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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2) : 아모스의 하나님 (암 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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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2) : 아모스의 하나님 (암 5:4-13)

새가족 공부하는데 어떤 집사님께서 주일날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용기가 난다고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설교를 들으면서 위로의 말, 소망의 말, 축복의 말, 용기를 주는 말을 듣기 원합니다. 설교를 하는 사람도 그런 말씀을 전하면 좋습니다. 

어떤 분이 중요한 선택을 놓고 출근하면서 소망스런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해 기도하고 성경을 펼쳤답니다. 첫 눈에 띄는 말씀이 내게 주신 말씀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답니다. 눈을 감고 기도하고 말씀을 펼치자 욥7:15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욥 7:15)”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기도하고 성경을 폈답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마 27:5)” 

또 다시 시도를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 

또 다시 시도를 했습니다.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요13:27)” 

기대를 가지고 마지막으로 해보리라고 생각하고 성경을 폈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왕상18:21)” 

그래도 기대를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말씀을 듣기 위해 성경을 폈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만 들으려고 하지 말고 우리가 듣기 싫은 말씀도 들어야 합니다. 약은 쓰지만 몸을 살리는 것입니다. 단 것만 먹으면 몸을 망치게 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라고 말씀합니다. 

오늘은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2번째로 아모스의 하나님을 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책망을 주로한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들은 주로 죄책, 권면, 위로, 소망 이 네 가지 사역을 합니다. 그러나 책망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책망이 많지만 권면과 소망을 동시에 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시고 권면하시고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바꾸어야 할 것 바꾸고, 소망으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1. 아모스가 산 시대의 사회상

1) 이스라엘 13대 왕 여로보암의 시대, 유다 10대 왕 웃시야 때입니다.(1)

1절을 보십시오. 북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입니다. 지진이 일어나기 2년 전입니다. BC 760년경입니다. 남북이 분열된 때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이후 가장 많은 땅을 차지할 때입니다.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왕하14:25) " 다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은 통일 왕국의 전성시대인 솔로몬왕 당시와 같은 것입니다.(왕상 8:15) 이것은 일찍이 모세를 통하여 약속했던 이스라엘의 전 영역이었습니다.(신32:36) 

경제와 군사, 정치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황금기였습니다. 트랜스 요르단을 정복하고 시리아 쪽의 교역 도로와 아라비아 쪽의 대상 통로(왕의 도로)를 장악함으로써 무역 상업, 문화 등의 경제적인 성장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왕의 도로로 내겨가는 무역상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며 남쪽으로는 이집트와 아라비아와의 무역을, 북쪽으로는 비블로스와 시리아와의 무역을 증대시켰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국가 경영에 능하여 지리적 여건을 이용한 중개 무역으로 국가의 부를 증진시켰습니다. 

지금 우리 민족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북이 분단되어 북핵 문제와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다소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얼마나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까? 지난주일 제자훈련 1일 수련회를 가서 식사를 하는데 가장 안 잡수시는 것은 고기였습니다. 최후까지 남는 것이 고기입니다. 6.25의 잿더미 위에서 세계 경제 10-12위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8·15 광복, 6·25전쟁, 4·19의거, 5·16쿠데타, 유신체제 발동, 10·26, 12·12사태, 5·18 광주민주화항쟁 등 프랑스 혁명에 버금가는 충격적인 역사적 사건들이 잇달아 터졌습니다. 

어려운 가운데도 우리 민족은 식민지잔재 청산, 동족상잔과 분단, 독재, 부정부패, 가난 등의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 왔습니다. 눈부신 경제 성장을 하였습니다.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참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의약품 원료로 사람의 오줌이나 은행잎을 수출하던 한국이 지난 60년 사이에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가 주력수출품인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GNI)은 1953년 67달러에서 이제 2만 달러를 넘었습니다. 국내총생산은 1953년 13억 달러에서 2011년 1조 1,638억 달러가 되었습니다. 수출은 1948년 2200만 달러에서 2011년 5565억 달러가 되었습니다. 2만 이상 증가한 것입니다. 1970년에는 100가구 중 1대꼴이던 자가용이 이제는 집집마다 있습니다. 1955년에는 전화가 인구 1000명당 2대꼴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아이들도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2) 당시의 국제 정세

이렇게 되게 된 것은 갑작스런 국제 정세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아람 족속들은 앗시리아에게 망했습니다. 앗시리아도 우라트라 왕국의 위협을 받아 이스라엘을 침공할 수 없었습니다. 유다와는 동맹을 맺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뵈니게 족속과 가까워졌습니다. 시리아도 앗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이스라엘에 신경을 쓸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번영과 정치적 안정은 국제적인 역학 관계의 변화 속에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적 흐름을 도외시하고 자신들이 잘나서 그런 줄 알고 하나님의 은혜와는 무관하게 살았습니다. 오늘날도 역사 이래 가장 좋은 평화와 안정, 번영을 이루고 있는 것도 국제 정세가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균형 상태를 깨기 싫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물이 오염되면 물고기는 죽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진 일어나면 다 무너집니다. 쓰나미가 밀려오면 원전도 무너집니다. 태양이 잠들면 지구도 잠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부와 안정에 따른 사회적 타락상

잘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1) 부자와 권력 있는 자의 사치가 극에 달하였습니다.(상층부의 타락) 
(3:15)그들은 겨울 궁과 여름 궁이 있었고 상아궁도 있었습니다. 왕과 귀족이 겨울과 여름을 위해서 특별히 지은 집들입니다. (6:4)상아상과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우리에서 송아지를 (5) 취하여먹으며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렸습니다.(6) 대접으로 포도주 마시고 귀한 기름으로 몸에 치장을 하였습니다.

2) 관리가 타락하였습니다.(5:11) 

3) 법관이 타락하였습니다.(5:12)

4)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하여졌고 불의와 부정과 착취가 성행하였습니다.(2:6,7)
부유한 여성들이 학대하고 압제합니다(4:1) 가난한 자를 삼키고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합니다 (8:4) 

5) 도덕적 타락(2:7)하였습니다.

6) 종교적 타락(4:4-5)하였습니다.
송아지 상을 만들어 우상을 섬기고 제사장을 자신들 마음대로 임명하고 절기를 편리에 따라 바꾸어 지냅니다. 형식적인 종교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내용은 살아지고 모양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의 능력은 없고 경건의 모양만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시대의 양심이 되어야 할 제사장이 부패해 있었습니다.(7:10-17) 

10절을 보십시오. 시류에 따라 부패와 야합하며 사탄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평안히 살려고 합니다. 
어용 제사장 아마샤는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예언하고 벧엘서 다시는 예언말라"라고 말합니다. 아모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자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의 예언에 대해 분개하였습니다. 아마샤는 벧엘의 제사장이었는데, 아모스가 이스라엘의 외식적인 종교 생활을 비난함은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마샤는 아모스의 입을 막기 위하여 왕에게 거짓으로 고발하였습니다. 아모스가 백성을 선동하여 역적모의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아모스에게 유다 땅으로 가서 거기서나 예언하라고 하면서 벧엘에서는 더 이상 예언하지 말라고 협박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의 장식품에 불과합니다. 형식적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 보호를 믿습니다(5:21-24) 우상이 축복을 가져다준다고 받아들입니다(5:25-27) 현세적 부귀영화를 위해서는 수직적 관계도 수평적 관계도 다 파괴해 버립니다. 

7) 양식 있는 사람들이 비판하지 못하였습니다.
(2:11-12)하나님께서 청년들 중에 나시르인을 일으켰지만 나시르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또 선지자에게 명하여 예언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5:10)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였습니다.

의인이 학대받습니다(5:12)
(5:13)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군주시대(주전 1000-600년) 동안 이스라엘의 토지소유권은 세습제에서 ‘수녹제’(prebendal land tenure 왕이 토지를 신하들에게 수여하는 제도)로 변천하는 경향이 현저했습니다. 금속 쟁깃날을 비롯하여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는 발전된 농경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엘리트 지도층과 농민 사이의 극단적인 사회적 격차입니다. 엘리트 지배층은 통치 계층으로 전체 인구의 1-3%에 불과하지만 땅의 50-70%를 소유하였습니다. 이러한 불균등한 토지소유를 기반으로 이들은 엄청난 권력과 부를 거머쥐고 농민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이들은 대개 도시, 특히 수도에 거주하면서 실제로 토지와 관련된 노동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농사 방향을 결정하였습니다. 정복과 매입을 통해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되자 재분배하는 방식보다는 수녹주들에게 할당되었습니다. 토지의 최종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왕과 엘리트 지배 계층이 되었습니다. 토지를 임대 자본주의 방식으로 운영하다 보니 근로 노동보다 자본에 의해 재산이 증식되는 제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토지가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물어야 했고, 엄청나게 높은 이자로 제공되는 상인들의 살인마적인 자본에 잠식당하여 점차 많은 수의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채무노동자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어떻습니까? 행정, 입법, 사법에 대하여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부를 위한 도구화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빈부의 차이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점점 마비되어 가고 있습니다. 양식 있는 사람들이 양비론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1등만 살아남는 사회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종교마저도 타락한 자본주의에 물들어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질 만능주의, 현세 지향적이고 극단적인 인본주의적 이기심이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경제학은 없다(스튜어트 랜슬리 지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부유해지는데 우리는 왜 이토록 불행한가?”에 대한 답입니다. 전 세계 상위 1,000명의 재산을 합치면 하위 25억 명의 재산을 합한 수치의 두 배라고 합니다. 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2%가 전 세계 가계 자산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으며 상위 1% 계층의 재산은 하위 50% 계층의 그것과 비교해 2,000배를 넘어선다고 합니다. 세계 40대부자, 올 증시서 101조원 벌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국세청·통계청 자료 분석우리나라의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6.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17.7%) 다음이다. 그만큼 '부의 쏠림' 현상이 심하단 뜻입니다. 
 
22일 한국조세연구원은 우리나라 소득 상위 1%가 한 해 버는 돈이 38조 4790억 원으로, 전체(231조 9560억 원)의 6분의 1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서울대 등 명문대생 30~40%는 소득상위 10% 자녀라는 것입니다. 지금 20대의 5%만이 탄탄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이미 인구의 800만을 넘는 비정규직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평균 급여 비율의 74%를 곱하면 88만원이 된다고 합니다. 20대는 불만 시대이고, 30대는 분노의 세대이고, 40대는 혼돈의 세대이고, 50대는 불안의 세대라는 것입니다. 

부의 균형추가 무너지면서 극소수에게 부가 빨려 들어가는 '1 대 99'의 양극화 현상이 사회를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체 자영업자 572만 명 중 100만원도 못 버는 '허울만 사장'인 사람이 300만 명이라고 합니다. 대기업이 떡볶이·치킨 등 골목 상권까지 휩쓸어가는 승자독식 사회로 변하고 있습니다. 빈곤층은 5가구당 1가구꼴(20.9%)인 352만 가구, 922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사회역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 대학 교수는 그의 책 <수준측량기: 더 평등한 사회는 왜 더 건강한가>에서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유아사망률도 높고, 살인율과 10대의 임신 비율이 높으며, 학업성취도는 낮고, 정신건강이 좋지 못하고, 장수하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빈곤을 탈출하고 부를 축적했지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어 신음 소리가 통곡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2. 드고아 출신 목자 아모스를 부르시는 하나님(1:1-2)

그는 화려한 도시 사마리아 출신 아니었습니다. 건조한 모래땅 농사짓기도 적합지 않은 유목민이 거하는 땅 드고아 출신 이었습니다. 그는 선지자도 아니고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었습니다(7:14). 그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소 양 염소 등의 가축을 치는 목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시대를 보는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신앙의 지조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 유다에는 미가 선지자와 이사야 선지자를 불러 사명을 감당케 하였고 북이스라엘에는 호세아 선지자와 아모스 선지자를 불러 사명을 감당케 하였습니다. 남쪽 출신이지만 북 이스라엘로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우리를 한 시대 사명자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핍박을 받으며 노예생활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살아가는 모세를 사명자로 불러 시대의 빛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성벽이 훼파되어 황무지를 변했을 때 성벽재건을 위해 느헤미야를 불러 사명자로 사용했습니다. 민족이 전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 에스더를 사명자로 불러 하나님은 사용했습니다. 시대마다 선지자와 사도를 불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명자로 사용하였습니다. 

한 나라의 정치가 타락하면 법이 제대로 서면됩니다. 그러나 법도 타락하면 교육이 제대로 서야 나라에 희망이 있습니다. 교육마저도 희망이 없다면 종교가 바르게 서면 나라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마저도 타락해 버리면 나라에 희망이 없어집니다. 아무리 종교가 타락해도 소수의 사명자가 남아 있으면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나라가 절망적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은 아모스를 불러 나라를 새롭게 하기를 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사명자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고 있습니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를 위해 우리에게 사명을 주었습니다. 세계를 품고 섬기는 사람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칼빈은 16세기 암울한 세상에서 종교개혁을 단행한 사람입니다. 27세 기독교 강요를 지었습니다. 그는 불란서에서 도망하여 스트라우스 버그에서 조용히 학자로 여생 길 보내려고 제네바에 머물었습니다. 그때 윌리암 파렐이 찾아갔습니다. "당신이 이곳에 온 것은 당신이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셔서 온 것입니다 이제 이곳에서 종교개혁을 하기위하여 내가 시작한 일을 이어 받아 충성을 다 하여 주십시오."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천만에요 저는 스트라우스 버그로 가는 길에 잠깐 이곳에 들렸을 뿐입니다. 

저는 학자로 조용히 여생은 마치고 싶군요 종교개혁의 와중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할 만한 용기도 없고 재질도 없고 자격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거절하였습니다. 그 때 파렐은 "하나님께서 당신으로 하여금 여기에서 종교 개혁을 하도록 이곳에 보내주신 것인데 만약 나의 요청을 거절하고 다른 곳으로 간다면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릴 것입니다." 

그는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제너바를 변화시켰습니다. 도덕적으로 정결한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공의가 살아 있는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스위스를 변화시켰습니다. 우리는 비판자의 자리에서 머물면 안 됩니다. 대안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대안을 제시하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민족을 깨우고 나라를 살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는 사명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3. 아모스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까?

1)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와 살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하늘의 뇌성, 땅의 사자처럼 남방목자들의 초장부터 북방 갈멜산 꼭대기까지 심판이 있을 것을 선포합니다.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으로 안일과 방종에 사로잡힌 그들에게 멸망을 선포합니다(1:3-2:16). 

먼저 이스라엘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주변 6개국의 심판을 언급합니다.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입니다. 이들에게 불을 내린다는 것입니다(1:4,7,10,12,14; 2:2). 그리고 남 왕국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이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좋아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은 말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바로 2장 6절부터 9장 10절까지 북 이스라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으로 공의로 세계 만민을 심판하고 이스라엘도 불의를 행하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4개 설교를 통해(①(3:1-15) ②(4:1-13) ③(5:1-6:14) ④(8:4-14)) 이스라엘이 심판받게 되는 필연적 이유를 설명합니다. 

5개 환상(①(7:1-3) ②(7:4-6) ③(7:7-17) ④(8:1-3) ⑤(9:1-6))을 통해 멸망과정을 소개해 주닙니다. 
우리가 이 시간 그 설교와 환상을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지만 요지가 무엇인지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설교는 들으라로 시작합니다(3:1, 4:2, 5:1, 8:4). 모든 환상은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7:1;8:1,9:1)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분명히 보이신 것을 보고 그들에게 귀를 열고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망하길 원하시지 않습니다. 사는 길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살 길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5:4,6,8)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갈은 양식이 아니라 말씀이라는 것입니다(9:11).

(2)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5:14,15)는 것입니다.

(3)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리라(5:24)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집 맏아들(유진수 지음)”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대한민국의 경제정의는 무엇인가?"를 질문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집의 맏아들 이야기를 합니다. "세 명의 자녀를 둔 가난한 부모가 시골에서 근근이 논밭을 부쳐 먹으며 살고 있었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세 자녀 중에서 한 명, 맏아들만 대학 공부를 시켰다. 등록금을 내기 위해 애지중지 키우던 소까지 내다 팔아야 했다. 다행히 맏아들은 공부를 썩 잘했고, 의과대학을 졸업해 의사가 되었다. 돈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대학에 가지 못한 둘째와 셋째는 가난을 이어받아 아직까지 어렵게 살고 있다.“

마이클 샌델은 도덕적 책임의 범주를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자연적 의무, 자발적 의무, 연대 의무입니다. 자연적 의무란 인간으로서 보편적으로 지켜야 하는 의무입니다. 인간을 존중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며, 잔인한 행동을 삼가는 등의 의무가 여기에 속합니다. 자발적 의무는 합의(또는 계약)에 의해 발생하는 의무를 말합니다. 연대 의무는 가족, 국가, 민족 등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말합니다. 아이를 돌보거나 부모를 모시는 의무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마이클 샌델의 분류를 우리의 맏아들에게 적용하면, 
그는 첫째, 맏아들은 가족으로서 보편적으로 지켜야 하는 의무(자연적 의무)를 가지며, 
둘째, 가족과 약속을 했을 경우 그것을 지켜야 하는 의무(자발적 의무)를 가집니다. 
셋째는 위의 이야기처럼 많은 돈을 벌었다면 맏아들은 가난한 부모와 동생들을 도와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갖습니다. 그것이 연대 의무입니다. 

성공한 기업들이 얻은 이득의 사회적 환원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재벌닷컴이 2009년 매출액 1조 원 이상의 대기업 110개를 대상으로 2006~2007년 기부금 지출내역을 분석한 결과, 종업원 복지기금 등을 제외한 순수 사회기부금은 총 9,948억 원이라고 합니다. 이는 같은 기간 중 이들 기업 당기순이익의 2.6%에 불과한 수치랍니다. 사회기부금이 당기순이익의 1%도 안 되는 기업도 3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미국의 억만장자 40명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습니다. 워런 버핏(Warren Buffett)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빌 게이츠(Bill Gates)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가 주도한 이 선언에는 이밖에도 래리 앨리슨(Larry Ellison) 오라클 창업자,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 뉴욕 시장, 조지 루카스(George Lucas) 영화감독, 테드 터너(Ted Turner) CNN 창업자 등이 참여했습니다.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재산을 절반만 합쳐도 175조 원이 넘는, 엄청난 약속이라고 합니다. 

정의(正義: justice)는 문자적인 뜻만 놓고 보면 바르고 옳은 것입니다. 정의의 영역 혹은 성격은 크게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응보적 정의는 사법제도와 관련되며 법을 위반하거나 죄를 지었을 때 거기에 맞는 형벌과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입니다. 회복적 정의는 공동체적 정의로 법을 위반한 사람이나 가해자에 대한 단순한 처벌보다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대화와 이해, 회개, 용서, 치유, 화해 등의 회복을 목적으로 합니다. 

분배적 정의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원(토지, 자본, 일자리, 교육, 건강, 안전, 권력, 명예 등)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각자에게 마땅한 몫을 주는 것'이 분배적 정의입니다. 

분배적 정의는 또다시 공로적 정의(meritorious justice), 평등적 정의(egalitarian justice), 필요적 정의(need justice)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공로적 정의는 개인의 기여나 공로, 노력에 따라 받는 것입니다.(개인 자유 중시) 평등적 정의는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의 존엄성, 보편적 인권 등에 따라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이 세상의 자원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입니다(사회 평등 중시). 필요적 정의는 인간으로서 필요한 필요를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채워 주는 것입니다(자선 중시). 공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의를 실현하는 삶을 살기 원했습니다. 

2) 하나님은 메시야를 통해 회복할 것을 예언하며 소망을 주십니다(암9:13-15).

다 망해도 남은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회복할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불러서 사용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결국 성취하겠다는 것입니다. 

(1) 회복되는 다윗의 장막을 약속해 주십니다. 

①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다윗 왕가의 재건(11) 
사회적인 불의와 도덕적인 부패 그리고 신앙적인 타락의 죄악으로 이스라엘이 필연적으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으나 하나님은 영적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을 말씀합니다. 그 날에 다윗의 언약 성취됩니다. 다윗 왕가의 영화를 회복시키듯 우리들의 존재 가치도 다시금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②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다윗의 천막을 일으켜 영원한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왕국의 왕은 비록 마구간에서 태어 날 것이지만 성령의 전인 교회를 세우시고 이 땅에 영광의 빛을 발하실 것입니다. 영원한 통치자를 모신 주의 백성은 그 영광에 동참하여 영원히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2)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만족을 기업으로 얻게 할 약속(12)해 주십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왕국에는 심지어 가장 악질적인 에돔의 남은 자까지도 포함하여 이 땅의 모든 남은 자들이 신분과 인종 그리고 언어를 초월하여 다 동참케 됨으로써 그 나라는 완성케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알리시고 성취하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비롯한 수많은 선지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끝내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3) 새로운 다윗 왕국의 번영을 약속해 주십니다.

① 풍성한 물질적 축복(13)을 약속해 주십니다. 
여호와의 날이 이를 것으로 말씀합니다. 다윗의 왕국이 회복되는 날은 바로 여호와의 날로서 하루하루가 그 날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때가 차면 하나님께서는 악인에겐 영벌을 내리시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킨 남은 자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축복을 넘치도록 허락하시게 됩니다. 

②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귀환(14)을 약속해 주십니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라고 말씀합니다. 새로워질 다윗의 왕국은 역사적으로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본국으로 귀환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나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시작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펼쳐질 것입니다. 죄악의 포로 되었던 우리들이 십자가에서 행하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의 올무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③ 왕국의 영원한 보존(15)을 약속해 주십니다. 
본토에 심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새로워질 다윗 왕국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그리스도의 통치가 우리를 보호하고 있기에 음부의 권세라 할지라도 결코 우리를 유혹하거나 미혹시킬 수 없는 안전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보장받은 영생을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 언약의 성취를 말씀하고 있습니다.(삼하7:10-16) 아브라함 언약(창 12:1-3; 15:1-21; 17:1-14)과, 이삭언약(26:24-25), 야곱 언약(35:9-15)의 언약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도덕적 회복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함이 이 일을 이루어 낸다는 것입니다. 남은 자를 통해(5:4, 15; 6:1)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윤리적이고 도적적인 동기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남은 자를 세우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남은 자에 속하는 사람들의 활동이 그들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용서가 이루십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너진 다윗의 천막을 일으키시고 그 곳에 교회를 세우셨으며 종국에는 영원한 다윗의 왕국을 세우사 만방을 다스릴 것입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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