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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늘에 숨은 사랑 (욘 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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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숨은 사랑 (욘 4:6-11)

온도계는 1820년에 발명되었고 온도계가 만들어지고 102년 후 1922년 9월 13일 멕시코 기온이 섭씨 58도로 최고 더운 날로 기록되었습니다. 그 뒤로 58도보다 더운 날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우리나라는 40도를 밑도는데도 참 덥습니다. 모두들 더위에 지쳐 헐덕거립니다. 더위가 사람을 괴롭게 합니다.  
  
“그늘”은 자연 속에서 가장 시원한 곳입니다. 그늘은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휴식처입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6절)
  
하나님이 박넝쿨을 예비하신 것은 요나의 머리에 그늘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넓은 박넝쿨 잎사귀 그늘에 하나님의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 애국심을 안고 그늘에 들어가라

요나는 이스라엘 사람이고 애국자입니다. 그는 자기 나라와 자기 백성을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 하셨다는 선민 사상이 투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니느웨를 구원코자 하심이 싫었습니다. 
  
요나는 자기중심적입니다. 항상 지기가 옳은 사람입니다. 누구의 가르침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 하실 때 다시스로 도망친 것은 니느웨에 대한 감정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멸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니느웨를 멸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처사가 못마땅하여 불만과 분노를 나타냅니다. 
  
요나는 자기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다”(욘1:9) 
  
배가 풍랑을 만났을 때는 자기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한 때문이니 나를 바다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 잘못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고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요나는 고기 뱃속에서는 이렇게 기도했었습니다.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 “나의 하나님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이렇게 기도하니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서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했습니다(욘2:4,6,9,10).
  
참으로 놀라운 체험을 했지만 요나는 안 변합니다. 그의 지나친 민족주의 정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의 대적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 용납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합니다. 니느웨로 가서 네게 명한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이전에는 할 수없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니느웨로 갑니다. 하룻길을 행하며 외칩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놀라운 기적이 벌어집니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이 아시지만 요나는 모르고 있습니다. 순종해야 옳았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순종입니다. 박넝쿨 그늘아래에서 순종을 배워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명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 웃고 우는 인생도 그늘에 달렸다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6절) 
  
“크게 기뻐하였다”는 말과 “크게 슬퍼하였다”는 말은 대조되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감정의 양극단을 오갑니다. 
  
사소한 일로 유쾌했다가 갑자기 우울해 집니다. 사람의 기분이 금방 좋았다 금방 나빴다 합니다. 박넝쿨 하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좋았다 나빴다 합니다. 싱싱하던 박넝쿨이 갑자기 시들어지게 한 것은 작은 벌레의 짓입니다.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7절)     조그만 벌레 한 마리가 웃음을 잃게 합니다. 
  
박넝쿨은 주저앉았고 뜨거운 해는 요나의 머리에 내려 쪼이니 혼미해졌습니다. 혼미했다는 것은 정신이 없어져 헷갈리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머리를 가려주던 그늘이 사라지자 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대단한 것 같지만 아주 작은 일로 기력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합니다. 
  
비올 때 우산 속으로 들어가면 비를 피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날 그늘로 들어가면 더위를 피할 수 있습니다. 
  
잘 살던 부부가 의견 충돌로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재산은 모두 절반씩 나누기로 했습니다. 현금도 땅도 나누는데 합의했습니다. 
  
문제는 자녀가 일곱 명입니다.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을 했더니 하나 더 낳으면 된다고 해서 그러기로 했습니다. 그 날밤 임신을 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쌍둥이를 낳은 것입니다. 부부는 쌍둥이를 안고 목사님을 찾아갔더니 이것은 이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해주었습니다. 그 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교회 그늘에서 살아서 받은 복입니다.  
  
요나가 기뻐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박넝쿨을 죽일 벌레를 준비하셨습니다. 벌레는 밤에 땅속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벌레가 박넝쿨을 갉아먹었습니다. 아침이 밝아올 때 그 햇살과 동풍이 벌레 먹은 박넝쿨을 곧 시들게 했습니다. 벌레의 상징은 아주 사소한 것입니다. 그 작은 것이 우리의 인생을 망친다는 것입니다. 내 기쁨의 박넝쿨을 시들게 하는 것은 아주 작은 것들입니다. 나의 기쁨의 박넝쿨 마저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아2:15)
  
요나는 박넝쿨 그늘 아래에서만 행복했습니다. 그늘에 하나님의 사랑이 숨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박넝쿨 그늘로 요나를 가려주셨습니다. 박넝쿨이 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박넝쿨을 시들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박넝쿨 그늘이 전능자의 그늘입니다. 전능자가 계시고 그의 그늘이 있습니다. 박넝쿨 그늘은 전능자의 그늘이고 그 그늘에 하나님의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 니느웨 12만명도 그늘 속에 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10,11절)
  
요나에게 박넝쿨 하나는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죽고 살만큼 절실한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의 들보가 요나의 눈을 가리니 하나님의 자비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니느웨 성의 12만명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했습니다.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이란 “어린아이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가르치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10:14)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어린 아이를 하찮은 존재로 여길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어린 아이는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하늘나라의 주인공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느니웨성을 멸하실 수 없었습니다. 의는 악인의 형벌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형벌 받아야 마땅한 자에게도 형벌을 지연시킵니다. 
  
하나님은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미숙한 사람들에게 니느웨성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선과 악의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무엇으로 비유할까? “겨자씨 한알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매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막4:30-32)
  
겨자나무 그 그늘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피조물들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듯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롬8:20) 

하나님의 통치권으로 들어갈 때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실패와 불행의 권세를 이기고 성공하고 승리하는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얼마나 순수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니느웨는 걸어서 사흘 걸리는 성읍입니다. 요나가 하루동안 다니면서 외쳤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은 자, 낮은 자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왕까지 왕복을 벗고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았습니다. 회개하고 돌이켰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인 니느웨의 잔악함도 보셨지만 그들에게 있는 구원 받을 가능성을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자비하시고 참고 기다리십니다. 팔을 벌리고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십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여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9절)
  
요나는 왜 그렇게 옹고집이고 성질을 부립니까? 성내는 것으로는 아무 일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그늘로 들어가 순종해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1:19-20) 
  
인생의 기쁨도 슬픔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실패한 사람, 불행한 사람은 불행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전능자의 그늘로 들어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기 바랍니다. 
  
머리카락도 그늘이 있습니다. 산이 크면 그늘도 큽니다. 크고 크신 하나님, 전능자의 그늘 아래 있으면 전능자의 힘을 얻습니다. 그늘이란 볕을 가려주는 곳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입니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 전능자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의 그늘에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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