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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 (웨슬리 10) (막 1:15, 롬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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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 (웨슬리 10) (막 1:15, 롬 14:17)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장 15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 14장 17절>

할렐루야!
더운 여름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건강하게 평안하게 만난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활동도 많고 사람들의 불쾌지수도 높아서
사건과 사고가 많은 때가 요즘입니다.
건강하게 … 무사하게 만난 것은 진짜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 만남, 감사합니다.
옆의 분과 인사합니다.
“건강하게 뵙게 되어 감사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존 웨슬리 설교 시리즈 열 번째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 Th Way to the Kingdom)>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본문 마가복음 1장 15절과 로마서 14장 17절은
존 웨슬리 목사님이 가장 많이 설교했던 본문입니다.
특별히 이 설교는 1742년에 
아버지 묘에서 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마 웨슬리 목사님은 
죽음 앞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다른 복음서와 다르게>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파하시는 장면,
즉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생애(公生涯)란 예수님이 공식적으로 사역을 하신 기간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1장 1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하였습니다.

예수님은
“…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고 외치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첫 발걸음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막1:14)’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데 사용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율법에 대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문화적인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는 갈등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분열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개종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인의 음식 규례나 절기를 지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행 15:1) 고 하면서
율법 준수를 강요하였습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1},
Abingdon Press, 1984, p.218.]

그러나 사도바울은 참된 신앙은 어떤 음식을 제한하거나
어떤 의식을 엄수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전적인 본질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화평과 기쁨”(롬14:7)에 있는 것입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1},
Abingdon Press, 1984, p.218.]

물론 형식이나 의식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웨슬리 목사님도 형식이나 의식이 진실한 종교를 세우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면 그것이 좋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런 것이 인간의 연약함을 도울 수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 이상의 것을 주장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미국 동부에 가면 대부분의 교회의 성도들이 정장을 입고 
예배드리고, 목사님들도 가운을 입고 예배드립니다.
미국 서부에 가면 교인들이 대부분 셔츠차림이고, 
목사님들도 샌들을 신고 셔츠 차림으로 설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부에 있는 교회는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서부에 있는 교회는 거룩하지 않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앉아 예배드리지만
아프리카에 가면 찬송 부를 때 뛰며 춤추며 찬송합니다.
보통 예배를 3시간 정도 드립니다.
어떤 한 가지를 옳다 하고 
다른 것을 틀렸다고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겉으로는 모든 율법을 다 지켜 경건하게 보여도 
속마음이 그 행위에 녹아있지 않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합니다. 
외형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외형(form)보다 중요한 것이 기능(function)입니다.

요즘 한국 교회 중에도 
더운 여름이니 편안한 옷차림으로 예배드려도 된다고 하면서
반바지나 민소매 등도 괜찮다고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교회가 잘못되었다고 하면 안됩니다.
다만 저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저는 교회에 올 때, 예배드릴 때 
정장을 입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예를 갖추어 절하는 것입니다.
단정하게 격을 갖추어 절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정한 것이 더 좋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입니다. 
무례함이 없게 예를 갖추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너무 지나친 형식에 얽매이면, 
외형에 얽매이면 안됩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1},
Abingdon Press, 1984, p.219.]

이사야 1장 11~14절이 그것을 잘 말해줍니다.

11 … 나는 너희가 바친 이 모든 제물을 바라지 않는다. 
이제는 너희의 숫양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이 지겹다. 
수송아지와 양과 염소의 피도 반갑지 않다.

12 너희는 나를 만나러 오지만,
누가 너희더러 이렇게 들락날락하며 내 마당만 밟으라고 했느냐?

13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너희가 태우는 향이 역겹다. 
너희가 초하루 축제일과 안식일과 특별 절기에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고, 거룩한 모임에 모여서 악한 짓을 하는 것도 
견딜 수 없다.

14 정말로 나는 너희의 초하루 축제일과 특별 절기들이 역겹다. 
그것들은 오히려 내게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 
나는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너무 지쳤다. (사 1:11~14, 쉬운성경)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없는 제사를 
받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저주하시며
25 …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을 깨끗하게 하지만 
그 안에는 탐욕과 방종이 가득 차 있다.
27 … 너희는 하얗게 칠한 무덤과 같다. 
겉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안은 시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 (마 23:25, 27 쉬운성경)
라고 하셨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그들을 비판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해야 하는 법’과 ‘금해야 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그것을 지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라는 더 큰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옷이 없는 사람에게 옷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중의 한 사람은 진정으로 신앙적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전혀 신앙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해서 선을 행하는 반면에
다른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선입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1},
Abingdon Press, 1984, p.219~220.]

영국의 찰스 스펄전(Charles H. Spurgeon, 1834-1892) 목사님은 
위선적 신앙을 
“비 없는 구름과 같고 … 바짝 말라버린 개울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기도하고, 성경 읽고,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막을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마지막 사탄의 무기는 외식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의 껍데기만 남게 하고 
내용은 잃어버리게 하는 전략입니다. 

외식하게 만드는 사탄의 공격을 당하게 되면
신앙의 열매가 없어집니다. 기쁨이 사라집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하니 기쁨이 있겠습니까?

이 더운 날씨에 주방에 들어가 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한다면 얼마나 지겹겠습니까.
이 더위에 주차안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사람에게 보이고 싶어하는 신앙생활이 문제입니다. 
실제로 많은 신앙인들이 
‘무엇이 되는 것’을 원하기보다 
‘어떻게 보여 지는가’에 더 많이 신경을 쓰고 삽니다. 
행복하게 되기보다는 행복하게 보이기를 원하고 
선하게 되기보다는 선하게 보이기를 더 원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심리학 용어 중에 
‘가면현상(假面現象-imposter phenomenon)’이 있습니다.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 대기업 중역같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가면에 가려진 자신의 진짜 모습이 드러날지 모른다는 
망상에 시달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미국에서 출판된 책《가면현상》(폴린 클라인스 저)에 의하면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의 70% 정도가 
가면현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진짜 내 모습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어떡할까 불안해합니다.

몇몇 목사님들과 쉬기 위해, 쉽게 말해 놀러갔습니다.
목사님 한 분이 전화를 받으면서 
“지금 세미나 중입니다. 다음에 전화 드리겠습니다.”하며
끊으시는 것입니다. 다 함께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 세미나야? 놀잖아”라고 했더니
아니라고 우린 지금 세미나 중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럴 필요 있나요?
목사도 쉴 때는 쉬는 것이지 … 
쉰다고, 논다고 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요즘 제가 바빠서 못했는데 …
우리 교회 부목사님들이 
우리 교회에 부임하여 온지 1년이 넘으면 성지순례를 보냅니다.
그리고 3년이 되면 미국의 성장하는 교회를 탐방하고, 
제가 다녔던 학교 그리고 유명한 학교를 탐방하기 위해 
제가 직접 안내하여 갑니다.

몇 년 전에 출국하기 전 주일에 제가 광고하면서 
“내일부터 성장하는 교회를 탐방하기 위해 미국에 갑니다. 
유명한 대학도 갈 것이고, 
틈틈이 관광도 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배 후에 부목사님 한 분이 제게 
“목사님, 관광지 간다는 얘기는 하지 마시지요”라고 하더군요.
관광지에 간다고 해야 합니다. 
요즘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아는 사람을 만납니다.
기둥교회 성도들도 가는 곳마다 만납니다.
아무려면 교회나 대학만 탐방합니까? 관광지도 가지 ….

솔직한 것이 좋은 것입니다. 
가면을 쓰면 불편합니다.
신앙생활 하는 여러분, 영적인 가면을 벗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에 
“…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벧전 2:1~2)
는 말씀을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국어사전에 보면 ‘의’(義, righteousness)란
‘사람으로서 지키고 행해야 할 바른 도리’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의(義)를 다양한 개념으로 설명해서
‘의가 무엇이다’라고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지키고 행해야 할 것을 
‘하나님과 사람사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찾을 수 있습니다. 

즉, >> 의(義)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22:37-40)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마22:40)’이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시 73:25)
라고 고백할 때 하나님 나라가 이뤄집니다. 

또한, >> 이웃을 자신의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의(義)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이웃이란 … 모든 사람의 아들, 모든 인간,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영혼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결코 육신으로 본 일이 없는 사람, 얼굴로나 
이름으로나 알지 못하는 사람까지도 포함합니다. 
당신에게 나쁜 감정만 있고 감사의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즉 여전히 나쁜 뜻으로 당신을 이용하고 
박해하는 사람도 포함하는 것으로서 
당신은 그를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웨슬리학회편, <웨슬리 설교 전집 1-‘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 
대한기독교서회, 2006, p.138.] 

이 가르침에 비교할 때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좁은 범위의 이웃들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도 알게 됩니다.
저도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이라 해도 
내 몸 같이 사랑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고 하신 것을 보면
원수도 우리의 이웃에 포함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까지도 그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이라는 것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원수 사랑하기 솔직히 어렵습니다.
말하고 듣기는 쉬워도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순종해야(이를 악물고라도 …)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습니다. 

>>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웃 사랑하는 것 
그리고 평화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주시는 것이고 
사람의 모든 지각을 초월한 평화입니다. (빌4:7)
‘그것은 영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므로(고전2:14)’
세상의 모든 일을 아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평화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모든 의심과 불안을 추방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괴로움을 주는 모든 공포, 
즉, 하나님의 진노의 공포, 지옥의 공포, 
악마의 공포, 죽음의 공포 … 등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물리칩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1},
Abingdon Press, 1984, p.223.]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히브리어로는 ‘샬롬’, 
헬라어로‘에이레네’라고 합니다. 
이 뜻은 <완전함, 온전함, 하나됨, 조화>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영적으로 온전하고, 하나가 되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조화를 이루는 것이 평화입니다. 
그런 상태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어렵지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르게 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험한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를 공포에 빠뜨리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영국의 한 도시에서‘평화’를 주제로 한 미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최우수작품은 무섭게 떨어지는 폭포 그림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평화와는 아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단순한 폭포였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떨어지는 폭포의 중간쯤에 불쑥 튀어나온 바위가 있고, 
바위 위에는 어미 새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었습니다. 

아기 새들은 세찬 물줄기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어미 새의 입에 물린 먹이만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평화입니다.
우리 삶도 세찬 물줄기의 연속입니다. 

믿는 우리가 험한 세상에서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내 생각과 판단 의지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세상 조건 때문에 평안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 함께 찬양합니다. <찬송가 413장>

1.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2.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

평화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평화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희락(喜樂)’즉 기쁨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을 
우리 마음속에서 만드는 것은 성령님입니다. 
골로새서 1장 14절에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4) 한 것처럼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한 분은 예수님이지만, 
하나님의 기쁨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서도
성령의 열매에 ‘희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세상적인 기쁨이나 향락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고, 성령님이 그것을 증거하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32편 1절에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 했습니다.

‘복 되도다’,‘행복하다’는 고백을 하게 만드시는 분은 
‘성령’입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쁨을
우리의 영혼 속에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1},
Abingdon Press, 1984, p.223~224.]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거울

이제 우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의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은혜롭고 평안해야 합니다.
평안을 깨는 일은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평안을 깨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기업에서 제품을 홍보하는 행사를 하거나
정부에서 국제대회 같은 것을 치룰 때 ‘홍보대사’를 둡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하늘의 대사로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해야 할 홍보대사입니다. 

홍보대사는 아무나 뽑지 않습니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기본이고,
행사의 이미지와 맞는 잘 알려진 사람을 
홍보대사로 임명합니다. 
일단 잘생기고, 예쁘고, 착해야 합니다.
호감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늘나라의 홍보대사가 되었습니다.
옆의 분 보세요. 잘생기고, 예쁘고 멋지죠?
여러분만큼 훌륭한 홍보대사는 찾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홍보대사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쳐다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꺼이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예수님은 
“…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 하셨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얻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간직한 우리들은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고 하신 예수님을 믿고
세상을 향해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구원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혹시 오늘 말씀을 듣는 분들 중에
아직도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하늘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위에 아직도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도록 전해야 합니다. 
회개란 먼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인간은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본성의 부패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을 거스립니다. 
또한 이해력의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1},
Abingdon Press, 1984, p.225.]

그 결과는, 죄의 값(삯)은 “사망”입니다.(롬6:23)
그 사망은 시간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 사망은‘지옥’이라는 영원한 파멸의 벌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 형벌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할 길을 내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믿는 것 … 그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딤전 1:15) 하였고,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했습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그 믿는 사람의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안심하라. 네 죄가 사해졌다.”(마9:2)고 말씀하시자마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롬14:17)을 얻게 됩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1},
Abingdon Press, 1984, p.229~230.]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천국 가는 길,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일평생 ‘사랑과 평화와 기쁨’으로 
하나님 나라에 거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하며 사는 
하늘 백성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하늘백성으로 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하늘백성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믿음의 승리자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홍보대사로서의 사명도 
잘 감당하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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