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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게 남은 마지막 것으로 (왕상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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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마지막 것으로 (왕상 17:8-16)

옛날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금으로 바꾸어서 뒷동산 고목나무 밑에 묻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세 아들 가운데 가장 진실하고 아버지를 생각하는 아들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려고 궁리하던 차에 마침 세 아들에게는 젖먹이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먼저 맏아들을 불러 떨리는 음성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얘야, 내가 이제는 기력이 쇠하여 얼마 못 살 것 같구나. 그러니 너의 자식을 뒷동산 고목나무 밑에 묻고 그 아이가 먹던 젖을 내가 먹도록 해 다오. 그렇게 하면 내가 기운을 좀 차릴 것 같구나”

큰 아들은 아버지의 이런 권유를 듣고 ‘늙은이가 망령도 분수가 있지, 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리자고 금지옥엽같이 귀한 아들을 죽이라는 말이냐’ 고 화를 내며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불러서 큰 아들에게 했던 그대로 말을 했더니 둘째 아들도 역시 첫째 아들과 마찬가지로 화를 내며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막내 아들을 불러서 형들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하자 막내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 아버지가 이 지경이 되도록 모르고 있었던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버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 영영 다시 뵈올 수 없지만 자식은 또 낳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곤히 잠들어 있는 자식의 얼굴을 보니까 견딜 수가 없어서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결단을 하고 아내와 함께 산으로 올라가서 아버지가 일러주신 그 나무 밑에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땅을 파는 중에 무엇인가 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나서 보았더니 커다란 금덩이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숲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가와서는 “내가 이제 네 마음을 잘 알았다 이것은 너를 시험해 보기 위한 것으로 이제 황금은 다 네 것이다.” 라고 하면서 막내 아들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물려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죽이고 그 자식이 먹던 젖을 달라고 한 것은 정말 ‘달라’ 고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겠다’ 는 아버지의 강한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달라고 하심은 정말 그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이를 통해 우리에게 더 놀라운 것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창24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베필을 찾기 위해 자신의 종을 보내었을 때에 나홀의 성 우물가에 도착한 종은 물을 길러 온 리브가를 보고 자신에게 물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물을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를 통해 리브가에게 선물을 주고, 이삭의 아내가 되는 엄청난 축복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리브가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선뜻 물을 종과 낙타에게 주었을 때 이삭의 아내가 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를 받고 ‘열국의 어머니’ 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마리아 여자에게 영원한 생수를 주시기 위하여, ‘내게 물을 좀 달라’ 고 하셨습니다.
물론 목이 말라서나 말을 걸기 위해서 물을 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먼저 내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섬김과 봉사의 일로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에 이것을 하나님의 음성인 줄 알고 ‘드디어 내가 복 받을 기회구나’ 라고 생각하시고 그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 기회를 내 것으로 삼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자들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기 위하여 십일조와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에도 하나님께서 쓰실 것이 부족하여 우리에게 달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예물을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고, 황충이 먹지 않게 하시고,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는 일이 생기지 않는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3년 6개월 동안 가뭄으로 고통 당하고 있는 사르밧 여인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복을 주시기 위하여 엘리야를 통해 ‘달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하나님께서 달라고 하실 때에 드림으로 모든 사람이 굶주릴 때에도 그의 가정은 풍족한 삶을 살아 갈 수 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달라’ 고 하십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의도를 잘 알고 순종하여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얻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오늘 본문의 시대적인 배경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인 후 북 이스라엘에는 여러 왕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아합’ 이라는 왕은 이방 두로 지방에 있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는데 그 아내가 시집오면서 섬기던 ‘바알신’ 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자기만 바알을 섬길 뿐 아니라 아합도 바알을 섬기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이방신을 섬기지 말라고 여러번 경고를 하셨지만 아합은 듣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아합에게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하시는데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아니하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여러분 말이 3년 6개월이지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심각한 가뭄이었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사르밧이라는 동네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어린 외아들을 키우고 있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먹을 것이 다 떨어지고, 이제는 마지막 남은 한 줌의 밀가루와 몇 방울의 기름으로 마지막 끼니를 때우고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그런 형편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 여인에게 찾아가 목이 마르니까 물을 좀 달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적으로 생각했을 때에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어떻게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은 상황에 아무것도 없는 여인에게서 물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아주 무례하고 염치없는 행동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아무말 하지 않고 물을 주기 위해 집으로 갑니다.
집으로 가는 여인의 뒤에서 엘리야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물을 가져 올 때 떡도 하나 가지고 오세요.”
보통 사람 같았으면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겠습니까?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더군다나 아무 가진 것도 없는 가난한 자신에게 염치도 없이 물달라, 떡달라 하면 그냥 물이 나오고 떡이 나오냐고? 화를 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먼저 자기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 합니다.
“나에게는 떡이 없습니다. 다만 가루 조금과 기름 몇 방울이 있는데 이것으로 마지막 떡을 만들어 먹고나면 이제 죽음을 기다리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정도 자신의 상황을 말했으면 이제 무엇을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엘리야는 무리한 요구를 계속합니다.

13절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무슨 말입니까? 지금의 형편에 상관없이 두려워하지 말고 남은 것으로 떡을 구워서 먼저 나로 먹게 하고, 그 후에 당신과 아이가 먹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 아닙니까? 저나 여러분 같았으면 뭐라고 했겠습니까?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염치도 없이 뻔뻔스럽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벼룩의 간을 내어 먹으라고 하면서 별별 욕을 다 퍼 부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여인에게 있어서 그 가루와 기름은 자식과 자신이 마지막으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마지막 남은 것을 드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야는 지금 왕의 미움을 받아서 쫓겨 다니다가 숨을 곳이 없어서 이제는 이방나라인 시돈까지 와서 숨어 있는데 시돈은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의 모국이었습니다.
그러니 만일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여인은 목숨을 보존하기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엘리야의 말대로 떡을 구워 엘리야에게 먼저 드렸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이방에 살고 있는 이 여인에게, 그것도 남편도 없이 어린 외아들을 데리고 마지막 남은 떡 하나 먹고 죽으려하는 이 가난한 여인에게 물을 달라, 떡을 달라고 요구 하셨겠습니까?
정말 필요했다면 당시 부자들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부자들에게 떡을 달라고 하면 더 많은 떡을 얼마든지 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처럼 가난한 여인에게 생명과도 같은 물과 떡을 달라고 하셨겠습니까?
너 먹기 전에 나에게 먼저 달라고 했겠습니까?
그것은 이 여인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놀랍게 공급하시는 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그 여인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간혹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서 의도하고 심부름을 시킬 때가 있습니다. 세뱃돈을 주기 위해서 절하라고 시킬 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축복하시기 위해서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무언가가 맡겨진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며 기꺼이 감당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로 이 여인은 복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나에게 맡겨지는 일이 있다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고 내 형편과 상황을 따지지 말고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교회를 건축을 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대개 교회가 건축을 하면 헌금하는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어 교회출석이 준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오는 축복의 기회를 발로 차 버리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여러분 성전 건축의 복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던 다윗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아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는 마음을 가졌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기뻐하시면서 ‘내 종 다윗이 내 집을 짓겠다니 내가 다윗의 집을 지어 주겠다. 내가 그의 자녀를 책임져 주겠다. 그의 왕권이 계속되게 해 주겠다’ 는 엄청난 축복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르밧 여인은 어떻게 마지막 떡까지 가져오라는 무례한 요구를 받았지마는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로마의 어거스트 대제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데 유명한 해적단이 백성을 괴롭혀서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왕은 해적단 괴수의 목을 잘라오는 사람에게 후한 상급을 주겠다고 전국에 공포를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신사가 찾아와서 왕이 찾는 해적의 목을 바치겠다고 합니다.
당신이 어떻게 그 해적괴수의 목을 바칠 수 있느냐고, 그 비법이 무엇이냐고 왕이 물었더니 자기가 바로 그 해적괴수인데 자기 목을 왕에게 드리겠다고 합니다.
상급은 받지 않을 테니까 한번만 용서해 주면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하도 기특해서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게 되었느냐고 왕이 물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는 남을 해치고 재산을 강탈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부터 남은 삶은 남에게 유익한 사람을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용서를 받고 왕을 잘 섬기다가 후일에 유명한 해군 사령관까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사르밧 여인은 텅 빈 가루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 통에 있던 가루는 누가 다 먹은 것인가? 결국 자신이 다 먹은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사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만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 앞에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에 이제 남은 겨우 한 웅큼의 가루나마 하나님을 위해서 쓰고 싶은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이 나이가 되도록 내 시간과, 내 물질과, 내 힘을 어디에다 다 쏟아 왔습니까?
그럼에도 내 가루 통은 비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위해서 그것을 다 사용했습니까?
하지만 여러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 남은 한 웅큼의 것이라도 주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제 남은 한 웅큼의 물질이나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남은 한 웅큼의 힘이지만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루통과 기름병에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5만 번의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뮬러는 자신의 90회 생일 때에 ‘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쳤다. 그리고 모든 것을 그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그리하여 부족한 것을 모르며 일생을 살았다’ 고 고백했습니다.
사실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 모든 것을 받는 길이 됩니다.

마지막 남은 것이지만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때에 가루통과 기름병은 언제나 넘치게 채워질 것임을 믿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오늘 말씀 중에서 지나칠 수 없는 말씀이 바로 9절 말씀입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엘리야는 지금 북쪽 이스라엘 그릴 시냇가에 있습니다.

그런데 시돈 땅 사르밧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가면 하나님께서 그 곳에 살고 있는 여인에게 너를 먹이도록 해 놓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어떻게 엘리야를 공궤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꿈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지, 초자연적인 음성을 들었는지, 아니면 엘리야를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너에게 마지막 떡을 요구하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르밧 여인은 13-14절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자기가 먹지 않고 순종하여 먼저 하나님에게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가루통과 기름병이 마르지 아니하는 놀라운 축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명령하십니다.
네게 있는 그 마지막 네 건강을 하나님을 위해서 쓰라고, 네게 있는 그 마지막 물질을 교회를 위해서 쓰라고, 네게 있는 그 마지막 시간을 복음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네게 있는 그 마지막 힘을 내게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일을 위해서 내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그 마지막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여인이 만일 지금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주냐면서 마지막 것을 자기와 외아들이 먹어버렸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의 말대로 며칠 후 굶어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서 하나님 앞에 드렸더니 죽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가뭄이 끝날 때까지 가루통과 기름병이 마르지 아니하는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으며 남에게까지 나누어주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르밧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네 상황과 형편을 뛰어넘어 네 마지막 가루와 기름을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순종하여 마지막 것을 드릴 수 있을 때에 가뭄처럼 어려운 세상속에서 우리의 가루통과 기름병이 마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채워주시는 기적을 날마다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원하기는 이러한 축복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도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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