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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나라위해 기도하는 좋은 일꾼이 됩시다 (느 1:4-5)

첨부 1


나라위해 기도하는 좋은 일꾼이 됩시다 

(느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 1: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안 된 때의 일이라 합니다. 남편이 전쟁에 나가 죽은 미망인이 아이들과 함께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크리스마스를 지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절절한 마음에 기도를 노트에 썼습니다. 두툼한 노트 가득 절절한 기도가 담겼습니다. 

다음 날 식료품 가게를 찾았습니다. 가게 주인에게 크리스마스를 지낼 식료품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주인이 돈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부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은 없고 내가 드릴 것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주인이 뜻밖의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기도를 종이에 쓰십시오. 그 종이 무게만큼 식료품을 달아서 드리겠습니다.”부인이 갑자기 가방을 열고 노트 한 권을 꺼냈습니다. 여기에 제 기도가 적혀있습니다. 그 기도 노트를 저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주인이 그 무게 정도의 작은 빵 하나를 저울 위에 놀려놓았습니다. 이상하게도 모자라는 것입니다. 더 큰 빵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래도 모자랍니다. 이번에는 고기를 한 덩이 올려놓았습니다. 그래도 모자랍니다. 당황한 주인이 큰 봉투를 주면서 부인이 필요한 것 마음껏 담아가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마침 그 때 저울이 고장이 난 것입니다. 주인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역시 기도의 능력이 위대하구나...”

그리스도인 사이에 국경이란  없지만 그들 자신이 속한 조국과 민족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민족과 나라를 위하여 애통해 하며 기도하는 선진들의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성경의 많은 신앙인들은  자기 민족과 나라를 위하여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그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던 것입니다. 

나라의 뜻은 아무 다른 것이 아니요 오로지 나(我]라는 것이다(안호상)라고 하기도 하며  나라라는 말을 어원적으로 보면 벌판을 의미한다(이진모)고 하기도 합니다. 일본의 고도 나라(奈良)는 지금도 나라라고 부르는데 우리 나라 말의 나라를 의미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루 "나레'에서 나온 까닭이라고 하며. 백제를 '구다라'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온 나라 즉 온 벌판이라는 뜻에서 나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나라는 좁은 땅이 아니라 넓은 벌판이라 본 것입니다.

나라를 국가라 하기도 하는데 국가라는 말은 중국에서 시초한 말이며 국가의 뜻으로 사용된 국천하사직(國天下社稷)도 중국의 문자로 이와 같은 국가의 근원을 혹(或]이었다고 하는데 무기를 가지고 일정한 지역 즉 토지를 수호한다는 뜻이었으며 백성과 전쟁 토지에 관계를 가진 문자였는데 그 후 토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입구(口)변을 더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서양에서는 국가를 폴리스 즉 전체 시민의 뜻이 보편적이라 하며 의지의 조화와 이해관계의 균형으로 성립한 진정한 정의의 동일체(플라톤)라고 하기도 하며, 인간성에 의하여 결정된 피할 수 없는 공동사회이며 완전한 생활 즉 행복하고도 명예로운 자족생활을 위한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생활형성체(아리스토텔레스는)라고 하기도 하며, 사회 전체로서의 일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 불가결하다고 하여 표준에 기하여 공동의 목적을 직접 또는 간접으로 달성하기 위한 규칙이다(라스키)라고 하기도 하고, 일개의 통일체이며 객관적인 정신의 표현으로서 윤리 도덕의 실현체(헤겔)라 하기도 하며, 단순히 국가를 구성하는 남녀의 각종 공동출입의사와 기능적 표현중 한 개의 기능적 표현에 지니지 않는다(코레)라고 하기도 합니다.

국가 성립의 학설로는 재산의 보호에다 두려는 재산설, 인간이 가지는 사회적 본능과 물질생활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투쟁을 방지하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각자의 계약 즉 인간의 욕구에 의하여 성립되었다는 계약설, 도덕의 최고 발현인 형태요 도덕을 완성하기 위한 인류의 제도라고 보는 도덕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기 위한 하나의 기관이라고 하는 실력설, 국민간의 관계를 생물학적인 유기체로 의국화(擬國化)시킨 유기체설,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제창함으로서 국제여론이 식민지 해방정책 등으로 전환되어 20 세기에 들어와 아세아 중동 아프리카 등 약소민족을 단위로 하는 민족국가들이 우후죽순처럼 많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보는 심리설을 주장하기도 하나 국가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의지에 의하여 설립된다는 신의설을 말하기도 합니다.

신의설은 신.구약 성경에 기초하여 하나님께서 세계 각국 나라를 세우시고 장중에 붙잡으시고 흥망성쇠를 섭리하신다는 것으로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학설로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에서와 무수한 신학자들 중에서 주장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 설립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그의 뜻에 순종함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최고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3위 1체 하나님이신데 그 중에서도 제2위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흘로 능하신 자시며 만 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라'(딤전 6:15)했습니다. 

또한 국가의 헌법은 제 I 헌법은 성경이요 제 2 헌법으로서 성경에 의거한 헌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나아가 국가의 정치는 민주주의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군주정치는 독재하기가 쉽고 귀족정치는 과두정치가 되기 쉽고 민주정치는 어리석게 되기가 쉽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중 민주정치가 가장 피해가 적으니 민주정치를 택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제네바시의 정치고문으로 역임하면서 극도의 혼란 부패에 빠졌던 제네바 시를 완전히 개혁하여 경건한 도시, 살기 좋은 국제도시로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치사상은  성경에 기초해서 I6세기 종교개혁자 특히 칼빈에 의해 창시 주장 실시되었는바 인격존중의 사상(마 I6:26) 자유존중의 사상 (갈 5:1.13)과 평등존중의 사상을 말합니다.

느헤미야서는 에스라서 마지막 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지면서 또 한사람의 위대한 지도자인 느헤미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에스라와 비교해 볼 때  평범한 유대인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시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준비하셨습니다. 느헤미야는 고국의 소식을 전해 듣고 가슴 아파했으며 조국과 동족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기도에 힘입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20년 곧 주전 445년으로 에스라가 사역을 시작한 지 13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이때 느헤미야의  형제인 하나니가 느헤미야를 찾아왔습니다. 하나니는 느헤미야의 동생으로서 느헤미야의 곁에서 여러 모양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니는 느헤미야에게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의 형편을 보고함으로 느헤미야가 동족을 위한 사역을 감행하도록 도왔습니다. 하나니는 예루살렘의 상황에 대해,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당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이 불타 버렸다고 보고합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비참한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깊은 상처를 받고서 에스라가 그랬듯이 작정하고서 금식과 기도를 했습니다. 그의 조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그로 하여금 슬피 울며 금식하며 기도 할 수밖에 없게 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먼저 여호와를 '하늘의 하나님'으로 칭함으로써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고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며 기도했습니다.

(느 1: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이시며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며 무한히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조차도 그를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위로와 기쁨이 됩니다. 그러나 범죄하고 회개치 않는 자에게는 두렵고 떨리는 하나님이지만, 회개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고 지키는 자에게는 긍휼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시 103:17)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하나님은 또한 자신의 백성 가운데 계시고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초월적이시며 동시에 내재적이신 하나님으로 믿는 균형 잡힌 신앙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초월적이며 내재적인 하나님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좋은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했습니다.

(느 1:6-7)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는 자기 조상과 민족의 모든 죄까지 끌어안고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에스라나 다니엘처럼 민족의 죄악과 범죄를 마치 자신의 범죄인 것처럼 여기고 자복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느헤미야의 이러한 태도는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데, 참된 지도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회계할 자인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에스라처럼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악을 연대 책임지고 친히 자기의 죄처럼 여겨 회개하며 기도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었으나 항상 목이 곧아 우상 숭배로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그들에게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지니라'고 하시고,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네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받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거역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겠노라고 서약했습니다(수 24:16-18). 이것은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언약(covenant)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바알과 온갖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죄는 한마디로 우상 숭배의 죄였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어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고 하나님을 자신의 등 뒤에다 버렸습니다(왕상 14:9). 그 범죄의 대가로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고, 솔로몬이 끌어들인 바알 숭배로 인하여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같은 범죄를 하나님 앞에 깊이 자복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열국 중에 흩어진 것은 다른 사람의 죄가 아니라 곧 나와 나의 아비 집에 원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겸비와 회개입니다.

에덴에서 최초의 인류는 범죄 후 하나님의 책망에 범죄의 원인을 남에게 전가했습니다. 여자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고 말했고 남자는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13)고 하였습니다. 그 이후 인류의 범죄 심리는 언제나 '나 때문'이 아닌 '남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내가 못 사는 것은 남이 내 몫을 더 많이 착취해 간 때문이요, 내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회 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유다의 모든 죄가 '나와 나의 아비 집'의 범죄임을 자복하였습니다. 
계명(미츠바)은 율법(토라) 중에서도 모든 법의 기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계명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계명은 역시 십계명입니다. 계명은 종류가 많고 구체적이며, 상호 동등하고 독립적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율법의 정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 속에 다 들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마 22:37-40).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계명은 초기 기독교회가 윤리적 교훈으로 수용하여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율례(호크, 후크)는 규정된 법령을 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으로서 형법이나 민법 등 송사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에 근거하고 있으며(신 4:5, 14; 5:31),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동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규례(미쉬파트, 다드, 추카)는 의식법이나 위생법, 또는 논쟁법과 같은 일시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법규이며, 이 법규를 변화무쌍한 상황에다 계명(말씀)을 적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규례가 제정되면 어느 일정 기간 동안은 그 규례를 철저하게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시편에서는 규례에 순종하는 것을 외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지키는 것이 곧 특권이라고 가르칩니다.

(시 119:55-56)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계명과 율례와 규례는 모두 법도(ordinance)와 같은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동일한 내용을 가리킵니다. 
느헤미야는 자기의 민족과 자기 조상의 집이 포로로 잡혀간 이유를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지 않은 데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죄 민족의 죄를 자복하며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좋은 일꾼들이 됩시다.

하나님께 조상과 민족의 죄와 악을 자복한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언약의 하나님이시며 은혜의 하나님이시고 이미 놀라운 은혜와 권능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내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도우심을 믿고 기도합니다.

(느 1:8-10)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제도에 의하여 그의 백성들과 관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의 말씀은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그의 신실하심과 진실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믿으면서 살아온 백성들입니다. 이러한 약속은 모세 때에 이르러 십계명으로 시내 산에서 성문법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의 법을 어기고 우상을 섬겼으며,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체결한 언약을 신실하게 지켰으며 성취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언약을 이행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그의 말씀대로 다 이루십니다. 그의 언약의 성취에 있어서 때로는 오랜 세월이 걸리기도 하지만 마침내 이루시고야 맙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으로서 긍휼을 베푸시며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심을 알고 신실하게 의지하고 믿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신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롬 4: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고, 약속을 성취해 주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기억하면서,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에 의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악과 어려운 고난에서 건져 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지난 날 애굽에서 구속하신 사실에 기초해서 믿고 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지난날 보우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함께 하시고 도우실 줄 믿고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좋은 일꾼들이 됩시다.

느헤미야는 성직자이거나 대단한 가문의 출신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과 그의 백성, 그리고 그의 나라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자 했으며, 그것을 위하여 금식하고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느헤미야의 모습은 믿는 우리들 모두가 가져야 할 올바른 섬김의 자세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치 현실과 교회와의 상관관계는 매우 복잡하고도 다양하여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혼선을 가져오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은 하나입니다. 세상의 모습이 어지러울수록 난국일수록 더욱 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 탈선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따라서 부화뇌동하는 일 없이 하나님 믿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개인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족과 사회 및 국가의 일원으로서 생활하기 마련입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내 가족 내 사회 및 내 나라의 구성원으로 그 갈 길을 타고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국하여야 하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불란서 전쟁 때, 오른팔에 총탄을 맞은 어느 사병이 육군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결국 그 팔을 자르게 되었다합니다. 그래서 수술하기 직전에 군의관이 "안타까운 일입니다마는 당신의 팔은 이제 잃어버리게 되었소"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그 사병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 팔을 조국에 바쳤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유명한 영국수상 윈스톤 처칠경은 그의 "전쟁 회고록"(War Memories)에서 1940.9.15을 가르쳐 자기 조국인 영국이 당시의 나치 독일과의 공중전에서 특별한 승리를 거둔 "절정의 날"이었다고 증언했다고 합니다. 당시 독일 공군기와 폭격기가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 상황에서 영국 측으로서는 거의 방어수단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독일군 이 결정적인 승리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독일 비행기들이 전혀 이유 없이 10분 동안에 걸쳐 전면적인 후퇴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공군 전투 부대 사령관이었던 공군대장 다우딩(Dowding)경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 날을 회고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으로 의당 일어나야 할 사건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엄청난 사건이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만 그럽이 쓴 "탁월한 중보기도의 사람 리즈 하월즈(Rees Howells)"에 보면 당시 웨일즈 성경 대학의 학장이었던 리즈 하월즈의 영향으로 처칠수상은 두 번에 걸친 전국적인 기도의 날을 선포하여 온 교회 온 국민에게 기도를 호소했다고 합니다. 리즈 하월즈 자신은 독일의 공습이 시작되자 학교강당에서 교직원 학생들과 함께 매일 아침1시간과 점심 후 그리고 저녁 7시부터 자정까지 기도에 힘썼고 공습이 절정에 달할 때 마다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는 독일공군이 이유 없는 후퇴를 하던 9.15직전에 기도회를 인도하며 "잦은 공습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분들이 계십니까? 여러분 자신이 지옥에서 구원받은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공습에서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왜 믿지 못합니까?---그러나 우리가 만일 이때에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 갈수만 있다면 나치 속에서 역사하는 마귀의 체제는 오래지 않아 종말을 고할 것이며, 고귀한 생명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전쟁의 흐름을 바꾸시는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합니다.

나라 없이는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 이웃이 마음 놓고 살아 갈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 속에서 나라야말로 나를 가장 잘 보호해 주고 잘 살게 해주는 외면적인 한 근원이요 배경임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며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좋은 일꾼되되 광복절을 맞으며 나라 위하여 기도하되 초월적이며 내재하시는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며 언약을 기억하며 도우심 믿고 기도하는 좋은 일꾼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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