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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살후 2:1-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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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살후 2:1-4, 15-17)  

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믿음과 소망, 사랑의 성도로 수고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했다. 주님이 강림하신다는 말이 매 장마다 나올만큼 파루시아(Parusia: 존재나 도착)의 약속을 기다렸는데 주님이 오시지 않았다. 그래서 교인들은 슬펐고 마음이 괴로웠다. 그들의 신앙의 친구들이 주님 오심을 보지도 못하고 죽었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친구들에게 주님이 오시면 무엇하는가? 살아있는 동안에 오셔서 그분 앞에 모든 성도들을 모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생각하면 주님이 오기 전에 죽은 친구들이 불쌍하고 안됐다. 

이 주님이 오시기 전에 잠든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 대답으로 바울은 살전4:13~18에 기록했다. 죽은 자들보다 살아있는 자들이 결코 앞서지 못한다.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은 주님 강림할 때 일어난다. 무덤 안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산 자들도 그 일어난 자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리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 살아있는 성도들은 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위로를 받았다. 그리스도가 강림하지 못했어도, 미리 친구들이 죽어 장사 지난 바 되어도 그리스도의 강림의 때에 똑같이 주님께로 모아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데살로니가후서에 나타난 재림의 문제는 이미 주님이 강림했다는 것이다. 주후 50년경에 이곳을 방문하여 복음을 증거한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면서 이 편지를 썼는데 늦게 오시는 주님 때문이 아니라 너무 빨리 와 버린 예수님의 재림 때문에 혼란이 생긴 것이다. 바울은 형제들을 굳건하게 세우고 싶었다. 살후2:15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고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미 주님이 오셨다는 성급한 재림의 문제에 대해 바울은 몇 가지를 가르치고 있다.

1. 마음이 흔들리지 말라. (살후2:2中下)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유포된 주의 강림 소식은 성도들의 마음에 큰 충격이 되었다. 주님이 오셨다면 지상에 남아있는 성도들은 낙오자가 아닌가? 먼저 보낸 편지에 의하면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버려둔 자들이 아닌가?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인자가 임할 때 두 사람이 밭에서 일하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또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했는데, 마24:41을 보면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하였는데 주님이 이미 강림하셨다면 우리는 공중 모임에 가지 못한 자가 아닌가? 

여기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확신이 흔들리고 침작함이 흔들린다는 ‘살레우 덴마이’란 동사다. 확신이 흔들리고도 남을 일이다. 주님이 이미 와 버렸지 않은가? 그런데 바울은 말씀하사 “쉽게 흔들리지 말라.” 그 주님이 오셨다는 것은 거짓된 가르침이다. 

살후2: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주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낸 사람들은 거짓된 자들이다. 위조다. 바울은 그런 내용으로 가르치지도 않았고 편지를 보내지도 않았다. 언약의 편지를 보냈다면 거짓된 교사들이 잘못된 해석을 해서 미혹한 것이다.
  

2. 두려워하지 말라. (살후2:2下)

여기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스로애 이스타’라는 말이다. 성도들의 계속되는 불안한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다. 주님이 오셨다고 하기에 확신이 흔들리니 불안한 상태가 나타나고 안절부절 못하는, 신경이 과민하게 되는 상태가 된 것이다. 바울은 성도들의 두려움을 막고 싶었다. 성도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바울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살후2: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두려움을 이기려면 가르쳐 준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말씀이 기억되어야 확신이 다시 들어오고 안절부절 못하는 불안과 두려움도 떠나갈 것이라 믿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이 방송, 저 설교에 의해 불안해질 이유가 무엇인가? 살후2: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교회는 좋은 전통이 있어야 한다. 시대를 따라 시대의 조류를 쫓아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이 뚜렷해야 한다. 

나는 요사이 교이들에게 말씀을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정말 성경이 말하고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기도하는 전통을 만들고 싶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위기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들을 세워나가기 위해, 또 거짓된 교사들의 가르침과 이단의 호기심 넘치는 가르침에 도전받지 않도록 신앙의 전통을 세우고 싶다. 신앙이 흔들리고 자신의 영적 상태의 두려움이 들어오면 축복을 빼앗긴다. 질서 있는 신앙 생활을 못하게 되면 믿음의 아름다운 지위를 빼앗긴다. 거짓된 재림 소문에 의해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예수가 이미 오셨다고 가르치는 이들이 ‘여호와의 증인’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설립자인 찰스 러셀은 1874년에 세상 끝이 온다고 하였다. 다음에 그의 계산을 수정해서 1914년에 종말이 온다고 가르쳤다. 그 해가 지나고 그의 후계자 러더 포드는 예수가 1914년 10월 1일에 실제로 오셨다고 하였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게 오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의 재림을 기다려서는 안되고 이미 재림은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이런 재림 이야기가 우리 교회에서 어떤 사람에 의해 퍼져나간다고 생각해보라.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게 되지 않겠는가? 

요한계시록 강의가 신문마다 광고 지면을 메운다. 그 가르치는 자들이 어떤 훈련을 받았냐가 중요한데 그것을 보지 못한다. 책 하나를 사도 출판사가 중요하다. ‘강사가 어디서 훈련된 사람인가? 누구를 멘토로 두었는가?’가 중요하다. 직통 계시로 진리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에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3. 미혹되지 말라. (살후2:3上)

바울은 거듭 말씀한다. 살후2: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미혹되면 큰일이다. 본래 마귀는 미혹의 영이다. 마귀에게 속하여 미혹하는 자가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많다. 요이1:7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고 하였다. 우리는 거짓된 속임수, 잘못된 말씀의 이론에 미혹되어서는 안된다. 성경을 가지고 사람의 호기심에 호소하고 멸망의 길로 이끌어가는 달콤한 미혹을 이겨내야 한다. 바울은 분명히 언급해준다. 주님의 날이 이르렀다고 하는 것은 미혹이다.

주님의 강림이 있으려면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야 한다. 배교란 반역이란 뜻이고 불법의 사람이란 반역자라는 뜻이다. 그 반역자는 누구인가? 살후2:4 “그는 대적하는 자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자기를 하나님이라 내세우는 자다. 이 대적자는 분명 적그리스도다. 신앙의 주요 기둥은 말씀의 법이고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 반역자는 법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니 더욱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하니 적그리스도다. 이 적그리스도는 누구일까? 

역사의 한복판 속에서 가장 주목된 이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였다. 그는 지성소에 들어갔고 번제단 위에 돼지를 잡아 피를 뿌렸다. 에피파네스는 대적자 적그리스도의 원형이다. 헬라의 문화로 세계를 정복하려 했던 에피파네스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 다니엘서의 예언이 마24:15에서 더 성취되어야 함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분냄의 사람, 멸망의 아들을 찾게 되었다. 교회는 주로 로마의 황제들, 마호매트, 가톨릭의 부패한 교황, 종교개혁자, 교황직 자체를 적그리스도로 보았다. 최근에는 종교적 지도자들보다도 정치적 지도자들인 나폴레옹,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등을 적그리스도로 보았다. 

20세기를 지나는 동안 배교하는 일이 있고 불법의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에 대해 인물이 바뀌고 또 새로운 인물에 초점을 두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나타나고 나서 주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혹받을 필요가 없다. 미혹되어서도 안된다.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는 불법자가 나타나야 된다. 그것이 재림의 징표다. 그런데 어찌 주의 날이 이르렀다는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는가? 교회가 미혹되면 깨진다. 파선당하는 배처럼 분열된다.   

주의 오심에 관한 재림은 우리가 믿고 기다리고 사모해야 하는 신앙이다. 사실 미혹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살후2:11~12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미혹되는 자들은 불쌍하다. 거짓되고 위조된 편지에 속고 가르침에 속아 거짓된 것을 믿게 되는 것은 심판을 받게 되는, 영적 구원을 받지 못한 이들이다. 다시 오시마 약속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하는 재림 신앙으로 깨어있되 누가, 어떻게, 어떤 계시의 말을 다 동원해서 미혹하더라도 굳건하게 서는 자가 되라.

흔들리지 않고 더 분명한 확신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더 안정된 신앙의 여유로움으로 규모 있는 신앙 생활을 하자. 시대의 징조를 통해 깨어 있되 환란을 피하기 위하여 기도하자. 굳건하게 서 있는 자, 그것이 재림의 시대를 승리하는 성도의 태도다. 넘어뜨리려고 매치기 하려고 아무리 건드려도 언제나 굳건하게 서 있는 자, 오목천 성도가 되자. 선한 일에 굳건하고 말에 있어 굳건하고 신앙 생활에 굳건 하고 섬김의 일에 굳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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