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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사람의 결심 (눅 11: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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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결심’ . com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눅11;24-26)

여름의 뜨거움을 요즘처럼 확실하게 느껴보기도 어렵습니다. ‘여름은 더워야 제 맛이다’ 하는 데 정말 여름의 맛을 제대로 느끼고 있습니다. 성도님들 한 분 한분도 다 건강하시고, 더위로 고생하시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누가복음’은 누가 쓴 복음서일까요? 의사인 누가가 쓴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에 대한 기록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을 ‘인간(人間)’으로 보았습니다.  ‘인간이 되신 하나님’ 이 예수님이십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와 꼭 같은 사람입니다. 배가 고프신 모습, 피곤하신 모습, 눈물을 흘리시며 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부자가 가난한 사람 마음을 잘 모릅니다.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 마음 잘 모릅니다. 왜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셨을까요? 인간만이 인간의 고통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모든 문제는 예수님이 다 아십니다. 그분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귀신이야기를 합니다. 귀신의 특징은 더러움입니다. “더러운 귀신” 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합니다. 짧은 분량입니다. 그런데 아주 깊은 진리가 담겨있습니다. 이 말씀이 선포될 때에 성령님의 역사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삶의 변화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더러운 귀신이 ‘사람’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사람’ 에게서 나갔습니다.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합니다. 귀신은 물이 없는 곳, 메마른 곳, 사막 같은 곳을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 곳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보면... ‘눈물이 없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기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무덤덤한 사람. 옆에서 누가 다치고 아파도 맹숭맹숭한 사람, ‘나하고 상관없는데 뭐. 내 일이 아니잖아’ 하는 사람을 귀신이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이 가슴이 메마른 사람이요, ‘눈물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눈물이 있는 사람, 감격하고 감동 잘 받는 사람, 아직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더러운 귀신’이 이상한 말을 합니다.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사람을 ‘집’이라고 표현합니다.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합니다.  이번에 감림산 기도원에서 남서울 비젼교회 최요한 목사님 설교에서도 유사한 말을 들었습니다. ‘진정한 나’는 무엇이냐? 육체는 진정한 내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사고를 당해서 발이나 팔이 잘렸으면... 내가 절반이되고 내가 삼분의 이가 된 것입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체는 ‘집’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나를 담아놓는 ‘그릇’이 육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진짜 내가 아닌 이 ‘껍데기, 그릇, 집’ 에 불과한 육체에 너무 정성을 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체를 ‘진짜 나’ 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짜 나’ 는 ‘영혼’ 입니다. 

그런데 이 영혼이 갑갑해서 밖으로 나올 때가 있는데... 그것이 ‘말’입니다. 우리의 말은 우리의 영혼이 묻어있습니다. 그래서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속에 있는 영혼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육체는 영혼의 ‘껍데기, 그릇, 집’ 이 맞습니다. 

여러분, ‘집’이란 주인을 위해 지어진 공간 아닙니까? 
문제는 집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집의 주인은 3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는, 귀신이 집의 주인입니다. 

귀신이 집의 주인이 될 수가.... 당연히 있습니다.  귀신이 주인 노릇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귀신은 인간보다 강하기 때문에 인간이 자신의 힘만으로는 귀신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귀신에게 붙들려서 그를 주인 삼고 살게 됨으로 황폐해지고 비참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귀신이 우리 안에서 주인 노릇하게 되어 지면 더러운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멀리하고,  반드시 인간인 내가 가진 것, 육신적이고 현실적인 것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합니다.  돈이나 사람, 지식이나 기술, 재능이나 재물 등을 의지하게하고, 자기의 본능을 따라 살게 됩니다. 정욕을 쫓아서 범죄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타락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닮아 거짓된 삶을 추구합니다. 의심과 회의를 가지고 부정적으로 살게 합니다. 

둘째는, 나 자신이 집의 주인입니다. 

내 속에서 주인처럼 나를 제 맘대로 휘둘던 귀신이 나가고 나서, 그 마음속이 비어있는 사람은 귀신이 자기의 주인이 아니요 그렇다고 예수님도 주인이 아니므로 자신이 주인 노릇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 입니다.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 제 마음대로 행동을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자기 생각, 자기 마음이 기준입니다.  내가 좋으면 받아들이지만 내가 싫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의 주인이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남과 어울릴 수가 없지요. 심지어 교회를 다닐 수도 있지만... 자기를 위해서 교회를 다니고, 자기 잘 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신앙의 모습도 자기중심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2가지 신앙이 있다는 것을 아시지요?  ‘나를 위한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을 위한 내가 있습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 같이 있던 동기에게 전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야 잘 이해가 안 된다. 어차피 자기 잘 되려고 믿는 것 아니냐? 자기가 손해를 보면서 믿을 필요가 있냐?’ 하더라구요. 

맞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자기중심입니다. 자녀가 늙으신 부모에게 불효하고, 함부로 하고, 심지어 부모를 버리는 것도 다 이런 마음에서 하는 행동입니다. 부모가 자기에게 도움이 되면 효도하고, 자기의 행복에 걸림이나 방해가 되면... 귀찮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도 자기중심입니다. 이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자기 행복을 위한 하나님입니다. 열심히 교회를 다니지만... 다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잘못인가요? 당연한 이야기 인데... 제가 너무 나쁘게 말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자기중심이란 ‘이기적(利己的)’이라는 것 아닙니까?  이기적인 사람은 반드시 잔인해집니다. 남을 언제든지 이용하거나 배신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마음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세 번째는, 그리스도가 주인입니다. 

내 인생, 내 영혼의 주인으로 예수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진정한 친구 한 명이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어려움과 고민을 내 일처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생각만 해도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신 분’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큰 회사 사장이 그 회사의 종업원 한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면서, ‘자네의 앞길은 내가 책임을 지지. 열심히 해보게’ 한다면 얼마나 든든합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나를 책임지십니다. 나는 그 예수님께 나를 맡기고 순종합니다.  말 그대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이신 그분이 나를 영원히 책임을 지십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바로 이 세가지 입니다. 빈집은 계속 빈집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나의 주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귀신이 나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귀신을 주인으로 섬기느냐,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느냐 둘 중에 하나입니다.  (요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주인으로 모시겠습니까? 

이 시간 저는 ‘더러운 귀신’에 대하여 좀 더 깊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귀신은 사람을 집으로 생각합니다. 집 없는 처지가 얼마나 고달픈가요? 그래서 귀신은 집을 구하는 일에 필사적입니다. 

둘째로, 귀신에게는 회귀본능이 있습니다. 타향살이 하는 사람이 자나 깨나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자녀가 부모님을 그리워하듯이, 쫒겨난 귀신은 옛날 집을 그리워하고 그 집으로 다시 돌아와 봅니다. 즉 사람에게서 나간 귀신이 그 사람과 영원히 빠이 빠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귀신이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결심을 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여줍니다.  

셋째로,  귀신은 기억력이 좋은 편입니다.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올까요? 8마리가 있는 것보다 제 혼자 있는 것이 더 좋을 텐데... 다시는 쫒겨나지 않으려고 하는 결심입니다. 한 번 당해본 귀신은 다시는 쫒겨나지 않으려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절대 걱정 할 것이 없습니다.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주인’이 있는 것입니다. 빈집이 아니면 됩니다. 

여러분, 가까운 사람이 안 보이면... 멀리 갈 것 없습니다.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어렵게 찾을 필요 없습니다. 옛날 있던 곳에 가있고, 옛날 하던 짓을 하고 있습니다. (알콜, 노름, 음란...)  만일 깨끗하게 된 다음에 여전히 빈집이면, 여전히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자신이 주인 노릇하는 빈집이 되면, 일곱 귀신이 더 들어와 이전보다 더 황폐해지고 추하게 됩니다. 옛날 보다 더 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의 주인이 비어있을 때 바로 정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모실 것인가? 아니면 귀신을 다시 주인 삼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신앙은 중립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의 집이 깨끗할 때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셔서 예수님이 나의 왕이 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계속해서... 항상 성령 충만입니다. 다른 말로는 항상 예수님의 지배,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제가 비밀을 하나 말씀드립니다. 집이었던 사람이 죽으면 그 안에 살고 있던 귀신도 같이 죽을까요? 아닙니다. 귀신은 다른 집을 찾습니다.  다른 집을 찾는데... 익숙한 집을 찾습니다.  익숙한 집이 뭡니까? 그 사람의 자녀와 자손들이 익숙한 집입니다.  심지어 가까웠던 술친구가 선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친척이나 동류를 좋아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고, 죽은 사람의 습관을 흉내를 냅니다. 탈을 쓰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족력(家族歷)’ 이란 것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절한다든지, 알콜 중독이라든지, 폭력이든지... 그 가족이 대대로 내려오는 공통적인 특징이 가족력입니다.  (막5;9-10)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이 군대귀신은 그 지방에서 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지역마다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는 귀신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력’이라는 말은 매우 근거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설교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한사람의 결심’ 아닙니까!!! 한 사람이 이런 영적인 원리를 깨닫고 결심하면... 다 끊어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결심하면 ‘가족력’(家族歷)을 치워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 하나가 바로 서서 집안을 대대로 잡고 있는 귀신의 악한 영향력을 아주,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서울 예복교회 소진우 목사님은 5형제중 막내인데, 큰형 36세 졸. 둘째형도 30중반에 졸, 셋째형도 30중반에 대장암 3번 째 수술하러 들어가는 복도에서 ‘단명(短命)’이라는 가족력을 깨달았답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으로 집안의 단명, 요절을 끊어 버리는 기도를 선언했답니다. 예수이름으로 자기 교회에서도 끊어버리는 선언을 했답니다. 

이후 20년의 목회동안 단 한명도 70아래로 장례식을 하시는 분이 그 교회에서는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혼하는 사람이 제로라고 합니다. 20년 동안 현재진행형이라고 간증하십니다. 저도 목사이지만 이 결과를 본인에게서 직접 듣고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수천명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70아래로 장례식이 한 번도 없습니까!!! 어떻게 이혼이 한 명도 없습니까!!! 이것은 정말 기적입니다.  한 사람이 믿음으로 선언하니 그 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믿음으로 선언했습니다. 우리교회의 선언은 요삼2절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선언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온 몸이 다 아파서 죽느냐? 아닙니다. 하나가 아픈 것 때문에 온몸이 죽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죄를 다 범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곳이 다 막힌 것이 아닙니다.  하나가 막히고 하나가 묶여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를 해결합시다. 막힌 곳을 뚫고, 묶인 것을 풉시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누가 막힌 곳을 뚫고, 묶인 것을 풉니까?  나입니다. 나 한사람이 바로서서 결심하고, 선언하고, 기도하면 온 가정이, 집안이, 가문이, 교회가 바로 됩니다. 꼭 됩니다. 운명이 바뀝니다.  

(롬5;17-19)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멘입니다.

(왕상11;9-13)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12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솔로몬의 우상숭배의 결과가 무엇인가요? 그 한 사람의 우상숭배로 그냥 끝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우리의 삶은 우리로 끝이 나는가? 절대 아니구나. 솔로몬의 우상 숭배가 그 한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구나!!!  자녀에게, 후대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나.
 
또 있습니다. 12절 이후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우리의 삶은 우리로 끝이 나는가? 절대 아니구나. 다윗의 믿음이 자녀에게, 후대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구나.!!! 
 
그렇습니다. 지금 내 직분이, 지금 내 섬김이, 지금 내 생활이 자녀에게, 후대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결심하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귀신을 끊어버리는 결심. 예수님만을 주인으로 모시는 결심을 하십시오.  그러면 나 한명이 문제가 아닙니다. 온 가족이 변화됩니다.   악한 것을 반드시 끊겠다는 결심, 복의 줄기가 되겠다는 결심. 반드시 내 대에서 바로 잡고야 말겠다는 결심으로 살고, 기도하면 그 결심이 수대, 수십대를 내려가는 축복의 결심이 됩니다.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로 결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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