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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대로 (창 2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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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게 되면 여러 범죄 소식들 중에 가족 전체가 범죄에 가담한 경우를 보게 된다. 소매치기나 도둑질에 전 가족이 동원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차량자해범죄에 가족들이 함께 범죄하는 것도 보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 또는 조카나 삼촌 등이 관여한다.

가족들이 좋은 일에 마음을 모으고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온 가족이 믿음의 일에 마음을 모으고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믿음의 가정, 하나님을 믿는 가정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최고의 목적과 바램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 가족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한 교회를 섬길 수 있어야 한다. 즉 가족의 신앙의 일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가정교육 특히 신앙교육이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바르게 가르치되 믿음으로 살도록 가르쳐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믿음과 생활의 일치이다. 믿은 대로 사는 사람, 믿음대로 사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믿음 따로 생활 따로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육신을 따라 살지 말고 영을 따라,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육이 영을 이기게 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영이 육을 이기는 삶과 믿음이 되어야 한다.

오늘 말씀은 이런 면에서 이 말씀을 읽는 우리들에게 안타까움을 주는 내용이다. 약속의 자녀로 태어난 이삭의 가정에서 일어난 이 사건으로 인해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믿음의 가정에서 그 가족들이 행한 한 가지 일 때문에 온 가족이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고 연단을 받고 슬픔과 괴로움을 겪어야만 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쓰기만 했어도 온 가족이 어려움을 당하고 수십 년 동안 고통 속에서 연단을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삭은 집안의 가장이요 아버지로서 상식대로 맏아들 에서에게 복을 빌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 리브가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빌미로 남편을 속이고 작은 아들 야곱에게 그 복을 받게 하려고 했다. 야곱도 욕심 때문에 함께 죄를 짓는다. 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온 가족이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고 오래 떨어져 있으면서 아픔을 겪어야 했다. 온 가족이 믿음대로 말씀대로 성령을 따라 살지 못했기 때문에 당한 결과였다.

눈이 어두운 이삭
1절에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라고 했다. 기력이 쇠약해진 이삭은 죽기 전에 아직 기운이 있을 때에 장자인 에서에게 복을 빌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는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에서를 불러서 그에게 축복기도를 받을 준비를 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들어서 그는 육신의 눈만 어두운 것이 아니라 영의 눈도 어두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2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리브가를 통해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삭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장자 에서에게 복을 빌어주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어도 믿지 않았거나 또는 인간의 생각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특히 그는 야곱보다는 에서를 더 좋아했다. 남자답게 생기고 성격도 활달해서 산에서 사냥하기를 좋아했고 사냥한 고기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그를 놔두고 야곱에게 복을 빌어주고 싶었겠는가? 엄연히 장자가 있는데 어떻게 그를 놔두고 차남에게 복을 빌어주겠는가? 그는 개인적인 정을 따라 행동했다.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을 이긴 것이다. 육에게 영이 지고 만 것이다.

더구나 이 때에 이삭이 에서에게 요구한 것을 보면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을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에서에게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고 했다. 평소에 에서를 좋아했고 그가 사냥한 고기로 만든 음식을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흡족하고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복을 마음껏 빌어주겠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를 위하여 사냥을 해서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고 요구했다. 누가 복을 주는가? 하나님인가 이삭인가?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분이시고 이삭은 하나님의 허락을 따라 아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하나님의 대리자일 뿐이다. 그가 진정으로 아들을 사랑하고 그를 위한다면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게 길렀어야 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복을 빌어주면서, 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면서 별미를 요구해서 받아먹고 축복해 주었다는 기록은 성경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다. 이삭은 이것 때문에 즉 탐욕 때문에, 자기 만족과 욕심 때문에 실패한 사람이 되었다.

복은 은혜이지 대가가 아니다. 무엇을 해주었기 때문에 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이, 조건 없이 무조건 주시는 것이 복인 것이다. 별미를 바쳐야 복을 받는다면 복채를 많이 놓으면 많이 복을 빌어주는 무당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많은 것을 드린다 해도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없다. 그런 것으로 우리의 악함과 죄악을 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것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은 우리가 드리는 별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받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육신이 노쇠해지면 그의 영과 믿음도 노쇠해지고 약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육신이 노쇠해져도 영은 약해지지 않고 믿음은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아니 육신은 노쇠해져도 육신이 약해질수록 그 영은 더 맑아지고 그 믿음은 더 강해지고 깊어지는 사람이 있다. 어떤 경우가 바람직한 믿음의 생활인가? 고린도후서 4:16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 했다. 육신의 정욕이 약해지면서 영은 더 맑아지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어린아이처럼 되어진다. 그리고 육신이 약해지면서 인간적인 것과 외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에 많이 집착하고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성령으로 이것을 이기고 늘 깨끗하고 맑은 영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삭은 나이가 들어 눈이 어두워지고 기력이 약해지면서 영적인 상태도 흔들리고 약해진 경우이다. 육신의 시력이 약해지면서 영적 시력도 함께 약해진 경우이다. 육신이 약해지면서 마음도 약해지고 믿음도 약해져서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길을 갔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 것에 집착하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라.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며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보고 살라.  

영성을 기르라. 성령충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힘쓰라. 말씀을 가까이 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를 힘쓰고 기도를 쉬지 말아서 영적 능력을 받아 육을 이겨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남보다 더 분명하게 분별하고 확실하게 그 뜻을 따라 살라. 

마음이 어두워진 리브가
마음과 생각이 잘못 되기는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기도를 받을 준비를 하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야곱과 함께 계획을 세운다. 이삭이 눈이 어두운 것을 알고 에서 대신 야곱이 축복기도를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리브가 역시 믿음의 사람이 못되었다. 아마도 그는 하나님께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당연히 야곱이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에서가 축복을 받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리브가가 정말로 믿음의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아들 야곱과 함께 남편을 속이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분명 이삭도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즉시 남편에게 달려가서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확인해 주었어야 했다. 그런 방법으로 이삭이 에서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을 막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래도 이삭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에서를 축복하려 한다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어야 했다. 그리고 약속을 받은 야곱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라고 믿음을 붙들어 주었어야 했다.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니 그분께서 약속한 것을 이루어 주실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믿음으로 기다리자고 격려했어야 했다.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약속하시고 계획을 세우셨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그 뜻대로 이루실 것을 믿었어야 했다.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악한 일을 행하도록 요구하시거나 허락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능력과 지혜가 부족해서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뜻을 정해 놓으시고 그것을 이루는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예레미야  33:2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이사야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그러나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이라는 핑계 아래 아들 야곱과 함께 남편 이삭을 속여서 야곱이 에서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자신과 사랑하는 아들 야곱과 그리고 맏아들 에서와 남편 이삭 모두가 고통을 받아야 했다.

13절에 “너의 저주는 내게 돌리리니”라고 했다. 과연 그렇게 해서 아버지를 속일 수 있겠느냐고 불안해 하면서, 잘못해서 들키면 복은커녕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불안해 하는 야곱에게 그렇게 말해서 안심을 시켰다. 리브가 자신도 그렇게 이삭과 에서를 속이는 일이 옳은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일로 인해 리브가는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 야곱과 떨어져서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그가 말한 대로 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말한 것은 반드시 책임지게 된다. 사람이 얼마든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다. 심지어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마음이 간사한 야곱
야곱은 처음부터 형 에서 대신 자신이 장자의 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의 배고픔을 이용해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게 했던 것이다. 누구든지 출생의 순서로 정해진 가족의 질서를 깨뜨리거나 뒤집을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대로 자기가 원하는 때에 세상에 태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곱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것을 뒤집을 생각을 한다. 하나는 형 에서와는 불과 몇 분 차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에서를 형이라고 부르기는 억울하다는 것이다. 아차 하면 자기가 먼저 태어날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어머니 리브가를 통해서 듣게 된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다. 그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억울하게 맏아들의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는 터에 그런 말을 듣자 더욱 분명하게 당연히 자기가 장자의 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 리브가를 통해서 아버지 이삭이 형 에서에게 복을 빌어주려 한다는 말을 듣고는 그것은 당연히 자기가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그 방법에 동의해서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아냈다.  

야곱이 믿음의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았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뜻대로 이루실 것이라고 믿었어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섭리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믿었어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때를 기다리고 있었어야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더라도 “어머니,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여서까지 복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머니의 말씀이지만 그것은 순종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욕심 때문에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요구를 따라 거짓을 행하고 아버지와 형을 속였다.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범죄했기 때문에 약속을 받고도 고통과 연단을 받아야 했다.

마음이 굳어진 에서
뿐만 아니라 에서 역시 솔직하지 못하고 욕심에 빠져 있었다. 아버지 이삭이 “네게 축복하겠다”고 할 때에 정직하게 아버지에게 말했어야 했다. “안됩니다. 제가 벌써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렸습니다”라고 하면서 자기의 죄와 잘못을 고백했어야 한다. 더구나 창세기 25:33에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았다”고 했다. 장난이 아니라 실제로 맹세까지 하고 팔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나중에 에서는 야곱이 자기를 속였다고 억울해했다. 전에도 팥죽 한 그릇으로 나를 속이더니 이번에도 속여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아 갔다고 흥분하고 통곡했다.

에서 역시 솔직하지 못했고 이중성을 보였다. 배고플 때는 팥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해서 쉽게 장자의 축복권을 팔아버리더니, 이제는 그 장자의 복을 받기 위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얼른 사냥을 하러 밖으로 뛰어나가는 얄팍한 행동을 했다. 만약에 그가 아버지에게 자기의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했더라면 그는 모든 복을 빼앗기는 아픔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 가족 모두가 겉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믿음이 있는 사람들 같으나 실제 생활에서는, 아니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에 행동하는 것이나 사는 방법은 하나님을 모르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정과 욕심을 따라 행동하고 살았다. 그래서 가족 간에 불화와 다툼이 생기고 형제간에 그리고 부모와 자식간에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야곱이 죽을 때에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한 경우를 보자. 그때도 야곱이 눈이 어두워서 잘 보지 못했다. 그런데 야곱이 손을 엇갈려 뻗어서 오른 손을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그리고 왼손을 장남 므낫세의 머리 위에 얹었다. 이를 본 요셉이 마음이 좋지 않아서 아버지 야곱에게 잘못되었다고 바로잡으려고 하자 야곱이 대답했다. “나도 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게 하신다.” 사람이 눈이 어두워도 하나님이 제대로 하신다. 

야곱과 리브가의 잘못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적인 욕심이 앞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려 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려고 했다.
영으로 육을 이기지 못하고 육에게 영이 눌리고 육과 영의 싸움에서 영이 졌다.

이사야 55:8-13을 보자. 
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 아무리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라도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보다 훨씬 높다. 10)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 하나님께서 한 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12)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13)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보다 높고 가장 옳고 좋다는 것을 인정하라. 하나님의 뜻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으라. 그리고 그 뜻을 따라가면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게 된다. 그리고 모든 고통과 아픔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과 복과 만족을 누린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욕심을 따라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라. 믿은 대로 말하고 믿은 대로 행동하고 믿은 대로 살기를 힘쓰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 그러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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