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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신경(17) : 교회를 믿사오며(2) (엡 1: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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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17) : 교회를 믿사오며(2) (엡 1:22-23)

신앙생활에서 교회를 알고 교회에 소속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교회를 잘 알지 못합니다. 교회를 잘 모르기 때문에 교회생활을 오해하고 교회생활 중에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잘 몰라서 범하는 잘못 중에 하나는 자기가 속한 세상의 단체나 조직처럼 교회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그런 단체처럼 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여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수학전문학원에 가서 영어를 하지 않는다고 속상해서 학원을 비난하고 학원을 옮기는 것처럼 상식 밖의 일인 것입니다. 영어를 배우려면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에 가야 합니다. 수학전문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세상 단체나 조직이 아닙니다.
   
오늘 설교는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는 사도신경의 고백을 중심으로 교회에 대한 가르침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설교하실 때 대부분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저도 오늘 교회를 비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비유와 일반적으로 신앙인들이 말하는 비유를 종합적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다양한 비유를 드는 이유는 어느 한 비유로 교회를 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은 이런 것이다라고 단 한마디로 말하지 못하고 다양하게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랑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비유로 교회를 설명하는 것은 교회는 이런 곳이다라고 단 하나의 비유로는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부디 이 설교를 들으시고 교회를 이해하시고 교회생활에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제단 
   
사람들은 교회를 제단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비전교회는 ‘비전 제단’이라고 표현합니다.
교회를 제단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교회가 주님에게 예배를 통해서 주님을 만나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창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고 제단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교회의 기능 중에 가장 중요한 기능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주님을 만나는 기능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생활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많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복음과 예배입니다.
   
요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예배 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제가 예배를 가르치면서 사용했던 예화 중에 솔트라인이라는 예화가 있습니다. 오늘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뉴욕에 가면 허드슨 강이 있는데 그 강의 하류에 가면 쏠트라인이 있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소금물과 상류에서 내려오는 민물이 만나는 선을 말합니다. 날이 가물어서 강물이 약해지면 바닷물이 역류해서 허드슨 강으로 올라옵니다. 그러면 식수를 공급하는 수원지에 위협을 받게 됩니다. 비가 적당히 내려서 어느 정도 물이 계속 흐르게 되면 결국 민물이 바닷물의 세력을 계속 밀어내어 수원지가 안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허드슨 강의 쏠트라인은 끊임없이 당기고 미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와 같은 일은 우리 인생살이, 신앙생활에도 있습니다. 영력이 강하면 유혹을 물리칠 수 있지만, 영력이 약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밀려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쏠트라인을 지키는 힘은 예배였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렸고 그 힘으로 세상을 이겼으며 복의 근원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신앙이 무너집니다. 예배가 세워지면 신앙생활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가 세워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깊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제단입니다. 
 

2. 아버지의 집 
   
교회는 아버지의 집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들인 신자의 집입니다.

딤전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믿는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의 집이 있습니다. 먼저는 세상의 집입니다. 또 하나는 천국집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교회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가정 중심으로 합니다. 가정 중심이 확실한 사람은 안정감이 있고 인생이 행복합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고 가정이 깨어지면 늘 불안정하고 불행한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가정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 건강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이 안정적이고 행복한 사람은 교회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되 교회중심이 되지 못하는 사람의 신앙은 불안정하고 신앙생활 자체가 행복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생활을 보면 하루 종일 세상에서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하다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을 받고 다음 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예배시간이 되면 하나님의 집이며 성도의 집인 교회로 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영적인 안식과 재충전을 받고 다시 영적 전쟁터인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보면 가정생활이 안정적인 아이들이 성격도 좋고 사회생활도 잘합니다. 가정생활이 엉망이 되면 성격도 빼딱하고 사회생활도 엉망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영적으로 건강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좋으며 영적 싸움에서도 승리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아버지의 집이라는 말은 교회생활은 기도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말하고도 일치합니다.
   
사 56: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연합한 자는 하나님의 성산 즉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교회로 모이게 되고, 하나님의 집에서 기쁨을 얻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기도하는 내 집’,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는 아버지의 집인데 뭐하는 집이냐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오셔서 기도하십시오. 기도하기 위해서 교회를 찾으십시오.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 응답도 누리면서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기도생활은 얼마만큼 해야 할까요? 기도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사용해야 할까요? 정답은 내 영혼이 만족할 만큼입니다. 우리 인간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요구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요구를 따라가다 보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요구만큼 기도하면 내 영혼이 만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교회에 오셔서 여러분의 영혼이 원하는 만큼 기도하십시오. 
 

3. 구원선 
   
이 세상은 바다와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 바다에서 빠져 죽어가고 있습니다.
   
벧후 3: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 말씀은 노아 시대에 홍수로 사람들이 멸망을 당했던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건은 비유입니다. 당시의 세상이 홍수로 인하여 멸망을 당했던 것처럼 지금 이 세상은 영적인 홍수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구원의 길은 노아가 만든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던 것처럼 지금 이 세상에서 구원의 길은 주님 안에 들어는 것이고 교회 안에 들어오는 길입니다.
   
교회는 유람선이 아니라 구원선입니다. 유람선은 목적이 여행이며 즐기는 것입니다. 구원선은 배 밖에서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 살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교회의 목적은 유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알지 못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인들은 유람선에 탄 여행객이 아니라 구조선에 탄 구조대원들입니다. 먹고 놀고 즐기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교회 밖에 있으면서 복음을 모르고 영원한 지옥을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생명줄을 던져주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전도는 세상바다에 빠져 영원한 지옥을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선을 던져주는 일입니다. 이 일은 목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조대원들인 모든 성도들이 다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전도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영적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련한 종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다가 복음을 가로막는 마귀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전도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한다면 마귀의 역사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전도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황해도 신천에 있는 장개교회 오명신 집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 믿고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매를 수 없이 맞았으며, 여러 번 집에서 쫓겨났고 성경찬송도 불태워졌습니다. 그러나 오 집사는 그 남편의 영혼구원을 위해 계속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온 그의 남편은 부흥회에 참석하러 간 아내를 찾으로 교회에 갔습니다. 남편은 어두컴컴한 예배당 안에 자기 아내라고 생각된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밖으로 나와 두들겨 팼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뒤에 보니, 그 여자는 자기 아내가 아니고 면장부인이었습니다. 겁에 질린 그는 살려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면장부인인 집사는 두 가지 일을 하면 감옥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오집사를 때리지 말 것과 교회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오 집사를 핍박했던 남편은 다음날부터 예수를 믿고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후에 집사가 되었습니다. 오집사의 남편을 구원하고자 하는 간절한 기도가 응답되어 남편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능력 이상으로 크게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4. 충전소 
   
시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들의 영혼을 만족하게 채워주시는 기관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충전소입니다.
   
자동차를 운행하려면 중간중간에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도 기름이 떨어지면 운행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동차에 기름을 채우려면 주유소에 가야 합니다. 자동차를 가끔 운행하면 주유소에도 가끔 가면 됩니다. 하지만 자동차를 날마다 자주 이용하려면 주유소에 자주 가야 합니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주유소입니다. 영적으로 살려면 교회에 와야 합니다. 영적으로 풍성하게 살려면 교회에 자주 와야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아무리 믿음이 좋던 사람도 교회에 오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믿음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7주만 계속해서 교회를 나오지 않고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아무리 믿음이 좋던 사람도 믿음이 약해져서 세상 사람처럼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자주 교회에 와야 하는 것입니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받는 교훈이 많습니다. 잎이 푸르고 꽃이 아름다운 식물도 제때에 물을 주지 않으면 축 쳐지기 시작하고 그래도 물을 주지 않으면 잎이 마르면서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말라비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때는 물주는 시기를 놓쳐서 식물이 축 쳐져 있을 때가 있습니다. 축 쳐져있는 식물을 발견하고 물을 줍니다. 그리고 제 할 일을 하다가 다시 그 식물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생기가 넘칩니다. 

저는 식물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영혼도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적인 공급이 되지 못하면 시들어가는 식물처럼 영적으로 시들시들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물을 주면 생기가 넘치는 식물처럼 영적인 공급이 되면 영적으로 생기가 넘치게 됩니다.
   
교회는 영적 충전소입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자주 찾는 사람은 영적으로 생기가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든 교회를 멀리하고 교회에 못 오게 되면 영적으로 약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를 통해서 영적인 영양분을 공급 받으시고 언제나 영적인 생기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5. 그리스도의 몸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몸된 교회의 지체입니다. 몸과 지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적 연합니다. 몸과 지체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에 개의치 아니하시고 자신의 강력함, 자신의 풍성함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과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주님의 모든 것이 몸된 교회에 붙어 있는 지체인 저와 여러분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고
전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우리는 비록 약하지만 주님에게 붙어 있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의 지혜가 되시고, 그분이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고, 구분이 우리의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시는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그분의 영광은 우리의 영광이며 그분의 권세는 우리의 권세인 것입니다.
   
제 둘째 아들이 유치원에서 마라톤 시합을 했는데 거기서 1등을 했습니다. 사실 마라톤을 하면서 가장 고생한 지체는 다리입니다. 그런데 결승점에서 골인은 가슴으로 하고, 면류관은 머리가 받고, 상은 손이 받고, 매달은 목이 거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했다고 짜장면을 사주니 먹기는 입이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죠? 모든 지체가 몸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런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이며 주님의 구원이 우리의 것이고 주님의 천국도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6. 군대 
   
출 6:26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는 광야 교회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군대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말은 교회는 군대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군대라는 비유가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진리는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양한 가르침 가운데서 훈련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회가 군대라는 말은 교회에는 훈련이 있다는 뜻입니다.
   
군대생활은 훈련으로 시작해서 훈련으로 마치게 되어 있습니다.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 훈련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만약 군대생활에 훈련이 없다면 군대생활도 할 만할 것입니다.
   
제 큰 아들이 말년에 지게차 시험을 보기 위해서 집체 교육을 들어갔습니다. 큰 아이의 간증에 의하면 전역을 앞두고 마지막 유격훈련이 있는데 그 유격훈련과 집체교육이 겹치게 되면 유격훈련을 받지 않아도 된답니다. 그래서 유격훈련과 집체교육이 겹치기를 날마다 기도했답니다. 감사하게 하나님께서 제 아들의 기도를 들으셔서 기가 막히게 집체교육과 유격훈련의 날짜가 겹치게 해주셨습니다. 아들은 저에게 전화를 해서 그 사실을 말하면서 굉장히 기뻐하더군요. 제가 보니까 기도가 응답 돼서 기쁜 것보다 유격훈련을 받지 않게 돼서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훈련은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군대생활에서 훈련은 필수인 것입니다.
   
교회생활도 훈련이 있는 것입니다. 크게 두 가지 훈련을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사람으로 인한 훈련인데 그 훈련은 사랑하는 훈련입니다. 또 하나는 환경으로 인한 훈련인데 그 훈련은 믿음으로 살게 하기 위한 훈련입입니다.
   
목회자와 모든 성도들이 내 마음에 딱 맞는다면 좋을 텐데 교회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훈련을 위해서 가장 합당한 조교들을 교회에, 구역에 세워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해 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몸이고 하나님의 집이니 교회의 모든 필요를 풍성하게 채워주시면 좋을 텐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뭔가 좀 부족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또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해서 목사와 성도들을 골치 아프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 왜 그런 일들을 허락하시는 줄 아십니까? 어려움 때문에 기도하고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서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시려고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교회생활이 힘이 드는 이유는 교회가 훈련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통한 훈련은 한번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파도가 오고 또 오는 것처럼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우리들을 훈련하시고 또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입니다. 
 

7. 병원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의 3대 사역입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료하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3대 사역을 계승해서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료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통해서 사람들의 영을 치료하시고 혼도 치료하십니다. 또 몸도 치료하시고 생활도 환경도 치료하십니다.
   
이수자 권사님 아들이 연탄가스를 많이 마셔서 뇌가 굳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회복 불능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중보기도자들이 40일 작정을 하고 심방기도회를 했습니다. 그 아들이 40일 작정이 끝나고도 차도가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병원에 입원을 한 후에 기적적으로 회생이 되었습니다.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치료입니다. 의사도 이해할 수 없는 치료였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교회는 병원입니다.
   
환자는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대로 약을 복용하고, 음식을 관리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면서 치료를 합니다. 교회생활도 같은 것입니다. 영, 혼, 몸, 환경, 관계 등 다양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병원을 찾듯 교회에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처방전대로 기도하고 예배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면서 치유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간혹 환자 중에 병원은 열심히 다니는데 의사의 처방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약도 잘 먹지 않고, 의사가 먹지 말라는 음식도 자기 마음대로 먹고, 의사가 하지 말라는 술과 담배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생활도 무질서 합니다. 이런 사람은 병원에 다니기는 해도 차도를 보지 못합니다. 심한 경우는 전보다 더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런 것입니다. 교회 병원의 원장이 되시는 주님의 처방이 있습니다. 목사를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주시는 처방이 있습니다. 그 처방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처방대로 하지 않아놓고 의사가 돌팔이라느니 병원이 후졌다느니 말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처방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모르고 의사를 탓하고 병원을 탓합니다. 교회생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처방대로 해야 하는데 처방대로 하지 않아놓고서 “하나님 믿어도 소용없다. 교회 다녀도 좋아지는 것도 없다”라고 합니다.
   
교회는 병원입니다. 의사 되시는 주님의 처방대로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 그리고 관계와 생활까지 치유가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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