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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너와 함께 가리라 (창 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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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와 함께 가리라 (창 46:1-7)

장애인 레나 마리아라는 스웨덴 여인으로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라는 책을 썼습니다. 1986년 스웨덴 중남부에서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고 한 쪽 다리가 짧은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보호소에서 맡길 것을 권했지만 독실한 신앙인 인 부모는 하나님이 주신 아이로 확신하고 그 아이를 정상화와 똑같이 양육했습니다. 그래서 레나 마리아는 수영과 십자수, 요리와 피아노, 운전, 심지어 성가대 지휘에 이르기까지 하나밖에 없는 오른발로 못하는게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3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해서 장애인 올림픽 스웨덴 대표로 4개의 금메달을 따는가 하면, 스톡홀름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가서 가스펠 송을 공부하고, 지금은 전세계를 다니며 복음성가 가수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1992년 이후 일본에서 매년 그녀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는데 기독교 인구가 적은 일본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복음전도에 지대한 영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세계언론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천상의 노래"라고 격찬하고 있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때문에 가능했다고 간증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팔이나 손이 없어서 손이 없어서 편리한 것을 물으면, 그녀는 오히려 대답하기를, 팔이나 손이 없어서 편리한 점이 있는데, 절대 반지나 장갑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비장애인인 비욘이라는 친구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삽니다. 한국의 서울에서도 공연하고 집에 돌아가서 쓴 시가 있어 여기에 소개합니다. 


내 마음 어디선가 

내 이름 부르는 
당신의 조용한 목소리 들려옵니다.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바람처럼 
당신은 그곳에 계시며 
나는 당신 안에서, 평안을 누립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너의 친구가 되리라"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나를 사랑하심을. 


그렇습니다. 어려서는 부모의 사랑을, 자라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흠뻑 받고 자란 레나 마리아는 양손 양팔이 없고, 한발이 짧은 끔찍한 장애인이면서도 모든 정상인들 보다 더욱 그 빛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는 그 스스로가 말하듯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외관상 멀쩡한 사람들이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때 얼마나 내면적으로 장애가 많은지 모릅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감을 잃고, 열등감에 빠지고, 스스로 상처를 받습니다. 

세계는 끝없는 무한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데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증오하거나 분노합니다. 정치계나 문화계나 분노와 싸움은 지속되고, 종교인들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두가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인하여 심한 장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파괴된 자아가 회복된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경험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보존되고 강화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지금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장애인의 모습으로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은 창세기 46장으로 야곱이 요셉에게로 떠나면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대목입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중에 이르시기를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말씀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야곱이 제단을 쌓으니 하나님께서 야곱의 애굽 행에 동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함께 내려 갈 것이고, 때가 되면 함께 올라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에 평화를 얻어서 비로소 모든 식솔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삶의 방식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배웁니다. 야곱은 삶의 고비 고비에서 하나님께 제단 쌓는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얼른 기억하는 것만 하더라도 베델의 제단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브니엘에서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야곱은 요셉과 바로의 초청을 받고 심히 기뻐하였으나 한편 불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살던 헤브론에서 일단 출발하였으나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하던 고향 땅인 브엘세바에 이르러서 그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과 의논하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브엘세바는 그의 조부, 아브라함, 그의 아비 이삭의 신앙과 교훈이 있는 곳이고, 그들의 제단이 있던 곳입니다. 야곱은 여기서 하나님 앞에 희생의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요셉이 살아있는 것이 너무 기뻐서 그 기쁜 마음에 우선 떠나게 되었으나 그는 감정에 들떠서 하나님께 의논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21세기는 감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느낌을 중요시하는 시대입니다. 순간순간의 느낌을 최대한 만끽하며 살아갑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과거의 전통이나 교훈은 지난 시대의 유물이 되어 아무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갑니다. 모두가 열심히 달려갑니다. 그러나 야곱이 발행하여 나가다가 브엘세바에 이르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신앙적 전통을 자각하고 그분들에게서 이어온 방식대로 하나님께 희생의 제단을 쌓게 된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20여 년간이나 죽은 줄로만 알았고 요셉이 살아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있다는 사실은 야곱을 흥분시켰습니다. 정신없이 달려가서 그 아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급해도 제 정신을 차려야합니다. 그는 생각해 봅니다. 

과연 요셉이 부른다고 달려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일찍이 조부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서 어려움을 당했고(창12:14-20) 또 부친 이삭에게도 애굽이금지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창26:2)불안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이라고 하는 강대국에서, 지금은 좋지만 장차 정치판도가 바뀌면 어찌될는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그런 의미에서 신앙의 전통을 중요시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합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물려준 신앙의 방식이 중요합니다. 주 5일 근무제가 된다하여도 주일 성수는 지켜져야 합니다.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제일주의, 오직 복음, 오직 은혜, 오직 말씀의 전통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희생의 제사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이 상중에 야곱에게 말씀하시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말라고 하시고, 내가 너와 함께 내려가고, 너와 함께 올라오리라고 하십니다. 

비록 애굽이 이방인의 나라이고 우상 숭배의 나라이므로 전에는 금했으나, 이제는 내가 동행하리니 두려워 말고 내려가라는 허락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4절 초두의 말씀을 주목할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하신 말씀입니다. 애굽은 우상숭배의 나라이고, 여러 가지 문물이 달라서 족장들의 전통과 신앙유산이 파괴될는지도 모르는 곳입니다. 

야곱이 두려워하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 때 때로는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3제자와 함께 변화산에 올라갔으나, 황홀한 영적 변화의 체험 후에 베드로에게 산 아래로 내려가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여기 산 위에가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산 아래로 내려가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시대변화를 두려워하고, 옛것에 머물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를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문제를 가지고 우리 주님과 의논하면, 내가 함께 내려갈 터이니 두려워 말고 가라고 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동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애굽이라는 세상까지 내려가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하나님과 함께 가지 아니하고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갔다면 그는 실패했을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병든 사람의 자리에 내려오시고, 배고픈 사람의 자리에 내려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먹고 마시는 자리에도 오시고,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도 오시었습니다. 끝내는 죄인의 자리에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까지 내려오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주님과 함께 올라가는 것은 좋아하지만 내려가는 것은 두려워합니다. 야곱은 요셉에게로 가는 것이 육신적으로는 편한 길이고 좋은 길이지만 영적으로 내려가는 길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도 고정관념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길이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곳이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이 변하는 세상 가운데 나 혼자 가지 아니하고 우리 주님이 함께 가신다고 하십니다. 

중국에서 80여 년간의 생애를 바쳤던 전설적인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에게 젊은 선교사들이 조언을 듣고자 방문했습니다. 그가 먼저 젊은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선교사의 길을 가려고 합니까?" 젊은이들은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저는 이 황무지 같은 땅에 교회들이 서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중국인들이 복음을 들고 미개한 삶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테일러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아닙니다. 나는 중국이 사랑스러워서도 아니고, 이곳 생활이 즐거워서도 아닙니다. 모래 바람이 일고 미개한 사람들이 많은 이곳 생활이 즐거워서도 아닙니다. 모래 바람이 일고 미개한 사람들이 많은 이곳 생활이 무엇이 좋습니까? 나는 이곳에 있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도 내 안에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에 붙잡히면 조금도 사랑스럽지 않은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조금도 즐겁지 않은 그것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 길을 강권하시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허드슨 테일러와 같이 고난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변화와 함께 세상의 풍요와 이방풍속에 빠지게 될까 염려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방풍속과 우상숭배의 나라에 갈지라도 내가 너와 함께 내려가면 문제가 없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세상의 죄악과 타락한 풍속들이 만연하는 것이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습니까 마는 두려워 마십시오. 주님이 동행하시면 어디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야곱이 식솔들을 데리고 애굽에 갔더니, 요셉의 지혜로 애굽인 들과 구별하여 살 수 있는 고센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너와 함께 내려갈 뿐 아니라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에 올라오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야곱이 죽은 후에 모세가 출애굽 할 때 이루어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이들이 부활의 날에 주님 앞에 설 것을 예표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상역사의 변화에 영향을 받습니다. 

야곱은 흉년과 애굽의 풍요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을 가야하게 되었으나 내키지 않는 나라이지만,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내려갔기 때문에 그 속에 가서도 상하지도 않고 손해보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영향을 받습니다. 직업의 영향을 받습니다. 물가와 주식 시장의 영향도 받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과 함께 가면 그 어느 곳에서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날이 있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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