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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계산되지 않는 용기 (삼상 17: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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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되지 않는 용기 (삼상 17:32-40)

지금은 서른이 훌쩍 넘은 우리 작은 아이가 세 살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 자주 기억납니다. 밤길에 아이 손을 잡고 물건을 사러 가는데 길이 미끄러워 넘어질 뻔했습니다. 큰 일 날 뻔 했다고 이야기하자 아이가, “아빠 내 손을 잡으면 되잖아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야 이놈아, 내가 네 손을 붙들었다가 너도 나도 다 미끄러지고 말지.”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그 말이 점점 강하게 기억됩니다. 그때부터 거의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이 기억납니다. 아이의 그 말이 생각날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힘이 됩니다. 

시집간 딸아이와 사위가 가끔씩 봉투를 가지고 옵니다. 지금 저야 돈을 쓸 때가 별로 없지만 그 아이들은 돈이 많이 필요할 때인데도 제가 그 돈을 얼마나 많이 기다리는지 모릅니다. 기분이 좋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주는 일도 많지만 아이들이 돈을 가지고 오면 그 돈은 다른 데 쓰지 않고 따로 보관해두었다가 아내와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만 씁니다. 그 돈으로 먹으면 음식이 맛있습니다. 그리고 기분도 좋아집니다. 가령 30만원이라고 하면 한 300만원 정도 되는 듯한 기분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갔을 때, 시냇가에서 돌멩이 다섯 개를 주워 던지자 거대한 블레셋 장군 골리앗이 이마가 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이 놀라운 결과의 결정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무엇이겠습니까? 깊이 생각하지 말고 아주 단순하게 그리고 아주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십시다. 그것은 다윗의 용기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다윗과 늘 함께 생활했던 다윗의 형도 다윗을 만류했습니다. 그건 안 되는 일이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리고 전쟁에 대해서 잘 아는 이스라엘의 왕 사울도 만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차마 보고 있지 못했던 마음이 있었습니다. 위기의 조국, 그 조국이 모욕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다윗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보셨습니다. 다윗의 그 마음은 우리 작은 아이가 내 손을 붙들어주겠다는 것과 똑같이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조그마한 다윗이 무슨 힘이 있을 것이며 어떻게 조국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다윗이 이렇게 나서는 것을 보신 우리 하나님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계산되지 않은 용기’ 라고 정의합니다. 다윗의 계산되지 않은 용기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깜짝 놀라서 일어서셨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윗을 그냥 내버려두면 큰일 날 것 같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무 힘도 없지만 그저 하나님 모욕당하는 것이 싫어서, 조국이 위기에 흔들리는 것이 싫어서 나서는 저 아이를 가만히 두면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아무 힘도 없는 아이가 저런 용기를 내는데 모든 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있는 나 하나님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시고 벌떡 일어서신 것입니다. 

이번에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방문했을 때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캄보디아는 이제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라오스는 아직까지도 완전한 공산국가입니다. 복음 선교가 허락되지 않는 이 라오스에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물론 라오스 중앙 정부 그리고 우리가 방문한 ‘팍세’ 라는 지방 정부도 이미 우리가 그들을 단순히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 선교를 위해서 왔다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여 우리가 하는 일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공식적으로 표면화되면 지금까지 공들였던 것이 허사가 될 수 있고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중국에서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세심하게 주의를 하지 않았는지 혹은 다른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동안 북한과 중국의 농아인들, 중국의 한족들에게 복음을 열심히 잘 전하고 있었는데 그만 잘못 되어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정말로 쓰라린 가슴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당했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공산국가인 라오스에서는 우리의 모든 활동이 통제됩니다. 나환자 마을을 방문하는 것도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하고, 나환자들과 접촉하는 것, 학교를 짓는 것도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라오스 공안당국은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 기정사실입니다.

라오스에서 나환자들과의 일을 다 마치고 캄보디아에서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때 결정적인 일이 생겼습니다. 학교와 교회를 다 짓고 준공식을 해야 하는데 그때 축사하는 일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 준공식에는 캄보디아, 라오스의 정부 관리들이 다 참석하는데 축사 내용에 따라서 우리가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방문하는 목적이 공개되어 공식적인 것이 되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그 더위에 참으로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기 때문에 항상 목에 수건을 감고 있었습니다. 땀이 줄줄 흘러 속내복까지 땀으로 다 젖습니다. 하루에 옷을 세 번 세탁한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나갔다 돌아오면 그냥 좀 젖는 것이 아니라 속내의까지 다 젖는 그런 더위에서도 참으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단의 문제가 남아있었습니다.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형식적인 축사만 하는가? 아니면 최악의 경우에 지금까지 선교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더라도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인가? 둘 중 선택해야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참 좋은 찬스였습니다. 

라오스 정부 관리들, 캄보디아 정부 관리들도 와있었고 캄보디아 주민들도 상당히 많이 참여한 절호의 이 찬스에 복음을 선포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주저앉을 것인지 너무도 고민이 되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 가운데 우려도 있었고 만류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준공식 전날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잠자리에 누워 뒤척이다 귀신을 만났습니다. 귀신 만나보셨습니까? 저는 가끔 귀신을 만납니다. 신학을 시작할 때도 만났습니다. 저를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상한 목사는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런 일을 한 번 겪어보시면 완전히 다르게 생각할 것입니다. 잠을 자고 있는데 온갖 말을 합니다. 이렇게 했다간 이제 캄보디아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하고, 잘 지은 이 예배당에서 예배도 한 번 드리지 못한 채 쫓겨날지 모른다는 등 얼마나 괴롭히는지 모릅니다. 

날이 밝아 새벽 일찍 일어났습니다. 준공식이 아홉시인데 그 앞에 예배를 드려야하니 얼마나 빨리 예배를 드려야하겠습니까? 일찌감치 일어나서 역시나 쌀국수로 아침 식사를 하고 교회에 가서 봉헌예배를 드렸습니다. 

준공식의 순서나 다른 모든 일들은 우리가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가 주관자이지만 우리가 주관하지 못하고 캄보디아 주지사가 주관합니다. 좌석배치도 그들이 주관합니다. 중간에 테이블 두 개와 좋은 의자 두 개를 가져다 놓고 꽃도 가져다놓는데, 그 자리에는 주지사 그리고 그 부인이 앉습니다. 우리는 다 밑에 앉습니다. 위에 간이의자를 몇 개 가져다 놓았습니다. 저는 거기에 불려 올라가 앉았습니다. 

또 그 곳에 선교사님이 올라가고 라오스, 캄보디아 관리들이 앉습니다. 이처럼 좌석까지 전부 다 그들이 배정하고 순서도 그들이 주관합니다. 보통 주인이 먼저 축사를 하고 저는 들러리를 쓰는 사람이므로 뒤에 하게 되는데 저보고 먼저 하라고 했습니다. 

이제 드디어 고민을 끝낼 시간입니다. 고민의 끝은 다윗의 물맷돌이었습니다. 

이제 제가 그때 읽었던 축사를 여러분들 앞에 읽으려고 합니다. 그 축사는 그때 캄보디아 라오스 관리들과 시민들을 향한 축사일 뿐만 아니라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전문을 그대로 읽겠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의 히틀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무섭고 악한 죄를 지었다. 그때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가장 현대적인 학자들까지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은 저렇게 악할 수가 없다. 저렇게 악한 일을 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악마다!’ 그러나 결국 히틀러는 망하고 말았다. 세상에는 악한 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한 신도 있었던 것이다. 선한 신이 악한 신을 이긴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선한 신을 가장 위대한 신이라고 불렀다.’ 

제가 이 축사를 할 때 일부러 통역을 두 사람을 세웠습니다. 하나는 우리말을 영어로 하는 통역이고 또 하나는 캄보디아어로 하는 통역이었습니다. 영어로 하는 통역은 세우지 않아도 되었지만 일부로 영어로 통역하는 사람을 세운 까닭이 있습니다. 라오스 사람들은 캄보디아 말을 모르지만 영어는 알아듣는 사람들이 몇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영어 통역자도 세웠습니다. 사람들이 부르는 가장 위대한 신 ‘The greatest God' 이라는 이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나는 20년 전에 한 은행 지점장을 만났다. 그가 간암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렸다. 당시 한국 최고의 병원에서도 그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치료를 포기했다. 그러나 그는 간암을 이기고 건강을 되찾았다. 20년이 지난 지금 현재도 그 사람은 살고 있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그는 자기를 죽을 수밖에 없는 그 무서운 병에서 건지고 자기를 건강하게 한 것은 바로 ’그 가장 위대한 신‘이라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50년 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었다. 한국인 5천만 명 중 1/4인 1,300만 명은 그 놀라운 일,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만든 그 놀라운 일을 한 것은 바로 ‘그 가장 위대한 신’이라고 믿고 있다.

바로 얼마 전 스텅트랭의 몇 명의 젊은이들과 명철진 선교사가 건축을 시작했을 때의 모습은 초라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스텅트랭에 이루어진 놀라운 이 일을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나는 스텅트랭에 이루어진 이 일을 보면서 한국을 가난에서 건져 부유한 나라가 되게 한 ‘그 가장 위대한 신’의 손길을 느낀다.

나는 소원한다. 은행 지점장을 무서운 병에서 살린 그 선한 신, 한국을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게 한 가장 위대한 신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그 위대한 신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모두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한 존경하는 주지사님과 스텅트랭 시민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소원한다.’

바로 그 다음 순서로 주지사가 연단에 섰습니다. 결과는 정말로 놀라왔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주지사는 우리가 그렇게 조심스러워했던 호칭을 거침없이 불러주었습니다. 우리는 감히 '목사님(pastor)'이라는 말을 제대로 쓰지 못했지만 주지사는 ‘pastor 김’ 이라는 호칭으로 몇 차례나 이야기했습니다. 거기다 ‘오늘의 이 모든 것이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여러분이란 교회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를 도와주어서 너무 고맙다. 앞으로 많이 도와주기 바란다’는 말을 한 30분 이상 축사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했습니다. 너무도 놀라왔습니다. 우리가 조심조심하고 말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던 그 말들을 캄보디아 정부 당국의 최고위자인 주지사가 대신 해주었습니다. 

가장 놀라왔던 일은 주지사가 강단위에 있는 캄보디아 정부 관료들 그리고 라오스 정부 관료들을 향해서 한 말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국처럼 발전하고 싶으면 변화해야 한다.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한다.’
마음을 열고 다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정확하게 우리말을 대신해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 저에게 맘대로 말해도 좋으니 하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강하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다 받아들이고 변해야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 주지사는 복음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주지사가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지사의 입에 말을 넣어준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십시오.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사는 방법입니다. 이 힘들고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을 해쳐나가는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입에 말을 넣어주시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높이 세워주시면 일어서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막아주시면서 이 사람은 손대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손 댈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다 하십니다. 특히 큰 일, 위대한 일은 전부 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하십시오.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를 열심히 하시고, 회사를 다니거나 사업하시는 분들도 열심히 하셔서 돈도 많이 버십시오.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하십시오. 그러나 할 만큼만 하십시오. 여러분들이 다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일도 여러분이 다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공부도 여러분들이 다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돈을 버는 것도 여러분들이 다 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건강도 여러분이 다 지킨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운동을 하지만 우리가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셔야합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일을 하시고 큰일을 하시고 대단한 일을 하십니다. 그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전부 다 하십니다. 그러나 그 일을 여러분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작은 용기를 기다리십니다. 여러분이 작은 주먹을 들고 앞장서기를 기다리십니다. 

여러분들이 보잘 것 없는 주머니를 열고 하나님 앞에서 보여주기 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계시지 못하십니다. 여러분들의 작은 용기에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용기를 더해주시고, 여러분의 작은 주먹에 하나님의 놀라운 큰 오른손을 더해주시고, 여러분들의 작은 주머니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엄청난 주머니를 열어주셔서 보태주십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내가 가진 것 아무것도 없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그러나 위대한 일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오병이어의 역사를 보십시오. 작은 아이가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조각으로 역사를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린아이가 자기가 굶을 작정을 하고 먹을 수 있는 모든 것, 물고기 두 마리 빵 다섯 조각을 내놓았는데 가만히 계실 수가 없으셨던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항상 우리입니다. 내가 먹을 것이 없을 것이 염려되고, 내 몸이 거덜 나고, 건강을 해칠 것이 걱정되고,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이 다 날아갈까 염려되어 꼼짝하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팔짱을 끼고 계신 것입니다. 위대한 일을 하고 싶으신 하나님, 당신의 주머니를 열어 한없이 채워주시고 싶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으므로 하나님 마음도 움직이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일어설 때 하나님이 일어서십니다. 여러분들이 용기를 낼 때 하나님이 놀라운 용기를 내십니다. 특히 여러분이 도무지 계산되지 않는 용기, 아름다움을 발할 때 하나님은 깜짝 놀라서 일어서십니다. 여러분들은 모양만 내셔도 하나님은 일어서십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사랑받으신 이유에서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성전을 짓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얼마나 많은 복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말 한 마디, 마음만으로도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문제는 마음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꼭 주머니를 열지 않아도 됩니다. 물맷돌을 가지고 앞장서지 않아도 됩니다. 진실한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벌떡 일어서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하고 기다려도 얻지 못하던 아름다움을 누군가 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 내지 않는 용기 내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저 혼자 입속에서만 중얼거리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큰 것을 기대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큰 것을 시도하라’
위대한 하나님의 종 윌리엄 캐리가 한 말입니다. 이 말은 윌리엄 캐리가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큰 것을 기대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큰 것을 시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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