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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지극히 큰 상급 (창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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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극히 큰 상급(창세기 15:1-6)

어제 우리나라 올림픽 축구 대표팀이 8강전에서 올림픽 개최국인 영국 축구 대표팀을 이겨  기분이 좋으셨지요?   4강전에서 브라질을 만났으니 기대를 가지고 응원할 기회가 또 생겨 삶의 보람(?)을 가지고 사는 분들이 더 많아진 듯 합니다.   올림픽 응원 열심히 하고 있지요?   지난 주간 목회자 수련회 기간 동안에 인터넷을 통해 틈틈이 올림픽 한국대표 결과를 보았고 가봉과의 축구 경기는 정규 프로그램을 멈추고 함께 모여 큰 스크린을 보며 응원했습니다.  

경기를 마친 모든 선수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수고를 했으니 메달과 관계 없이 모두 박수를 받아야 하지만 시상대에 서는 선수의 기쁨이 특별합니다.   수고한 사람에게 그에 마땅한 상을 주는 것은 선수의 기량 향상과 사기를 돋우는데 도움이 되고 함께 응원한 사람에게도 즐거움을 줍니다.   국가간의 메달 경쟁이 아니라 국적을 초월하여 멋진 경기를 펼친 선수 모두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격려를 보내주며 올림픽 경기를 함께 즐기는 마음의 여유도 필요합니다.   

올림픽 심판들은 가끔 편파적인 오심을 하여 상받을 사람을 탈락시켜 선수들과 응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고 분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실수가 없이 정확한 판단으로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눈가림과 거짓으로 상을 욕심내는 사람이 아니라 규칙을 따라 깨끗한 플레이를 펼친 모든 사람에게 상을 주시는 공평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경주를 다합시다.  오늘 읽은 말씀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상급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동맹한 왕들을 기습하여 물리친 후 조카 롯을 구출하고 소돔 성의 모든 포로들과 빼앗긴 물건들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게 사람은 나에게 돌려주고 물건은 당신이 다 가져도 좋다고 했습니다.   소돔 왕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수에게 상급을 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소돔 왕으로부터 이런 상급을 제안받은  아브라함이 보인 믿음의 행동이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줍니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당신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주었다고 말하고 다닐까 하여 당신의 것은 실 한오라기나 신발끈이라도 받지 않겠다’고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거절한 소돔왕의 상급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는 전에도 자세히 말씀드렸으니 간단히 소개합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왕에게 받는 상급은 승전하고 돌아온 장수로서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소돔 왕의 속셈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냉정하게 거절했습니다.  소돔 왕이 주는 것은 정당한 보상, 상급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자기 손에 넣으려는 유혹의 미끼와 뇌물에 불과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왕의 상급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는 소돔 왕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소돔 왕이 주는 몰질과 명예는 갈대아 우르에서 열심히 살았어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으로 이사온 것이 더 많은 물질과 더 높은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예수를 믿은 것이 전보다 더 많은 물질과 명예를 얻기 위함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알고 있던 아브라함은 소돔 왕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였고 사람의 손에 붙잡히기 보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살고자 했습니다.  

상이라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상급은 사람을 불의의 도구가 되도록 옭아매고 억압하는 족쇄가 됩니다.   예를 들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불의의 삯, 불의의 상급을 받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일본의 앞잡이 노릇하며 내선일체를 부르짖고 신사참배에 앞장서며 태평양 침략 전쟁을 미화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의 하수인이 되어 침략전쟁을 옹호하고 젊은이들을 전쟁에 참가하도록 앞장서 독려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왕에게 훈장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것이 가문의 명예와 자랑이 될 수 있을까요?   

상도 상 나름입니다.   그것을 받으면 그때부터 죄의 노예로 전락하는 불의의 상급이 있습니다.   그런 상급이 눈앞에 보이거든 단호하게 거절하는 용기를 가지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은 아쉬울 수 있지만 우리의 영혼을 죄악에 팔아 넘기는 순간의 유혹을 이길 때 더 좋은 것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상급을 기대합시다.   그 상급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극히 큰 상급이란 그 어떤 보상이나 댓가와 비교할 수 없는 선물이며 하나님이 곧 상급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하나님은 후손을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부르심을 받고 고향과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난 아브라함에게 가장 큰 소원은 상속자를 얻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온지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들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습니입니.   그렇다고 아브라함이 믿음을 버린 것은 아니었고 다만 약속을 기다리다 지쳐있는 중이다.   아브라함이 소돔 왕에게 보인 당당한 태도를 보면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의뢰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제물로 드리기 전에도 아브라함은 상당히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이 주는 상급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던 어느날 이상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들려왔습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아브라함이 소돔 왕의 상급을 거절한 것은 소돔 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었으니 보통 강심장으로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소돔 왕은 가나안의 터주대감이고 아브라함은 그 땅에 잠시 붙여사는 나그네에 불과했습니다.   소돔 왕이 마음을 나쁘게 먹고 군사를 동원하여 아브라함을 공격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돌라오멜의 동맹군이 복수를 하려고 다시 쳐들어올 수도 있었으니 소돔 왕이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너의 뒤를 봐줄테니 내 그늘 아래 살면서 서로 동업하며 살자는 제안을 거절하여 소돔 왕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 과연 잘한 일일까 은근히 염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대하며 살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환경과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마음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방패가 되겠다’는 말씀이 들려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네가 지금 그돌라오멜의 보복을 두려워하느냐?   혹시 소돔 왕이 악심을 품고 너를 해칠까 두려우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의 방패가 되겠다.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라.   네가 소돔 왕의 상급을 거절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내가 그보다 더 큰 것으로 보상하겠다.   나를 봐라. 내가 바로 너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아브라함은 마음이 답답하고 궁금하여 질문하였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주시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 저는 상속자가 없습니다.   저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주신다 해도 남겨줄 아들이 없으니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씨를 주지 않으셨으니 내 집에서 내가 키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나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나의 상급이 되어주신다는 말씀은 고맙지만 솔직히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뜻 아닐까요?    

어려움을 만났을 때 누군가 곁에서 이런 저런 말로 위로합니다.   그 말들이 전혀 위로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요즘 생활이 어렵지요?  힘든데 어떻게 사십니까?   고생스럽지만 조금만 참으세요.   곧 좋은 날이 오고 모든 일이 잘 되겠지요’ 하면 말은 고맙지만 실제로는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위로와 함께 작은 물질이라도 나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위로가 실제로 전해집니다.   저 사람도 어려운데 나에게 이런 사랑을 나누는구나 하는 고마움이 가슴으로 전달되고 피부로 느껴지면서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없으면 어떠냐?  아들보다 더 좋은 내가 있지 않느냐?’ 하고 말았다면 충분한 위로가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속마음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대를 이어 가문을 세워갈 아들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 하십니다.   이전에도 약속하셨지만 이번에 다시 확인하시고 강조하십니다.   ‘엘리에셀은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네 몸에서 날 사람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니라’ 하시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더니 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하시고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리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듣고 ‘알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믿습니다’ 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믿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약속을 기다리다 지친 아브라함이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는 약함도 보였지만 아내 사라의 몸으로부터 이삭을 주심으로 약속의 씨를 주셨고 그를 통해 가문을 세우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이런 상급이 되십니다.   믿음으로 기다리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사람을 의롭다 여기시고 구원을 선물로 주셨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할 때 ‘주셨다’는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표현입니까?   주셨다는 말은 사랑하는 아들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도록 희생제물로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높고높은 왕처럼 군림하여 온갖 존경과 영광을 받으며 살도록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주셨다는 말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지난 주간 목회자 가족 수련회에 마지막 날 아침 큐티 시간에 내가 만난 예수님이라는 주제로 나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는 대학을 다니던 시절 꿈속에서 깨닫게 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군복무 중에 비로소 목사가 되겠다는 소명을 받고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생활을 하며 열심히 신앙생활하던 어느날 꿈속에서 십자가에 달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꿈이었지만 그 십자가의 아픔과 두려움이 너무 심하여 사람들에게 나를 다시 내려달라 애원하였습니다.   그때 저를 바라보던 육신의 아버지는 아들의 고통을 더 바라보지 못하고 측은히 여기며 저를 십자가에서 내려놓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저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흐느끼며 울었고 그러다 잠이 깨었는데 그 부끄러운 마음과 흐느낌이 맑은 정신 속에서 그대로 계속되었습니다.   자다가 일어나 무릎을 꿇고 엎어져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은혜를 감사하며 기도하였던 그 밤에 저는 예수님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내가 내 열심으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대신 지셨기 때문에 내가 주님과 함께 거기 달릴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목사의 아들로 자라며 한 번도 예수님을 거절하거나 믿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그날 십자가의 꿈으로 가르쳐 주신 주님의 사랑은 나와 예수님의 관계를 새롭게 하였습니다.   

세상의 어떤 아버지가 십자가 형틀에서 고통 당하는 자식을 모르는체 그냥 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 형틀에서 잔인한 죽음을 맛볼 때 세상의 죄인들을 위해 모르는체 하고 침묵하셨습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며 고통 중에 부르짖으실 때도 못들은체 하셨고 ‘내 영혼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숨을 거두실 때까지 침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다면 당장에라도 내려주실 수 있었지만 우리 죄인들을 위해 그냥 버려두셨습니다.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심은 나를 너에게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극히 귀한 아들을 너에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보다 더 큰 상급을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이런 복음송가 가사가 있지요.  

‘주님 한 분 만으로 나는 만족해 나의 모든 것 되신 주님 찬양해 나의 영원한 생명 되신 예수님 목소리 높여 찬양해 주님의 크신 사랑 찬양해 나의 힘과 능력이 되신 주 나의 모든 삶 변화되었네 크신 주의 사랑 찬양해’   정말 그렇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렇게 감사하며 나의 모든 것 되신 주님을 모시고 날마다 기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싸움에서 이기고 조카 롯과 사람들을 구출하여 돌아왔을 때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마중나와 영접하며 축복하였습니다.   그때 멜기세덱의 손에 들린 떡과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나눠주신 성찬을 생각나게 합니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보내신 위로자였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치열한 영적전쟁에서 곤하여 지친 우리 영혼들을 위로하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떡으로 오셨고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반석에서 나는 생수로 오셨습니다.   오늘도 성찬예식에 동참하여 주님이 공급하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고 마심으로 힘을 얻어 험하고 거친 세상에서 승리하며 주님과 함께 승전가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상급으로 받는 선수들도 대단하고 훌륭하지만 믿음의 경주에서 선한 싸움을 열심히 싸우고 달려갈 길을 끝까지 달리는 여러분도 멋진 선수들입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 오실 때 의의 면류관을 상으로 주실 것을 믿고 오늘도 주어진 달리기를 열심히 달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수 많은 은혜와 선물들을 믿음으로 받고 또 감사함으로 삽시다.   무엇보다 크고 위대한 상급은 곧 하나님 자신이심을 기억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말씀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복된 한 주간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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