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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의 축복 (창 27: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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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축복 (창 27:27-40) 

1. 인류를 구원하시려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팔복(八福)을 선포하셨습니다.(마5장) 예수께서는 이처럼 복을 선포하시고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 마을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들것에 메고 왔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율법학자 몇이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하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려고, 너희는 마음 속에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그리고 그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고 하시자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를 목격한 무리들이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사하는 권세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복을 주시는 권세를 가지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구약시대에 인간이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제사장이 속죄 제물로 희생된 피를 가지고 성전 휘장을 열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지성소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시대에 모든 인류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십자가에 희생제물이 되어 성전 휘장을 열어 모든 사람이 단번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이를 히브리서9:24-28,히10:19-20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9:24-28)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 구원을 위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것입니다. 

(히 6: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8:1)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또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대제사장 아론을 세우시고 이렇게 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6:22-27입니다.

(민6:22-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세움받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전달할 자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보자로 대제사장을 세우신 것입니다. 이제 온 인류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 시대에 영적 이스라엘 백성된 성도들이 하나님의 축복 선언을 받아 누릴 수가 있다는 것을 예표(豫表)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축복할 때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등으로 축복하게 하시므로 축복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깨우치셨습니다.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주체가 분명히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16:1-2,11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16:1-2,1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할 때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하므로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심을 분명히 했습니다.

(창14: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복은 금세와 내세의 복, 힘과 지혜, 그리고 자녀와 건강, 번영 등 육적인 복과 영적인 복 등 범사의 복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신 아브라함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습니다. 

(창24:1)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신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범사에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범사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2.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은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약속받은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이면서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베드로전서2:9을 보겠습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왕 같은 제사장들”이란 왕 같이 축복의 영향력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여러분의 자손들을 위해 축복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축복 기도할 내용은 첫째,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노라.”입니다. ‘지키신다.’는 것은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란 뜻으로, ‘세심하고도 철저한 하나님의 보호와 보존’,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의 보호뿐 아니라 가난과 재앙과 각종 질병 및 전쟁으로부터의 보존까지를 의미합니다. 

(시37:28)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시33:19)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시76:3) 거기서 저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깨치시도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도록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마음과 생각을 바르게 지켜주셔야 하나님의 복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과 자녀들이 노력하고 수고한 모든 것들을 지켜주시도록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이 잘 되어야 범사에 잘 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생각, 그리고 정신과 영혼까지 지켜주시도록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 없이는 이 세상에서 한시라도 쓰러지지 않을 수 없는 연약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이 비록 하나님을 멀리하고 심지어 등을 지고 사는 경우가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시지 마시고 끌어 품을 수 있으시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도록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실로 캄캄한 곳에서는 미미한 촛불 하나가 매우 값진 역할을 감당하는데, 하물며 의와 영광의 태양이신 하나님께서 어둡고 지친 우리 영혼에 찬란한 빛을 비추시는데 어찌 벅찬 감격과 생의 희열이 솟아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으신 성도 여러분 자손들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축복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자손들의 삶에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관심과 사랑을 베푸셔서 삶에 평안을 주시도록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 된 자는 하나님의 그러한 사랑과 돌보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그 어떤 위협과 도전도 능히 극복할 수 있으며 아울러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롬 8:31-39). ‘평강’은 모든 기쁨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으로서 곧 하나님의 축복의 최고 절정을 이루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손들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 축복한대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예수 믿음으로 영적 제사장이 되신 성도 여러분, 축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도 “(눅 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원수까지라도 축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롬 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어느 아버지의 고백입니다. <저는 교회는 가끔 나갔지만 기도해 본 적도 없고, 더구나 자녀를 축복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해 보았습니다. 늘 아버지의 역할은 돈 벌어다 주고, 가끔 외식이나 해주고, 아이들이 잘 못할 때 바로 잡아 주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녀에게 축복기도해 주라는 아버지학교의 숙제를 받고 매우 고민을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집에 들어가 큰 아들을 불렀지요. 그리고 대뜸 아들 머리에 손을 얹으려고 했더니 아니 이 녀석이, ‘아빠 ! 왜 이러세요. 나 잘못한 것 없어요.’라면서 제 손을 잡는 것 아니겠어요. 전 그때 아찔했습니다. 제가 손을 올렸더니, 제 아들 녀석은 제가 또 때리는 줄 알았나봅니다. 그래서 제가, ‘야 아니야! 너 아빠가 학교에 다니는 거 알지? 아버지학교…, 그 숙제를 해야 한다. 축복기도라는 숙제. 그러니 빨리 너 머리 숙여.' 라고 하자 우리 아이는 별일 다 보겠다는 듯, 그러면서도 약간 겁을 먹은 듯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찾자, 아들 녀석은 저를 힐끗 쳐다보더니 안심하는 듯 했습니다. 저는 안주머니에서 축복기도문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매우 쑥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아들 녀석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한 자 한 자 또박 또박 읽어 내려가는 순간,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눈에서 순간 눈물방울이 툭하고 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식에게 복을 주시고 동식을 지키시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는 그 얼굴로 동식에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는 그 얼굴을 동식에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난생 처음으로 해보는 축복기도였습니다. 제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흐르자, 아들 녀석은 덩달아 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도가 끝나자 아들을 안고 ‘동식아, 미안하다. 아빠가 그 동안 야단만 치고, 네게 한 번도 축복기도를 해 주지 못했구나. 아빠가 몰라서 그랬으니, 용서해라.' 그러자 아들은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제 아내가 방 안으로 들어와서 아이가 우는 것을 보더니, ‘아니 왜 또 아이를 울리고 그래요? 얘가 또 뭘 잘못했다고…' 하는 거 였습니다. 제 아들 녀석은 훌쩍이면서 ‘아니야, 엄마! 아빠가 야단 친 게 아니야, 아빠가 나 오늘 축복기도 해 주셨어….'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깜짝 놀라며,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뭐 아빠가?' ‘여보, 그런 숙제는 아들에게만 하는 거에요? 아내한테는 없어요?'라고 묻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물론 있지. 있고 말고, 어서 머리를 숙여 봐요. 내가 축복기도 해 줄테니.' 아내는 믿기지 않는 듯, 눈을 감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아내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눈에선 눈물이 맺혔고, 읽기를 다 끝낸 후, 제가 아내를 안고, ‘여보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정말 난 인생을 헛 살았나봐.'라고 말하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면서, ‘여보, 난 너무 행복해요.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생각도 못했어요. 고마워요. 여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그런 축복기도는 이제 벌써 1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고, 대화가 사라졌던 가정에 대화가 회복이 되고, 웃음이 없던 가정에 웃음이 회복되었고, 가정에 질서가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축복기도가 가져다 준 축복이었습니다.> 기도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변화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축복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오늘 본문 27-29절에서 이삭은 야곱에게 이렇게 축복합니다.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사실 이러한 축복은 야곱이 장자 ‘에서’의 축복을 가로챈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된 이삭이 어느 날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나는 늙어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너는 활을 가지고 들로 나가서 사냥하여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오너라. 내가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너에게 마지막으로 축복해 주겠다.’ 당시 이삭의 나이는 137세였습니다. 그는 14년 전 137세 나이로 죽은 이복형 이스마엘의 죽음을 보고 자신도 죽음을 준비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아내 리브가가 임신했을 당시 아브라함에게 언약된 축복의 상속자가 ‘에서’가 아니라 동생 ‘야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창세기25:21-26을 보겠습니다.

(창25:21-26)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그리고 에서가 사냥하고 돌아와 피곤하고 배고픈 상태에서 동생 야곱이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고 했을 때 경솔하게도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며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넘긴 사건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동생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깊이 이해하고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고, 반면에 맏아들 에서는 그야말로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창25: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업신여겼다, 경멸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히브리서12:16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에서를 두고 ‘망령되었다.’고 했습니다.

(히12: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에서처럼 속된 욕심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약속과 축복의 기회를 하찮게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에서는 그때부터 ‘붉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어리석고 망령되게 팔아넘겼다고 해서 그 별명이 ‘에돔’이라고 불리우기도 합니다.(창25:30) 

훗날 에서의 자손들을 ‘에돔’ 족속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 조상 에서가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긴 것을 기억하게 만드는 이름이 된 것입니다.(창36:1,8) 

뿐만 아니라 에서는 결혼 문제로 부모의 마음에 근심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에서’는 아브라함의 장손으로 아브라함의 축복의 상속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100세가 되었을 때 ‘에서’는 40세였습니다. 그가 결혼 적령기가 되어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과 결혼합니다.  

(창26:34-35)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헷 족속”은 온갖 우상숭배로 오염된 가나안 족속이었습니다. ‘에서’는 아브라함 이래로 간직해 온 약속의 자손으로서의 순수한 영적 순결성을 저버리고 이처럼 우상에 오염된 가나안 땅 헷 족속 여인을(창23:3) 아내로 맞아들인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이방 여인들이 며느리로 들어오므로 이삭과 리브가가 ‘영혼의 괴로움’을 겪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에서의 일부다처 행위, 헷 족속 여인을 둘씩이나 아내로 맞은 것입니다. 가나안 헷 족속인 이삭의 며느리들이 우상숭배로 오염된 이방 생활 방식을 시집와서도 버리지 않아 이삭과 리브가의 여간 근심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야곱을 외삼촌 라반에게로 보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27:46)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리브가는 자신의 삶이 싫어질 정도로, 다시 말해 사는 재미를 전혀 못느낄 정도로 경건치 못한 며느리들, 에서의 아내들 때문에 마음과 영혼의 고통이 극심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삭과 리브가는 사는 내내 영적 고통이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창28:8)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이렇게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이삭은 에서가 언약의 상속자가 되기에는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온 고기 요리를 너무 좋아했고 또 연로(年老)한데다 시력까지 잃고 나니까 영적 식별력까지 둔해져서 에서를 불러 언약의 상속자로 축복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동생이지만 장자의 명분을 중히 여겼던 야곱, 그리고 태중에서부터 두 형제가 싸우는데 하나님께서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신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평소부터 장자권 상속에 관심을 가지고 이삭의 행동을 예의주시해온 리브가가 이 사실, 즉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하고자 하는 사실을 알고 눈이 먼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동생 야곱으로 하여금 받아내게 한 것입니다. 


4. 이삭이 분명히 에서로 알고 장자의 축복을 했지만 그 축복은 고스란히 에서로 위장한 야곱이 받았습니다. 이삭이 축복할 때 이렇게 말문을 엽니다. ‘내 아들의 향취는 하나님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여기 ‘내 아들의 향취’는 야곱이 에서가 입던 옷을 입어 에서의 냄새를 맡도록 하고, 염소 새끼 가죽을 입혀 털이 많은 에서로 위장해서 눈이 어두운 이삭이 완전히 기만당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아낸 것은 정당한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야곱과 리브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이삭을 속일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시는데 속임수나 거짓말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히6: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B.C.1040년경 블레셋 군대가 사울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수백명에 불과한 사울의 군대에 비하면 블레셋은 병거가 3만이고 마병이 6천명이나 되었고 블레셋 백성은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습니다.(삼상13:5) 블레셋의 공격 앞에 이스라엘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상황은 위기상황에 분명했지만 사울은 전쟁에 앞서 반드시 당시 선지자 사무엘이 인도하는 예배를 먼저 드려야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함께 하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속한 예배 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사무엘이 도착이 늦어지자 급한 마음에 사울 왕 자신이 직접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는 반드시 선지자 사무엘만이 인도할 수 있었음에도 블레셋의 공격이 임박하고 이에 백성들은 흩어지기 시작하자 사울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월권행위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정한 시간에 도착해서 보니 이미 예배를 마친 상태여서 사울 왕에 문안하자 이렇게 사울이 변명합니다.

(삼상13:11-12)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사울의 이러한 변명에 대해 사무엘 선지자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삼상13:13-14)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사울 왕이 망령되게 행하므로 왕의 통치가 곧 끝나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왕으로 세우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어떠한 경우, 상황에서도 속임수나 거짓말, 변명 등이 용납될 수 없습니다. 리브가가 에서의 타락한 모습에서 하나님께서 태중에서부터 언약의 상속자로 야곱을 선택하신 것을 확신했지만, 연로하고 눈이 먼 남편 이삭의 약점을 이용해서 그를 속인 계략은 분명 야비한 수단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좋지 못한 방법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롬3:8) 리브가는 남편 이삭이 알고 있던 바대로 태중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셨다는 사실과, 야곱은 형 에서가 자신에게 장자권을 팔았다는 것을 들어, 그리고 에서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함으로 이미 언약의 상속자로서 축복을 상실했다는 점들을 들어 이삭을 설득했더라면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야곱과 리브가의 행동은 결국 리브가는 자식과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야곱은 20년 종살이 끝에 수차례에 걸쳐 외삼촌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기 했습니다.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 언약의 상속자로서의 하나님의 선택은 이미 태중에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리브가와 야곱이 그렇게 행하지 않았을지라도 이삭을 통한 장자의 축복은 야곱에게 이루어 질 것이었습니다. 야곱과 리브가의 행위가 어떠하든 이삭은 믿음으로 야곱과 에서를 축복했습니다. 

(히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야곱에 대한 축복,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는 축복과 에서에 대한 축복, “(창27:39-40)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는 축복은 모두 믿음으로 행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대로 축복한 내용들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삭이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라고 축복한 것은 아들의 옷에서 나는 향취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흙냄새라는 것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전해 받은 많은 후손과 가나안 땅에의 약속을 비록 자신의 생전에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의 후대에 온전히 성취될 것을 믿음으로 내다보고 축복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고 축복했습니다.

‘이슬’은 팔레스틴에서는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하므로 많은 양의 이슬이 내려 가뭄에도 식물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합니다. 식물의 생존에 절대 필요한 이러한 이슬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신 33:28;잠 3:20), 이슬에 비유하여 축복한 것입니다.(시 133편) 

이삭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이슬을 풍작과 관련시켜 축복한 것입니다. 그리고 ‘땅의 기름짐’은 토지의 비옥함으로 풍성한 소산물을, 더 나아가 풍요롭고 안정된 생활을 축복한 것입니다. 훗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번성하게 하신 후 이삭의 축복,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그 축복이 그대로 성취되게 하셨습니다. 

(출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그리고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했습니다. 이는 야곱, 즉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실질적인 주인이 될 것과 주변 나라들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 축복과 저주의 영향을 행사하게 될 것을 축복한 것입니다. 실제 그 축복의 예언대로,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의 노예들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왕상9:20-21)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중 남아 있는 모든 사람 곧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못하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들을 솔로몬이 노예로 역군을 삼아 오늘까지 이르렀으되

더 나아가 이스라엘은 ‘형제들의 주(主)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정치, 문화, 군사 등 전반에 걸쳐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세상에서 통치권자가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는 언약의 후손들에게 거듭 약속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최종 완성 되었습니다. 

(빌2:10-11)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끝으로,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는 것은 야곱의 자손들이 이 땅에서 정치, 경제적 축복은 물론 하나님의 축복의 대리자가 될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내용 그대로입니다.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5. 야곱이 장자로서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실에, 에서는 대성통곡하며 자신에게도 그렇게 축복해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창27:34)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그러나 이삭은 “(창27:35)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며 거절합니다. 이 말 속에는 이삭 자신은 에서에게 복을 주고 싶었으나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서에게는 이렇게 축복합니다. 창세기27:39-40입니다.

(창27:39-40)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에서의 자손은 대대손손 황폐한 땅에서 살게 될 것이며, 전쟁과 약탈을 일삼고 야곱, 이스라엘 자손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에서가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된 것은 그가 방성대곡했지만 결국 회개하지 않았다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 장자의 명분, 장자의 축복을 망령되게 여긴 것을 회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히브리서12:16-17을 보겠습니다.

(히12:16-17)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이삭이 사랑하는 맏아들의 눈물어린 항의와 간청에도 불구하고 야곱에게 베푼 자신의 축복을 취소하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 것을 마음대로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삭은 야곱에게 기만당해 장자의 축복을 했지만 야곱이 언약의 자손, 아브라함의 축복을 계승할 약속의 자손임을 확실하게 믿고 약속의 자손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게 됩니다. 창세기28:1-4을 보겠습니다.

(창28:1-4)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 이삭과 같은 자손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됩니다.”(갈3:6-9) 

믿음으로 여러분의 자손들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이삭을 통해 야곱에게 주어진 축복들은 영적 장자가 되어 장자의 명분, 장자의 축복권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사는 성도 여러분에게 계승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장자의 명분을 망령되게 여긴 자에게 빌 복은 없습니다. 믿음으로 축복하며 사는 성도 여러분에게 ‘야곱의 축복’이 대대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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