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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런 권능이 어찌 됨이냐? (막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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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권능이 어찌 됨이냐? (막 6:1-6)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고향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이지만 자라나신 곳은 갈릴리 나사렛 동네입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려고 고향을 떠나실 때에는 사람들에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 갈릴리 지방을 두루 다니시면서 꽤나 많은 일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또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려고...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도 고쳐 주셨습니다. 나병환자도 고쳐 주셨고 중풍병자도 고쳐 주셨습니다. 그 사이에 바리새인들과 안식일 지키는 문제를 놓고 말다툼도 하셨습니다. 하여간 예수님의 소문이 온 갈릴리 사방에 퍼졌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왜 고향 나사렛으로 가셨을까요? 너무 피곤하셔서 휴식을 좀 취하시려고 고향으로 가셨을까요?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싶으셔서 고향에 가셨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안식일이 되자 기다리셨다는 듯이 회당에 들어가셔서 사람들을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고향 사람들의 반응이 좀 이상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그들도 들었지만 그래도 설마 했는데 그 가르치시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거렸습니까?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막 6:2) 직접 보고 들으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또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어지는 마가복음 6장 3절 말씀입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예수님을 배척했을까요?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지혜와 권능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도 왜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했느냐는 말입니다. 그 까닭을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아들, 목수,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와 자매들이 바로 믿지 못한 이유요 또한 배척한 까닭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향 사람들이 볼 때에는 예수님이 자기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들의 그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동네 친구처럼 지내던 자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했으니 어이가 없었을 것 아닙니까?

우선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고향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걸림돌로 작용했던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의외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초대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었던 이단 가운데 예수님이 참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가현설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들의 그런 주장을 단호하게 거부한 것이 바로 이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셨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의 아들로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셨고 우리와 똑같이 살과 피를 갖고 계셨으며 우리와 똑같이 숨도 쉬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이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우습게 여겼지만 바로 이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사실에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목수라는 직업이 고향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목수라는 직업은 그다지 귀한 직업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님은 목수 중에서도 주로 멍에를 만드는 목수였다고 합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들은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목수와 같은 육체 노동자는 예나 지금이나 업신여기고 또 무시해도 좋은 대상쯤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요셉은 일찍 세상을 떠났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요셉이 하던 목수 일을 가업으로 이어 받으셨고 나이가 삼십이 되실 때까지 그 일을 통해서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하셨던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 일을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든지 상관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다만 그 일에 충실하셨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 사람들은 단지 목수였다는 사실을 가지고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의 형제들과 자매들이 그들과 함께 지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고향 사람들은 인정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수군거렸습니까?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이라는 것이 왜 예수님을 배척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까? 그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여인들의 오빠라고 해서 예수님을 업신여겨도 되는 것입니까? 이렇게 볼 때 선입견 또는 고정 관념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의 아들이요 또한 보통 사람들의 형이요 오빠이기 때문에 별 볼 일이 없을 것이라는 편견에 고향 사람들은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진리를 외면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도 이 점에 대해서 조심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이고 또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해서는 아니 되겠다는 말입니다. 제 친구 가운데 국무총리를 지낸 친구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 친구는 매우 불운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친구의 공과를 여기서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친구에 대해서 많은 친구들이 ‘제까짓 게 언제부터’라는 식으로 평가 절하하는 것이 저는 매우 불쾌했습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그리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 그 친구 같이 곧고 바른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 우리 민족의 불행이라고 저는 감히 주장하고 싶습니다.

결국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막 6:4) 아마 유대인들의 속담 가운데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인용하신 그 속담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진리를 가로막을 때가 많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 즉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에만 치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한 사람들은 결코 선지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때문에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오늘 우리도 선입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을 대할 때에 선입견을 갖고 대할 때가 많습니다. 출신 지역을 따지게 되고 출신 학교를 따지게 되며 또 가정 환경도 따지게 될 때가 많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선입견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때문에 좋은 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게 마련입니다. 하여간 예수님은 고향에서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셨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권능을 완전히 행하시지 못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예수님은 고향인 나사렛에서는 권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셨던 것만은 틀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향 사람들의 믿음 없음을 예수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에 대해서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불쾌하게 생각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들의 믿음 없음을 이상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권능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도 그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상하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그 권능을 가지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척하는 것은 지극히 이상한 일이요 크게 잘못된 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여간 고향에서 푸대접을 받으신 예수님은 갈릴리 여러 마을을 다니시면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비록 고향에서 푸대접을 받으셨고 어찌 보면 철저히 실패하신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역을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 전파는 그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결코 중단해서는 아니 되는 소중한 일이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습니까? 혹시라도 기대했던 모습과 다르다고 해서 초라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그리스도 예수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시는 주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이 천국 복음을 널리 전하는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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