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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련한 다섯 처녀(마 2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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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다섯 처녀(마 25:1-13)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25;1-13)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천국(天國)입니다. 이 세상은 없어지는 것이지만 천국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성경66권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한 단어로, 액기스로 줄여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요?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라, 절대로 지옥에 가지 말아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맨 처음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입니다. 우리는 천국가려고 예수를 믿습니다. 만약에 그냥 이 세상뿐이라면... 만약에 천국이 없다면... 地獄도 없고, 審判도 없고, 罪도 없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이유도 없어집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천국이 없으면...하나님도 없습니다. 천국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천국가려고 예수 믿나?’ 합니다.  그러면 어디 갈려고 예수 믿습니까? 천국가려고 예수 믿는 것이 맞습니다.   설마 지옥 갈려고 예수님 믿고, 그 핍박을 당하고, 그리 어렵게 전도를 하겠습니까?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으면 마귀가 우리를 핍박할 이유도 없지만... 우리도 그냥 아무렇게나 살아도 됩니다. 어차피 죽으면 끝 아닙니까? 죽으면 아무것도 없는데 뭐 신경 쓸 것 있나요. 

성도여러분, 이 세상에서 천국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멘?  우리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천국에 관한 말씀을 하셨는데, 그 때마다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복음에 보면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로, 택함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비유가 바로 예화입니다. 예화는 우리에게 진리를 아주 쉽게 알려주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 택함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 비유는 무슨 말인지 더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둘째로,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깨닫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은폐의 수단으로 말씀을 했다는 것입니다.  

마25장에는 예수님의 비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이들 비유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다 천국에 대한 비유이면서, 세 비유가 다 사람의 인생이, 특히 예수 믿는 다고 교회 다니는 신자들의 인생이 두 가지 길로 분명하게 나누어진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로, 또 지혜로운 종과 게으른 종으로,  양과 염소의 두 가지 길로 분명하게... 즉 천국과 지옥으로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정말 말씀에서 큰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열 처녀 비유를 말씀드립니다. 여기서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은 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신랑과 함께 잔치자리에 들어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사람도 미련한 다섯 처녀가 되어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하는 분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는 유대인들의 결혼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결혼식에는 크게 세 가지의 순서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약혼이 있습니다.   둘째는 결혼예식이 있습니다.  약혼 후에 어느 기간이 지나면 결혼예식을 거행합니다.  셋째는 잔치가 있습니다. 결혼예식이 끝난 다음에 잔치를 배설해서 손님들을 대접합니다.   
 
유대인의 결혼식에도 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만 순서가 조금 다릅니다. 첫째로 우리는 약혼식을 하지만 유대인들은 정혼식을 합니다. 이 정혼은 우리나라의 약혼보다 법적으로 훨씬 더 무겁고 책임이 따릅니다. 정식 결혼약속입니다.   정혼을 한 다음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예를 들어서 부정한 일을 저지르거나 도무지 결혼할 수 없는 사유가 발생했을 때는 파혼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 당시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정식으로 이혼장을 써주고 헤어지는 방법이 있습니다.  맘에 안 든다고 슬그머니 그냥 파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 째로 혼인잔치를 합니다.  우리와는 다르게 유대인들의 경우는 잔치를 먼저 하고 결혼예식을 마지막에 합니다. 오는 손님들마다 먼저 극진하게 대접을 하고 나서 맨 마지막에 결혼예식을 거행하는데,  그 예식은 흔히 밤에 합니다. 밤에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먼저 그 나라는 너무 덥습니다. 낮에는 도저히 더워서 결혼예식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해가 진 다음에는 습기가 없기 때문에 시원합니다. 그래서 밤에 예식을 거행합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낮에는 다 직장이 있습니다. 그 당시는 주로 농업을 했던 때이기 때문에 낮에는 농장에서 바쁘게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초대를 해도 올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 되지를 않습니다. 요즘처럼 자동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걸어 다녀야할 그 때는 낮에 혼인예식을 한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밤에 결혼예식을 행합니다. 안식일은 예배드리는 날이니 당연히 생각도 못합니다.
 
본문에 보면 6절에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결혼 관습을 보면 결혼식 날에 신랑이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으로 행진해서 옵니다. 대개 거리가 멀기 때문에 밤에 도착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입니다. 그 때에 신부의 친구들이 들러리로 신부와 함께 신랑을 기다립니다. 본문은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면서 오늘의 말씀을 살펴 볼 때에 이 열 처녀의 비유가 주는 교훈을 보다 더 분명하게 이해 할 줄로 믿습니다.

비유 해석을 합니다. 
 
첫째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문 1절에 보면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합니다. 이 열 처녀 비유는 천국에 관한 비유입니다.  천국은 마치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했는데 이 신랑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신랑이 왔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우리들에게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열 처녀는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이 부분이 이해하기 어렵고 우리들이 자주 착각을 하는데, 분명한 것은 이 열 처녀는 교회의 성도를 말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교회 안에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같은 기름을 준비한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또 교회 안에는 어리석은 다섯 처녀처럼 기름 없이 등(登)만 가진 성도들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여러분, 미련한 다섯 처녀는 교회 밖의 불신자들이 아닙니다. 분명히 교회 잘 다니는 신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거짓말 중에 큰 거짓말이 교회만 다니면 무조건 천국에 간다는 거짓말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교회만 다닌다고, 집사, 권사, 장로, 심지어 목사라면 무조건 천국은 당연히 갈까요? 아닌 줄 다 알고계시죠?  집사, 권사, 장로, 심지어 목사중에도 지옥에서 만날 사람들 많습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교회인 지상교회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가시적인 교회, 천상교회가 있는데  본문이 우리들에게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가시적인 교회의 불완전(不完全)입니다. 

어떤 교회이든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지상교회 안에는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와 쭉정이도 있습니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삶을 사는, 즉 기름 준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름이 없이 등(登)만 준비한 어리석은 성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시적인 교회는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라기는 우리 교회는 이렇게 어리석은 다섯 처녀와 같은 성도는 한 사람도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셋째로, 등과 기름은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신앙생활과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신앙생활을 말씀합니다.  본문에 처녀들이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왔다고 했습니다. 열 처녀들은 다 등을 들고 나왔습니다.   신자들, 교인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이 등을 다 들고 있습니다. 이 등은 사람 앞에 구체적으로 보일 수 있는 눈에 보이는 행위를 뜻하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봉사도 하고 전도도 하고 구제도 하는 이런 외형적인 신앙생활을 상징합니다. 외형적인 면에서 누가 보아도 ‘저 사람은 교회에 가는가 보다, 저 집사님은 참 열심히 잘 믿는구만’ 하고서 알 수 있는 행위, 그것이 바로 등(燈)입니다.  

등은 누구나 다 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름입니다. 기름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마다 다 준비된 것이 아니라 오직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 기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름은 무엇일까요? 등이 밖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외형적인 신앙생활이라고 한다면, 기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기름은 등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등을 아무리 쳐다봐도 그 안에 있는지 없는지 안보입니다. 하나님과의 내면적인 영적인 교제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충만함 받은 것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이 보이지 않는 기름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넷째로, 신랑이 밤중에 왔다는 것은 종말을 의미합니다.
신랑이 밤중에 왔다는 말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을 할 수 있는데 한 가지는 역사적(歷史的)인 종말(終末)을 말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우주적 종말이라고도 합니다. 이 세상의 역사가 끝나는 예수님의 재림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다른 하나는 개인적(個人的)인 종말(終末)입니다. 재림 이전이라도 하나님께서 ‘너, 오너라’ 하고 부르시면 우리는 다 가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 오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가는 것은 순서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만나나, 우리가 가서 예수님을 만나나 종말은 다 같은 종말입니다. 이렇게 신랑 되신 예수님은 밤중에, 우리들이 얘기치 못한 때에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고 또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비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교회, 그의 신부들로 하여금 그의 기쁨에 참여하도록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를 다 초청했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우리 모두를 초청했습니다. 이 잔치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로서 기쁨과 즐거움의 잔치요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즐거운 행복을 누리는 잔치입니다. 이 잔치에 “너희들 다 오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시면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둘째로, 혼인잔치,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비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잔치에 있어서도 예복이 꼭 필요합니다. 잠바나 티 걸치고, 슬리퍼 신고 결혼예식에 참석하는 사람은 그 결혼예식을 욕보이는 것 아닙니까? 기본적으로 예복을 준비해야 합니다. 물론 본문에는 예복이라는 말은 하고 있지 않고, 기름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 기름은 예복을 포함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예수님과의 혼인잔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갖추어야할 예복은 바로 의(義)의 세마포 옷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내 주님으로 영접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너는 의롭다’ 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을 해주시는 바로 그것을 우리는 의의 세마포 옷이라고 그렇게 부릅니다.   

본문에서는 이것을 기름으로 말씀하시면서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등만 준비한 사람이 있다고 하십니다. 즉 신랑되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이 잔치에 참여하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가 안 된 사람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등만 준비하고 그 속에 들어가야 할 기름을 준비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셋째로, 열 처녀 비유는 우리가 항상 깨어 있을 수는 없지만 준비는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5절)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때로는 잠잘 때가 있습니다. 세속의 잠에 빠질 때도 있고,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안 졸려고 애쓰다가 깜빡 하고 조는 것은 지혜로운 처녀요, 아예 퍼질러 자는 것은 미련한 다섯 처녀일 것이다.’ 하고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5절) 했으니 굳이 차이를 둘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졸든지 자든지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기름은 다른 사람의 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과 9절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미련한 자들이 슬기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매정하고, 냉정합니다. 인정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믿음의 세계의 원리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기름은 다른 사람의 것을 빌려서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름이 무엇일까요? 믿음이나, 성령을 말합니다. 그리고 믿음이나 성령은 빌려주거나 빌리거나 할 수가 없습니다. 일심동체라고 하지만 아내의 믿음, 아내의 성령을 가지고서 남편이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믿음을 가지고서 자녀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받습니다.  가끔 남자들이 “제 아내가 집사 혹은 권사입니다.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새벽기도도 빠짐이 없고, 철야기도도 빠짐이 없고 여기저기서 얼마나 열심히 봉사하는지 모릅니다. 아마 저는 죽을 때에 저희 아내 치마폭만 꼭 잡으면 천국은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갈 수 있을까요? 아니요. 치마폭을 꼭 잡으면 치마만 찢어집니다. 그것 붙잡고는 천국에 못 갑니다.  내 믿음, 내 성령, 나의 기름이 통에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신앙입니다.  본문은 우리들에게 기름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대신 할 수가 없다, 나눠주고 싶지만 나눠줄 수가 없다는 아주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나눠줄 수 있다면 저도 나눠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안 됩니다. 

 
이 비유가 주는 교훈을 정리합니다!!!

첫째로, 형식만 갖춘 종교인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칫하면 형식만 갖춘 종교인이 되기 쉽습니다. 그저 교회에 부지런히 다니고, 적당히 기도도 하고 봉사도 합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등(燈)은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등 속에 기름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없으면 그 사람은 형식적인 신자입니다. 천국에 못들어 갑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재림은 바로 심판을 뜻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 말씀에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왜 그렇게 더딘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재림하겠다고 하신 지가 벌써 200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재림을 안 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너무 더딥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성도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기다리고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이 인간적인 시각으로 볼 때는 너무 더디지만... 여러분 재림은 반드시 있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있습니다. 바로 우리시대일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아멘 주 예수님 어서 오시옵소서.  

성도여러분, 주님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질 텐데 그것은 갑자기, 밤중에, 예측할 수 없는 시간에 이루어집니다. 밤중에 이루어진다, 도적같이 임한다 는 말씀은 ‘졸며 잘 때’ 오신다는 것입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때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방법, 기름을 준비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까요?   영국의 북해에서 청어잡이를 하는 어부들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북해에서 잡은 청어를 런던까지 산 채로 운반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잡은 청어들은 런던에 도착하는 동안에 거의 다 죽어서 제 값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어부만은 청어를 죽이지 않고 산 채로 가져와서 큰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동료들은 그 비결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 비결을 물어 보았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 어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비결이랄 게 뭐 있는가. 난 그저 청어가 들어 있는 통에 청어를 잡아먹는 물고기를 몇 마리를 집어넣었지. 아니 그러면 청어를 잡아 먹잖는가? 물론 몇 마리는 잡혀 먹히겠지만 다른 수백 마리의 청어는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그 안에서 팔딱팔딱 뛰다가 보면 그 먼 여행은 끝이 나고 청어는 싱싱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언제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합니까? 가정이 편안할 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도합니까? 아닙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언제 새벽기도 나옵니까? 집안에 큰 일이 있어야 새벽에 잠 안자고 교회 와서 기도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고 출세했을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만나고 위험이 다가 왔을 때에 하나님 앞에 나오고 기도하더라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숨어있는 두 번째 축복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보내시는 신호구나. 주님, 감사합니다. 내가 기도하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고난을 주시는 군요’ 하면서 무릎을 꿇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열 처녀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형식만 갖춘 그런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은 더딘 것이 아니라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구원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크고 깊으신 사랑 때문에 지연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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