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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 하나라도 (요 6: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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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라도 (요 6:5-13)

미국에는 스포츠나 연예계에 명예의 전당이 있습니다. 거기 들어가면 그 분야에서는 대단한 영광이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박세리가 골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답니다. 웬만한 업적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정말로 탁월해야 합니다. 여기 들어 갔다고 하면 그 분야에서는 거의 신과 같은 존재여야 합니다. 영광이 대단해요. 

하늘나라에도 명예의 전당이 있습니다. 어느 분야가 탁월해야 할까요? 사람들의 영혼에 큰 유익을 주고 하나님 이름을 높이는 데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 영광 영원합니다. 명단 일부가 히브리서 11장에 나옵니다. 처음에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해서 무언가 하고 싶어 자신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탁월하게 만드십니다. 

1. 보통사람을 부르신다 

천국문은 아직 잘 열려 있습니다. 천국 명예의 전당도 그래요. 구약시대건 신약시대건 구경꾼들은 구름처럼 많았습니다. 그중 일부만 천국에 들어갔고, 또 그중의 소수만이 명예의 전당에 있습니다. 오늘도 같아요. 하나님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명예의 전당에 들어오기를 바라십니다. 영광과 복은 이 땅 여기의 삶부터 영원합니다. 

땅에 속한 명예의 전당은 보통 사람에게 가망이 없습니다. 재능을 타고나야 하고, 노력도 거의 죽을 정도 해야 합니다. 운도 따라야 해요. 그러나 하늘나라의 탁월함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십니다. 지원자를 불러도 세상 명예의 전당처럼 여겨서 아예 생각도 안 해요. 반응하면 힘이 옵니다. “나 하나라도.” 이렇게 나서면 달라집니다. 

구약의 탁월한 모세는 태어날 때 인물이 좋았습니다. 운도 좋아 이스라엘 남자아기들이 다 죽어야할 때 공주의 아들로 입양됩니다. 공부 잘하고 지위 높았어요. 그러나 그 정도로는 세상 명예의 전당도 못 들어가요. 살인자, 도망자로 지내다 나이 80이 되니 늙고 약하고 돈도 배경도 없어요. 그래도 하나님께 드리니 달라집니다. 

너 하나라도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라 하실 때 감당할 상황이 아닙니다. 모세는 말도 못하고 겁도 많습니다. 그래도 갑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약속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라.” 이사야도 선지자로 나설 때 그랬어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가 나섭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예수께서 설교하실 때 만 명 넘는 사람들이 들판에 있었어요. 다 허기졌어요. 물으십니다. “어디서 떡을 구해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그때 한 애가 나섭니다. 그저 싸온 겸손한 음식을 드립니다. 자기가 그런 큰 기적의 주인공 될지는 몰랐어요. 그냥 나섰더니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그의 헌신은 하늘 명예전당에 올려집니다.  


2. 탁월하게 만드신다 

상황은 전혀 맞지 않았어요. 만 명 넘는 사람들에게 그 정도로는 전혀 도움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려지면 기적이 나와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음식이 있었을 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들은 내놓지 않았어요. 다 배고픈데 나눠 먹어야하지 않습니까! 그 많은 사람 어떻게 감당하고요. 그러나 헌신은 자기 분량만 드리면 됩니다. 

이 아이 마음은 이것입니다. “나 하나라도.” 더 이상 할 힘도 없어요. 그러나 만 명 이상 먹인 사람으로 기록됩니다. 그에 해당하는 상을 여기서도 받고 영원한 세상에서도 받습니다.  어려서부터 헌신한 사람이니 평생 얼마나 아름다웠겠습니까! 천국은 특별한 사람에 의해서 일어나지 않아요. 자신을 드린 보통 사람이 세웁니다. 

루터를 보세요. 그는 로마가톨릭교회의 하급 신부였습니다. 당시 국력이 가장 약했던 독일 시골 한 구석 교회를 섬깁니다. 어느날 교황청에서 나온 사람이 마을에서  설교합니다. “이 면죄부를 사면 돌아가신 부모님도 천국 보냅니다.” 얼마나 설교를 잘하는지 순진한 농민들이 없는 돈을 다 가져와 면죄부를 삽니다. “이건 아닌데.” 
“나 하나라도 바르게 말해야지.” 천국 가는 방법 쓰다 보니 95개 조항이나 됩니다. 교회문에 써 붙였습니다. 그것이 유럽 전체에 퍼지면서 졸지에 교황의 원수가 됩니다. 너무 무서웠어요. 누구든 그를 죽이면 영웅입니다. 철회하든지 죽든지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커집니다. 그 지역이 루터의 시, 성지로 변합니다. 

보리떡을 드리면서 아이는 굶을 각오합니다. 약간의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불을 지고 가는 게 아닙니다. 자기 할 일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십니다. 아이는 자기와 모두를 먹입니다. 루터도 모세처럼 모든 역경을 이길 힘을 받습니다. 그렇게 큰 인물로 명예 전당에 들어갑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하십니다. 


3. 구경꾼인가? 영원한 복인가? 

우리 모두는 이렇게 자신을 드린 사람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그들 덕분에 편하게 신앙을 가졌어요. 루터 덕에 복음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질문은 남아있습니다. 이 짧은 삶을 구경꾼으로 보낼건가, 아니면 영원한 복을 향해 도전할 것인가? 그 해답은 이것입니다. “나 하나라도 하나님께 맡겨보자. 그냥 구경만하지 말자.” 

무슨 특별하고 대단한 각오 하라는  게 아닙니다. 집 팔고 직장 그만두고 전도사로 나가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자기가 속한 자리에서 한 발자국만 더 나서라는 말입니다. 그저 한 사람 분량의 일만 하면 됩니다. 보리떡 몇 개는 큰 부담이 아닙니다. 물론 북한 같은 데서는 큰 것입니다만. 여기서도 자신을 그렇게 위축시켰나요? 

“나 하나라도”의 반대는 “나 하나쯤”입니다. 이건 구경꾼보다 더 악합니다. 교회의 내 자리가 비면 천국의 내 자리도 빕니다. 예배나 수련회에서 내 자리는 채워야 합니다. “나 하나라도”는 내 한 몫만 하면 됩니다. 내 자리를 지키고 더해서 내 할 일을 해 보세요. 주의 몸이 복을 받고 거기 참여한 나는 천 배 만 배 더 잘 됩니다. 

어느 남편이 주일에 골프하러 갑니다. 그런데 비가 와요.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는데 나하고 교회가요.” 부인 말에 남편 가라사대, “정말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야. 나 지금 공치러 가야돼.” 골프 잘 쳐서 뭐하나요? 돈, 시간 낭비하고 몸은 비틀어져요. 죽을 때 골프 못한 걸 안타까워할까요? 뭘 두려워할지 생각해 보세요. 

오래 교회 다녀도 아무 체험 없나요? 당신은 구경꾼일 수 있습니다. 구경꾼은 천국의 신비함 안 보여요. 신앙성장은 축복성장입니다. “나 하나라도 제대로 해보자. 일찍 교회 와서 경건하게 헌금하고 적극적으로 예배하자. 하나님 감동 주시면 교회에서건 직장에서건 어디서건 얼른 나서자.” 순종이요, 복 받고 위대해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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