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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요셉시험(3) (창 39: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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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요셉시험(3) (창 39:19-23)

우리는 몇주에 걸쳐 요셉이 겪었던 시험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하는 이유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같은 시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주에 나누어 살펴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요셉시험의 첫 번째가 유다시험으로 배신의 시험을 당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요셉시험의 두 번째가 성실성 시험으로서 하나님은 우리의 판단력과 절제력을 시험한다고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세 번째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요셉의 인내시험입니다.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정말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고 결국 하나님이 그를 형통케 하셔서 그 가정집에 총무가 되었습니다. 창39:2~3절을 보세요.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분명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주인이 그의 신앙과 인격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은 요셉을 그 집에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였습니다. 

그런데, 잘 나거던 그에게 억울한 누명이 씌워졌습니다. 주인마님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했다가 그에게 찾아온 것은 억울한 감옥살이였습니다.   

저는 여기서 왜 보디발 장군이 요셉을 죽이지 않고 왕궁 감옥에 가두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추축이지만 가능성이 있는 추축입니다. 제가 가능성이 있는 소설을 한번 써 보겠습니다.   

왜 보디발이 요셉을 죽이지 않고 감옥에 가두었는가? 

보디발이 요셉을 믿었던 것입니다. 보디발은 요셉이 정직한 사람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해보니 부인이 난리를 칩니다. ‘저놈 요셉이 나를 겁탈하려고 했어요’ 하며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잡아다가 사건을 조사했고 내용을 전말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뚜렷한 증인도 없었습니다. 조사해 보니 이 사건은 자기 부인이 먼저 요셉을 유혹해 놓고 뜻대로 안되니 뒤집어씌운 사건인 것을 눈치 챕니다. 

그러나 이미 그 사건의 소문은 다 펴졌습니다. 온 집에 종들부터 가족들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에도 소식이 다 퍼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인을 정죄하고 처단하자니 가문의 망신일 뿐만 아니라 보디발의 정치적 앞날에 엄청난 障碍物이 될 것이 뻔했습니다. 

그러기에 보디발은 요셉을 현장에서 죽이지 않고 그를 감옥에 가두어서 자기 가정도 보호하고, 부인의 잘못도 덮고, 그리고 요셉도 보호한 것입니다. 

만약, 보디발이 요셉을 정말 강간 미수범으로 여겼다면 그는 그 즉석에서 요셉을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디발은 그를 죽이지도 않고 오히려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왕궁 감옥에 가둡니다. 그리고는 죄수들을 돌보는 일을 하도록 합니다. 

죄수가 곧바로 교도소 엄무를 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보디발이 그를 믿었고 그를 보호하려고 감옥에 가두었다는 것입니다. /어때요? 제 소설이 그럴듯합니까?   

그래도 요셉의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무죄를 위해 얼마든지 변명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냥 견디어 냅니다. 그리고 그 감옥 속에서 간수를 도와 교도소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어느 날 그 감옥에 바로 왕의 신하, 둘이 감옥에 들어옵니다. 
하나는 술 맡은 관원장이고 또 하나는 떡 만드는 관원장입니다. 그 당시 왕의 음식을 다루는 사람은 왕의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 있기에 아주 신임하는 사람만을 책임자로 세우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어느 날 음식을 먹은 왕이 배탈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술 만드는 관원장과 떡 만드는 관원장이 문제가 있다하여 즉시 잡아 가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어 이 두 신하를 섬기는 일을 맡았던 요셉이 어느날 출근해 보니 두사람이 얼굴이 근심이 가득합니다. 하루 밤에 두 관원장이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이 그꿈을 듣고는 해몽을 해줍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셉이 해몽한대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떡 만드는 관원장은 처형당하고 술 맡은 관원장은 석방되어 복직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그 관원장에게 부탁을 합니다. 

창40:14을 보세요.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은 그 술 맡은 관원장이 출옥하고 나서 2년 동안 요셉을 기억도 못하고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어떻게 2년 동안 그토록 깜빡 잊어버릴까요? 여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대에도 요셉이 겪었던 시험은 우리에게도 찾아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인내시험을 어찌 극복해야 할까요?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받기를 축원합니다. 
  

1. 인내시험은 끝까지 참을 때 승리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요셉을 감옥에 들어가도록 허락했을까요? 
요셉이 짓지도 않은 죄에 대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정말 억울하잖습니까? 

이번 런던 올림픽에 우리나라 펜싱 선수가 ‘흐르지 않는 1초’ 때문에 억울하게 졌습니다. 결승행이 좌절 되었던 신아람 선수는 억울하니까 펑펑 울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아마도 더 억울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그렇게 억울하게 하셨을까요? 

우리는 억울함을 당할 때 눈물이 나고 슬퍼합니다. 그러나 억울함만 생각하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전혀 생각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향해 분명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면 왜 하나님은 요셉에게 억울하게 했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통치자 훈련을 위해서입니다. 

요셉은 아직 한 번도 정치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10년 정도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가정총무로서 살림살이는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경제는 좀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다루는 기술도 있어야 하고 애굽의 법과 정치구조, 그리고 정치인들의 의식을 알아야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요즘 대통령 후보감으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안00 교수에게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한번도 정치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국가를 다스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초보운전자에게 우리나라와 국민을 맡길 수 있냐는 것입니다.   

요셉도 젊은 청년입니다. 정치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원치 않는 감옥에 들어가서 애굽의 정치를 배웠습니다. 당시 애굽은 신처럼 받들어지는 왕과 귀족세력에 의해 통치되는 신정국가였습니다. 그런 나라에서 지방 귀족들과 중앙의 권력자들, 기득권층을 다스린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지내다 보니 정치를 자연히 배우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듯이 제 큰아들이 군복무 시절, 논산 훈련소로 입소했는데 법무부 소속으로 이첩되더니 경비 교도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수원 구치소에 배치되어 관리하며 경비를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대할 무렵에는 아들과 대화를 해보니 법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도소 안에서 각종 범죄자들을 다루다보니 어떤 범죄를 저질렀고 그 죄에 대한 형량이 얼마나 되는지 다 보고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대학공부를 의료공학을 전공했는데 마치 법대를 공부한 것처럼 법에 대해 배우고 제대를 했습니다.   

요셉도 같은 경우입니다. 감옥은 일종의 학습 터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30세에 하루아침에 국무총리가 되어서도 별 문제 없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회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도 도저히 이해 안 되는 환경 속에서 고통가운데 있습니까? 
그러면 견디어 내십시오. 하나님은 쓸데없이 우리를 골탕 먹이는 분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면 억울하고 겉으로 보면 미칠 것 같은 시간들이지만 지나고 보면 다 나를 들어 쓰시고자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를 훈련시키는 기간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모세가 애굽의 왕자로 지내다가 우연찮은 살인을 저질러 광야에 40년간 처박혀 양치기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때 모세는 자기 인생 이 광야에서 양들과 함께 끝날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때가 되니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는 그를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는 지도자로 쓰십니다.   

어떻게 모세는 그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간 지냈을까요? 이유는 그 미디안 광야는 모세에게 이미 학습된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40년이 낭비된 40년이 아닌 훈련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지리공부시간이었단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고난, 여러분의 역경도 나중에 여러분을 들어 쓰시기 위한 훈련인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때를 기다리는 훈련을 위해서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 술관원에게 2년 동안 요셉을 기억도 못하고 생각도 못하게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까마득하게 잊게 만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느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어느 때까지 인내해야 하나요? 정답은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입니다. 

아직도 고난이 계속되고, 아직도 내가 힘써 노력하고 기도하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안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하나님의 때를 잘 모릅니다. 그러니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인내하도록 훈련하고 계시는 것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일에는 인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때를 따라서 일하시는 분이시고 그래서 인내 없이는 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10:36절을 보세요.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하셨습니다. 

또 약1:4절을 보세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할렐루야! 
인내가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 약속하신 복을 받습니다. 또 인내가 있어야 하나님이 우리를 들어 쓰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인생성공에는 몇가지 비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비법의 첫째는 마라톤 원칙입니다. 

인생은 마라톤이기에 처음부터 과욕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표를 정하고 속도를 조절하면서 꾸준히 뛰는 것이 성공의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초반에 잘 뛴다고 그 선수가 1등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인내하며 달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둘째가 날씨의 원칙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비바람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맑은 날, 해가 환하게 뜨는 날도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바람치고 폭풍우 몰아친다고 나는 이제 죽었다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40년 기다렸습니다. 요셉은 13년 기다렸습니다. 여러분은 몇 년일 것 같습니까? 
그러기에 힘드십니까? 끝까지 인내하세요. 끝까지 참고 견디십시오. 
그러면 때가 되면 반드시 크게 들어 쓰시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2. 인내 시험에는 승리 비법이 있습니다. 

요셉 시험 중에 정말 힘든 것은 인내 시험인데 그 인내 시험을 어떻게 승리해야 하나요? 몇가지 중요한 비법이 있습니다.   

1) 임마누엘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21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3절도 보세요.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최고의 인내 비법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고난의 현장에 있습니까? 그러면 그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현장에서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을 보세요. 누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했나요? 
“애라~ 배고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하고 집에 갔던 사람은 다 자기 집에 밥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배고프고 지쳤어도 참고 인내하면서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은 기적을 체험 했습니다. 그리고 배도 부르고 만족함을 맛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육신의 정욕대로 이끌려 살지 말아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그 현장을 피하거나 도망치지 마시길 축원합니다. 

왜죠?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힘주시면 그를 의지하고 인내하며 견디시기를 축원합니다. 
  

2)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셉은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의 약속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제나 저제나 소식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2년 동안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래도 그는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인내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려운 역경이 찾아오거나 시련을 당할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은 남을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방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억울하기에 가장 하기 쉬운 것이 원망입니다. 그러나 원망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사람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께 쓰임을 받기 어렵습니다.   

가나안땅을 정탐한 정탐꾼 12명 중 10명은 그땅을 정복할 수 없다고 보고 합니다. 그소리를 들은 백성들은 하나님에게도 원망하고 모세에게도 원망했습니다. 

그러니 민14:27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이 그 소리를 듣고 진노하십니다.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그들이 뭐라 했을까요? “차리라 우리가 여기서 죽는 것이 낫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대로 원망 불평하던 10명은 광야에서 다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갈렙과 여호수아만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누구 때문에 누구 때문에 하면서 원망불평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억울하기로 말하면 그보다 더 억울한 원망불평하려면 그보다 원망스러울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 자기무죄를 입증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신뢰했습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에게 쓰라린 고통을 준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을 배신하고 절망케 하고 고통과 좌절을 준 사람이 있습니까? 

바리기는 그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용서 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이 여러분은 그 상황 속에서 꺼내어 들어 쓰십니다.   

3) 포기하지 말고 주만 바라봐야 합니다. 

사람이 극도로 고통스러우면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의 고통을 생각해 보세요. 그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이렇게 노예로 평생을 살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죄수로 갇히게 됩니다. 그러니 그 고통은 헤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를 안 합니다. 왜죠? 그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포기할 수도 없었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주님의 약속에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의 음성을 듣고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해야 합니다. 

여호수아1:9절에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이사야41: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을 붙잡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를 감옥에 그냥 두셨나요? 
그를 약속대로 통치자로 만드시려고 하신일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기막힌 방법으로 그는 하루아침에 총리가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총리가 되는 일에 요셉이 노력한 것은 무엇입니까? Nothing!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다 주관하셨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에게 꿈을 꾸게 하신 것도 하나님입니다. 신하가 2년 만에 요셉을 생각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요셉이 왕의 꿈을 분명하게 해석하게 한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를 들어 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억울한 누명쓰고 고통당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요셉처럼 인내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안내하면 감옥이라는 밑바닥에서 살았던 요셉이 일약 총리가 되었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때 반드시 크게 들어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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