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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통치하시옵소서 (마 6: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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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통치하시옵소서 (마 6:5-15)

누구를 찾느냐 

우리나라 변호사제도는 법률이 제정된 이듬해 1906년에 율사(律士), 또는 대언인(代言人)이라고 불리던 3명의 조선인 변호사가  등록하였고, 1907년 6월 최초의 변호사시험을 실시하여 6명의 변호사를 추가로 배출하였고, 1907년 17명, 1908년 20명, 1909년 41명으로 늘어나서 1952년 대한변호사협회가 정식 설립된 해에는 807명이 변호사로 등록했으며 1953년엔 903명, 1954년엔 965명으로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부터 합격자 정원을 300명으로 대폭 증가했고, 2009년까지  11,016명이 되었습니다. 1906년부터 1999년까지 93년동안 증가한 변호사 숫자보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불과 9년동안 증가한 변호사가 더 많아진 것입니다. 2012년 6월 12일 현재 전국의 변호사는 14,000명이 되었고 로스쿨 도입으로 급격하게 늘어날 것입니다. 

변호사가 많아지므로 긍정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부정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가정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변호사를 찾아가면 거의 이혼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변호사의 입장에서 이혼소송을 해야 변호사비를 받고 승소하면 성공보수를 받기 때문이고 또한 상대가 잘못한 것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코칭을 아는 새소망교인들이나 목회자를 찾아오시면 이혼하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누구를 찾아가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사람과 자기 뜻대로 살려는 사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찾더라도 자기중심으로 찾는 것과 하나님 중심으로 찾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통해서 성경적인 신앙의 우선순위를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첫마디의 “하늘에 계신 우리아빠 아버지”에서 신앙생활과 기도에 있어서 관계가 제일 귀중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전능하시기 때문에 높은 곳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사랑이 많으시고, 친근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친근한 아빠로 믿고 신앙생활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 여러분께 이 부분을 받아 쓰라고 하면 아마도 “나라에 임하옵시며” 라고 대부분 쓰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쓰는 현대언어는 “나라가 임하옵시며” 이지만 주기도문을 오래전에 번역할 그 당시 “이”를 조사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에서도 주기도문이 너무 오래 되어서 바꾸자는 안건이 있었지만, 결의하기를 현대어로 자꾸 바꾸는 것 보다는 의미를 이해하고 그대로 사용하자고 결의했습니다. 

새번역은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공동번역은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치해 주세요”라는 내용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 나를 통치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새도 두 날개가 있어야 정상적으로 날아갈 수 있듯이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도 친근한 이미지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겨야 하는 이미지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애굽에서 야곱의 후손들이 번성하자 왕에게도 두려운 세력이 되어 가자 히브리 산파 ‘십보라’와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명령했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왕의 명령이었지만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고 하자  산파들이 대답하기를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 하였더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산파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왕의 권력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산파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여러분의 필요만 채워주시는 아빠 하나님의 신앙으로 가득하십니까? 이제 그만 어린아이의 신앙을 벗어 버리고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경외가 없는 신앙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신앙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합니다.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지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리석은 행동을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시기 때문에 망하는 길로 불나방이 불속에 들어가듯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신앙인의 열매는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 비방이 열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빠같이 좋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할 하나님이십니다. 좋으신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을 점검해 보십시다. 하나님 없는 열매가 많으시다면 경외의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또는 하나님 생각을 하면 무서운 생각만 드신다면 아빠 같은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탕자와 아담 그리고 

우리의 소원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이어야 합니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시는 지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탕자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라고 졸라서 자신의 상속지분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재산이 다 떨어져서 궁핍하게 되어 돼지를 치면서 최악의 생활을 하다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탕자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혔습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는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서 잔치를 했습니다.

여기서 탕자를 아담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탕자처럼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과거를 덮고 모든 것을 회복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서 아담이 자기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따 먹었던 것처럼 우리 기준으로 이것이 선이고 저것이 악이라고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판단의 기준을 하나님께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대로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준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나라를 사모할 때 탕자를 환영한 아버지 보다 더 큰 사랑으로 받아 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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