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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요셉시험(2) (창 39: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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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요셉시험(2) (창 39:7-18)

‘오스 힐먼’이라는 분이 쓴 ‘하나님의 타이밍’이란 책이 있습니다. 

오스 힐먼은 그 책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들어 쓰시기 위해 준비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바로 ‘요셉시험’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리더가 되려면 요셉처럼 몇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첫째가 지난주 우리가 살펴보았던 ‘유다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배신의 시험’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까운데 있는 사람, 내가 믿었던 사람, 신뢰했던 사람에 의해 배신을 당할 때 그 시험을 잘 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가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성실성 시험’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리더는 어떤 환경에서도 성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고통스러운 고난과 눈물 나는 역경이 찾아 옵니다. 
물론 내가 실수하고 잘못해서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자신의 잘못이 없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잘못한 일이 별로 없는데 혹독한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이유 없이 당하는 이런 고난은 왜 찾아올까요?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크게 쓰시려고 하시는 시험이란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본문에 요셉이 당한 시험을 보세요. 

요셉이 잘못이 별로 없습니다. 어찌 보면 요셉의 잘못보다는 아버지의 편애가 문제였습니다. 요셉이 잘못한 것이라고는 단지 꿈을 자랑했다는 것입니다. 형들의 곡식 단들이 요셉의 곡식 단에 둘러서서 잘하는 꿈, 그리고 해와 달과 열한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을 자랑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별 잘못이 없는데 큰 어려움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원치 않는 역경과 고난이 찾아 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큰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임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성실성’ 시험을 영어로는 Integrity Test라 합니다. 

우리말로 정확히 번역하기 좀 어려운데 굳이 번역하자면 ‘성실’‘청렴’‘한결 같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시험하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시험을 깊이 생각해 보세요. 

17살 때 형들의 미움을 받아 졸지에 노예가 되어 애굽에 끌려 왔습니다. 애굽 노예시장에서 경매를 당했는데 애굽왕의 경호대장 보디발 장군의 집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우연처럼 보이나 하나님이 개입하신 사건입니다. 그런데 어린 요셉은 그 집에서 밑바닥부터 훈련을 겪습니다. 언어도 다를 것이고 문화도 다른 환경에서 어린 요셉이 얼마나 심한 고생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그 집 주인 보디발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한마디로 성실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잘되었습니다. 

누가 함께 했지요?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할렐루야!   

하나님이 그를 도우시고 그를 잘되게 도우시니 그는 그 집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최소 20대 중반에서 27세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인의 아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동침하자는 것입니다. 정말 기절초풍할 일입니다. 

그 여자가 누굽니까? 그녀 대해서는 성경에 이름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호위대장 보디발의 아내이기에 미루어 짐작해 보면 미색도 있었을 것입니다. 나이는 적어도 30은 넘었을 것이고 40대는 되었지 않았겠습니까? 

더욱이 애굽의 귀족 출신이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남편이 막강한 권력이 있었으니 돈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요셉을 유혹합니다.   

아마도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여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남편이 국사에 바쁘다 보니 집에 자주 들리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집에 살림을 총 책임지는 총무였습니다. 성경은 요셉의 외모에 대해 한 문장을 적어놓았습니다. 

창39:6절에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요즘으로 말하자면 아마도 배용준이나 장동건 같이 멋있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하여간 얼굴이 잘생기면 고난이 큽니다. 그러니 보디발 장군 부인이 부꾸러운줄도 모르고 유혹을 한 것입니다. 그것도 어쩌다 한번 유혹한 것이 아닙니다. 

창39:10절에 보면 “날마다” 유혹을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시험에서 합격을 했습니다. 성실성 시험에 합격을 한 것입니다.   

어떻게 요셉은 이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비슷한 시험이 찾아올 터인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도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셉의 성실성 시험은 어떤 시험일까요? 

1. 판단력 시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기회가 아닌 것을 기회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이 시험에 많은 사람이 실패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판단력이 제대로 되어있나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저 여인의 요구를 들어주면 어쩌면 나는 노예에서 해방되고 자유의 몸으로 고국에 아버지에게로 돌아 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착각하여 오판 할 수도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 유혹은 요셉이 먼저 한 것이 아닙니다. 주인의 부인이 먼저 걸어온 것입니다. “혹시 고향에는 못 갈지라도 지긋지긋한 이 노예의 신분에서는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오판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노예는 짐승과 같이 돈으로 사고팔고 할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언제 어찌될지 아무도 모르는 신분이 노예 신분입니다. 그러니 보디발 부인을 기쁘게 해주면 자기 신분 회복시켜 주는 것쯤은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주인도 없습니다. 종들은 다 내보내졌고 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성공적인 위치에 있으면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판단력을 잃게 됩니다. 내가 이정도 했으면 이 정도는 누려도 되지 않겠나 생각을 합니다. “내가 이집에 총무고 저 여자가 나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누가 뭐라 할 거야?” 

그렇게 오판할 수도 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왜죠? 그것이 죄악인줄 알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판단을 한 것입니다. 

8절9절을 보세요.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따라서 하세요.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누구에게 죄를 짓는다고요? 보디발 장군에게보다 더 두려운 것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내가 어찌 하나님께 죄를 짓느냐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때 제대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기회가 죄를 동반한다면 그것은 기회가 아닙니다. 어떤 경우도 죄악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죄를 지면서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은 착각입니다. 오판입니다. 

요셉시험은 


2. 절제력 시험입니다. 

요셉이 겪었던 이 시험은 정말 이기기 힘든 싸움입니다. 
우리 대적 중에 가장 이기기 힘든 대적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는 외부에 있는 적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나’라는 존재, 육체의 정욕에 붙들려 있는 나 자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손자가 그의 병법에서 말했다 하잖습니까? 적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정말 더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나를 알아서 이겨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 본능을 절제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요셉의 나이가 이때가 청년의 때입니다. 최소 20세에서 많게는 27세 이전입니다. 그러면 혈기왕성 할 때입니다. 그리고 육체적 본능이 최고일 때입니다. 

그런데 성적인 유혹이 찾아옵니다. 참으로 이기기 힘든 유혹입니다.   
이 절제력 시험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윗도 50이 넘어서도 이 시험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솔로몬도 수많은 여인을 혼인동맹이라는 미명하에 취했습니다. 그래서 쓰디쓴 고통을 당했습니다.   

사탄은 교묘합니다. 우리를 넘어트리는 도구로 본능을 건드립니다. 

예수님께 찾아와 시험을 건 사탄을 주목하세요. 3가지가 뭐지요? 식욕 명예욕 권력욕입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입니다. 이것은 다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요일2:16을 보세요.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크게 쓰려 하시는데 제일 방해가 되는 것이 이 기본적인 본능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것이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통제하면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를 보세요. 역대 대통령의 형님과 친인척, 그리고 그 주변의 권력을 잡은 자들을 보세요. 역사가 분명한 교훈을 보여줍니다. 수많은 친인척들이 뇌물 먹고 감옥 갔던 실례가 수없이 많았잖아요. 그런데도 뇌물을 받고 정권말기에 다 들어납니다. 그래서 쇠고랑차고 들어갑니다. 

생각해 보세요. 권력을 잡은 그들이 뭐가 부족해서 그 뇌물을 받아먹었겠습니까? 
그들이 그 돈 안 받으면 먹고 살 수 없었나요? 그들이 그 재물이 없으면 출세에 지장이 있었나요? 왜 받아서 그 곤욕을 치르나요? 

우리 속에 있는 탐심의 정욕을 이기지 못해서, 절제를 못해서 그 부끄러운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들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도 그 위치 그 자리에 있었다면 더 받아먹었을 지도 모릅니다. 전부 자신을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아간’이 망한 것도 탐욕을 이기지 못한 결과입니다. 
엘리사 시대에 ‘게하시’가 문둥병에 결론 이유도 이것입니다. 
초대교회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 바치고 졸지에 죽음을 맛 본 것도 이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군대에서도 사병훈련과 장교훈련이 다르답니다. 
사병들은 훈련소에서 4주 훈련을 받고 자대에 배치되지만 신성호 집사님 아들은 ROTC 장교로 선발되어 대학재학중에서부터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방학 동안에도 아주 혹독하고 차원 높은 훈련을 받고 있답니다. 
왜 그런 훈련을 받나요? 그런 훈련을 거쳐야 사병들을 통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 속에 있는 육체의 정욕을 이겨야 합니다. 어떻게 이겨야 할까요? 내 의지나 역사적 교훈으로는 어렵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갈5: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하셨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순간에 우리도 못 박아 버렸습니다. 그러기에 정욕과 탐심이 죄악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성령의 절제의 능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3. 크게 쓰시기 위한 시험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런 시험을 허용하시는 것일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를 더 크게 쓰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크게 쓰시려는 것인데 그러려면 이런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이런 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큰 것을 맡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험은 얼마나 성실한가? 얼마나 정직하고 얼마나 믿을만한가를 보려는 것입니다.   
부모가 어린 아이들에게 용돈을 많이 못주는 이유가 뭡니까?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큰돈을 주면 판단력이 흐리기에 엉뚱한데 씁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욕구를 이기지 못하여 한꺼번에 허랑방탕하여 해로운 일에 다 써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직 때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더 크게 쓰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훈련시킵니다. 성실성 시험은 이 시대 우리에게도 수없이 치러지는 시험입니다. 이 성실성 시험에 강력한 적은 자신입니다. 

아직 우리가 우리를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기본 욕구도 못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지 의인지 구별을 못하고 펑펑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크게 쓰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셉 시험의 목적이 뭘까요?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국가를 경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그 혹독한 기간을 통해 국가 살림살이 경영능력을 배운 것입니다. 그리고 감옥에 집어넣어서 애굽 청치세계를 배우게 한 것입니다. 목적은 크게 쓰시길 원해서입니다.   

우리를 시험하심도 거기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욕심이 가득해서 그 시험에 떨어집니다. 

“쥐꼬리만 한 봉급”에도 욕심 때문에 십일조도 구별치 못하고 삽니다. 
“주일 성수”를 해야 하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예배 빠지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그러니 어찌 그런 사람에게 큰 것을 주시겠습니까? 

한 달란트 작은 일에도 힘들어하고 게을러서 일하기 싫어하는데 어떻게 더 큰 것을 맡기겠습니까? 분명합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시험은 우리를 크게 쓰기 위한 시험입니다. 결국 요셉은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어찌해야 이런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요셉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몇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1) 탐심의 결과가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약1: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욕심은 탐심을 말합니다. 이것을 품으면 죄를 만들게 되고 죄가 장성하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보디발 장군 부인의 유혹에 넘어가면 무서운 죄도 되지만 그 죄의 결과가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정해 보세요. 만약 요셉이 보디발 장군 부인이 요구를 들어 주었다 합시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 것입니다. 

보디발 부인이 그를 언제까지나 가지고 놀겠습니까? 그냥 살려두면 언제 화근이 될지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노예인 요셉에게는 죽음밖에 찾아 올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요셉만이 아닙니다. 오늘 이시대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한방에 무너집니다. 


2) 사탄의 교묘한 전략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영물입니다. 그러기에 아주 영특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허점과 약점을 잘 압니다. 그런데 그가 우리에게 찾아 올 때 “나는 마귀다” 하고 달려들지 않습니다. 친구처럼 다가옵니다. 그리고 내게 큰 복을 가져다주고 내게 엄청난 도움을 주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넘어갑니다. 그는 뛰어난 계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사단은 “한번인데 어때” 하고 속입니다. 한번이 두 번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두 번이 세 번 세 번이 네 번 빠져나갈 수 없게 합니다.   

하와도 한번 먹어 볼까하다가 남편까지 타락시켰습니다. 

다윗도 밧세바를 한번 만나보자 하고 궁궐로 데리고 왔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냥 우연찮게 본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데려옵니까? 

누구나 유혹을 당하는 것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유혹에 넘어가서 선을 넘어가면 돌아설 수 없는 것이 됩니다. 
  

3) 하나님이 주신 약속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요셉이 승리한 요인 중에 최고의 힘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이 어릴 때 주셨던 꿈이 늘 그의 가슴속에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적당히 죄를 지며 살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감옥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단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약속하셨습니다. 함께 하시겠다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흔들리지 말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그 말씀 붙잡고 가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만찬가집니다. 한번 눈감고 즐기자고요? 
아무도 모르는데 한번 적당히 응해주자고요? 아무도 모르긴요. 그도 알고 나도 알고 하나님도 압니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아마도 뇌물 받아 먹고 쇠고랑 차신 분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걱정 말라” “당신을 정말 존경해서 주는 것이다.” “절대로 뒤탈 날일이 없다” 했을 것입니다. 재물 유혹이든 성적 유혹이든 다 같습니다. 사탄의 올가미입니다. 

그러기에 성공했다고 자만하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총무가 되었다고 방심하면 죄가 찾아옵니다. 

이 시대 우리에게도 요셉시험은 있습니다. 특히 성실성 시험을 하나님은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정신 바짝 차리시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고 신실하며 믿을 만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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