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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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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 (시 23:1-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편에 대한 강해 설교로, 오늘은 2절의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는 말씀을 중심하고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시편 23편은 주기도문을 빼놓고는, 신. 구약 성경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말씀으로, 3천여 년을 두고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함께 이 시편을 애송해 왔다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시편 23편은 상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노래입니다. 1)이 시편은 감사의 노래입니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선함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2)이 시편은 소망의 노래입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3)헌신과 서원의 노래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렇게 이 시편은 감사와, 소망과, 헌신의 뜻이 담겨진 아름답기 그지없는 노래입니다. 그러나 이 시편 중에서도 2절 말씀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늘엔 흰 구름이 둥둥 떠 있고, 짙푸른 초원에서는 토실토실 살찐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는 모습, 그리고 목자에 의해서 양떼들이 맑고 시원한 물가로 인도되고 있는 모습은, 글자 그대로 아름답고 평화스런 전원 풍경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행복의 그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한 말씀 속에는, 공급자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신다는 뜻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목자가 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양들로 하여금 어떻게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자 출신의 목회자인 필립 캘러 목사님의 경험에 의하면, 양들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필요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눕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1)양들은 소심하기 때문에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눕지 않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2)양들은 무리 속에서 알력이나 마찰로부터 해방되지 않으면 눕지 않으려 한다고 합니다. 3)양들은 파리나 기생충으로부터 괴로움을 받는 경우 눕지 않으려 한다고 합니다. 4)양들은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는 동안에는 눕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들이 푸른 풀밭에서 휴식을 취하려면, 두려움과, 갈등과, 괴로움과, 배고픔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같은 양들의 불안과 염려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것은 오직 성실하고 근면한 목자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양들에게 굉장한 영향을 미치는 네 가지 요인을 하나씩 살펴볼 때, 우리는 양을 관리하는 주인의 역할이 왜 그처럼 크고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1. 양은 소심한 성격 때문에 두려움이 있으면 눕지 못한다.

양들은 아주 겁이 많고 잘 놀래기 때문에, 숲 속에서 별안간 한 마리의 토끼만 뛰쳐나와도, 앞을 다투며 우르르 도망가는 것이 보통이라고 합니다. 양 한 마리가 놀라 뛰어가면, 다른 양들은 저들을 놀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도망을 친다고 합니다. 필립 캘러 목사님의 말에 의하면, 어느 날 도시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목장을 방문했는데, 친구가 타고 온 승용차 문을 열자, 강아지가 쏜살같이 풀밭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주 조그만 애완용 강아지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200여 마리의 양들이 잔뜩 겁을 집어먹고, 기절초풍하여 달아나더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양은 소심하고 유순한 동물이기 때문에, 맹수들에 의해 많은 피해를 당합니다. 하루 밤사이에 맹수의 습격을 받아 수백 마리씩 물려 죽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이 없고 겁이 많은 양들이지만, 그들 곁에 목자가 있으면, 놀라지 않고 안심한다는 것입니다. 밤이고 낮이고 그들 곁에 목자가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양들은 그 목자를 의지하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시인 ‘오던’은 이 시대를 가리켜 ‘불안한 시대’라고 규정지었습니다. 그래서 환각제가 판을 치기도 하고,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고는 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식량문제, 자원문제, 공해문제, 핵전쟁의 위협 등으로 인한 파멸 문제는, 인류 공통적인 불안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정치 문제, 민생 문제, 주택 문제, 노사 문제, 청소년 문제, 도덕의 타락상 등등, 수많은 불안의 요인들이 있습니다. 한 때는 인류의 운명을 12시 5분전의 시한폭탄에 비교하고, 그 분침을 2분이나 앞당긴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공산권의 붕괴로 그 시간을 조금 늦춘 것으로 압니다.

우리는 하루 동안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하루 동안에도 알게 모르게, 수많은 위험과 재난이 우리 곁을 스쳐가는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질병의 위협은 왜 그리 많습니까? 이렇듯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는 불안한 인생들에게, 주님께서 목자가 되어 내 곁에 계신다는 사실보다, 더 마음 든든한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어떠한 불안, 어떠한 두려움과 공포일지라도, 주님께서 함께 해주실 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노래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하고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딤후 1:7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사, 늘 내 곁에 함께 하심을 확신하는 성도는, 다윗처럼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하게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 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2. 양떼 자체 내에 일어나는 알력과 경쟁이 있으면 눕지 못한다.

인간 세계와 마찬가지로, 모든 동물사회에도 심한 다툼과 경쟁이 있습니다. 닭들은 부리로 쪼아대고, 소들은 뿔로 들이받고, 양들은 머리로 밀어냅니다. 에스겔 34장을 보면, 양들의 마찰과 투쟁에 대하여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살진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로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 도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지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이처럼 양들의 집단 속에서도, 옆구리와 어깨로 혹은 머리와 뿔로 밀뜨리며, 싸움과 폭력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양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불안하게 되며, 체중이 줄고 성급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 있는 사실은 양떼들의 눈앞에 목자가 나타나면, 어느 사이에 싸움을 중단하고 경쟁심을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국가, 어떤 사회, 어떤 단체, 어떤 교회 안에도 크고 작든 자기주장을 위한 싸움과 경쟁이 있고, 우두머리 양이 되기 위해서, 출세하기 위해서, 다툼이 있고, 질투가 있고, 미움이 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게 됩니다. 끝없는 불만과 탐욕은 쉼을 얻지 못하고, 계속하여 서 있도록 하고 맙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 세계의 모든 잘못된 경쟁의식을 종식시켜 주실 분은,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 앞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때, 우리들의 이기주의적인 속물근성과 경쟁의식이 종결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앞에서 친교를 나누고, 주님을 진정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 거기에 평화가 있고, 만족이 있고, 참된 안식과 쉼이 있게 될 것입니다. 내 인간된 모든 두려움과 불안한 경쟁의식으로부터 해방될 때, 비로소 우리가 평안히 눕게 될 것입니다.

3. 양들이 해충들로부터 고통을 받을 경우 눕지 않는다.

양들은 특히 여름철에 코파리와, 말파리, 쇠파리, 진드기들에게 시달림을 받으면,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해충들로부터 고통을 받을 때, 양들은 누워서 쉴 수가 없습니다. 양들은 해충이 몸에 달라붙는 것을 막기 위하여, 발을 구르기도 하고, 머리를 흔들기도 하고, 몸을 재빠르게 움직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합니다. 오직 부지런한 목자만이 양들을 해충의 침해에서 막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목자는 양들에게 여러 가지 종류의 방충제를 사용합니다. 양들을 살충액 속에 집어넣고, 진드기가 붙은 털을 씻어 줍니다. 이렇게 목자가 양들을 해충으로부터 구하려고 하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따르게 됩니다. 목자는 날마다 양들의 행동을 세심히 주목하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양들에게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면, 지체하지 않고 구제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중에도 귀찮고,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에 부딪힐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오주님, 저로서는 이것을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저는 괴롭습니다. 저는 쉴 수 없습니다. 부디 제 일을 떠맡아 주시옵소서!” 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내 일을 떠맡아 주십니다. 내 특수한 문제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사용하시어, 우리를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서 성령은 흔히 기름으로 상징됩니다. 기름 같은 성령께서는 상하고, 찢기고, 거칠어진 심령을 어루만져서, 우리이게 위로와, 치료와, 구제를 가져다주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구원을 체험한 성도에게 라야, 비로소 강 같은 평화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4. 양들은 배고픔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눕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라는 말속에 이미 암시되어 있습니다. 배고파 허기지고 잘 먹지 못한 양은, 항상 일어서서 먹을 것을 찾아 이리 저리 헤매게 됩니다. 굶주린 양들은 불만이 많으며, 잘 자라지도 않고, 번식도 못해서, 쓸모없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푸른 풀밭은 성공적인 양 사육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어미 양이 풍부하고 맛있는 우유를 만들어 내고, 새끼 양들에게 영양가 많은 젖을 먹이려면, 비옥한 목초지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푸른 풀밭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푸른 풀밭은 말할 수 없는 수고와, 시간과, 정성의 산물인 것입니다. 다윗이 이 시편을 쓰고 어렸을 때 양을 쳤던 팔레스틴 지방은, 햇볕에 누렇게 탄 건조한 불모지입니다. (성지 이스라엘의 푸른 초장?)

그러므로 푸른 풀밭은 거친 돌과 바위를 제하고, 나무뿌리를 뽑아내고, 땅을 깊이 갈고, 흙에 거름을 주고, 거기에 목초를 심고, 물을 주고 한 결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피나는 수고와 노력을 해서 초원을 만들고, 그 푸른 풀밭에서 양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살찐 꼴을 마음껏 먹으며 노닐다가, 편안하게 누워서 쉬고, 새김질하는 것을 볼 때, 목자에게는 그보다 기쁘고 가슴 뿌듯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자에게서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돌과 같이 굳어버린 불신앙을 제거해 주시려고, 온갖 애를 다 쓰십니다. 주님께서는 햇볕에 굳어진 진흙과 같은 인간의 완악하고 오만한 마음을 분쇄하시려고,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불안과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주시려고 얼마나 애쓰시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 심령의 밭에, 자신의 고귀한 말씀의 씨를 뿌리고, 또 그 위에 성령의 이슬과 단비를 내려 주시므로, 우리의 심령이 물댄 동산처럼 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는 구절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양과 같은 동물의 몸은 약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물은 양의 체력과 원기와 생명력을 결정해 주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양들에게는 다량의 물이 필요한데, 물을 마실 수 있는 길도 목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물을 마시기에 가장 좋은 곳을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왜 우물이 싸움과 분쟁의 대상이 되었는지, 성지 순례를 통해서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물은 대체로 멀리 떨어져 있고, 그래서 목자들은 양들을 물가로 인도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수고를 하게 됩니다. 양들은 목이 마르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목을 축이기 위해 물을 찾으러 나갑니다. 혹 깨끗하고 맑은 물을 찾을 때도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 그렇지 못할 때가 허다합니다. 양들은 먹을 물을 찾다가, 기생충이나 여러 가지 병균으로 오염되어 있는 웅덩이에서 물을 마시게 되고, 그러고 나면 저들의 생명은 치명적이 되고 맙니다. 

육체적인 몸이 물을 필요로 하는 것 같이, 성경은 우리 영혼에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성령의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목마른 인간의 영혼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감으로써, 영적인 생명의 갈증이 완전히 풀어질 때, 참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종교와, 모든 우상숭배 행위, 모든 철학, 모든 미신 행위는, 사실 알고 보면,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목마른 갈증의 표현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참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우상이라는 더러운 구덩이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황금의 물을 마시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쾌락의 물을 마시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스포츠에 탐닉하기도 하고, 여행을 하고, 등산을 하고, 취미 생활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마약과, 알코올, 섹스에 미쳐 봅니다. 그러나 세상의 우물에서 아무리 물을 마셔도, 그러한 것으로는 결코 인간 영혼의 목마름이나 갈증은 해소될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했고, 어거스틴은 “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셨으므로, 우리 영혼이 당신의 품안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참된 안식이 없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양들이 먹을 수 있는 세 가지 주요 수원은 이슬과, 샘과, 개울이라고 합니다. 매일 아침 풀에 많은 이슬이 맺히는 경우, 양들은 물을 별로 마시지 않고도 몇 개월 동안 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목자는 이른 아침 양떼를 몰고 나가, 풀잎에 맺힌 신선하고 깨끗한 이슬을 먹게 합니다. 새벽녘 풀잎에 맺혀 있는 이슬들의 작은 물방울보다 아름답고 찬란하고 잔잔한 물가가 다시없다는 것입니다. 고요한 새벽녘에 이슬이 가득히 맺힌 풀잎을 만족하게 먹은 양들은, 하루 종일 그늘 밑에 누워서 기분 좋게 되새김질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귀중한 진리입니다. 불안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밝고 소망에 넘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과 은밀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전기를 보면, 저들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 성공적인 비결이, 매일 아침 주님과 교제하는 은밀한 시간에 있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잠만 쿨쿨 자는 어린이, 예수님 오시면 어떻게 하나. 깨어서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예수님, 예수님 뵈올 수 없지요.)

한 주간이 다 가고, 한 계절이 다 가고, 한 해가 다 가도록 잠만 쿨쿨 자는 성도들이여! 그래가지고 여러분의 믿음을 지킬 수 있을는지요? 이슬 같은 성령의 은혜를 받지 않고, 여러분의 영혼과 심령이 생명력이 약동하고 신선하고 새롭게 될 수 있겠는지요? 자연계에는 자연의 법칙이 있듯이, 영적인 세계에도 반드시 영적인 법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법칙을 따르지 않고, 예외적으로 주어지는 은혜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른 새벽 말씀과 기도와 묵상으로, 은밀하게 주님의 음성을 기다릴 때, 성령의 이슬이 맺혀 있는 잔잔한 물가로 인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는 다윗의 목자일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목자시요, 나의 목자십니다.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우리를 어느 곳으로 인도하십니까?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양들이 어떤 경우에 눕지 못한다고 했습니까? 1)소심한 성격 때문에 눕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과 공포에서 해방되어야만 눕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불안과 공포는, 근본적으로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제거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2)양들의 자체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마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인간 세계의 모든 갈등과, 잘못된 경쟁의식도, 우리가 종처럼 섬김의 생을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설 때에 비로소 종식될 수 있습니다. 3)기생충의 침해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양들을 기생충의 침해에서 구출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목자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모든 인생문제들에 대해서, 주님만이 내 특수한 문제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아시고, 또 능히 치료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4)배고픔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이시고, 그의 말씀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사모하여 그 앞에 나아가는 심령마다, 얼마든지 만족함과 배부름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또한 우리를 어느 곳으로 인도하십니까?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내 삶의 목적과 의미를 아시고, 영혼의 목마름과 갈증도 아시고, 해소시켜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아프리카 선교사가 있었는데, 원주민들에게 belive라는 동사를 설명할 수 없어서, “믿음이란 사람들이 푸른 풀밭에서 사지를 쭉 펴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지를 쭉 펴는 것이다.” 라고 설명해 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마치 양들이 푸른 풀밭에 누워 사지를 쭉 펴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편안하게 사지를 쭉 펴시고 쉼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의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로의 인도하시는 은혜가, 여러분의 평생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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