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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험으로 겪는 괴로움 (웨슬리 9) (벧전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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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으로 겪는 괴로움 (웨슬리 9) (벧전 1:6)


할렐루야!
평안하십니까? 건강하십니까?
덥지만 평안하고 건강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더위를 느낄 수 있는 것만도 복입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건강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옆의 분들에게 인사합니다.
“건강한 것을 느끼는 것만으로 복입니다.”

이번 주가 본격적인 휴가기간이라고 합니다. 
‘쉴 휴(休) 틈 가(暇)’, `휴가`는 말 그대로 쉬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휴가’하면 
꼭 어디를 가서 무엇인가를 하며 
놀아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통체증에 무더위에, 바가지요금까지 …
휴가 때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쉬어야 하는‘휴가’가 
한 숨이 나오는 ‘휴~~가’로 바뀝니다. 
그래서 ‘휴가 후유증’이란 말도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기업의 CEO들은 
휴가 중에 조용히 정책을 구상하거나 혁신 방안을 계획합니다. 
만약 휴가를 다녀올 생각이 있으시다면 …
이번 휴가 때는 높은 사람, 대단한 사람들처럼 
인생의 비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미래를 위한 준비, 크고 작은 주변 정리, 새로운 도전 … 등.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을 
멋지게 할 유익한 휴가가 되어야 합니다.

휴가를 계획하시는 모든 분들은 육적으로 … 또한 영적으로 … 
재충전하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님의 향내를 풍기며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왜 그런 일이 …

오늘은 웨슬리 설교시리즈의 9번째로 
‘시험을 통한 괴로움’에 대하여 말씀을 전합니다.

가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아니 예수 믿는 사람들로부터도 질문을 받습니다. 
“왜, 예수 잘 믿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깁니까?”

여러분이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분들에게도 
한 숨 푹푹 쉴 일들이 생깁니다. 
그런 분들 모두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자녀들도 멋지게 성공하면 좋으련만,
물론 그렇게 되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서 안타까운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어려웠던 것처럼 
때론 우리도 광야 한 가운데에 있기도 합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2},
Abingdon Press, 1984, p.205.] 

그런 일이 나에게 왜 일어나는지 …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는지 …
원인도 해결책도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증상은 있지만 원인은 알 수 없는 희귀병과 비슷합니다. 

발 저림, 딸국질 … 등 증상이 있을 때 저마다의 민간치료법이 있습니다.
발이 저리다고 하면 침을 세 번 코잔등에 묻히면 
저림 현상이 없어진다고 하고, 
딸국질을 하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면 딸국질이 멈춘다고 합니다.
그런데 딸국질이 왜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마땅한 치료법도 없답니다. 
왜냐하면 딸국질이 일어나는 원인이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일들 중에 
정확한 원인도, 치료방법도 없는 병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희귀병 중에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즉 CRPS(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라는 병이 있습니다. 
보통은 어디에 부딪히거나 다쳤을 때, 
처음에만 통증이 심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차츰 줄어드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일정 시간이 지나도 통증이 좀처럼 줄지 않고
오히려 온 몸 전체로 퍼지게 됩니다. 

신경계 이상으로 뇌에서 통증을 감지하는 회로가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 하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더 심해져서 결국엔 마약성분이 있는 주사를 맞지 않으면
하루도 살 수 없을 만큼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보통의 진통제 40알을 먹어도 견딜 수 없을 정도이며,
발병자의 대다수가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할 만큼 
끔찍한 고통을 겪습니다. 

인간이 느끼는 고통 순위에 따르면
암에 의한 통증이 5점, 
출산 시 통증이 8점,
손가락 혹은 발가락 절단이 9점,
몸이 불에 탈 때의 고통이 10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복합통증 증후군 환자들이 느끼는 통증이
10점에 해당된다고 하니 얼마나 괴로울지 …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왜 이런 병이 생기는지 …
어떻게 해야 치료할 수 있는지 …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로는 그저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수준의 치료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병에 걸렸어도 원인을 알고 
그에 맞는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감사의 조건입니다. 
어디에 세게 부딪혔을 때, 당시에는 아프겠지만 
곧 통증이 사라지는 것도 감사의 제목입니다. 

어제 어떤 모임에 여러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 갔습니다.
그런데 들어가다 모퉁이에 부딪쳤습니다.
순간 얼마나 아픈지 … 여러 사람을 만나는 자리여서 
너무 아팠는데도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인사했습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피가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픔은 사라졌습니다.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지난 한 주간 감사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잘 들으세요.
통증이 있다가 없어지는 것도 감사의 조건입니다.
그런 일을 겪지 않은 것은 더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때가 많습니다. 
원인도 모른 채 몸 혹은 마음이 너무나 아파서 …
눈물 흘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시련을 겪게 하시는 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분도 괴로운 일들을 겪으면서 살아왔고 살고 계실 것입니다.

여러 가지 괴로움

<‘괴로움’이란 말의 헬라어 원어는 ‘류페텐테스’로
‘슬퍼하다’또는 ‘비탄에 빠지게 되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괴로움’은 
별로 대수롭지 않거나 하찮은 정도의 슬픔이 아닙니다. 
또한 한 순간 지나가 버리는 일시적인 탄식도 아닙니다. 
이 괴로움은 너무 깊어 사람들의 영혼 전체를 압도하여
모든 감정에 영향을 주고, 결국 모든 행동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2},
Abingdon Press, 1984, pp.224-225.]

본문에
“…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벧전 1:6) 한 것처럼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양함과 변화가 시련을 견디고 막아내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대표적인 예로 육체의 병이 그렇습니다. 
몸의 일부만 아파도 몸 전체가 아픈 것처럼 괴로움을 당합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병마와 싸웁니다.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계속되는 질병이 더 힘듭니다. 
쉽게 낫지 않으면 육체 뿐 아니라 마음까지 병이 듭니다. 
웨슬리 목사님도 설교에서 이런 말을 인용하셨습니다. 
“고통은 완전히 비참한 것이다. 
그리고 극단으로 가면 모든 인내를 완전히 뒤엎어 버린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잘 참고 잘 견디며
영혼을 지킨다 할지라도 계속되는 질병의 고통은 
끝내 우리의 영혼까지 병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육체와 영혼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2},
Abingdon Press, 1984, p.226.]

육체의 질병 뿐 아니라 가난도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잘 되던 사업이 한 순간에 무너지거나,
평생직장으로 여기며 열심히 일하던 곳을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빚을 지기도 하고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있을 곳’,
그 어느 것 하나도 갖추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탈진한 기운을 회복하기 위해 먹을 음식조차 없는’사람,
‘몸 가릴 것조차 없어 움츠리고 있는’ 사람,
‘땅을 잠자리로 삼고 하늘을 지붕으로 삼는’사람들이 있습니다. 
애쓰고 노력하며 땀을 흘려도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런 경험 해보신 분들이 계시겠지만
저도 정말 돈이 똑 떨어져 본 경험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31`년 전에 개척교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정육점 2층 방에서 월세로 살았는데 어느 날 장인 장모님께서 오셨습니다.
국수라도 삶아 드려야 하는데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런 경험 해 보셨습니까?

우리 교회는 ‘생명살리기운동’을 합니다.
넉넉하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매달 내는 3만원으로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후원합니다.
그들의 의식주와 배움이 우리가 내는 3만원으로 어느 정도는 해결됩니다.
그런데 지금도 아프리카에는 후원 받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후원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강원도 철원에서 살았습니다.
가끔 미국 선교사님이 우리 집을 찾아 오셨습니다.
제 기억에 ‘시율린’이라는 머리가 하얀 여자 선교사님이셨는데
지프차를 타고 늘 선물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사님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분이 타고 온 지프차를 타보고 싶어서 
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으면 차에 올랐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저를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 주고 가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동네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우리들의 도움을 받는 아이들은 
주변의 아이들에게 큰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기쁨으로 도우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있을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맛있는 것 먹지 못해서, 더 비싸고 멋있는 옷 입지 못해서,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불평 불만합니다.
정말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얼마나 많은 복을 주셨나를 보지 못하는 눈,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복,
받은 복을 세며 감사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2},
Abingdon Press, 1984, p.227.]

또한, 소중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의 죽음, 남편 또는 아내의 죽음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보지도 못하고 일찍 죽어간 이들, 
인생을 막 출발하던 어린 아이의 죽음,
하나님의 최상의 선물로 여겼던 귀한 친구의 죽음,
이런 수많은 일들은 우리를 깊은 탄식으로 몰아갑니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죽음은 우리에게 충격을 줍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갈 의욕을 꺾기도 합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2},
Abingdon Press, 1984, p.228.]

그런가 하면 주위의 믿지 않은 사람들로 인해 고통을 당합니다.
떨어지려 해도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 채 살아가고, 
기독교를 거부하거나 비판하기 때문에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전쟁터로 달려가는 말과 같이, 
죄와 죽음의 길로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가는 가족 때문에 힘이 듭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나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되었습니다.
나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되었습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예수 믿지 않는 이들,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이들,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 못한 이들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없다면 여러분은 가짜 크리스챤입니다.

어제 저녁에 런던 올림픽 수영 400m 종목에 
우리나라의 박태환 선수가 출전한다고 하길래 봤습니다.
예선 전에 조 1등으로 들어왔습니다. 참 잘하더라구요.
그런데 실격처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화가 나는지 … 영상을 몇 번이나 다시 보여주는데
제가 봐도 부정출발하지 않았는데 실격이 되었다고 하니 
너무 화가 나서 그냥 TV를 끄고 일찍 잤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 교회에 와서 인터넷 신문을 보는데 
박태환선수가 은메달을 땄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 뭐가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신문 기사에 사람들이 댓글을 단 것을 보니
‘안타깝다고,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며 박태환 선수를 응원했습니다.
그렇게 실망을 주고 쇼크를 주지 않았다면
금메달을 땄을 텐데 말입니다. 
여러분도 속상하고 안타까워 하셨지요?

여러분, 박태환 선수의 실격이라는 판정에 
안타까워한 것처럼 / 속상해 한 것처럼 
여러분의 부모님이, 형제가 예수 믿지 않은 것에 대해 
안타까워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2},
Abingdon Press, 1984, pp.228-229.]

그밖에도 세상 살면서 당하는 괴로움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세상 삶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479장 1절에
♪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쉴 곳이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길은 
여러 가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련의 목적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까지도 …
그토록 많은 괴로움을 당하며 살게 하시는 지 궁금해집니다. 
이 궁금증에 대해 성경은 분명하고도 직접적으로 대답해줍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7)하였고

베드로전서 4장 12~13절에도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으로부터 시련의 목적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금이 불 속에서 연단됨과 같이 
시련을 통해 믿음을 연단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불로 연단되는 금은 그로 인해 순결해지고 
불순물로부터 분리되어 값있는 것이 됩니다. 
시련의 불 속에 있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연단될수록 더 순수해집니다. 
그리고 믿음은 더 강해지며 확실해지며 점점 풍부해집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2},
Abingdon Press, 1984, pp.231-232.]

그러나 아무리 뜻이 좋고 목적이 있어도 
연단당하는 것을 반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견디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욥30:19) 라고 하였고,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하였습니다. 
오죽했으면 성경에‘불시험(벧전4:12)’이라고까지 했겠습니까?
최고의 고통, 살이 불에 타는 고통 같은 시험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시련 속에서 괴로워할 때 
하나님은 저 멀리 떨어져 계셔 보이고,
나를 돌보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시지도 않습니다. 아멘.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은
믿음을 더욱 굳세게 세우시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과일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게 하려면 잔가지를 쳐야 합니다. 
가지를 치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가지들이 크게 자라 좋은 열매가 열리지 않습니다. 
나무 입장에서 보면 
가지를 치는 것은 자기 살을 떼어내는 것처럼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가지가 잘려야
좋은 과일 나무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시련은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입니다. 
대장장이가 쇠를 불에 달구고,
망치로 내려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망치질을 해야 작품이 나옵니다. 
우리를 연단시키는 하나님도 고통 속에 있는 우리를 보시고 
고통 받고 계시며 안타까와하십니다.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불 속에 들어갔다 나온 횟수가 
자신의 값어치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했습니다.

우리가 감당할만하니까 
시련을 주시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시련도 주시지만 피할 길도 주십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올림픽에서 메달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참가했던 사람도 혹독한 훈련을 한 사람입니다.
시련과 고통을 참았기에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고,
그 자리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연단 뒤에 있을
‘칭찬과 영광과 존귀(벧전1:7)’라는 메달을 기억하고
참아야 합니다. 승리해야 합니다.

♪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찬송가 407장에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2. 맘속에 시험을 받을 때와 무거운 근심이 있을 때에 
주께서 그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 주시네 
3. 뼈아픈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맘으로 탄식할 때 
주께서 그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 
[후렴]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그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아멘 

그래도 하나님의 뜻이 이해 안되어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눈물로 탄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애통한 후에 기쁨이 있고, 눈물 난 후에 웃음이 있고
괴로움 후에 평안이 있습니다.
주님이 뜻하신 일 잘 모르십니까?
그래도 언제나 주님 뜻 안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찬양합니다.
“주님이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언제나 주 뜻 안에 내가 있음을 아노라
사랑과 말씀들이 나를 더욱 새롭게 하니
때로는 넘어져도 최후 승리를 믿노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 믿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구원 받은 사람으로 살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우리 기둥교회 성도들도 말할 수 없는 탄식 속에
고통 속에 살아가는 성도들 많습니다.
하나님 저들을 어루만져 주옵소서. 
하나님 저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소서. 
하나님이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려워 흘리는 눈물도 닦아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고 들었습니다.
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깨닫고 사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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