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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이 말년에 받은 복 (창 45: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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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말년에 받은 복 (창 45:16-28)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요셉이 형제들 앞에 자기의 정체를 밝히고 방성대곡 하는 장면이후의 일입니다. 자기를 노예상인에게 팔아먹은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면서 이는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말합니다. 

형들에게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이르고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울었습니다. 바로왕도 매우 기뻐하고 수레를 보내어 야곱을 모셔오라고 이르고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울었습니다. 야곱이 아들 요셉이 보낸 수레를 보고 기운이 소생하여 기뻐하였다는 내용이 창세기 45장의 기사입니다. 

요셉은 유다의 부친 야곱을 향한 진정한 효성과 형제사랑의 말에 가슴이 메어져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주위의 신하들을 물리치고 드디어 자기의 정체를 들어내고 큰 소리를 내어 울었습니다. "형제들이여, 내가 바로 요셉입니다. 동생 베냐민아, 내가 바로 네 형 요셉이란다"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라는 표현은 요셉의 매우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줍니다. 요셉은 눈물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한 나라의 총리 대신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있었으나 결코 눈물이 말라버린 냉혈한이 아닙니다. 

요셉의 눈물은 원한의 눈물도 아니고, 후회와 통한의 눈물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가슴에 벅차 오른 형제사랑의 눈물, 그리움의 눈물이었습니다. 눈물은 증오를 씻어내고, 눈물은 모든 이유를 몰아내고, 서로의 사이를 가깝게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눈에 눈물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면서 울고, 찬송하면서 울고, 형제자매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요셉도 인간인데 처음에 형들이 자기를 버렸을 때, 애굽으로 가는 노예상인에게 팔아먹었을 때 왜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하나님께 호소하면서 기도하는 동안에 그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고 오히려 형들이 불쌍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괴롭힘을 받을 때 그 사람에게 오히려 미안해하고, 그를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하시려고 그를 막대기로 사용하시니, 그가 나 때문에 악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 한 사람을 은총으로 이끌기 위해 그를 악역으로 삼으셨으니 그가 불쌍한 거지요. 요셉은 자기를 세우시려고 형들을 악역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실상은 아버지와 형들과 동생을 다 구원하고 모든 사람들을 기아에서 구출하시려고 섭리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사람이 다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처음에 어떤 일이 생길 때 우리는 그 일의 표면적인 면만 보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을 때에 우리는 세상 사람과 전혀 다른 태도, 즉 용서와 화해와 관용을 보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사람이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나를 이곳에 보내신 것은 큰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이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보낸 것이 아닙니다"라고 한 것처럼 그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제 3의 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 1의 안목은 형들이 나를 버렸다는 것입니다. 제2의 안목은 내가 고난을 이기고 여기까지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3의 안목은 하나님이 섭리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요셉과 같이 매사에 신앙의 안목을 가지시기 축원합니다. 제3의 눈을 가지고 세상만사를 살피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행동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편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사람의 위치를 정반대로 뒤집으신다는 것입니다. 

위의 사람이 아랫사람이 됩니다. 큰소리치던 자가 무릎 꿇고 빌게 됩니다. 형이 아우에게 절하게도 하십니다. 요셉을 미워하니 10명의 형들이 힘을 합쳐 그를 빈 우물에 넣을 때, 형들은 강자이고 요셉은 약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요셉이 강자이고 형들이 두려워 떠는 약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신세를 뒤집으신 것입니다. 강자가 약자 되고, 약자가 강자 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렵지만 하나님은 쉽게 뒤집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요셉의 이야기가 주는 구속론적 맥락을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형들은 요셉에게 크게 죄를 지었습니다. 구덩이에 던지고, 노예상인에게 판 것은 요셉을 죽인 것과 같고, 용서받지 못한 죄를 진 것입니다. 그러나 몇 번의 테스트를 통해서 형들의 회개를 보고 요셉은 무조건 다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들을 데리고 오라고 초청합니다. 

이는 바로 요셉과 예수님의 유사점의 구도를 보여줍니다. 인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용서 못할 죄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회개하는 영혼을 무조건 용서하시는 크신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생의 천국잔치에 초청되었습니다. 

요셉은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요셉을 통하여 당시 근동일대의 흉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물은 약한 자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눈물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땅의 모든 상처를 안고 눈물로 하나님께 중보하며 살아가시면 우리가 모두 눈물 흘리며 목을 안고 기뻐할 일이 생길 것입니다. 요셉과 같이 믿음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가 한 것 같고, 내가 이룬 것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의 예측을 초월하십니다. 교만한자는 꺾으시고, 겸손한자를 높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요셉의 삶을 통하여 장차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을 예표로 보여주셨습니다. 요셉을 판 죄는 용서받지 못할 죄였으나, 오히려 위로 받고 용서받고, 환대의 초청을 받았으니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우리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야곱이 말년에 받은 몇가지 축복입니다.

1. 평생소원을 이루는 복을 받았습니다. 

본문 26절 "야곱이 그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기색하더니"라고 했습니다. 두번째 애굽으로 곡식을 구하러 아들들을 보낼 때 야곱은 고민에 쌓였습니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고, 베냐민도 빼앗기게 되었으니 나를 다 해롭게 한다"고 탄식했습니다. (창 42:36) 

그러나 야곱은 나머지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그토록 사랑하는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러 갔던 아들들이 돌아올 때는 시므온도 돌아오고, 베냐민도 돌아오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기막힌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22년 전에 죽은 요셉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살아서 지금 세계를 호령하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 충격적인 소식 앞에서 야곱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하더니"(26절)라고 하였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믿어지니 않는 기적을 복으로 주실 때가 있습니다.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께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역사가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자식을 잃어버리고 평생의 아픔과 고통을 모년에 일시에 해결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해결 받아야할 아픔과 고통이 있는가? 건강인가? 사업인가? 가정문제인가? 자녀문제인가? 그것이 설사 해결 박을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라도 하나님의 능하신 장중에서 해결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자는 끝이 아름답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말년은 복된 것입니다. 

말년이 복된 야곱처럼, 끝이 아름답고 복된 성도님 되시길 바랍니다. 


2. 기운이 소생하는 복을 받습니다. 

본문 27절 "야곱이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야 기운이 소생한지라"고 했습니다. 

"와테이 루아흐", "기운이 소생하다", "그 영혼이 새로워졌다"는 뜻입니다. 야곱의 나이가 130세입니다. 야곱의 고백처럼 실로 험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야곱의 인생은 연극의 마지막 장면처럼 서서히 어두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육신의 쇠함과 더불어 그의 영혼의 불도 기름 떨어진 등잔불처럼 점점 잦아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아들이 살아 있다! 그 아들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애굽의 바로왕이 수레를 보내어 자기와 가족을 초청한다는 충격적 사건은 그에게 새로운 소망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요셉을 내가 보리라" 그는 아들을 만나는 소망으로 인하여 기운이 소생되었습니다. 

오늘 예수를 믿는 성도는 어디에서 새 힘을 얻을 것인가? 주님을 만나는 소망으로 기운이 소생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사 40:29) 

3. 만족으로 충만한 노년의 복을 받았습니다. 

본문 28절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오랫동안 요셉의 일로 인하여 극도의 비탄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무덤에 내려가서도 슬퍼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창 37:35) 

그의 삶은 슬픈 삶이었습니다. 고단하고 험난한 삶이었습니다. 그는 늘 아들 요셉을 빼앗긴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이루시기 위해서 잠시동안 요셉은 가족들로 부터 격리 시키셨던 것입니다. 더 복되고, 더 존귀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요셉을 잠시 빌려가셨던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돌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사명자로, 애굽과 이스라엘 백성과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야곱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앞에서 "하나님! 나는 만족하옵니다"고 고백했습니다. 

말년이 복된 야곱의 인생이 여러분의 말년의 복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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