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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막막하십니까? (출 1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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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하십니까? (출 14:10-16)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 절정에 달했을 때 한 젊고 유능한 유대인 외과 의사가 나치스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용되었습니다. 그는 매일 가스실과 실험실을 향해 떠나는 동족들의 죽음의 행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자신도 가스실의 제물이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젊은 의사는 강제 노역 시간에 흙 속에 파묻힌 깨진 유리병 조각을 몰래 자신의 바지 주머니 속에 숨겨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아침과 저녁이면 으레 그 깨진 유리의 날카로운 파편으로 면도를 했습니다. 오후가 되면 나치스 병사들이 와서 가스실로 보낼 처형자들을 골랐습니다. 병사들은 유리병 조각으로 피가 묻어날 정도로 파랗게 면도한 의욕에 넘치는 외과 의사의 턱을 보고 차마 그를 가스실에 보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잘 면도된 파란 턱으로 인해 아주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어서 나치스에게 그를 죽이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나치스가 완전히 패망하는 그날까지 끝까지 살아 남았습니다. 그가 살아서 그 죽음의 수용소를 떠날 때 그가 가지고 있던 단 한 가지 소지품은  깨진 유리병 조각 하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인생의 막다른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아무 희망도 없어 보이는 최악의 상황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렸던 유대인 의사는 결국 죽지 않고 살아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결코 늦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리고 막막하고 답답하고 힙겹고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 이대로 우리를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고 반드시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또 다시 내어 미실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향해 우리가 그러한 믿음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 역시 반드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그 믿음이 헛되지 않도록 살아 역사하여 주실 줄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엔 그와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출14장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설만큼 심각한 위기의 상황, 인생의 막다른 골목과 같은 진퇴양란의 절박한 상황에 처하여 있었습니다. 
그 상황은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앞에는 홍해가 떡 하니 가로막고 있었고 뒤에는 애굽 군사들이 추격해오고 있었고 양쪽에는 협곡으로 펼쳐져 있어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최악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꼼짝달싹할 수 없는 최악의 절망스러운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으로 인도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출14장 1절과 2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하나님은 갑자기 이스라엘 백성들의 방향을 돌리셔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바하히롯 앞 바알스본 맞은편 바다가로 인도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 길 말고도 얼마든지 더 편하고 좋은 길로도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쉽고 편하게 가게 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성경 지도를 보면서 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수르 광야로 가는 길' (The Way to Shur)로 인도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만약 그 길로 갔다면 홍해를 건널 필요도 없이 7일-10일이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쉽게 도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에 가장 어리석고 이해할 수 없는 그 길을 택하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좀처럼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그 길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성도들인데, 다른 수많은 좋은 길들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그런 막다른 길로 몰아넣으시는지 이해할 수 없는 '진퇴양란'의 환경을 만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은 하나님 안 믿어도 사업도 잘 되고, 모든 일들이 잘 풀려가고 다들 좋은 대학 척척 붙는데 왜 하나님의 자녀인 나를 이런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넣으시는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그 사랑의 하나님이 왜 우리를 때로는 이렇게 꼼짝 달싹할 수 없는 막다른 상황 진퇴양란의 최악의 위기상황으로 몰아넣으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기 때문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아니 목사님 우리를 사랑하는데 왜 우리를 막다른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입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 이제 본문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보면서 그 대답을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해내시기 위해 그토록 강팍했던 바로를 10번의 재앙을 통해 변화시키시고 비로서 애굽을 빠져 나와 약속의 땅으로 출발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의 땅에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편하고 쉽고 좋은 길이 아닌 막다른 골목처럼 느껴지는 힘겨운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31절 말씀 때문입니다. 

다함께 읽어보시죠?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그들을 인도하신 이유는 그들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들을 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여호와를 더욱 경외하며 여호와의 종 모세를 신뢰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큰 일이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큰 일을 행하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우리를 위해 큰 일을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간사함 때문입니다. 우리는 간사해서 작은 일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은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지.. 아니면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된 것이지 하면서 하나님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을 한번 생각해보죠? 

이순신 장군 시대의 우리 수군은 그야말로 볼품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도저히 일본수군과 대적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명량해전에서는 12척을 가지고 330척과 싸워 승리하는 세계역사상 전례가 없는 승리를 기록하였습니다. 지금도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이유는 그가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무엇입니까? 12척을 가지고 330척을 물리친 일 그 일은 정말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대승이며 큰 승리 큰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반대로 이순신 장군이 330척을 가지고 일본의 수군 12척을 물리쳤다면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 큰 일을 행했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에이 330척가지고 12척을 못 물리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12척을 가지고 330척을 물리친 그 일은 순전히 이 순신 장군의 지략과 용맹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조선의 수군들과 모든 백성들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고 충성을 맹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 때때로 330척이 아니라 12척을 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12척이 아닌 330척을 주시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축복과 은혜는 330척을 가지고 12척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축복과 은혜는 12척을 가지고도 330척을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상황과 환경은 단 12척 밖에 되지 않는 볼품없고 초라한 상황,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절박하고 막다른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330척이나 되는 엄청난 우리의 삶의 적들과 당당히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큰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큰 일을 통해 당신의 위대하심과 높으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보여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당하고 있는 상황이 막막하게 보이고 답답해 보이고 힘겹게 느껴질지라도 그것으로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기 바랍니다. 오히려 우리의 상황이 열악하고 힘겨울수록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크고 위대한 일을 준비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큰 일을 나를 위하여 우리 가정을 위하여 우리 교회를 위하여 행하실 것인가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떠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겹고 어려운 상황을 만나자 하나님 앞에 불평하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11절, 12절입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렇게 하나님을 잘 섬기던 그 사람을 어떻게 부도나게 할 수 있어? 어떻게 새벽 기도가다가 차에 치어 죽을 수 있어? 그런 하나님이라면 난 안 믿겠어?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부도나게 하시고 그것으로 끝내버리고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이라면 그 사람들의 말이 맞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라면 우리도 하나님을 더 이상 믿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도나게 하시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도나게 하셨다면 분명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과 뜻이 있을 것이고 그 목적이 이루어지고 나면 반드시 하나님은 이전보다 더 크고 놀라우신 은혜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기에 우리는 최악의 상황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생떼 같은 욥의 자녀가 다 죽었으니까, 욥이 심한 피부병에 걸려 피가 질질 흐르도록 긁고 있으니까, 사랑하는 아내와 친구들이 다 저주하고 떠나갔으니까 욥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욥의 인생을 거기에서 종지부 찍고 있지 않습니다. 

욥의 결말은 아무 돌아볼 사람 없는 비참한 알그지 인생으로 온몸에 피가 질질 흐르고 구더기가 나오는 비참한 인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욥의 결말은 어떠했습니까? 
욥42:10-17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욥은 비참하고 안타깝고 쓸쓸한 인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무 돌아볼 사람 없는 비참한 알그지 인생으로 온몸에 피가 질질 흐르고 구더기가 나오는 비참한 인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그런 인생으로 끝나게 내버려두시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욥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욥이 그 최악의 절망 상황속에서 하나님 앞에 드린 고백이 무엇입니까?
욥23:10절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그렇습니다. 욥은 왜 나에게 지금 이러한 어려움과 고난이 있는 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그때가 되면 반드시 정금과 같이 나오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며 나는 그 사실을 믿습니다. 라는 그의 믿음의 고백대로 하나님은 역사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우리가 우리의 길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나보다 나의 인생의 길을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그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때로는 지금 당장 너무 막막하고 답답해 보이고 아무 희망도 없어 보이는 최악의 길 인 것처럼 보여도 그 길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계시는 한 그 길이 바로 최선의 길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최선의 길임을 믿기에 힘들고 어려워도 눈물 나고 한숨 나도 포기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믿음의 고백, 감사의 고백을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힘겹고 어려운 상황, 진퇴양란의 급박한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고백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모세의 고백입니다. 

13절 14절말씀입니다.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는 고백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는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그렇습니다. 진퇴양란의 막다른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고백은 
첫째, 13절 첫 부분에 한번 따라해 봅시다. 두려워하지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똑같은 일을 만나도 다른 고백을 합니다. 그것은 그가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백성들과 모세역시 똑같은 막다른 상황, 진퇴양란의 절대절명의 위기 상황을 만났지만 하는 고백은 분면 달랐습니다.

M 아우렐리우스는 사람의 일생은 자기가 생각 하는 대로 그대로 되기 마련 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두렵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 때문에 자꾸 더 위축되고 흔들리게 되고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면 담대해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잘 될거라고 생각하면 잘 되고 안 될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성공한다고 생각하면 성공하고 실패한다고 생각하면 실패하고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일어나고 무너진다고 생각하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살겠다고 생각하면 살게 되고 죽겠다고 생각하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 쥐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마법사가 이 쥐를 고양이로 변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이 고양이는 개를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법사가 고양이를 개로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 개가 호랑이를 두려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마법사는 개를 다시 호랑이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또 사냥꾼을 두려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냥꾼은 또 다시 쥐를 두려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마법사는, "너는 다시 쥐가 될 수 밖에 없겠다. 네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너는 쥐의 심장밖에는 없으니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라고 말했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어떤 사람이 되고 상황이 어떻게 되어도 또 다시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크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또 두려워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쥐의 심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갖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위대한 선배들을 보십시오. 그들 역시 두렵고 떨리는 상황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고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기드온에게 들려졌으며 사랑하는 딸이 죽었다는 소식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던 회당장 야이로에게도 들렸습니다. 이 모든 신앙의 선배들은 그 말을 듣고 그들이 처했던 상황이 아니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짐으로 결국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렵고 힘겨운 일들이 우리에게 엄습할 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주어진 그 상황과 환경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 큰 일을 행하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인줄로 믿습니다. 

둘째, 진퇴양란의 막다른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고백은 따라해봅시다.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큰 일을 보라는 것입니다.

13절과 14절에 두 번에 걸쳐 하나님은 가만히 서 있으라고 모세의 입술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만히 있어야 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안절 부절했습니다. 네가 우리를 인도해서 이렇게 죽게 하는구나 하며 어찌 할바 몰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그렇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괜히 아는 척하고 나섰다가는 망신당하기 일수 입니다. 

사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집안 일을 잘 못 도와주는 편입니다. 안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신혼 초에 몇 번 도와주려 했다가 도와주지 않는 만 못한 결과를 몇 번 보게 되자 역시 당신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거야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는 것입니다. 

요리를 하지 못하는 딸이 어머니를 도와준답시고 어설프게 요리를 하고 나면 재료 낭비에 다시 해야 하는 수고에 시간낭비까지 그야말로 일석3조의 손해를 가져오게 됩니다. 요리를 잘 못하는 딸은 그저 어머니 옆에 서서 어머니가 어떻게 하는 지 바라보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위대한 일을 행하실 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 옆에서 하나님이 과연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지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니 목사님 그럼,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맹목적으로 손을 놓고 있으라는 말씀인가요? 그 말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시죠? 15절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바다위로 내어밀어 갈라지게 하라.. 
하나님은 가만히 있으라고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겠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십니다. 

자 딸이 어머니 요리하는 것을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습니다. 그때 엄마가 말합니다. 야 00야 저 옆에 있는 소금 좀 가져와.. 가게 가서 두부 좀 사와라.. 고 말씀합니다. 그때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난 아무것도 안 해 하면서 그때도 그냥 가만히 어머니 옆에서 서서 엄마 요리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딸에게 돌아오는 것은 굴밤밖에 맞을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신 것은 손을 놓고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당신이 모든 주도권을 가지고 철저히 주도해가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모든 주도권을 가지고 일하시지만 우리를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만드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믿음으로 지팡이를 들고 홍해를 향해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로 진퇴양란의 위기를 만났을 때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요 마음가짐입니다. 하나님이 나아가라고 하는 때 지팡이를 들고 홍해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모든 문제와 진퇴양란의 위기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나서서 이것저것 살길을 찾고 인간적인 지혜와 방법을 동원해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모든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분이 어떻게 인도해 가시는가를 바라보면 됩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멍하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아가라고 하고 홍해를 향해 지팡이를 내어밀라고 하면 믿음을 가지고 그렇게 나아가야 하고 지팡이를 내어 밀라고 하시면 또 담대함을 가지고 내어 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몫인 것입니다. 

학생이 시험을 보는 데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는 이 말씀에 은혜를 받고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부터 나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가만히 있을거야 하고 공부도 안하고 집에서 가만히 있어 주여 믿습니다. 할렐루야 믿습니다.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돌아올 결과가 무엇이겠습니까?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고 말씀하신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홍해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 믿음으로 지팡이를 들고 바다위로 내어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홍해 바다는 아직도 여전히 시퍼런 색깔을 띤채 위협적으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런 홍해 바다를 향해 지팡이를 들어 올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세의 입장을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데 지팡이를 들었는데도 홍해 바다가 여전히 유유히 흘러간다면 나는 뭐가 되나? 이런 생각이 모세에게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21절에 보니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바다 위로 손을 내어 밉니다. 
모세는 자신을 처음 호렙산에서 불러주시고 애굽 에서 바로의 앞에서 기적을 행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의 현장속에서 기적의 도구로 쓰였던 그 지팡이를 믿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들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을 막다른 최악의 상황, 진퇴양란의 힘겨운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는 그 홍해를 향해 하나님이 주신 능력의 지팡이를 들어오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들어 올리라고 말 만하고 뒤에서 모른 척하시는 무책임한 하나님이 결코 아닙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주관하시며 위험한 순간순간마다 우리를 붙들어 주셨던 그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손을 내어밀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있어 그 지팡이는 처음 부르심을 받았던 순간부터 바로 지금까지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 고민되고 답답한 순간, 철저한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이 필요했던 그 순간순간마다 모세를 붙들어 주셨던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요,기적의 지팡이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아침, 여러분의 인생 속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 응답의 지팡이, 치유의 지팡이 보호하여 주셨던 은혜의 지팡이, 기적의 순간을 베풀어주셨던 그 하나님의 지팡이를 꺼내어 올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집어 삼키려고 달려드는 거친 홍해 물결을 향하여 믿음으로 내어 밀기 바랍니다.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그 지팡이를 내어 밀 때 분명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막막하게 하고 답답하게 하는 그 홍해가 갈라지고 여러분들을 숨막히게 뒤쫓는 애굽의 군사들이 수장되는 놀라운 기적의 아침이 되게 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큰 일 위대한 일을 행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오직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나며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국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N. peal 박사는 주어진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4가지 big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크게 생각하라. 크게 믿어라 크게 기도하라. 크게 행동하라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때때로 진퇴양란, 사면초가와 같이 꼼짝달싹 없는 힘겹고 어려운 막다른 상황으로 내어 모시는 이유는 우리를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작은 일이 아니라 큰 일을 행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큰 일을 통해 우리의 연약한 믿음이 더욱 견고하게 세워지고 하나님이 더 큰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하나님은 큰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앞에 주어져 있는 상황이 혹시 힘겹고 어려우십니까? 막막하고 답답하십니까? 사면초가여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절망적인 상황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방이 다 막혀 있어도 위는 열려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시며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행하는 큰 일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옆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바라보면 되고 하나님이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때에 나아가서 손을 내밀고 지팡이를 내어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어느새 우리 앞에 있는 홍해는 갈라지고 우리를 뒤쫓던 애굽의 군사들은 수장되는 놀라운 기적과 역사를 우리는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든 안디옥의 백성들이 이런 놀라운 축복과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이 아침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을 가지고 기도의 손을 내어 밀기 원합니다. 우리의 지팡이를 꺼내어 우리의 앞에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우리의 홍해와 같은 문제들을 향하여, 우리의 뒤를 쫓고 있는 애굽 군사와 같은 위협과 고통스러운 답답한 상황을 향하여 내어밀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베풀어 주시는 큰 일, 위대한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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