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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습니다 (고전 1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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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습니다 (고전 15:12-24)

오늘 설교는 사도신경의 순서에 따라서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습니다”입니다. 몸이 다시 산다는 것은 부활을 말합니다.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복음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인도에서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노방전도를 하고 있는데 이슬람교도 한 사람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못 가진 것 하나를 가지고 있소” 그래서 스탠리 존스 목사가 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메카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체가 들어있는 관이 있어서 우리는 정말 그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당신네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에 가도 빈 무덤밖에 볼 수 없지 않소?” 이 말에 스탠리 존스는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당신네 이슬람교와 우리 기독교의 다른 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기 때문에 무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소망은 부활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행 24:15입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본문 12절에 보면 고린도전서가 기록될 당시에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13절에 보면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부활하지 못하셨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보면 부활이 있다는 말입니다.
   
19절에 보면 부활이 없고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끝난다면 내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절제하며 복음 전파에 모든 것을 걸고 사는 사도 바울과 전도자들 그리고 신앙인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부활이 확실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주와 및 복음을 위한 헌신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23절에 보면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주님을 믿는 자들이 부활하게 될 것이고 24절에 보면 그 후의 부활이 또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은 성경이 부활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구약성경이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부활에 대한 신앙이 확실했습니다. 단 12:2입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환난 후에 두 종류의 부활이 있을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부활을 말했습니다. 사 26:19입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보다 더 많은 부활에 관한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구절만 살펴봅시다. 요 11:25은 부활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성구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죽어도 사는 것은 부활을 말합니다. 요 6:40에서는 믿는 자의 부활을 말씀합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마지막 날에 죽은 믿음의 사람들을 다시 살리십니다. 부활시키시는 것입니다.
   
부활에 관한 주장 중에 시체를 화장하면 부활할 수 없다는 잘못된 주장이 있었습니다. 화장해서 뼈를 가루내서 뿌리면 부활할 때 몸을 만들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요즘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과거에는 그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런 주장은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나온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화장한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부활 자체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화장을 해서 재를 뿌린 사람도 다시 살리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는 것은 성경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롬 8:11에서는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분이 성령이시며 우리의 몸을 부활시키실 분도 성령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령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화장을 시킨 시체이든지 화장을 하지 않은 시체이든지 부활시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부활의 실례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셨는데 영으로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부활체로 나타나셨습니다. 눅 24:39을 보십시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자신이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롬 1:4입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40일 동안 친히 사심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와 제자들 그리고 여인들에게 나타나셨고, 사도 바울과 주님의 동생 야고보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승천 직전에는 500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자신을 보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의 부활도 믿습니다. 오늘 초점은 인간의 부활입니다. 
 
1. 부활의 대상 
   
부활의 대상은 아담 이후 모든 의인들과 악인들입니다. 즉 모든 인류가 부활합니다.
   
어떤 사람은 의인의 부활만 있는 줄로 아는데 아닙니다. 성경은 의인이 부활하듯이 악인도 부활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단 12:2입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의인과 악인 모두 부활합니다. 

롬 5:28,29입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역시 의인과 악인 모두의 부활을 말합니다. 
 
2. 부활의 시기 
   
부활의 시기에 관해서는 몇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에서는 제가 성경을 보는 신학적 입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천년왕국설에 대해서 역사적전천년설을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역사적전천년설은 천년왕국을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있을 신자들의 천년왕국으로 봅니다.
   
부활에 관한 역사적전천년설의 입장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의인들이 부활하고 천년 왕국 후에 악인들이 부활한다고 봅니다. 이것을 이중부활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중 부활을 믿습니다.
   
성경 고전 15:23,24을 보면 주님의 부활 외에 두 번의 부활 즉 이중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성경 계 20:4-6을 보면 천년 왕국 전에 의인들이 부활하여 천년동안 왕 노릇합니다. 그리고 13절을 보면 천년이 찬 후에 백보좌 심판이 있는데 그 때에 두 번째 부활 즉 악인들의 부활이 있습니다. 
 
3. 부활체의 성격 
   
부활체의 성격에 대해서는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이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오늘 설교에서는 의인의 부활체의 성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 마 22:30을 봅시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부활 이후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도 없습니다. 부활 후에는 천사들과 같습니다.
   
부활체는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몸하고는 다르지만 분명히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살과 뼈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전 15:44에서는 신령한 몸이라고 말씀합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부활체는 썩지 않습니다. 고전 15:52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썩지 않는다는 말은 영원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 마 25:46에서는 영생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체는 아주 건강합니다. 부활체는 절대 아프지 않습니다. 계 21:4에 보면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병 때문에 고통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활하게 되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따라 합시다. “부활하면 병들 걱정 없다”
   
부활체는 물리적인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락방의 문을 닫아놓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분명히 문을 닫고 있었는데 그들 앞에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물리적인 벽의 제한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읽은 책에는 부활시에는 물리적인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이동할 때는 생각의 속도만큼 빠르게 이동이 가능하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부활체도 음식을 먹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물고기 잡던 제자들이 호수가로 나와서 주님을 만났는데 그 때 주님께서 떡과 생선을 준비하셔서 제자들과 함께 조반을 드셨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여 천국에서 천국음식을 먹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과일들도 먹게 될 것입니다.
   
부활체의 모습은 본래의 몸과 어느 정도 동일성을 갖는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봤습니다. 만약 주님이 본래의 몸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면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나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주님을 만났으나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보면 본래의 몸과 어느 정도 동일성을 갖고 있으나 본래의 몸이 가지고 있지 않던 다른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 17;2절에 보면 주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났다고 말합니다.
   
성경 막 9장에 보면 산에서 기도하시던 주님이 변화되셨습니다.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겠으나 부활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던 여인들이나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본래의 모습을 입으셨으나 본래의 몸과 뭔가 다른 그 무엇 때문에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영입니다. 그렇다고 영만 중요하고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은 영원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은 홀연히 변화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몸을 가지고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몸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다섯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몸을 흠 없이 보전해야 합니다. 살전 5:23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흠없이’는 헬라어의 의미를 보면 ‘비난 할 점 없이’라는 뜻입니다. ‘보전’은 ‘지키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몸을 흠 없이 보전한다는 말은 몸을 비난 받을 일에 사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몸으로 죄를 짓지 말라는 말입니다. 따라 합시다. “몸으로 죄짓지 말자”
   
둘째,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롬 6:13입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쓰십시오.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영과 혼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몸을 사용해야 합니다. 악한 일에 자기 몸을 쓰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자기의 몸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있는 전쟁기념관에 가면 네 명의 군목을 기념하는 “불멸의 군목들”이란 문구를 새겨놓았다고 합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네 사람의 군목이 탄 함정이 적의 어뢰에 맞아서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네 명의 군목들은 자기들의 몫으로 주어진 구명대를 부하들에게 주고는 침몰하는 갑판 위에서 찬송을 부르면서 바다 속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다른 사람을 살리는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들의 용기는 부활의 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셋째, 몸으로 거룩한 산 제물이 되십시오. 롬 12:1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생활 속에서 자신의 몸이 원하는 것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일에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몸이 원하는 것이 있으나 그것을 부인하고 영이 원하는 것을 따른다면 몸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넷째,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부활을 믿으면 견고하여 흔들림 없이 살아야 합니다. 고전 15:58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세상에는 우리의 신앙을 흔들어 놓는 환경과 사건들이 많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도 부활과 영원한 세상을 확신하고 흔들림이 없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영국 어느 지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갑자기 석탄광 하나가 무너지는 바람에 그 안에서 일하고 있던 164명의 광부들이 생매장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깊은 슬픔을 가지고 사체발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체 옆에 판자가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같이 하십니다. 우리는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주여 축복하소서. 우리는 대단히 유쾌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원한 영광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곧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으므로 우리는 이곳에 남지 않고 부활의 생명 가운데 아름답게 꽃 피울 것입니다” 석탄광의 무너지는 흙더미 속에서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영생의 기쁨을 가지고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다섯째, 주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고전 15:58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맡긴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 일을 이루다가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착하고 충성되기를 원하십니다.
   
영국 런던 워커 미술관에 콘트러라는 사람이 그린 그림이 하나 걸려 있답니다. 그 그림은 옛날 폼페이라는 로마의 도시가 베스비어스 산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도시 전체가 용암과 화산재에 완전히 묻혀버린 일이 있었는데 그 때의 광경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입니다. 하늘에서는 화산재와 불이 폼페이 성안에 쏟아져 내리고, 사람들은 살아보려고 성문으로 밀려 나가는 온통 혼란스러운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그 중에 군인 하나가 성문 곁에 서 있는 그림입니다. 이 사람이 그림의 주인공입니다. 이 사람은 그 성문을 지키도록 명령을 받았기에 이 혼란 속에서도 자기 맡은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성문을 지키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기에 다른 명령이 없는 한 자기는 거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 그림에 ‘충성’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답니다.
   
우리의 몸은 부활 할 것입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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