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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인생의 라운드 어바웃(Round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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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의 라운드어바웃 "    요14:1-6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
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한국에서 계시다가 잠깐 영국을 방문하신 분들이 한결같이 얘기하는 것이 영국
의 교통방향이 한국과 정반대로 되어 있어서 도통 방향감각을 모르겠다고 하십
니다. 그러면서 영국 교통 시스템에 대해 주의 깊게 살펴봅니다. 살펴보는 분들
이 묻는 한결같은 질문은 "라운드어바웃"(Roundabout)입니다. '저게 무엇이
냐?'고 묻습니다. 영국의 교통시스템을 잘 살펴 본 분들은 영국의 교통시스템이
상당히 기독교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 줍니다. 아마도 영국 교통 시스템을 만
들 때 영국인들이 거반 기독교인들이니까  성경의 원리를 착안해서 만들지 않았
나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영국 교통시스템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Roundabout입니다. 영국의 차도를 헬기를 타고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철사

줄에 구슬을 꿰어 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Roundabout은

Turningpoint인데 신호등 없이 다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고

가다가 방향을 잘못 들게 되면 이 roundabout에서 다시 돌아가게 만들어 놓

은 시스템입니다. 우리는 대개 모르는 길을 가게 되면 표지판을(Sineboard)

보고 가게 되는데 그 표지판을 잘못 보았을 때, 잘못된 길로 가게 될 때에 가는
길이 '아차 잘못 들었구나' 생각되면 가다가 이 라운드어바웃에서 다시 되돌아
가면 됩니다. 이 Roundabout은 이런 단점을 보완해 주고 교통 흐름에 따라 마

치 물 흐르듯 차량을 소통시켜주는 시스템입니다. 신호등 없이도 사거리에서 아
무런 혼잡 없이 차량을 소통시켜 줍니다.

그러나 한국의 교통시스템은 그렇지 않습니다. 길을 가다가 잘못 방향을 들어

도 그냥 가야 합니다. 직선도로에서는 U턴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U턴하는 지점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개 불법

U턴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불교의 원리와 같습니다. 불교는 '네가 길을 가다

가 잘못 들었거든 네 업보인줄 알라. 다음에 태어나면 그 때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마라' -이것이 불교의 교리를 대표하는 내용인데 마치 우리 나라 교통시

스템과 비슷한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완성품으로 만들어 놓지를 않고 미완성품으로 이 땅에 태어나
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옆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완성품인 것  
처럼 보여도 다 미완성품입니다. 얼굴이 미완성품이 아니라 마음이 미완성품입
니다. 인격의 결함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성격이 하나님처럼 되어 있는 사람
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성격에 모가 나 있고 괴퍅스러운 면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 마음속에 성경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릅니다.

막7:21에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
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사람의
마음속에는 악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책을 많
이 읽어도 이런 것들을 마음속에서 다 제거해 버릴 수가 없습니다. 지식을 쌓아
도 마음속에 악한 것들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부자로 살아도 마음속에 악한 생
각을 버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한 생각을 갖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명예가 있
어도, 권세가 있어도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미완성품입니다. 롬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여
기서부터 기독교는 시작되고 우리의 신앙의 출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리 잘 생긴 미인도 가만히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얼굴이 얽고 형편없는 얼
굴을 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근사하게 보여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 흠이
있고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얼굴이 좀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모든 사
람이 얼굴에 다 흠이 있고 단점이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런 외모나 마음의 악한 생각들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마음을 가지고
살게 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실수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실수를 하게 되면 반
드시 하나님께로 되돌아와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회개라는 것을 통해서 돌아옵
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짓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방법은 오직 회개를 통해서입니다. 우리의 모난 성격의 부분을
고치려고 할 때에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잘못을 내어놓고 죄를 청산한
후에 가능한 것입니다. 죄를 주님 앞에 내어 놓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의 라운
드 어바웃입니다.(Turningpoint). 그것은 회개입니다. 자복입니다. 철저한 자
기 부인입니다.

예수님이 탕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들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살다가 다시 돌아
오는 것을 극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눅15장에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
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
을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
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
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
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
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니'
탕자는 아버지에게 돌아가기로 결정한 다음에 아버지의 집 품꾼으로 생각해달라고
말하리라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런 마음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삭개오가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삭개오는 자라면서 목표가 있다면 그
것은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키도 작지요, 돈
도 없지요, 다른 사람보다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지요, 출신성분이 좋은 집안도
아니지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게 되자 누구에게 욕을 먹든지,
돈을 많이 벌수 있다면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고 자기 앞에서 머
리를 숙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돈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로 설정되자 삭개
오는 세리의 직업을 택합니다. 그 당시에는 세리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직업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직업이 유대인들에게는 경멸의 대상이고 지탄의 대상이었
지만 삭개오는 그런 직업이라야말로 자신의 목표와 꿈을 이룰 수 있는 좋은 직
업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
의 욕심을 채울 수 있다면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런 것을 생각
할 시간의 여유가 없었고 다른 사람들의 비난과 지탄에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비난과 욕을 먹는 것쯤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상관이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를 믿으면서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기 전과 같은 삶을 사는 사
람들이 있습니다. 오직 돈을 많이 버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
람들이 술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려고도 합니다. 매춘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 삭
개오처럼 떵떵거리면서 살려고 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생각
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려면 어느 정도 돈이 많아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느냐, 그리고 하나
님의 뜻에 맞게 돈을 쓰느냐 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고 그 사람이 돈이 많으냐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기준이 되어 권사도 주고 장로도 되기도 합
니다. 이렇게 하면 교회가 패망하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그가 목표한대로 삭개오는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자신이 설정한 성공한 사람
이 된 것입니다. 엄밀하게,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의 돈을 착취해서 자기
것으로 삼은 것입니다. 대낮의 강도와 다름없는 짓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가령
세금이 어떤 사람에게 1000원이 나왔는데 삭개오는 그 사람에게 세금고지서를
보내면서 거기에 금액을 3000원이라고 적어서 보냅니다. 그 사람이 세금을 내면
3000원 가운데 1000원은 나라에 바치고 나머지 차액의 2000원은 자기 것으로
삼는 방법으로 돈을 모은 것입니다. 돈을 벌었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돈을 착
취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가 목표한대로 돈을 긁어모았으니 부자가 된 것입니
다. 삭개오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었으니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목표
한대로 부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목표를 이룬다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전혀 행복해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돈을 많이 벌
수록 그의 마음은 허전해졌고 인생을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살면서
문득문득 들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삭개오의 삶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과
하등 상관없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을 만나고 그 주님을 내 마음속에 영접함으로써 시작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시작한다는 말은 곧 지금까지 내 뜻대로
살았던 모든 모습을 버리고 살겠다는 뜻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치부터 저
녁까지 내 방법, 내 지혜, 내 가치관을 가지고 살겠다는 것을 포기하고 지금부
터 주님의 방법, 주님의 지혜, 주님의 가치관으로 살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
이 인생의 라운드어바웃입니다. 내 생각으로 살면 잘 살 것처럼 보입니다. 내
계획대로 살면 근사한 삶을 살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대로 살면 멋진 삶
을 살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지지 않습니다. 내 생각대로 살려
고 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내 의지대로 살려고 하는 것도 불신앙입니다. 내
의지대로 살고 내 방법대로 살고 내 목표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말한 라오디게아 교회와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삭개오에게 전혀 생각지도 않은 사건이 하나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말하던 메시야이신 나사렛 예수님이 자기가 사는 여리고
로 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칭찬, 존경, 흠모의 대상이 된 예수님이 여리고로
온다는 소식에 제일 흥분한 사람은 삭개오입니다. 그가 자기의 삶에 무엇인가
변화가 올 것 같은 조짐이 보였습니다. 아니, 그럴 것 같았습니다. 사람의 칭찬,
존경의 말이 아니더라도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답답하게 막혔던 자기의 마음이
확 뚫릴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그 날, 삭개오는 큰길가로 나왔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수많
은 군중들이 벌써 대로를 메워버렸습니다. 키가 유난히 작은 삭개오, 주님 얼굴
한번 봤으면 하는 소박한 생각을 가지고 나왔는데 이건 낭패입니다. 다리가 도
와주지를 않습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길가에 있는 나무를 발견하고 그 나무위로 올라가면 에수님을 볼 수 있겠다는
좋은 생각을 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어쩌면 몇 몇 아이들이 올라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삭개오는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삭개오는 모든 세상의 의식, 탈을
벗어버리고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밑이 잘 내려다보입니다. 시간이 지나 예
수님이 저만큼에서 오십니다. 아! 저 분이 예수님이시구나? 하고 생각할 때 주
님이 그 밑을 지나시다가 삭개오를 쳐다 본 것입니다. 삭개오의 눈과 예수님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시선 한번이 삭개오의 마음을 바꿔 놓습니다. 그의 막혔
던 마음이 확 뚫린 것 같았습니다. 주님 한번 보기를 원했던 삭개오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 삭개오야 내랴오라!" 주님이 삭개오를 만났을 때에 그를 뽕나
무 위에서만 만나는 것으로 주님은 만족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삭개오의
집으로 들어가시기를 원하셨고 들어가기만 할 뿐 아니라 함께 유하기를 원하셨
습니다. 신앙의 부흥과 성숙은 주님을 만날 뿐 아니라 주님을 모시고 집으로 들
어가고 거기에서 멈추면 안되고 그 주님과 함께 유하는 곧 함께 사는 가운데 임
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난 후에 삶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과 인생의 목표가 달라졌
습니다. 눅19:8에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
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
겠나이다"- 삭개오 자신이 돈만 알았던 사람이었는데, 돈만 추구하던 사람이었
는데 그는 지금 주님 앞에서 돈이 주님 앞에서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것인지를
분명히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데 장애가 됨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Turningpoint입니다. 회개인 것입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
나 후에 이전에는 알지 못하던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필요
이상으로 재물을 많이 쌓아둔 것이고 또 하나는 남에게 토색한 죄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얼굴빛 가운데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런 회개가 분명히 주님 앞에서 있어야 합니다. 홰개없이 하나님 앞
에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
실로 주님 앞에 가까이 가기를 원한다면 먼저 삭개오와 같이 주님을 만나고 그
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여러분의 생활 속에 속속들이 모셔
들이고 여러분의 삶의 일부가 아닌 실패와 좌절을 거듭했던 모든 부분을 주님의
임재 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라운드어바웃입니다.

여러분은 구원 받기 전과 구원 받은 후의 인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느 청년들의 모임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돌아가면서 대답을 하기로 했습니
다. 쭉 돌아가면서 구원 받기 전과 받은 후의 인생의 대해 설명하는데 어떤 청
년이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주님을 만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고 나서 아! 나는 인생의 80%는 성공을 하였구나. 내가 앞으로 20%만
잘하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삶을 살겠구나. 라고 생각 했다는 것입니다.' 그
청년이 지금은 결혼을 해서 영국 삼성에 취직을 하고 회사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다닙니다. 그의 장모가 처음에 딸이 남편될 사람을 선 보였을 때 가만히 보니까
'젊은 사람이 패기도 없고, 욕심도 없고, 융통성도 없어 보여 우리 딸이 결혼을
하면 고생을 하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사위가 영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삼성에
취직을 하고 집도 사고 예수 제대로 믿지, 회사, 집, 가정 밖에 모르고 살지,당
신의 딸을 공부를 시키지,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을 본
장모가 딸에게 '너는 앞으로 네 남편이 하자는대로 하거라. 하나님이 네 남편을
축복해 주는 것이 내 눈에도 보인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것을 인생의 성공으로 믿는 사람의 앞길을 어떻게 하나님이 책임져
주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 6절에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래서 창세기부터 보면은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길을 선택을 했습니다. 가인의 길이 다르고 아벨의 길이 달랐습니다. 에서의 길
이 다르고 야곱의 길이 달랐습니다. 사울왕의 길이 다르고 다윗왕의 길이 달랐
습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왕이래도 가는 길이 다릅니다. 그리고 똑같은 배에서
똑같은 시간에 난 에서와 야곱도 가는 길이 다릅니다. 그렇다면은 오늘날 우리
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느냐를 조심스럽고 주의 깊게 그리고 정말 정신차려서 내
가 어느길에 서있는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한데 좁은길로 들어가라는 얘기는 세
상과 반대되는 길로 가란 얘깁니다. 세상사람들이 쾌락을 좋아하고 쾌락을 따라
가는데 우리는 쾌락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내리시는 하나님의 기쁨
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되고 세상사람들은 재물을 구하고 물질을 구하지만 우리
는 그런것들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썩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는 하나님
나라에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 그래서 이 세상길과 반대되는 길만 택
하면은 말씀은 모른다하더래도 일단은 어느정도 우리가 바른길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서 도버에서 배를 타고 프랑스 칼레를 갔다오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영국에만 라운드어바웃이 있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칼레
에도 라운드 어바웃이 있습니다. 영국의 라운드어바웃은 우측에서 오는 차량이
우선인데 칼레의 라운드어바웃은 좌측에서 오는 차선이 우선이고 좌측으로 다
니는 것이 아니라 우측으로 차량이 다니는 것입니다. 같은 길인데 같은 라운드
어바웃인데 나라마다 이렇게 다른 것은 약속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
님의 자녀인 것과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의 차이점은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입
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그 길로 가야만 합니다.
차선방향의 약속을 위반하면 대형사고를 당하듯이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약속
을 받은 사람이니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면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행13:23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
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수 천년이 지나면서 하나님이 수 없이 약속하신 메
시야가 오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큰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이 우리들에게도
작은 약속을 지켜 주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지 않겠습
니까?
히11:9에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아브
라함, 이삭,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나안 땅에서 살았고 하나님의 약속
을 따라 믿음의 나라를 이루었으니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정처 없는 나그네 생활을 책임져 주신 것처럼 우리들도 책임져 주시
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들로 하여금 믿음의 나라를 이루어가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길을 잘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인생의 라운
드어바웃을 잘 돌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약속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려
고 하지 말고 주님이 가려고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그
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축복으로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영국 런던에서 한인 목회를 하는 목근수 목사입니다. 가끔 갈릴리 마을 방문하곤 합니다. 전에는 쪽지도 보았고 좋은 사역이라고 생각되어지고 좋은 글들이 많이 있어 좋습니다. 가끔 좋은 글을 저희 교회 주보에 올리기도 합니다. 이번에 맘 먹고 제 설교전문을 올립니다. 괜히 저장만 많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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