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신 16:18-20)

첨부 1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신 16:18-20)


지난 한 주간은 참으로 더운 날씨였습니다. 이번 여름만큼 더웠다는 기억이 나는 해가 1994년입니다. 그 해 8월에 제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제6회 세계깔뱅학술대회에서 제가 발제를 해야 했는데 너무 더워서 준비를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때 제 아내는 제 아내대로 그 해 겨울에 태어난 넷째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더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이유에서이긴 하지만 비로소 집안에 에어컨을 들여놓기로 합의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금년은 그때보다 더 더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더위 속에서 우리 국민을 더욱 열 받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이 연달아 오심과 편파판정에 희생이 되며 확실하게 기대되던 금메달을 세 개나 놓친 것입니다. 수영에서 아무 문제 없이 출발한 우리 박태환 선수를 실격시켰습니다. 

그 후 있었던 다른 수영경기에서는 출발대에 섰던 여러 선수들 가운데 혼자만 부정 출발하여 물속에 뛰어든 미국 여자선수가 있었는데 그 선수는 실격시키지 않고 그대로 경기에 참여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부당한 차별을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으니 우리 국민의 분노는 이해가 되고도 남는 것입니다. 유도에서는 우리 조준호 선수가 이겼다고 세 명의 심판이 전원일치의 판정으로 깃발을 들어놓고는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게 다시 반대 깃발을 들어 우리 손수에게 패배를 선언하는 난생 처음 보는 웃지 못할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펜싱에서는 역사상 가장 긴 1초를 만들어내며 다 이겼던 신아람 선수를 패배자로 만들었습니다. 세계 언론이 올림픽 전 역사의 5대 오심 중 하나로 꼽은 이 사건 앞에서 아마도 대한민국 온 국민이 너무나 어이가 없고 분통이 터져 어찌해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각자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에 자신의 오랜 꿈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 긴 세월 흘린 땀과 눈물이 수포로 돌아가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맛있는 것 먹으며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놀 수 있는 즐거움을 다 포기하고 지옥훈련을 견뎌내며 이루려 했던 꿈을 단숨에 짓밟아 무산시키는 잔인한 행위가 일부 국제심판들에 의해 자행된 것입니다. 경기가 끝나고도 부단한 판정 때문에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서 퇴장하지 못하고 경기장에 털벅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쏟던 신아람 선수를 바라보면서 정말 공정하지 못한 심판관의 부당한 판정 하나가 한 젊은이의 인생에 얼마나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줄 수 있는지를 우리는 새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녀의 눈물은 우리 온 국민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자극받았는지 우리 펜싱선수들이 너무나 잘 싸워주어서 도둑맞은 세 개의 금메달을 단숨에 대신 채워 넣는 바람에 국민들 마음에 통쾌한 신바람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집중되어 연달아 터진 이 오심과 편파판정을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해야 했습니까? 최근에 우리나라가 하도 잘나가니까 그렇지 않아도 경제위기에 처한 유럽 국가들이 자존심도 상하고 시기가 나서 그런다는 생각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또 우리가 스포츠만 아니라 국제스포츠계에서의 외교적 실력을 길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외국어를 잘하는 인재들을 양성해야 한다는 말들도 합니다. 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도 생각해야 할 것은 스포츠맨십에만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불신과 불행을 낳는 공의롭지 못한 심판과 그것을 조장하는 뇌물 같은 부정행위를 근절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이끌어내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가운데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복되게 잘 살며 길이길이 번성할 수 있기 위하여 그들이 지켜야 할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가지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중 하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8절에서 보듯이 이스라엘 백성의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이 공의로 백성을 재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의로 백성을 재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라고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까? 본문 19절을 봅니다: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세 가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첫째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판을 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의 뜻은 재판을 똑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달리 옮기면 “법을 왜곡시키지 말라”, “법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 “법을 가지고 속임수를 쓰지 말라”, “법을 바르지 않게 적용시키지 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판장들은 누구보다도 법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재판장들이 정직해야 하고 법을 바로 해석하며 바로 적용하고 누구에게나 꼭 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라” 하신 뜻은 편파심을 갖지 말라는 데 있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라”고 옮겨진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한다면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지 말라”입니다. 말하자면 “재판 당사자가 누군지를 알아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판당사자가 누구이든 사실 자체만을 보고 엄격하게 공정한 재판을 해야지 재판당사자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편파적인 재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법을 잘 안다는 사람들이 어떤 소송이나 논쟁에 있어서 같은 법을 가지고도 소송이나 논쟁의 당사자가 자기와 가진 친분여부에 따라 정반대되는 소리를 하는 것을 종종 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뇌물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뇌물은 지혜로운 사람의 눈조차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뇌물을 받아먹고 나면 의롭던 사람도 바른 말을 하지 않고 애매하게 말하거나 이상한 법 해석을 내리고 비뚤어진 판결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재판관들은 한 사회의 법질서가 확립되고 상호신뢰관계가 공고해지며 그래서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되기 위한 마지막 보루인데 재판관들이 법을 멋대로 다루고 편파적으로 판결을 하며 뇌물을 받아 챙기곤 하면 그 사회는 백성이 살기 힘든 사회가 되고 오래 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20절에서 결론적으로 반복하신 말씀이 모든 재판관은 마땅히 공의만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들어가 살게 하시는 땅 가나안에서 행복하게 살며 오래오래 번성하리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그러나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도 통용될 말씀입니다. 

어느 사회든 재판관들이 공의만을 따르는 것은 백성이 편안히 살 수 있고 지속적으로 번영할 수 있는 기본이 갖추어진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판관들이 공의를 따르지 않고 재판을 그릇되게 하며 사람에 따라 편파적인 판결을 하고 뇌물을 받아먹고는 잘못된 재판을 일삼는다면 국민은 억울함을 당하고 피해를 보며 분노하게 되고 홧병 나게 되며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잘될 리가 없으며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힘든 것입니다. 

특히 재판을 그르치게 만드는 주범인 뇌물을 단호히 거부해야 하는 것은 재판관들만이 아닙니다. 국민 전부가 같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지도 말고 받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뇌물을 주고받는 일은 십계명의 제9계명에 의해 정죄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뇌물수수는 정당한 사람이나 정당한 일보다 부당한 사람이나 부당한 일에 손을 들어주는 거짓증언을 의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회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고 국가안보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부당행위입니다. 

더 나은 사람이나 일 대신 더 못한 사람과 일편에 서게 하는 것이 뇌물수수입니다. 정직한 사람의 오랜 수고와 땀과 눈물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면서 무위도식하며 일확천금을 노리는 철면피들을 배부르게 해주는 일이 뇌물수수입니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의 희망과 기쁨을 근원적으로 말살시키며 악한 자들의 탐욕만 키우는 것이 뇌물수수입니다. 꿈을 품고 평생의 목표를 세운 사람들이 그 인생의 꿈과 목표를 갖고 노력하며 살아온 세월을 도둑질하는 것이 뇌물수수입니다. 

뇌물수수는 단순히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 진리와 정의의 싹을 근본적으로 잘라버리는 것이 뇌물수수입니다. 그래서 뇌물수수는 당사자 개인뿐 아니라 나라 전체를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 뇌물입니다. 출23:8에서도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굳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뇌물뿐 아니라 정실인사, 편파수사, 지방색 등도 결국은 다 공의로 재판하는 원칙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태들입니다. 왜냐하면 더 유능하고 더 정직하고 더 바른 사람인데 어느 지방 사람이니까 안 된다고 제쳐놓고, 능력이 부족해도 나와 같은 지방 사람이니까 “이 사람이 이 자리에 더 합당한 사람입니다.” 하며 좋은 자리에 갖다 앉히는 것이야말로 공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뇌물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얻고 있습니다. 어느 정권이고 예외 없이 권력주변에서 뇌물 주고받은 사실들이 드러나고 정실인사, 편파수사 논란이 없는 적이 없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대통령의 친인척과 최측근 인사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게 되는 이 망국의 고리를 누가 끊을 것입니까? 

올림픽에서 편파판정을 받았다고 분노하기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뇌물과 편파판정의 먹이사슬에 익숙해져 있고 우리 사회 자체가 그것을 척결할 의지 없이 여전히 그것에 의지해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를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편파판정의 희생이 되어 피땀 흘리며 훈련한 보람 없이 억울함에 몸부림치고 통한의 눈물 흘려야 한 사건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자기성찰의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사회부터 뇌물과 편파판정이 없는 사회 만들기를 다짐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하신 말씀은 뒤집어 말하면 공의를 따르지 않으면 국민은 살 수 없을 것이고 나라를 바로 지킬 수 없으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공의만을 따르는 것,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인 우리에게 너무나 마땅한 일입니다. 공의로운 백성 되기를 새롭게 다짐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수영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