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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강하고 담대하려면 (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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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담대하려면 (수 1:1-9)

제가 어렸을 때 형이 있는 친구가 제일 부러웠을 때가 언제였느냐면 같이 운동하는 것을 볼 때였습니다. 운동이라고 해봤자 골목에서 야구공을 던지고 받는 것에 불과하지만 처음 야구공을 캐치할 때 겁이 납니다. 얼굴에 맞을까봐. 

그런데 제 친구에겐 처음에는 무섭지만 겁을 내지 말라고 말해줄 형이 있었어요. 저는 그것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제 기억에는 제가 살아오면서 저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느니 뭐를 열심히 하라느니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많았지만 겁을 내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까. 담대함이라는 것은 제가 스스로 배워야했던 것이지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자라면서 저에게 담대함의 본을 보여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외로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담대함의 본보기는 제 아버님이 수술을 하시는 날 눈이 많이 오는데 어머님이 토론토공항에 저를 마중 나오셔서 눈 쌓인 길을 운전해서 아버님 병원까지 가서 아버님의 몸에 손을 얹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저의 어머님이 참 용감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건 정말 담대함의 본보기입니다. 위기의 순간이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이고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와 같은 모범생의 특징이 무엇이냐면 누가 해본 적이 있는가를 먼저 물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 해봤냐, 전례가 있냐, 남은 어떻게 했느냐, 남들은 하고 있느냐, 이걸 먼저 물어봅니다. 남들이 해보지 않은 것을 하기 보다는 누가 어떻게 했는지를 먼저 알아보고 나도 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현명해보이지만 담대하지 못한 것이고 창의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그것과 똑같은 일을 당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새로운 일을 접하는 것이지 똑같은 일을 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은 어떻게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지금 이 상황과 똑같은 상황을 만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늘 새로운 길이지 남이 가본 적이 있는 길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새로 찾아야지, 누구를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불경기, 이것은 남의 나라를 벤치마킹해서 풀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과거를 되돌아봄으로 풀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지금의 해결책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의 교육문제, 이것도 과거를 돌아봐서 해결책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고 남의 나라를 흉내 냄으로 해법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해법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문제도 마찬가지에요. 한반도의 문제는 독일을 흉내 낸다고 되는 게 아니고 과거의 역사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고 남이 해보지 못한 우리만의 해법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아무도 해본 적이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겁이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겁이 나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겁이 나지 않는다면 담대함이라는 말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무엇을 주문합니까. 주로 잘해라, 열심히 해라, 바르게 하라, 이런 주문을 할지언정, 겁내지 마라, 용기를 내라, 마음을 강하게 하라, 이런 주문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아내 되신 분들, 남편에게 ‘용감하세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몇 번이나 있습니까. ‘일찍 들어오세요.’ 요즘은 ‘식사하고 들어오세요.’ 이런 말을 할지언정 ‘여보, 힘내세요. 내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니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런 말을 하는 아내가 있다면 상 줘야 됩니다. 자녀에게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하는 부모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영화 <맨 온 파이어>를 보면 덴절 워싱턴이 멕시코에서 부잣집 딸 다코타 패닝의 경호원을 하면서 (다코타 패닝은 초등학생이에요) 그냥 경호만 하는 게 아니고 수영 코칭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시합을 시작할 때 총 소리에 다코타 패닝이 겁을 먹는 것을 보고 덴절 워싱턴이 총소리에 겁을 내지 말라고 가르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대단한 인생의 교육입니다. 겁을 내지 않는 법을 가르쳐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드문 일이고 이건 큰 축복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는데 종교마다 천편일률적으로 말하는 것은 착하게 살아라, 서로 도우면서 살아라, 친절을 베풀면서 살아라, 나이스해라, 악한 마음을 품지 마라, 가난한 사람들 도와줘라, 겸손해라, 이런 말을 가르치지만 그러나 성경이 다른 어떤 교훈보다도 자주 강조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겁내지 말고 담대하라’는 사실이에요. 

그 사실을 아십니까. 이건 의외에요.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모두 365번 등장한다고 합니다. 일 년 365일, 하루에 한 번씩 우리에게 겁내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강조하고 되풀이하는 말씀이 ‘두려워 말라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주 말씀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가 왜 두려워하느냐 왜 믿음이 없느냐’ 예수님은 믿음의 반대를 의심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두려움이라고 보셨어요. 두려워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이고 믿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보셨어요. 그래서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어찌하여 너희에게 믿음이 없느냐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교훈 중의 하나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신 다음에 제자들이 두고두고 마음속에 기억했던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용기, 담대함, 이것이 있었기 때문에 핍박과 환란과 시련을 무릅쓰고 제자들은 그야말로 땅 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인 능력은 결국은 담대함을 통하여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민은 착하게 살면서 담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에요. 그 사실을 느끼십니까. 남에게 착하고 나이스하고 친절하게 하려고 하다보면 할 말도 못하고 또 싫은 척도 못하고 감정 표현도 못하고 하라는 대로 따라 해야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강하고 담대하기 힘든 이유는 내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남에게 친절해야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 나에게 비판적인 말을 하고 나를 흉보고 신앙을 빌미로 나를 정죄할 때 제일 위축됩니다. 결정타는 무엇이냐. ‘교회 다니는 사람이 왜 저래?’ 이 말 한 마디에 우리는 즉사합니다. 용기고 나발이고 다 날아가 버립니다. 땅에 벌벌 깁니다. 목사들도 ‘저 사람, 어느 교회 목사래.’ 이 말 한마디면 목사들 두 손 들고 항복합니다. 

마귀는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이 방법을 즐겨 사용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무력화하는지 잘 압니다. 사실 그런 말은 하면 안 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왜 저러냐. 그럼 왜 당신은 교회 안 다니면서 나에게 그러느냐. 같이 교회에 다니면서 그런 말을 한다면 받아들이겠는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달라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도 다니든가, 당신이 다니지 않으면 말을 말든가, 그리고 그 사람 자신의 자체에 대해서 말한다면 받아들이겠지만 왜 그 사람의 신앙을 빌미로 신앙을 들먹이면서 그 사람을 비판하느냐. 비판하려면 그 사람 자체, 그 사람의 인격, 그 사람의 성격, 생각, 의견, 방법, 이것을 비판해야지 왜 교회 다닌다는 것을 빌미로 그 사람의 입을 막으려고 하냐는 것입니다. 그건 비겁한 방법이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알 것은 우리가 남의 말과 평가에 좌우되는 한 담대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진짜 담대함은 무엇이냐. 욕을 먹든 비난을 받든 마음이 괴롭든 속이 상하든 상황이 힘들든 심지어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순간에라도 자기의 소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입니다. 배짱입니다, 배짱. 이것을 깡이라고 합니다. 우리사회에서 깡패들만이 정말로 담대한 사람이라면 나머지 사람들은 겁쟁이라는 뜻입니까. 그건 우리가 그동안 담대함이라는 뜻을 모르고 담대함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회의 정말로 용기 있는 사람은 깡패들뿐이고 나머지는 겁쟁이라면 그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들이 배짱이 있기가 힘든 이유는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뽑아줄 때는 언제고 욕할 때는 언제입니까. 변덕스러운 국민입니다. 변덕스러운 국민을 만족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정말로 강력한 지도자는 민주주의국가보다는 비민주주의 국가에 더 많이 등장합니다. 

쿠바의 카스트로 같은 사람, 러시아의 푸틴 같은 사람은 배짱 있는 지도자입니다. 그래서 국가의 지도자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됩니다. 첫째는 욕을 먹든 사람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자신의 소신껏 나라를 이끌고 평가를 역사에 맡기든가, 아니면 사람들의 평가에 좌우돼서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우유부단한 지도자가 되든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약점이에요. 

모세의 입장을 한번 상상해 봅시다. 모세는 선지자요 민족의 지도자이지요. 그는 정말로 리더입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왔습니다. 사백년의 종살이를 청산하고 이 많은 백성을 이끌고 홍해바다 앞까지 왔습니다. 앞에는 넘실거리는 홍해바다가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말과 병거를 타고 쫓아오고 있습니다. 독안에 든 쥐라는 말이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아우성을 칩니다. 기도를 해도 부족할 판에 백성들이 모세에게 아우성치기를 ‘애굽에 묘자리가 없어서 우리를 여기로 인도하여 죽게 하느냐’ 모세의 입장을 상상해 봅시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가르쳐준 적이 없습니다. 이건 교과서에 없는 것입니다. 전례를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건 처음 당하는 상황입니다 모세가 그 부친에게 무엇을 배웠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의 부친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고 모세가 지금까지 어떤 스승을 두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스승들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고 모세에게는 형이 있습니다. 아론. 그러나 그 형도 경험하지 못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 지금까지 책을 읽은 것, 지금까지 영화를 본 것, 지금까지 사람들과 대화한 것이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순간이에요. 남이 해보지 못한 일을 모세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남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보고 흉내 내려고 했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권하는 것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나 못하겠다, 나 그만두겠다, 너무 어렵다, 이것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모세가 그렇게 했다면 모세만 망하는 게 아니고 그를 믿고 따라 나왔던 모든 백성이 망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섭리가 수포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유일한 옵션은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네 지팡이를 바다 향하여 내밀어라’ 그대로 했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홍해 바다가 갈라지면서 길이 생겼어요. 길이 없었던 곳에 길이 생겼어요. 믿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길이 없었던 곳에 길이 생기는 것을 경험해야 됩니다. 길이 이미 있는 것은 믿음이 아니에요. 길이 없었던 곳에 하나님이 길을 예비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 그게 믿음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그 길을 따라 홍해를 건너지 않았습니까. 

모세는 죽었다가 살아났어요.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설적인 인물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배짱입니다. 이게 정말 소위 깡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착하기만 해서는 이러한 배짱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아우성을 칠 때 착한 사람은 할 바를 모릅니다. 그럴 때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배짱이 있어야 됩니다. 담대해야 됩니다. 사람들의 말에 좌우되지 않고 오로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착할 것만을 가르치면 안 되고 배짱을 갖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배짱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뜻을 100 경험하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건 우리의 인격의 부족도 아니고 거룩함의 부족도 아니고 담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을 100 경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항상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면 실망합니다. 

인격이든 거룩함이든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는 항상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100 경험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되는데 그 믿음은 배짱이라는 담대함이라는 것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것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어마어마합니다. 제가 전에 한번 말씀드린 것처럼 싸움에서 이기는 비결은 힘이 센 것도 아니고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투지가 있는 것입니다. 투지가 있는 사람이 싸움에서 이깁니다.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올림픽 축구에서 대한민국이 영국을 이긴 것을 보세요. 투지. 도박사들은 전부 영국이 이길 것을 점쳤어요. 도박사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어야 됩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용감한 인물입니다. 이스라엘의 장수에요. 아말렉과 싸워 이긴 적이 있고 또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었던 소수의 사람 중의 한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본문에서 하나님은 세 번이나 명하십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왜냐하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은 모세도 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해보지 못한 일을 여호수아가 하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누구를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고 누가 해본 일을 따라 하는 게 아니고 아무도 해보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강하고 담대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에게 담대할 것을 세 번이나 명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로 도덕적인 얘기를 하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착해라, 용서해라, 참아라,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할 것을 명하실 때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면 담대히 질 수 있느냐? 담력 훈련 같은 것을 해야 되느냐? 해병대 훈련소를 갔다 와야 되느냐? 아닙니다. 비행기에서 뛰어 내려야만 담대한 게 아닙니다. 어떤 TV프로그램을 보니까 유명 연예인이 자기 과거를 얘기하면서 아버님이 술만 마시고 집에 오면 폭력을 행사한다고 얘기했어요. 집안의 가구 위치가 바뀔 정도로 폭력을 행사한다고 했어요. 그게 너무 싫었어요. 평소에는 아버지가 너무 좋은 분인데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거예요. 이 딸이 어른이 된 후에 아버지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왜 술만 마시면 그러셨느냐. 그랬더니 아버지가 대답하기를 두려워서 그랬다. 그 아버지는 베트남전에도 다녀오셨던 베테랑인데 두려움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나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두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할 것을 명하십니다. 그 사실만으로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담대함을 명하신다는 그 사실 자체 여기에서 우리는 내가 담대해야 될 당위성과 정당성과 필요성을 깨달아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담대하려다가 어떤 선을 넘기를 주저하고 그냥 거기서 주저앉으려고 합니다. 담대하기 위해서는 선을 넘어야 됩니다. 강해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담대하기 자체를 두려워합니다. 이러다가 욕먹지 않을까, 이러다가 사람들이 나를 나쁘다고 보지 않을까 담대하기를 주저합니다. 담대하기 위해서는 선을 넘어야 됩니다. 그래야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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