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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요셉시험(1) (창 37: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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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요셉시험(1) (창 37:18-28)

아주 오래전 어떤 분이 상담을 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결론인 즉은 자기가 교도소에서 출소했는데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별이 5개랍니다. 그래서 줄 돈은 없고 복음을 전해 주려고 했더니 자기에게 성경을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교도소 안에서 20번을 읽었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었더니 하나님은 믿는데 예수님은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안 간답니다. 

여러분! 성경은 옛날이야기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오늘 이 시대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단순히 옛날 옛적 이야기로만 보면 성경을 20번 아니라 100번을 읽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또 제 친구에게 예수 믿으라 했더니 그 친구 하는 말 “아~ 성경은 착하게 살라는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성경을 착하게 살라고 하는 이야기로만 보면 그것도 잘못 본 것입니다.   

성경도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과거에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도 성경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보고 들을 수 있어야 성경을 제대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창세기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눈다면 1장부터 11장까지가 전반부고 20장부터 50장까지가 후반부라 할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창조, 타락, 심판을 다루고 후반부는 족장을 다루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요셉에 대한 기록이 자그마치 12장에 거쳐 기록되고 있습니다. 

요셉/ 이 사람은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장차 오실 메시야의 모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요셉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게 되는 과정 속에 엄청난 시험을 당합니다. 요셉시험은 크게 4가지입니다. 

첫째는 유다를 통한 겪게 되는 유다시험, 
둘째는 성적 유혹을 통해 겪게 되는 성실성 시험, 
셋째는 감옥살이를 통해 겪게 되는 인내 시험, 
넷째는 총리가 된 후에 겪게 되는 성공시험입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시험은 비단 요셉만 당한 시험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시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단의 전략은 예나 지금이나 형태만 다르지 내용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와 같은 시험을 똑같이 겪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 학생들이 학교에서 치루는 시험에 문제 내용을 미리 알면 그 시험을 대처하는 해답은 금방 찾아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단의 전략을 알고 내게 찾아오는 시험을 미리 알면 그에 대처하는 해답은 분명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앞으로 몇 주간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요셉 시험’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려 합니다.  

그 첫째로 오늘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요셉시험은 ‘유다시험’입니다. 

유다는 요셉의 친형이고 야곱의 넷째 아들입니다. 그가 요셉에게 엄청난 시험을 줍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유다 시험’은 어떤 시험일까요? 
요셉이 겪었던 유다시험이란 어떤 것일까요?   

1. 배신 시험입니다. 

26~27절을 보세요.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요셉은 그의 형 ‘유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유다는 요셉의 친형입니다. 비록 이복형이긴 하지만 아주 가까운 혈육입니다. 그렇게 가까운 사람에게 당하는 시험이 ‘유다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한마디로 ‘사람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당하는 유다 시험은 요셉만 겪은 시험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도 겪었습니다. 유다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 사람도 유다입니다. 가롯 유다입니다. 예수님도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람에게 당한 시험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에게도 이 유다 시험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배신입니다. 
이 배신은 우리가 겪는 고통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시험입니다. 믿었던 형, 피를 나눈 형에 의해서 배신당해 노예로 팔려가는 고통을 무엇이라 표현할까요? 

제가 아는 목사님이 애완견을 기르고 계셨습니다. 

제가 헌신예배 초청을 받아갔는데 그 목사님의 서재에 애완견이 있었습니다. 그 강아지가 내가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내게 달려와 냄새를 맡고 무릎위로 올라와 앉습니다. “야 나는 너 싫어한다! 내려가라!” 하니까 그 목사님이 얼른 치웠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이 애완견을 기르리라고는 전혀 상상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 봤습니다. “아니 목사님도 애완견 좋아해요?” 했더니 그 목사님이 한참 망설였습니다. “개를 기르려면 손도 많이 가고 귀찮은 것도 많은데 왜 기르십니까?” 물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말씀이 “애완견은 기르는 보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뭔 보람이냐 했더니 “개는 배신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때론 사람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말에 충격을 받고 실망을 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여러분! 정말 개가 사람보다 나을까요? 개는 짐승이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인데 어떻게 저렇게 말하실까? 그런데 좀 더 생각하다가 그렇게 말하신 목사님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많은 아픔이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 사랑했던 사람이 어느 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교회를 떠납니다. 그냥 떠나면 그것도 잠시 아프고 맙니다. 그런데 계속 뒤에서 비난하고 비판합니다. 그런 아픔이 목회자에게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구안와사가 올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개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꼬리 흔들며 반겨줍니다. 그리고 온갖 아량을 부립니다. 그리고는 주인의 명령에 절대복종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보다 낫다’고 하는 표현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보셨나요? 유다시험을 겪어 보셨나요? 
사랑했던 애인에게 배신을 당해보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사랑했던 친구의 배신을 당해 보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업을 함께 하던 동업자에게 배신을 당해 쫄딱 망한 경험을 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데리고 있는 종업원에게 배신을 당해 보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통 중에 최고의 고통은 자식에게 당하는 배신인 것 같습니다.   

구약에 예수님의 그림자 역할을 했던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그도 혹독한 유다 배신체험을 했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했던 사울 왕으로부터 배신을 당합니다. 그가 골리앗을 쳐 죽인 후로 다윗에게 시기질투를 느끼고는 끊임없이 죽이려합니다. 유다지파 백성들이 그를 배신하여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그리고 왕이 된 후에는 부하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겪었던 고통 중에 가장 혹독한 고통은 사랑하던 아들 압살롬에게 당한 배신의 고통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겠다고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여기에 많은 신하들이 동조하여 배신합니다. 그 고통이 너무 힘들어 시편에 그의 고통을 표현하였습니다.   

시편3편 1절~2절을 보세요.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 이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시편42편 9절 이하를 보세요.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너무도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대적이 너무나도 많고 뼈를 찌르는 칼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힘든 것은 그 대상이 먼 나라 사람이 아닙니다. 가까운 혈육이고 친구고 정말 사랑하던 사람입니다. 이런 시험이 여러분에게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직 없었나요? 그러면 앞으로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험이 왜 우리에게 오는 것일까요? 
결론은 사람을 신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18편8~9절에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8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9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했던 것입니다. 
  

유다 시험의 두 번째 시험은 

2. 탐심 때문에 당하는 시험입니다. 

성경을 깊이 살펴보면 예수님과 요셉은 너무나도 비슷합니다.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1)예수님도 요셉도 죄가 없습니다. 물론 요셉이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배신당하는 면에서 죄 없이 배신을 당했단 말입니다. 

2)형제에게 배신당하여 버림받았던 것입니다. 

3)예수님도 이 땅에 종으로 오셨고 요셉도 애굽에 내려가 보디발 장군의 집에 종이 되었습니다. 

4)예수님도 어린 시절 애굽으로 피신을 갔고 요셉도 애굽으로 갔습니다. 

5)예수님도 무죄한데 유죄판결을 받았고 요셉도 무죄인데 유죄판결을 받아 감옥에 갇힙니다. 

6)예수님도 이방인 빌라도에게 유죄판결을 받고 요셉도 이방인 보디발에게 유죄판결을 받습니다. 

7)예수님도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요셉도 30세에 국무총리가 되어 백성을 구원하는 사역을 합니다. 

8)예수님도 이 땅에 떡으로 오셨고 요셉도 기근이 닥친 애굽 땅에 먹을 떡을 제공합니다.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삶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배신당한 동기가 재물 때문에 팔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은30 에 가롯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고 요셉은 어린나이기에 은20에 팔렸습니다. 

28절을 보세요. 

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형제에 의해 그것도 돈을 받고 배신을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탐심이 들어와 배신을 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배신한 이유가 뭡니까?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결정타는 탐심입니다. 

그 탐심 때문에 선악과를 먹게 되었고 결국 인간은 하나님을 배신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찾아오는 유다 시험도 밑바탕에 흐르는 요인은 탐심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그 탐심 때문에 죄를 범하고 그 탐심 때문에 혹독한 아픔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겪는 유다시험! 
이것은 우리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이미 내가 남에게 준 시험일수도 있습니다. 내가 재물 때문에 남을 배신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나도 당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는데 형편 때문에 또는 어쩔 수 없어서 그 사랑을 배신한 적이 없나요? 

부모에게, 또는 주변사람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사랑을 받았는데 작은 일 하나로 서운하여 배신한 적이 없나요? 그 배신은 부메랑처럼 반드시 내게도 찾아오기도 합니다.   

유다시험은 원인이 있습니다. 유다는 왜 요셉을 배신했을까요? 

유다 자신에게 원인도 있을 수 있으나 그 아버지 야곱에게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유다 아버지 야곱은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탈취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이 받을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는 형을 피해 도망을 쳤습니다. 탐심이 원인입니다. 물론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인 대가를 평생 당합니다. 외삼촌에게 당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자식들에게도 당합니다. 그 원인은 재물입니다. 재물에 대한 탐심입니다. 

야곱의 아들 유다도 요셉을 배신하고는 자기 며느리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그래서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깁니다. 

성도 여러분! 
왜 친구가 배신하나요? 왜 동업자가 배신하나요? 
왜 그토록 사랑하단 배우자가 배신하나요? 그 원인은 다양한 것 같으나 실상은 탐심입니다. 왜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배신하나요? 여기도 탐심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탐심을 물리치라 하셨고 탐심은 우상숭배라 했습니다.   
이 유다시험을 이기려면 어찌해야 하나요? 


3. 주의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닥치는 유다시험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시험이 이 시대를 사는 여러분에게도 제게도 닥치는데 그 시험을 어떻게 극복하고 마무리를 지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셉은 어떻게 했나요? 
그는 애굽에서 형들을 만나 용서합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품에 안습니다. 

창45: 5절과 8절을 보세요.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할렐루야! 

그러기에 요셉, 그는 메시야의 그림자였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보세요. 
예수님도 가롯 유다에게로부터 상한 시험을 어찌 하셨나요? 조건 없이 먼저 용서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그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면서 용서를 선포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유다시험의 해결책은 용서입니다. 

용서가 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무조건 용서하라 하십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하십니다. 

그러면 승리한단 말입니다. 
승리한 요셉을 하나님은 애굽의 총리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승리한 예수님도 만왕의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유다시험을 겪었나요?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 
여러분이 이런 유다 시험을 겪고 있다면 이들처럼 용서할 수 있나요? 
그러면 하나님이 그를 세워주십니다. 어렵습니다. 그러나 해야 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용서했나요? 

1) 임마누엘을 체험해야 합니다. 

요셉의 형통의 비법은 하나님이 항상 함께한다는 사실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승리한 것입니다. 

창39장 초반을 보세요.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그가 형통한 이유가 뭡니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면 용서할 수 있고 결국 그 용서로 승리합니다. 


2)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한 것입니다. 

그는 노예로 팔려갈 때도, 그리고 감옥에 억울하게 들어갈 때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뜻하신바가 있으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섭리신앙’이라 합니다. 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지금은 왜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그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믿으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하셨노라고 고백하게 되고 결국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시험 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요셉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고 주변사람에게 인정을 받게 합니다. 보디발 장군에게도 인정받고 감옥에 간수에게도 인정받았습니다. 절대로 힘들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유다시험이 어떤 형태로 올지 모릅니다. 다양한 형태로 올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올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포기하면 안 됩니다.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의 경륜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나는 모르나 하나님은 아신다고 믿으세요. 
그리고 하나님은 요셉 시험을 통해 오늘 우리도 연단하시고 있음을 믿으세요. 

그러기에 “불 시험 이상히 여기지 말고” 힘들어 하지 마세요. 한 발짝 물러나 멀찍이 내다보세요. 사람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세요. 

많은 사람이 유다시험 문제를 힘들어하여 고통을 호소하고 억울해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해석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떤 시각에서 그 시험을 해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유다시험은 쓸데없는 고난이 아닙니다. 우리를 연단하여 쓰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유다시험이 있음을 알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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