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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기 가면 해결이 있다 (마 26: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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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가면 해결이 있다 (마 26:36-46)


인천에서 목회하고 계시는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교인들 사이에 인간관계가 너무나 복잡한 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이십니다. 교인들 사이에 갈등이 너무나 심하여 가끔 목사님이 조정하느라고 골머리를 앓는 적이 많습니다. 따라서 가끔 스트레스가 쌓이곤 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목사님이 꼭 찾는 곳은 야구장이라는 것입니다. 야구장에 가서 야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리를 터득합니다. 캐처는 투수가 공을 어떻게 던지든지 다 받아서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 하면 좋은 캐처가 아닙니다. 좋은 공이든지, 나쁜 공이든지 상관 없습니다. 다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목사님은 다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다 받자. 그리고 남에게 편안하게 나누어 주자.”
그 목사님은 그 곳에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고 있습니다.

나는 외롭거나 문제가 생기면 개인 기도실에 들어가 명상하며 정리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때로는 목욕탕에 들어가서 따뜻한 물속에 들어 앉아 평안히 정리하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때에는 어머니 묘입니다. 어머니 표앞에 앉아서 나혼자 말합니다.
“어머니! 저 왔어요.”
어머니가 살아나 저를 안아 주시는 포곤함을 느끼며 지혜를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그 곳에 가면 해결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 갑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장 고통스러우셨던 순간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는 순간입니다. 33살의 청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습니다.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9명 제자는 멀리 두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만 가까이 데리고 가셔서 깨어 기도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도하다가 졸곤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세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그리고 예수님은 조금 떨어져서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그 곳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지실 수 있는 능력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1. 그 곳에 가면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거하시면서 문제만 생기면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시는 것을 습관을 좇아 가셨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눅 22;39)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시는 것이 습관이었습니다. 늘 그 곳에 가셔서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문제 해결책을 찾으셨습니다. 그 곳에 가시는 것이 습관이었다는 말은 자주 가셨다는 말입니다. 같은 행동을 21번 반복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몸에 배면 인격이 됩니다. 예수님은 습관적으로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마지막 문제 십자가 문제도 이 곳에서 해결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문제 인류 구원의 문제를 이 곳에서 해결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최고의 목적을 이 곳에서 이루실 능력을 받으셨습니다. 
겟세마네는 예수님이 그 곳에 가시기만 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었습니다.
거기만 가면 문제가 해결되는 습관적인 곳이 하나씩은 있어야 합니다. 

이삭에게는 이런 전설이 흘러 내려 오고 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살에 난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명령이라면 어떤 명령도 들은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올라 갔습니다. 바위위에 묶어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칼을 들었습니다. 죽이려 할 때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이삭은 죽기 직전에 살아났습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5분만 늦었어도 이삭은 죽었을 것입니다. 그 후 이삭은 어려운 문제만 있으면 자기가 죽을 뻔한 바위를 찾아서 기도하며 매달렸다고 합니다. 물론 전설입니다.
이미 죽었다 살아난 것이라고 생각하면 왠만한 괴로움과 아픔을 다 잊을 수 있었던 것같습니다.

삭개오에게도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마치는 매국노였습니다. 돈은 많았으나 사람들에게 왕따 당하고 사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였습니다. 너무나 외로웠기에 예수님을 만나 하소우연하고 인생 문제를 해결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뽕나무위로 올라가서라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그렇게 간절히 사모하는 삭개오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뽕나무 밑으로 오셔서 삭개오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 집에 가셔서 하룻밤을 지내셨습니다. 지나가시다가 그 집에 머므르신 기록은 이 곳에 한 곳뿐입니다. 비록 하룻밤이었지만 긴 밤이었습니다. 인생이 바꾸어진 구원의 밤이었습니다. 그 후 일주일만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가셨습니다.

삭개오는 자기에게 세리장 임명장을 수여한 빌라도를 찾아 갔습니다. 임명장을 내던지며 외쳤습니다.
“‘내가 존경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당신에게 충성하지 않겠소.”

그 후 삭개오는 인생의 문제만 생기면 뽕나무로 가서 뽕나무를 붙들고 예수님을 생각하며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 해결의 해답이 떠올라 그 곳을 인생의 중심지로 삼았다는 전설입니다.

묻습니다.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겟세마네가 있습니까?
문제만 생기면 가고 싶어지는 곳이 있습니까? 아프면 찾는 곳이 있습니까? 당신의 겟세마네는 바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자리가 바로 여러분이 엎드리는 자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그 분을 만나면 됩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를 습관적으로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소가 좋아서 자주 찾은 것일까요? 겟세마네는 감람산에 있는 곳입니다. 감람산이란 감람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습니다. 감람나무가 많기에 그 곳에는 감람유를 짜는 틀이 많았습니다. 겟세마네란 <쥐어 짠다>라는 뜻입니다. 감람열매를 넣고 쥐어 짜서 감람유를 만드는 곳이 겟세마네입니다. 예수님는 감람나무를 보러 자주 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람유를 마시러 자주 가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만나러 겟세마네에 습관적으로 가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만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해결하지 못 할 문제는 없습니다. 그 분은 못 할 것이 없으신 분이기에 그 분을 만나면 해결됩니다.

사무엘상 9장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나귀를 잃어 버렸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승용차를 잃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 곳은 열대지방입니다. 나귀가 승용차입니다. 예수님도 나귀를 타고 다니셨습니다. 그래서 아들 사울에게 나귀를 찾아 보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나귀를 찾으러 사환 한 명을 데리고 여기 저기 며칠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나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울이 사환에게 말했습니다.

“내 부친이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삼상 9;5)
그랬더니 사환이 말했습니다.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삼상 9;6)

그 때 사울이 그에게 가려면 감사헌금을 드리고 묻고 싶은 데 돈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어떻게 하며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사환은 마침 자기 주머니에 돈이 조금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과 사환은 그 사람 바로 사무엘에게 갔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보자 하나님이 자기에게 가르쳐 주셨다고 말하면서 왕으로 기름를 부어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나귀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만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 분만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만 만나서 설득하면 모든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사형수 아들을 둔 어머니가 제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대통령입니다. 아무리 사형선고를 받았어도 대통령이 특별 사면권을 이용하여 살릴 수가 있습니다. 사형수 자식을 둔 어머니는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할 가요?

국내 문제라면 대통령을 만나면 해결될 수 있지만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사형수를 살릴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는 지 모르지만 불치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대통령에게 없습니다. 유능한 의사도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울어도 못 하고 힘써도 못 하는 문제는 오직 하나님 그 분만 만나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분 곧 하나님을 만나러 습관적으로 겟세마네를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됩니다.

말로는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다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말발이 아주 센 할머니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집에 똑똑한 며느리가 들어왔습니다. 항상 기도하는 며느리입니다. 항상 성전에 가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며느리였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를 아는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저 며느리는 이제 죽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시어머니가 조용했습니다. 그럴 분이 아닌데 하면서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들어올 때 시어머니는 벼르고 별렀습니다. 처음에 꽉 잡아 놓지 않으면 나중에 큰일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시집살이를 아주 강하게 시켰습니다. 생트집을 잡았습니다. 일부러 모욕도 주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전혀 달랐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발밑으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시어머니가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친정에서 그런 것도 안 배워 왔냐?"
며느리는 공손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친정에서 배워 온다고 했어도 시집와서 어머니께 배우는 것이 더 많아요. 모르는 것은 자꾸 나무라시고 가르쳐 주세요."
어느 때는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 것도 모르면서 대학 나왔다고 하느냐?" 
며느리는 도리어 웃으며 말했습니다. 
"요즘 대학 나왔다고 해봐야 옛날 초등학교 나온 것만도 못해요, 어머니!"

매사에 이런 식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아무리 찔러도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대꾸라도 해야 큰소리를 치며 나무라겠는데 무슨 말을 하여도 다 겸손히 받았습니다. 
나중에 시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너에게 졌으니 집안 모든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3. 그 것을 하면 됩니다.

겟세마네, 그 곳에 가면 됩니다.
하나님, 그 분을 만나면 됩니다.
그 것, 기도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면 되는 것을아셨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속터지는 일,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 종종 찾아 오게 됩니다. 그 때 참기만하면 병이 되고 암이 됩니다. 우울증에 걸립니다. 그렇다고 감정대로 처리하면 경박한 사람이 됩니다. 실수하기 쉽습니다.
미국 대통령 저격범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털어놓고 말할 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살자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친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털어놓을 사람이 없으면 엉뚱하게 사고를 저지르게 됩니다. 남을 죽이거나 자기를 죽이게 됩니다.

그렇기에 문제가 생기면 품고 있지도 말고 발산하지도 말고 다른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시원하게 털어 놓는 것입니다.
기도가 해결책입니다. 기도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예수님처럼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핵심입니다. 나의 목적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기도하여서는 안 됩니다. 내 꿈이 성취되기 위하여 간구하여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도 사형당하기 싫어 하셨습니다. 사형당하기를 좋아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33세입니다. 그런 고통을 당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 잔을 마시지 않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끝에 가서 결론은 하나님이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미국 뉴욕 재활병원 실로암 안과 병원의 벽에 붙어 있는 어느 환자의 글입니다.
“큰 일을 이루기 위하여 힘을 주십사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하려고 건강을 구하였더니 보다 가치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 지고 싶어서 부요를 구하였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사람들의 칭찬을 듣고자 성공을 구하였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모든 것을 달라고 구하였더니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삶 자체를 주셨습니다.
구한 것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는 줄 알았는 데 내 소원 모두를 들어 주셨습니다.
나는 가장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결사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 주님의 기도는 결사적인 기도였습니다. 결사적이라는 흔적이 본문에서 발견됩니다. 우선 시간으로 결사적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세 기도하신 시간은 모두가 잠자리에 든 시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모세부터 지켜 왔습니다. 하가다라는 유월절 예식서가 있습니다. 보통 4시간 정도 걸려야 이 예식을 다 마칠 수가 있습니다. 해가 지면 시작됩니다. 에수님도 저물 때 마가 다락방에서 유월절 예식을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더구나 제자들의 발도 일일이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로 오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피곤하던 지 다 잠들었었습니다. 그런 시간에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잘 때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장소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갈멜산으로 가신 것이 아닙니다. 변화산으로 가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겟세마네란 쥐어 짠다는 뜻입니다. 그 곳에는 감람나무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감람유를 짜는 틀들이 여기저기에 많았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란 이름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그 날 밤에 겟세마네에게서 겟세마네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쥐어 짜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결사적인 기도를 한 것입니다.

태도적으로도 마찬가지로 결사적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

간절히 기도한다는 말은 간이 저릴 정도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으면 땀과 피가 나왔을 가요? 기도는 이같이 결사적으로 하여야 함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노동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아무리 노동한다고 피가 나오겠습니까? 마지막 예수님의 기도는 노동 이상이었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아도 결사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습니다. 보통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두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얼굴을 땅에 파묻고 기도하였다는 말은 성경에 이 곳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결사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모범입니다.
어떤 주석가는 이렇게 주석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골고다 십자가에서 육신의 물과 피를 다 흘리셨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영혼의 피와 물을 다 쏟으셨다.”
진실로 겟세마네 동산 기도는 결사적인 기도였습니다.

반복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같은 기도를 세 번 반복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세 번 반복하여 잤습니다. 같은 기도를 한 장소에서 한 시간에 반복하였습니다. 기도는 반복입니다.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하여야 합니다. 승리의 자신이 올 때까지 부르짖어야 합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올 때까지 기도하여야 합니다.

모든 역사는 반복하는 것입니다. 지구가 생긴 이래에 지금까지 지구에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주가 생긴 이래에 지금까지 지구는 태양을 돌고 있습니다. 반복에 이상이 오면 큰 일입니다. 예수님도 잔을 옮겨 달라고 기도하고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달라고 반복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반복하여야 합니다.

솔직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솔직하게 기도하셨습니다. 두 가지 솔직함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38)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39)

예수님은 솔직하게 자기 심정을 토로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기도는 위선적이었습니다. 이중적인 저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기도는 솔직하게 심정을 토로하는 기도였습니다.

어느 분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이런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그 쪽 사정은 어떻습니까? 이 곳은 엉망진창입니다. 이 곳을 하나님의 은혜로 정화시켜 주옵소서!”
이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감정 그대로 들어 내놓고 그대로 하는 기도가 진실된 기도입니다. 예수님도 고민스러우면 고민스러운 그대로 토로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싫으면 싫으시다고 솔직히 말했습니다. 지금의 감정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그러나 결론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이 뜻대로 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것인 진실한 기도입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나니까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새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 것으로 인하여 날 수 있습니다. 배는 돛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항해합니다. 기차는 화통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질주합니다. 비행기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날아 갑니다. 어떤 사람이 시계에 달린 추가 너무 무거울 것같아서 떼어 버렸습니다. 순간 시계바늘이 서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피곤하여도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달릴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일어나 당당하게 갈 수 있습니다..
능력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는 고민하셨습니다. 심히 슬프셨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나서는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이제는 고민이 사라졌습니다. 슬픔도 없어졌습니다. 번민과 망설임도 안녕이었습니다. 이제는 일어나 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도망가실 수도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이길 수도 있었습니다. 12 영이나 되는 천사를 동원시키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정면으로 받아 드릴 수 있었습니다. 행동으로 옮길 수가 있었습니다. 기도 후에 일어난 역사입니다. 

신학자 슐라이마하는 말했습니다.
“기도없는 행동도 문제이지만, 행동없는 기도도 문제다.”
예수님은 기도하시고 행동하셨습니다. 겟세마네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은 천사의 도움을 받으실 수 있게 되었고 기도하는 바를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겟세마네 거기에 가면 해결이 있습니다.

1. 그 곳에 가면 됩니다.
2. 그 분을 만나면 됩니다.
3. 그 것을 하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잘 알고 있는 충청도에서 목회하고 계시는 목사님 이야기를 드리고 마치렵니다. 그 분은 매 주 토요일이면 아무도 없는 산에 올라가 기도하고 내려 오시는 것이 20년간 어김없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 곳에 가면 계곡에 바위 하나가 있습니다. 그 바위가 바로 목사님이 매주 토요일이면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가서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어려운 고비를 넘기게 하곤 하는 체험을 너무나 많이 하였기에 그 곳에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기도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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