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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겉사람을 가꾸는 훈련 (행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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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사람을 가꾸는 훈련 (행 10:1-8)


스포츠를 연구하는 체육학에는 ‘아름다운 폼에서 훌륭한 기술이 나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포츠에서 아름다운 폼은 그냥 보기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남다른 훌륭한 기술을 만들어내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의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는 피겨의 완벽한 점프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과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 폼이 완벽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이 김연아 선수의 피겨의 폼은 남다른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김연아의 폼이 일반적으로 9.5 점수의 ‘트리플 플립’이라는 기술을 10.0 점수의 ‘트리플 러츠’라는 기술로 바꿔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연아 선수의 남다른 기술은 김연아만의 완벽한 폼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스포츠에서 폼과 기술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앙상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폼 없는 기술은 공허하고, 기술 없는 폼은 맹목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스포츠에서 아름다운 폼은 더 높이, 더 빨리, 그리고 더 정확한 기술의 미적 표현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사람과 속사람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앙상블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겉사람이 형편 없는 경우 속사람은 그 영적 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속사람에 비해 겉사람이 연약할 경우 그 신앙은 유치한 수준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속사람이 형편 없는 사람은 겉사람을 품격있게 세워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겉사람에 비해 속사람이 연약할 경우 그 신앙은 위선적 수준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속사람을 가꾸는 훈련과 아울러 겉사람을 가꾸는 훈련을 해 가야 합니다. 운동선수들이 저마다 폼을 발전시키고 개발해 가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저마다 겉사람을 잘 가꾸고 발전시켜 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겉사람을 잘 가꾸어 가기 위해 어떤 훈련을 해 가야 할까요?

1. 경건의 훈련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2절에 “그가 경건하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고넬료라는 사람을 한 마디로 경건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고넬료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경건한 사람이란 평을 듣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넬료가 경건한 사람이란 평을 듣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경건의 핵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은 무서워서 피하고자 하는 두려움이 아닙니다. 그분의 절대적 거룩 때문에 가까이 하기가 어렵고 떨리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분 앞에 서고자 하는 두려움입니다. 바로 경건한 사람이란 이런 거룩한 두려움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18세기를 대표하는 영적 스승으로 윌리암 로오(William Law)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쓴 [경건한 삶을 위한 부르심]이라는 책은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고전 가운데 하나로 손꼽힙니다.

이 책을 보면 “경건한 사람이란 하나님의 영광에 걸맞은 원리를 따라서 모든 일을 행하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삶의 원리로 두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하여'(all for God)입니다. 삶의 목적을 하나님에 두고자 하는 삶의 원리를 말합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카터가 재임시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바쁜 일정 중에도 주일에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침례교인이기 때문에 여의도 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회 소식 시간에 당시 담임목사인 한제만 목사님이 카터 대통령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미국 남부 침례교회 카터 집사님 부부이십니다. 이제 나오셔서 인사하시겠습니다.”

카터 대통령이 나와서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오늘 진심으로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를 미국 대통령으로 소개하지 않고 미국 남부침례교회 집사로 소개한 것을 감사합니다. 대통령직은 국민이 투표해서 세운 직분이지만 집사의 직분은 하나님이 주신 직분이므로 제게는 더욱 귀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한 마디로 카터 대통령이야 말로 경건한 사람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바쁜 방문 일정에도 모든 스케줄을 뒤로 하고 주일에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다는 점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직보나 교회의 직분을 더 귀하게 여긴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국민이 뽑아준 것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이기 때문이라는 말에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하여’라는 원리를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경건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런 삶을 훈련해 가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고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최고의 가치가 하나님께 두어져야 합니다. 늘 이런 태도와 자세로 살아가는 삶을 훈련해 가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경건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겉사람이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져 갈 것입니다.

둘째, ‘모든 것을 하나님을 통하여’(all through God)입니다. 삶의 과정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원리를 말합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술작품 가운데 밀레의 ‘만종’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황혼녘에 부부로 보이는 남녀 농부가 교회의 종소리에 일손을 멈추고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이들은 밭에서 감자를 캐고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갈퀴와 바구니, 자루, 손수레 같은 농기구가 보입니다. 그리고 화면 가득 저들의 일터인 농토가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비록 저멀리 교회가 보이지만 이들은 교회의 종소리에 따라 일손을 멈추고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밀레는 이 농부 부부의 얼굴은 어둡게 처리해서 자세히 볼 수 없게 했습니다. 그 대신 이들의 표정과 태도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바로 경건한 삶의 모습입니다.
저는 이 그림을 보면서 경건한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삶이란 삶의 현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로구나 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모든 것을 하나님을 통하여’라는 삶의 원리를 따라 사는 삶입니다. 이것이 경건한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런 삶을 훈련해 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통하여 이루어져 가는 삶을 훈련해 가야 합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늘 하나님과 함께 하는 훈련을 해 가야 합니다.

우리가 경건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도록 우리의 겉사람을 훈련해 가야 하겠습니다. 

2. 칭찬받는 삶의 훈련

행 10: 22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를 찾아와 고넬료를 소개하면서 한 말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저가 이방인임에도 유대 온 족속이 칭찬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고넬료는 칭찬받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고넬료처럼 이 세상을 살면서 칭찬 받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겉사람이 훈련해 가야할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고넬료는 어떻게 했기에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을까요? 그것도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받았을까요?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 아닌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고 또 저들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타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칭찬 받는 삶을 살려면 다른 사람들이 하기 힘든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부지런히 훈련해 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다음 두 가지를 훈련해 가야 합니다.

첫째, 남을 생각할 줄 아는 태도

고전 10:23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그리고 32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로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삶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한 마디로 말하면 남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남들의 유익을 생각하고 공동체의 덕을 생각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 고린도에는 우상숭배가 창궐했습니다. 특히 시장에서 유통되는 고기들 중 상당수가 우상 제단에 바쳐졌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신앙양심 때문에 시장에서 고기를 사서 먹는 것을 꺼려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불신자가 식사 초대를 할 때 상에 차려진 음식을 따지지 말고 먹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초대한 불신자의 그 마음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식탁에 누군가가 상에 차려진 음식이 제물이라 말하면 먹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신앙양심으로 먹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의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 주장 자기 신념을 고집하기 보다는 남을 생각할 줄 아는 태도를 갖는 일이 중요합니다. 

인도의 성자로 알려진 간디에 대한 잘 알려진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간디가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급히 올라탔는데 그 순간 그의 신발 한 짝이 벗겨져 플랫폼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기차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신발을 주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벗어서 그 옆에 떨어뜨렸습니다.

동행하던 사람들이 놀라서 ‘아까운 신발을 왜 벗어 던집니까?’하고 이유를 묻자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신발 한 짝을 주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 짝으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한 짝을 벗어 던졌습니다. 이제는 누가 줍든 신발 한 켤레를 제대로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나 아닌 남을 생각할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원래 타락한 인간은 나 밖에 생각할 줄 모른 채 살아갑니다. 이기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우리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처럼 남을 생각할 줄 아는 태도를 갖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남을 생각하는 태도를 훈련해 갈 때 우리는 칭찬받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겉사람이 아름답게 세워져 가게 됩니다.

둘째, 남을 도울 줄 아는 태도

오늘 본문을 보면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고 했습니다. 한두 번 어려운 사람들 도운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마음을 먹고 도운 것이 아닙니다. 또 어떤 의도를 가지고 도운 것도 아닙니다. 남을 돕는 것이 생활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도우려고 해서 돕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돕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 6: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자기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자신도 모르게 도우라는 것입니다. 지금 자기가 남을 돕는 일을 한다는 거창한 생각 없이 늘 하던 대로 자기의 생활 태도대로 남을 돕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남을 도울 줄 아는 태도가 형성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뉴욕의 브루클린에 사는 14살 된 도니카 스터링(Donica Sterling)이라는 흑인 소녀가 있습니다. 그녀는 원인을 모르지만 근육이 수축되고 몸이 줄어드는 희귀한 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K-pop을 좋아하고 한국 비디오를 좋아해서 한국에 한 번 가보는 것과 K-pop star인 “샤이니”와 “슈퍼쥬니어”를 만나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녀의 할머니가 병원에서 간호 보조를 하는 사람인데 어느 날 발에 문제가 있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를 정성껏 돌봐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캐나다의 억만장자인 허버트 블랙(Herbert Black)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극 정성으로 자기를 잘 돌보아준 간호사 보조원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 흑인 할머니의 손녀딸이 불치의 병을 앓고 있고 남은 생애가 한 5년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할머니가 손녀 딸 때문에 안타까워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손녀딸을 기쁘게 해 주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가 손녀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뜻밖에 한국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이 지난 6월 전 가족이 한국으로 여행할 수 있게 도와 주었습니다. 특히 전 가족이 일등석 비행기를 탈 뿐 아니라 손녀딸의 상태를 고려해서 훈련된 간호사까지 동행하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마음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한 할머니의 남을 도울 줄 아는 태도가 빗어낸 이야기입니다. 이 할머니는 남을 돕는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태도의 열매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남을 도울 수 있는 태도를 훈련해 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겉사람이 아름답게 세워져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속사람은 물론이고 겉사람도 훈련해 가야합니다. 특히 경건의 훈련을 쌓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경건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칭찬받는 태도를 훈련해 가야합니다. 남을 생각하는 태도, 남을 돕는 태도를 훈련해 가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칭찬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겉사람이 더욱 아름답게 가꿔져 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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