야 됩니까?”라고 했습니다. 

이에 허드슨 테일러는 “자네 촛불이 언제부터 빛이 나나?”라고 묻자, 청년은 “심지에 불을 붙여야 빛이 나는 것이죠.”라고 답했습니다. “마찬가지네. 성령의 역사가 자네 마음속에 역사할 때에 그때부터 온전한 교인이 되는 것이네.”라고 했습니다. 참 옳은 말입니다. 수십 년을 다녀도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으면 온전한 교인이 아닌 것입니다. 단 며칠을 다녀도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면 진짜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사도신경 15번째 시간으로 “성령을 믿사오며”라는 고백을 중심으로 크게 두 가지를 다루려고 합니다. 하나는 성령충만의 결과입니다. 또 하나는 어떻게 해야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는지입니다. 
 
1. 성령 충만의 결과 
   
사도행전 2장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님의 승천 이후에 주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실 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다락방에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머리 위에 임하였고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초대교회 성도들은 극성스럽게 부르짖으며 기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약 16개국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들이 각각 자기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에 대해서 듣게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일어나서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결과 3천이나 되는 사람들이 회개하는 큰 부흥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2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령의 충만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나타난 결과가 보입니다. 사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우리들의 모델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 도전을 받게 됩니다. 
 
1) 체험입니다. 
   
성령충만의 첫 번째 결과는 체험적 신앙입니다.
본문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님께서 강림하시므로 일어난 세 가지의 초자연적인 현상을 체험했습니다.
   
첫째, 청각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2절에 보니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그 집에 가득했습니다. 

둘째로, 시각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3절을 보면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제가 성령 받을 때 저도 비슷한 체험을 했습니다. 설악산 보다 더 큰 바위 위에서 무지개 빛 십자가가 내려와서 제 가슴에 꽂히고 모인 사람들의 가슴에 불붙은 십자가가 하나씩 있었습니다. 신비한 시각적인 체험이었습니다. 

셋째로, 신비한 언어적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4절에 보니 그들이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평상시 사용하지 않았던 언어, 평상시에는 사용할 수 없었던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영적 체험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체험은 개인의 경건생활이나 사역에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신앙생활이나 사역은 업 다운을 계속하게 되어 있다. 다운되었을 때에 체험은 우리들에게 영적 에너지를 충전 시켜줘서 신앙생활에 힘도 주고 사역에 힘도 주는 것이다.
   
인도에서 선교하던 스텐리 죤스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전도하여도 사람들이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답답하여 탈진상태에 빠졌습니다. 급기야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왜 쓰러져 있느냐?" "아무리 전해도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자 하나님의 음성이 또 들렸습니다. "이 사과나무를 보아라. 햇빛이 그렇게 뜨겁게 비추고 농부가 거름을 아무리 열심히 주어도 7년 되어야 사과를 맺지 않니? 지금 열매가 없다고 낙심하지 말아라"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영적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고 결국은 위대한 선교의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체험으로 큰 힘을 얻었습니다. 
 
2) 확신입니다. 
   
성령충만의 두 번째 결과는 확신 있는 신앙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다 부활하신 것을 목격했지만 여전히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은밀하게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해진 후 어떻게 됩니까? 
14절에 보니 모여든 사람들에게 소리를 높여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만큼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에드워드 레이놀즈라는 사람은 “확신은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막아 줄 것이고, 의혹에 답해 줄 것이며, 상황을 참고 견디도록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신앙의 확신이 생기면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유혹에 넘어가는 이유는 확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확신이 생기면 성경에서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믿어집니다. 믿음이 모든 의혹에 답을 해주는 것입니다. 신앙의 확신이 생기면 어떤 환경도 어떤 상황도 주를 위하여 참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확신이 무너지면 작은 고통도 작은 아픔도 참아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과 3년을 다녔지만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나니 확신이 충만해서 담대하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관원들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했던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니 확신이 충만했고 그 결과 유혹을 이기는 신앙을 갖게 된 것입니다. 
 
3) 능력입니다. 
   
성령충만의 세 번째 결과는 능력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 그리고 성령 충만해진 사람들을 통해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놀라운 일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행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대표적인 사건이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앉은뱅이가 일어는 이적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이 구걸하다 베드로를 만납니다. 그때 어떻게 되죠? 돈이 없지만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외칩니다!
   
행3:5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을 일어나 걸으라
그러자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 이리 저리 뛰어다니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처럼 성령 충만하면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자기 안에, 주변에 놀라운 일들을 일으킵니다. 치유의 역사, 문제 해결의 역사, 그리고 형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능력 있는 삶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닙니다. 능력이 오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능력으로 저절로 능력 있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탈 것이 별로 없던 때였습니다. 자전거 하나면 최고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자전거를 배울 때가 생각납니다. 뒤에서 친구가 잡아주고 저는 열심히 페달을 밟았습니다. 

얼마정도 가다가 친구가 손을 떼니 저는 비틀비틀 거리다가 벽돌을 쌓아둔 곳에 가서 박고 쓰러졌습니다. 손바닥이 다 까져서 얼마나 아프고 시린지 혼이 났습니다. 또 한 번은 달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다가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아서 죽을 뻔했습니다. 그대로 멈추지 않고 내려가면 큰길인데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모릅니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모래가 수북이 쌓여 있어서 거기에 넘어져서 살았습니다. 자전거가 평지를 달릴 때는 신나지만 언덕배기 올라갈 때는 허덕거립니다. 

어느 날 자전거를 끌고 언덕배기를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힘든지! 그런데 어떤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언덕배기를 거뜬히 올라갑니다. 가만히 보니까 모터를 달았습니다. 모터를 다니까 힘들이지 않고 쭉 올라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모터를 달은 겁니다. 고난의 언덕배기를 올라갈 때도 새 힘과 능력으로 승리합니다. 아무쪼록 성령 충만함으로 이런 승리를 날마다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제가 성령으로 충만해서 능력 있는 사역을 하기 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서 능력 있는 생활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성령충만을 받아서 승리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4) 하나 됨입니다. 
   
성령충만의 네 번째 결과는 하나 됨입니다.
16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말이 통했습니다. 그들이 알아들었던 것이 입의 기적인지 귀의 기적인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려 16개의 나라에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니 그들 가운데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이 무너졌고 대화가 시작되고 교제가 이루어지고 사랑의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부부간에도 일생을 살아가지만 말이 안 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유식하고 한 사람은 무식해서가 아닙니다. 마음이 안통하고 사랑이 안 통하는 겁니다.
   
교포들의 고민 중에 가장 큰 것은 자녀들과 말이 안 통한다는 것입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언어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문제요 사랑의 문제입니다. 부모자녀 간에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집은 부모가 한국말을 하고 자녀들은 영어를 쓰는데도 문제가 없습니다. 간혹 언어가 따라 주지 않는데 외국인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데 무슨 재미로 사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고 합니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여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16개국인데 하나가 되었다. 세대 간에도 하나가 된다. 17절에 보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니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노인들을 꿈을 꿉니다. 능력과 신분을 초월해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어느 경찰서장님이 주일학교 때 교회 다니다가 그만 두었다가 어른이 되어서 다시 나오게 되었습니다. 주일학교 때 교회를 안 나가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성탄절 연습을 하는데, 한 20여명이 서서 탄일종이 땡땡땡 부르는데 자기는 노래를 못 부른답니다. 음치랍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자기를 부르면서 너는 노래를 못하니까 빠져라 그러더랍니다. 여럿이 하는데 섞이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빼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일로 창피하고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자기를 혼자만 빼버리니까 너무 상처가 되서 그 이후로 교회에 안 나오다가 경찰서장이 되어서 이제 다시 나오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실력이 있어서 특송을 하거나 능력이 있어서 직분을 맡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을 섬기고 싶은 소망 때문에 특송도 하는 것이고 직분도 맡는 것이고 사역도 하는 것입니다. 혹시 남이 나를 왕 따 시키면 그래도 주님 사랑 하는 것 때문에 사역을 하고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는 실력이 있으나 없으나 하나 될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교회 일을 할 때 성령 안에서 하나 됨을 추구해야 합니다. 나하고 생각이 좀 달라도, 나하고 스타일이 좀 달라도 하나 됨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5) 성결입니다. 
   
성령충만의 다섯 번째 결과는 성결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이 들어와서 내 인격과 삶을 통치하고 지배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루고,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행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예수 믿고 성령 충만해지니까 주위 사람들이 놀랄 만큼 굉장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모습을 보고 감화 받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인간은 죄인인지라 이중성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죄악으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나름대로 거룩하게 바르게 살아보려고 애를 쓰지만 잘 안 됩니다. 죄성 때문이죠. 그래서 앞에서는 거룩한 척하고 뒤에서는 추악한 짓을 하는 이중성을 갖게 됩니다. 때로는 목사도 장로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이중성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이중성 이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별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성령 충만해지면 죄성이 제어됩니다. 그리고 변화됩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나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렇게 되면 정말 행복하고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소멸하면 다시 죄성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신령하던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죄성을 보고 실망합니다. 아무리 신령하던 사람도 성령을 소멸하면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술을 끊었습니다. 어느 날 술집 옆을 지나가는데 쇼윈도에 진열된 술병들을 보고 침이 넘어갑니다. 고민하고 있는데, 반대편에 가게 쇼윈도에 게시문이 있습니다. “1달러만 내면 우유를 마음껏 마십니다!” 그가 그 가게에 들어가서 우유를 실컷 마셨더니 술집을 쉽게 지나칠 수 있었습니다. 우유가 배속에 가득하니 술을 이길 수 있었듯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죄성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소멸하면 다시 죄성에 지게 되는 것입니다. 
 
6) 증거입니다. 
   
성령충만의 여섯 번째 결과는 복음증거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복음 증거자, 전도자가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을 받고 바로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전도는 억지로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성령의 강권으로 하게 된다는 겁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면 증거가 있어야합니다. 여러분에게 성령 충만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 증거가 바로 전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전도는 크게 세 가지로 해야 합니다. 하나는 입을 열어서 직접적인 전도를 해야 하고 또 하나는 사랑의 섬김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나의 전도 대상자를 위하여 늘 기도하며 사랑으로 그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열렸을 때 교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요즘 내가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 사랑의 섬김을 하고 있습니까? 그를 교회로 인도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사랑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또 하나는 생활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생활을 보고 보디발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는 것을 발견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내 생활을 보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김삼환 목사님이 제주도의 어느 마을에 가서 놀랬답니다. 온 마을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사는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백퍼센트 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목사님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장로님 한 분이 그곳에 이사를 와서 그곳에 귤을 심고 그곳에 와서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잘했다는 것입니다. 장로님이 잘살고 행복한 것을 보고 온 동민들이 장로님 하는 대로 따라옵니다. 

귤을 심으면 귤, 바나나를 심으면 바나나, 파인애플 심으면 파인애플, 주일 날 쉬니까 또 따라서 쉽니다. 어디 가는가 하고 보니 교회를 가니까 또 따라갑니다. 이 마을에 박사가 18명이 나왔고 교수가 18명이 나왔습니다. 목사도 열 몇 명이 나왔습니다. 축복받은 마을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축복을 받았는지 우상을 섬기던 마을이 전부 돌아왔습니다. 그 장로님이 얼마나 잘 믿었으면 그 장로님을 보고 그대로 따라했겠습니까? 그 장로님은 생활로 전도한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의 증거 중에 하나는 복음 증거입니다. 

 
2. 성령의 충만을 받으려면 
   
1) 아버지의 약속을 믿읍시다. 
   
행 1:4-5, 행 2:38-39 갈3:13-14을 보면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키포인트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말씀에 근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약속은 감정적인 확신이 아닙니다. 성경의 약속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2) 순종합시다. 
   
행 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주님의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남자 장정만 500여명이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약 2천명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했던 사람들은 고작 120명에 불과했습니다. 기다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았고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요 며칠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응답을 누리는 방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기도제목이 주어지면 우리는 그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주님의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응답대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기도는 하는데 응답을 받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래서 기도 응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타깝습니다. 또 안타까운 사실은 소수의 사람들이 기도에 전혀 힘을 쓰다가 응답을 받습니다. 

하지만 응답대로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 응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홍해를 향해 지팡이를 내밀어라”라는 응답을 받았으면 지팡이를 홍해를 향해서 내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홍해가 갈라지는 것이지요. “여리고를 돌아라”라고 응답을 받았다면 계속해서 기도할 것이 아니라 여리고를 돌아야 여리고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말씀은 아는 것보다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기도 응답도 받는 것보다 순종해서 응답을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령님의 음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하십시오, 그래야 성령으로 더욱 충만해지고 성령의 능력을 더 풍성하게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3) 기도합시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그 약속대로 순종해서 기도할 때 성령의충만을 받은 것입니다.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한국의 대표적인 신학자 중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상근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앞에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연약한 중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잃지 않았습니다. 세상 떠나기 전에 뇌암에 걸려서 일 년 동안 누워서 묵상을 하면서 지내셨습니다. 

한번은 자고 일어나더니 너무 기뻐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상근 목사님의 기쁨은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었다. 그래서 “뭐가 그렇게 기뻐요? 좋은 꿈이라도 꾸셨어요?”라고 물었더니 “내가 지금 하늘나라에 갔다 왔소”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하늘나라라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묻지 마시오”라고 하더랍니다. 하늘나라가 설명이 되면 그것은 하늘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며칠이 지난 후에 또 그렇게 좋아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좋아하세요”라고 물었더니 하늘나라에 또 갔다 왔다고 하더랍니다. 여섯 번을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병석에서 기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천사들이 호위한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죽으시기 하루 전에는 “저기에 가브리엘 천사가 나를 데리러 왔다”고 하더랍니다. "나는 곧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라는 말도 하였습니다. 그분이 묵상을 하면서 지내셨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던 사람도 기도를 쉬게 되면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게 되고 육신의 감정만 느끼게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모이는데 힘씁시다. 
   
행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였을 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도들은 지체입니다.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성도는 몸된 교회의 지체입니다.
   
롬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몸과 지체는 함께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함께 움직여야 정상입니다. 눈이 피곤하다고 눈을 빼서 집에 놓고 외출하지 않습니다. 팔이 아프다고 팔을 빼서 집에 놓고 일하지 않습니다. 제 눈의 시력은 1.2정도 됩니다. 난시가 있고 가까운 곳의 글씨가 잘 안 보여서 다초점 렌즈를 낍니다. 그런데 만약 제 눈이 좋아서 시력이 4.0이 된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몸에 붙어있어야 눈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몸에서 떨어져 나가면 제 기능을 다하지 못 할뿐 만아니라 눈은 죽는 것입니다. 언제나 몸과 지체는 하나여야 하며,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교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신앙생활은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입니다. 성령 충만했던 초대교회는 몸과 지체의 원리를 알았기 때문에 성도들이 모이기를 힘썼던 것입니다.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5) 복음전파에 힘씁시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오신 목적이 복음전파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에게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복음전파를 위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면 그 때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가 세워졌습니다. 그 일곱 사람 중에 가장 성령에 충만했던 사람은 스데반집사와 빌립집사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복음전파입니다. 그들은 집사님들이었지만 힘 있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했던 것입니다. 
 
6)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읍시다. 
   
행 2:37,3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질문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베드로는 그들이 회개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저를 집으로 초대하셨다고 가정해 봅시다. 저를 초대한 후에 무슨 준비를 하겠습니까? 기본적으로 집안 청소를 한번은 하지 않겠습니까? 목사가 심방을 온다고 하면 최소한 보이는 곳은 깨끗하게 정리할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목사의 심방을 받기 위해서 청소를 하는데 성령님을 모시고 그분으로 충만하려면 여러분의 마음을 청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령은 깨끗한 영이십니다. 그래서 죄를 처리하고 회개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한국초대교회 부흥 운동을 보면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회개와 성령의 역사입니다. 1903년부터 시작된 기도운동과 하디 선교사의 회개로부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하디선교사가 원산교회 주일예배 때 한국인 교인들 앞에서 죄를 고백했습니다. 이후 기도회와 모임이 있을 때마다 죄를 고백하고 자복하는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숭덕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대성통곡하며 죄를 고백했습니다. 평양교회의 대표가 되는 길선주 장로가 회개했습니다. 집회가 거의 끝날 무렵에 길선주 장로님이 앞으로 나오더니 이런 고백을 하는 겁니다. “저는 친구가 유언하며 맡긴 돈 200원 중에서 100원을 가로챘습니다.” 

장로가 그것도 1500명이나 되는 그 많은 교인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회개한 겁니다. 놀라운 사실은 길선주 장로님의 회개를 들은 성도들이 저마다 자기가 숨겨 놓은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어머니는 피난을 가다가 자기 아이를 강에 빠뜨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 온 죄를 고백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간통한 죄를 자백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둑질, 간음, 미움, 질투 등 온갖 더러운 죄를 한꺼번에 토해 놓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이 두려워서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서 뛰쳐나가 도망을 치다가 무슨 강력한 힘에 이끌려 도로 교회로 돌아와서 뒹굴며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죄를 토해 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거꾸러져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 추운 겨울에 저녁 7시에 시작된 부흥회는 새벽 2시가 되어도 끝날 줄을 모르고 사람들은 죄를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에 쌀가게 주인은 됫박을 속여서 판 것을 공개적으로 회개하는 글을 가게 앞에 써서 붙이고 배상해 주었습니다. 고의로 빚을 떼먹은 사람은 채주를 찾아가서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술집 앞에는 이런 간판을 붙였답니다. ‘금일부로 이 술집을 폐업함. 어젯밤 주인이 회개함’ 평양대부흥은 회개로 인한 성결운동이 일어나서 평양을 거룩한 도시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마음에 걸리는 죄가 있으면 회개하십시오. 하나님께 고백하시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푸십시오. 성령님은 깨끗한 사람에게 역사하십니다.
   
신앙생활의 두 가지 극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 없이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성령을 받았으나 일하지 않는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하고 그 성령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삶은 자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삶이었습니다(골 1:29). 우리도 바울처럼 성령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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