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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가 통하는 사회 (잠 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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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통하는 사회 (잠 9:1-10)


연말 대선을 앞두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상식이 통하는 정치를 하겠다." 아마도 요즘 우리 사회나 정치에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다보니 이분들이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많은 국민들도 이분들의 이런 말에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과연 상식 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일반적인 사람이 다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어야 할 지식이나 판단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을 간단히 줄이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보편적 지식과 판단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읽은 잠언의 말씀에는 '지혜'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는 흔히 '지혜'라고 하면 머리가 똑똑하고 두뇌 회전이 빨라 문제를 잘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일을 해도 지혜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그 일을 빨리 하고 또한 능률적이고 효과적으로 합니다. 국어사전에서도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의 능력"이라고 지혜의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지혜'란 아주 특별한 능력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혜를 소유하길 원합니다. 지혜만 있으면 일도 잘 할 수 있고 문제가 발생해도 그것을 쉽게 해결할 수 있으며 사람들과의 관계도 큰 어려움 없이 원만할 수 있고, 지혜롭기 때문에 자신이 손해 볼 일도 별로 없고 또한 학업에 있는 학생들은 지혜가 자신의 성적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잠언 9장에 나오는 '지혜'는 '아주 특별한 능력'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잠언 9장에는 지혜를 의인화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1절) → 지혜가 자신의 집을 짓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 자신의 여종을 보내 사람들을 초대합니다.(3절, 5절) 성중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부르면서 자신의 잔치 자리에 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6절) → 지혜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지혜가 없는 사람들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음의 길에서 돌이켜 자신의 집으로 와 잔치에 참여함으로 지혜를 가질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외치고 있는 초청의 메시지인 말씀 속에는 간절한 바램이 있습니다. 

또한 '지혜의 간절한 바램'에는 역설적으로 지혜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혜에 대해 별 관심이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 없는 사람으로 대표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이들은 지혜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지혜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능력이나 재능이 된다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 지혜를 소유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애쓸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지혜는 특별한 능력과 재능이라기보다는 평범한 능력과 재능으로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가져야 할 보편적인 능력을 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본문에서 말하는 지혜는 앞에서 언급한 상식과도 같은 것입니다. 특별한 능력이라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가져야 할 보편적인 지식과 판단력이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곧 ‘지혜가 통하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지혜가 사람들에게 ‘지혜가 통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사람들이 지혜를 가져 그들이 지혜를 행함으로 지혜가 서로 통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옛날 학창 시절 점심시간에 긴 줄을 서서 기다리다 밥을 먹은 기억이 납니다. 수업 마침 종이 치자마자 불이 나게 식당으로 달려갑니다. 친구들 사이에 경쟁이 붙습니다. ‘누가 먼저 배식대 앞에 줄을 서나’를 경쟁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배식대 앞에 줄을 먼저 서는 순서대로 배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고, 혹 뒷줄에 서게 된 경우 밥과 반찬이 부족해 조금밖에 먹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일 먼저 온 학생에게 식당 아줌마는 제일 먼저 밥을 배식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규칙이고 또한 상식입니다. 이런 상식이 통하기에 학생들은 또 다른 지혜를 발휘합니다. 학생들은 수업 마침 종이 치기 전에 먼저 책들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신발 끈을 미리 메어놓습니다. 그리고 뛸 때는 부지런히 뜁니다. 옆 친구와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식당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합니다. ‘가장 먼저 온 사람에게 가장 먼저 배식을 한다.’ 것은 원칙이며 또한 상식이며 지혜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먼저 와도 저학년이란 이유로 또는 힘이 없다는 이유로 배식 줄에서 뒤로 밀리고 배식하시는 아줌마를 안다는 이유로 먼저 배식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식이 지켜지지 않으면 또 다른 상식이 지켜지지 않고 지혜가 통하지 않으면 또 다른 지혜가 통하지 않아 사회 전체가 지혜가 통하지 않는 혼란스러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지혜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지혜 없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잠언과 본문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머리 나쁜 사람이거나 지식이 없는 또는 못 배운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가져야 할 보편적인 지식과 판단력이 없는 사람 즉 상식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상식이 부족한 사람은 곧 지혜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또한 잠언 9장 7절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어리석은 자들보다 더 심한 거만한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상식과 지혜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조롱하며 그들의 선한 의지를 꺾어 버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상식을 파괴시킵니다. 지혜를 무효화시킵니다. 어리석은 자들 보다 더 심한 폐해를 끼치는 거만한 사람들은 보편적인 지혜를 파괴하고 자신만을 위한 사리사욕에 앞서며 불법적인 지혜를 사회에 전염시킵니다. 본문 9장 8절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를 통해 이들은 지혜를 얻을 자격이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 사회에 어리석은 자와 거만한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 사회에서는 더 이상 지혜가 통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지혜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온갖 편법이 다 동원 됩니다. 지혜로 사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들로 치부됩니다. 지혜로 살면 손해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어리석고 거만한 사람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오히려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여깁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만연한 사회를 향해 본문의 지혜는 외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어리석음을 버릴 것을 외치고 있습니다. 거만한 자들에게 자신의 거만함을 버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 9장 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라고 말씀하면서 지혜가 통하는 사회가 되려면 먼저는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지혜의 근본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가 바로 설 때 다른 지혜들도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또한 지혜가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앞장 서야 하는 사람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이라고 더불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은 지혜의 근본 됨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은 보편적인 지혜를 행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 곳에 모인 우리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이므로 상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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