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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참된 감사 (하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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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감사 (하 3:16-19)


오늘은 맥추감사 주일입니다. 영어의 감사(thank)의 어원이 생각(think)이라고 합니다. 감사하려면 생각을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얼핏 볼 때에는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생각해보니까 감사합니다. 감사는 얕은 생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숨겨진 마음의 보화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 사람은 생각이 깊지 못한 경솔한 사람의 특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태인 신학자인 몬테 피오레는“생각하고 감사하라(Think and Thank).”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온통 은혜로 충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범사에 감사하라.”하셨습니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삶에 대한 감사”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로 하여금 험악한 가운데서 보호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험악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나의 괴로움이 그치게 해달라고 빌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것을 정복하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그러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감사의 분량이 행복의 분량이다.”
그렇습니다. 감사한 만큼 행복해집니다. 감사한 만큼 강건합니다. 감사한 만큼 능률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축복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감사한 만큼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가 살고 이는 이 시대를 가리켜 불확실성의 시대, 불신의 시대, 위기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또 한 가지는 감사부재 시대라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을 살펴보아도 감사보다는 원망과 짜증스러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정들을 돌아보아도 원망과 불평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국가와 사회를 돌아보아도 원망과 불평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감사 부재가 우리들의 심령과 가정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의 4대 절기 가운데 하나인 맥추감사 주일을 맞아 하박국 선지자가 감사하는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은 감사에 대하여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말씀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엉뚱한 모습 같기도 합니다. 감사할 조건이라곤 전혀 없는 상황 속에서 감사의 찬송을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혼자서 중얼거리며 독백하는 것이 아니라, 수금을 타며 악장의 지휘와 훌륭한 악보에 맞춰 감사의 찬양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는 어떤 내용의 감사입니까?

1. 환난 날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감사한 때에 대하여 본문 16절 말씀에 기록하기를“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약한 그 당시 국제정세는 강대국이었던 앗수르 제국이 멸망하고 애굽 역시 국운이 기울어지면서 신흥국가인 바벨론 왕국이 강력한 세력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큰 문제는 이 바벨론이 유대나라 즉 이스라엘을 노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머지않아 말을 타고 창검을 휘두르며 유대나라를 침략하리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나라의 국내사정은 바벨론과 맞서 싸울 만한 힘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국내외 정세를 보고 있는 하박국 선지자는 뼈가 썩는 것 같은 아픔이 엄습해 왔으며 그의 온 몸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어지러운 상황에서 감사의 찬양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함은 신앙성숙의 척도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을 섬겨다 할지라도 그의 심령 속에 감사함이 부족하다면 그의 신앙은 성장이 멈췄거나 아니면 병든 신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광야에서 40년간 머물렀습니다. 그들의 입술에는 언제나 원망과 불평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수없이 체험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므로 아무 힘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홍해가 갈라져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광야 40년을 지나는 동안 그들은 곡식한포기, 채소한포기, 심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물이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샘물을 나게 하셔서 그 물을 마시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원망하기 일쑤였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일삼던 그들은 결국 하나님이 내리신 진노로 모두가 광야에서 멸망했습니다. 

일본 오사까의 한 병원에서 내과 의사로 근무한 이무라 가즈오씨라는 믿음 깊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섬유육종 암으로 오른편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한쪽 다리를 잘라낸 후 초인적인 인내로 의사의 사명을 다하다가 암이 폐로 전이하여 31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며 기록한 편지와 글이“종이학”이란 책으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종이학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글이 영화로도 만들어져 일본열도를 감동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가보다.”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습니다. 그가 남긴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것에 사람들은 왜 감사할 줄 무를까?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이, 형제가 있고,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이고, 손을 뻗어 무엇을 잡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 소리가 들린다는 것,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이것보다 더 멋지고 감사한 일이 있을까?
그런데 이 아름답고 귀한 것에 아무도 감사할 줄 모르고 그거야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루 세끼 밥 먹고, 밤이 오면 잠자고, 다음 날 아침을 맞는다는 것, 웃고, 울고, 노래하고, 소리치고, 뛰어 다닌다는 것, 산을 오르고, 바닷가를 거닌다는 것, 온갖 자연의 멋지고 아름다운 것에 아무도 감사할 줄 모르고 산다는 것 너무나 희안한 일이 아닌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눈물 나게 소중한 것인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는 것인지!
이 모든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걸 아는 사람은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려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어리석음가운데 한 가지는 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야, 가지고 있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나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주위를 곰곰이 살펴보면 감사한 일들이 너무도 많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 많은 것들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연함이란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이 내리신 은혜이며 사랑인 것입니다. 

이무라 가즈오씨가 말한 감사는 참으로 소박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감사해본 적이 있습니까? 없다면 우리의 심령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디어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무디어진 심령들에 대하여 디모데후서 3장 1절-2절에 말씀하시기를“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교만하며...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셨습니다. 감사에 둔감해진 것은 타락한 말세에 물든 증거라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4절-15절 말씀에“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환난의 날이라 할지라도 감사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환난에서 건져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반면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다면 그의 기도를 외면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서원을 갚는 사람 즉 약속을 지키는 진실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환난에서 건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5편 1절~2절,4절에 말씀하시기를“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번 약속한 것은 자기에게 해로울지라도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농부네 가정에 송아지 새끼 두 마리가 태어났습니다. 농부는 너무 기뻐서 아내에게 두 마리를 잘 길러서 그 중 한 마리를 팔아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두 마리 중 어떤 것을 하나님께 바치겠느냐고 하자 남편은 그럼 것은 신경 쓸 것 없다고 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어느 날 그만 송아지 한 마리가 죽었습니다. 이때 그 농부는 말하기를 “하필이면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어.”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대답하기를 “당신은 어느 것을 주님께 드리겠다는 것을 결정한 일이 없지 않느냐.”했습니다.“아니야, 나는 죽은 송아지 그놈을 주님께 드리기로 했는데 주님의 송아지가 그만 죽었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 농부는 살아있는 송아지가 죽고 죽은 송아지가 살았다면 또 그 죽은 송아지가 주님의 것이라 했겠지요?

하나님 앞에 서원을 지키면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십니다. 서원을 지키며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성도의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환난을 이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성령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마음이지만 원망과 불평은 악한 영들로부터 주어지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종교 개혁자 루터는“마귀는 만성적인 불평분자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2. 무(無)에서 드리는 감사입니다. 

본문 17절에 기록하기를“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라고 하셨습니다. 17절 한 절에 무려 여섯 가지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없다고 고백한 것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생활필수품들입니다. 

무화과는 과일의 일종입니다. 
포도는 음료수의 주종을 이루는 것입니다. 
감람나무 열매는 기름을 짜는 것입니다. 
밭의 식물은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하는 식량입니다. 
양은 그 털로 옷을 만듭니다.
소는 밭을 갈고 일하는 수단입니다. 그 외에도 소와 양은 하나님께 제사하는 제물이기도 합니다. 

곧 닥쳐올 전쟁 때문에 성은 파괴되고 농작물은 짓밟히고 가축은 우리를 벗어나 흩어져 버리게 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이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입니다. 의식주 문제 까닭에 신앙이 흔들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목사 남편을 잃은 사모님은 어렵게 아들을 공부를 시켰습니다.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뒷받침에 부응하여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 고생하는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아들이 미국의 명문대학인 프린스턴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수석 졸업자에게 주는 금메달을 받을 때, 이 학생은 어머니를 연단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메달을 걸어드리면서“이 메달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7년 동안 내게 감사를 가르친 어머니의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192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미국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입니다. 이처럼 비록 가진 것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고난속의 감사는 세계적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영국의 신학자 바클레이는“우리가 만일 태양을 향해 선다면 어두운 그림자는 우리 뒤에 있을 것이고 만일 우리가 태양을 등진다면 모든 그림자는 우리 앞에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내가 처한 환경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능력의 주님을 바라볼 때 소망과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빛 되신 사랑의 주님을 바라볼 때 소망과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위로의 주 성령님을 바라볼 때 소망과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빛의 주님을 바라볼 때 어두운 근심과 걱정의 그림자는 뒤로 물러가고 보이지 아니하므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에게“...이 없을지라도 감사”하는 신앙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성숙한 성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3. 구원의 하나님께 소망을 둔 감사입니다. 

본문 18절~19절에“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박국 선지자가 감사하며 찬양하는 두 가지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나의 구원의 하나님” 둘째,“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를 말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국난의 현실을 바라볼 때에는 안타깝기 그지없지만“나의 구원의 하나님, 나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공포로 온몸이 떨리는 지경이라 할지라도 구원자 하나님을 바라보니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국가적 환란가운데에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은 환난이 지난 후 하나님이 예비하신 회복의 좋은 날을 미리 내어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3장 19절에 말하기를“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폭풍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폭풍 뒤의 맑은 날을 바라본 것입니다. 해일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해일 뒤에 있을 바다의 새 생명을 바라본 것입니다. 

10여 년 전 IMF사태가 왔을 때 유달영 박사는 이런 글을 기고했습니다. “광복 후 뜨거운 교육열이 계속이어 졌으며, 해외로 뻗는 기상은 조국을 세계경제 10위권 문턱에 올려놓았습니다. 구름 만난용처럼 국력이 끝 간 줄 모르게 뻗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뿔싸,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소돔 고모라가 따로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기고만장하고 사회는 부패일로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나라에 망조가 든 것이 훤히 보였습니다. 

마침내 IMF 사태가 왔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이제 살았구나!’ 이는 하늘이 주신 축복의 메시지다!’라고 말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너나없이 하루빨리 외채를 갚고 재도약 하자고 서두르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쉽게 회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되면 또다시 이 사회는 부패하고 그리고 더 부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잠시 멈춰 서서 진정 지금 할 일이 무엇인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유달영 박사는 그 고통스러웠던 IMF를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나라의 혼란을 기뻐한 것이 아니라, 이 어려움 후에 있을 탄탄한 국가 경쟁력을 내어다본 높은 식견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가 곧 이러한 의미입니다. 죄와 타락을 회개한 후에 다시 고치실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날 낙심하거나 후회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면서 잘못된 것을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사야 40장 31절에 말씀하시기를“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23편 4절에 말씀하시기를“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8절~9절에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는 환난에 의해 망할 사람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 고침 받은 후 하나님의 힘에 의해 구원될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승리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힘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박국 선지자처럼 믿음 안에서 감사하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환난 날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구원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심령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심령을 사랑하셔서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신앙이 우리 모두의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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