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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그들을 견고케 하리라 (슥 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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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들을 견고케 하리라 (슥 10:8-12)


서론 

여러분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의 일차적인 목적이 무엇이냐면 이 성전기초를 놓고서 건축하지 못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어 성전건축을 완공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다백성들은 숫자도 적고 돈도 없고 권세도 약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하드락’이었습니다. 하드락이 무엇이냐면 하드는 강하다는 뜻이고, 락은 약하다는 뜻으로 강한 자는 약해지고 약한 자는 강해진다는 말입니다. 이런 하드락의 원리로 유다백성들이 아무리 약해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스가랴 선지자가 전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들은 용기를 얻고 하나님께 구함으로 능력을 받아 결국 4년만인 BC 516년에 스룹바벨성전을 완공한 것입니다. 

오늘 이 스가랴서 10장의 제일 중요한 주제는 인간은 약할 그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나타나 강한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약한 유다백성들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BC 516년 스룹바벨성전을 완공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이 방해를 해도 다 물리치고 완공했습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계속 적용되었습니다. 

이 원리는 예수님 초림 때에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그때의 유다 백성들은 매우 약한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속국이었고, 약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한 백성들로부터 예수님이 오시게 되었습니다.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 4:22)라는 말씀처럼 메시아가 유대인에게서 나와 이방인까지 다 구원받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스가랴서 9장은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했을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 9:9).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실 것을 스가랴 9장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슥 11:12-13). 

스가랴서 11장의 예언은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제사장에게 도로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자 제사장들이 말합니다. “그것은 핏값으로 받은 것이다. 그것은 더러운 돈이니 성전에 둘 수 없다.”고 말하며 그 돈을 받지 않고,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땅을 샀습니다. 토기장이의 땅은 가장 싼 땅으로 행려병자, 나그네가 죽으면 그곳을 묘지로 삼는 땅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스가랴서 11장은 유대인과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척함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재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AD 70년에 로마의 장군 타이터투스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하고 150만 명이 죽고 다치는 재앙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스가랴서 9장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는 것이고, 11장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함으로 로마에 의해서 멸망당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가랴서 10장은 어떤 내용입니까? 그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전 세계에 복음을 증거하고, 그러함으로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는 사도행전의 역사를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가랴서 10장의 핵심구절은 12절입니다.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케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슥 10:12). 여호와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을 강하게 하는 능력을 주어 그들이 도처에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결과로 수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예수의 이름을 믿고 예수께 돌아오게 될 것이며, 하나님이 휘파람을 불어가지고 택한 백성들을 모으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다 약한 영역이 있습니다. 나는 약한 곳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바로 그것이 가장 약한 것입니다. 약한 영역이 있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약한 영역이 있고 약한 사람이 하나님께 능력을 구하면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약한 사람이 여호와를 의지하면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가랴서 10장의 예언인 것입니다. 

약해야 거기서 강한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약할 때가 곧 강함입니다. 사람이 강하다고 할 때는 곧 그때가 약할 때입니다. 우리는 오늘 약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약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우리를 더욱 더 강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Ⅰ. 성도들이 강해질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은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도들이 강해질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강해질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예를 들어 이곳에 전구가 있습니다. 전구가 노력을 열심히 하면 불이 들어옵니까? 안 들어옵니다. 그러나 코드를 꽂으면 불이 들어옵니다. 능력의 원천과 연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구의 능력의 원천은 발전소인 것입니다. 발전소가 없는 전구는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의 능력의 원천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코드가 꽂히면 전능하신 능력이 우리의 삶에 흐르게 되지만 단절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것입니다.

 성도들이 강해지는 능력의 원천이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스가랴 10장에 여러 번 나옵니다.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케 하리니”(슥 10:12),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슥 10:6),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권고하여 그들로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슥 10:3). 유다백성들은 이 능력으로 성전도 완공했고,  마카비전쟁에서도 이겼고, 온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스가랴서 10장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능력만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주신다고 말합니다.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슥 10:1). 필요할 때 비를 주겠다고 말합니다. 비는 물질적인 필요의 근본이기도 하지만 영적인 축복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내가 수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권고하여”(슥 10:3). 돌보심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한즉”(슥 10:5). 

임마누엘,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슥 10:6). 죄로부터 구원, 지옥으로부터 구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근원이요 구원의 근원이요, 축복의 근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능력을 주신다는 약속은 성경 곳곳에 있습니다. 신명기 33장 25절에 모세는 죽기 직전에 아셀에게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신 33:25)라고 축복합니다. 

또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31). 

우리 성도들은 독수리 날개가 달려 하늘을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약하십니까?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면 독수리 날개가 달려 날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균형 감각이 놀랍고 속도가 빠르고 눈이 좋아 멋있게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아무리 약한 우리라도 여호와를 앙망하면 독수리 날개가 달려 균형이 있고 힘이 있게 하늘을 날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두 가지 위험에 빠집니다. 능력의 원천인 하나님을 잘못 찾습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를 돕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자기 안에 잠재능력이 있어 그 능력을 끄집어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능력으로 봄비 때에 비를 내릴 수 있습니까? 소나기를 내릴 수 있습니까? 번개를 칠 수 있습니까? 인간의 능력으로 죄와 지옥에서 건져낼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 안에서 능력을 끄집어내려 하지만 능력을 끄집어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능력은 별거 아닌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능력은 있어봐야 오십보백보인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진짜 강해지는 것은 언제입니까? 자신의 무능과 연약함을 고백하고 여호와 하나님에게 능력을 구하는 것만이 강해질 수 있는 원인이요 비결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버지 나는 약합니다, 아버지 나는 부족합니다. 아버지 나에게 능력을 주시옵소서. 아버지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독수리 날개침 같은 능력을 주신다고 하셨으니 내 인생에 독수리의 날개를 달아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자기 자신의 능력을 의존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 한 개에 부딪치게 되고, 그 후 꺾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한계가 없습니다. 무한한 능력인 것입니다.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다른 원천에서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대저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고 거짓꿈을 말한즉 그 위로함이 헛되므로 백성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수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권고하여 그들로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슥 10:2-3). 

사람들이 하나님께 능력을 구해야 하는데 드라빔에게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술자에게 구하고 헛된 꿈에게 구하는 것입니다. 드라빔은 조그마한 트로피같이 생겼으며, 각 가정마다 수호신이라고 두고 있는 것입니다. 

사사기 17장을 보면 사사시대에도 이스라엘사람들이 드라빔을 만들어 가정에 두고 섬겼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강하게 경고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 너희가 꾼 바 꿈도 신청하지 말라”(렘 29:8). 

여러분 점쟁이한테 다니지 마십시오. 복술자에게 가지 마십시오. 복술자는 도구로 점치는 사람들입니다. 사주팔자 점치는 곳에 가지 마십시오. 이것은 다 어리석은 것입니다. 꿈에 너무 의존하지 마십시오. 꿈보다 더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외에 다른 원천에게 능력을 구하면 능력만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재앙도 같이 오는 것입니다. “그 위로함이 헛되므로 백성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슥 10:2). 유리하고 방황하며 곤고를 당하는 것입니다. 


Ⅱ.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의 강도는 어떤 것인가? 

둘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의 강도는 어떠하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95%이고 5%가 모자라니 하나님께 그 5%만 채워달라고 합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나의 부족한 것을 채워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받아도 내 자유의지로 50%를 믿었으니 하나님 은혜 50%만 채워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아르미니우스주의인 것입니다. 100% 모두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전구가 0.001%노력하면 불이 살짝 들어오고 코드를 꽂으면 확 들어옵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약하면 하나님이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스가랴서 10장의 능력은 하늘의 기상을 움직이는 능력인 것입니다. 봄비 때에 비를 내리는 능력인 것입니다.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수염소들을 벌하리라”(슥 10:3). 악한 자들에게 벌을 주는 능력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제일 중요한 능력은 약한 유다백성으로부터 메시아를 보내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휘파람을 불어 모으신다는 것입니다. “모퉁이 돌이 그에게로서, 말뚝이 그에게로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로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로서 나와서”(슥 10:4). 

모퉁이 돌, 말뚝, 싸우는 활, 권세 잡은 자. 이 네 가지 표현은 전부다 메시아에 대한 고전적인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모퉁이 돌로써 교회의 기초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말뚝으로써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싸우는 활로써 원수를 물리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권세를 잡은 자로써 교회를 다스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은 약한 유다백성으로부터 메시아를 보내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도 휘파람을 불어 다 모으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능력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가장 최상의 능력은 택한 백성을 저희의 죄에서 구하실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돌아오며 그들을 앗수르에서부터 모으며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리니 그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슥 10:10). 

이 예언들은 영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으로부터 메시아를 보내어 전 세계에 흩어진 택한 백성을 불러 모으신다는 영적인 예언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은 바울이 명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롬 11:1). 

하나님이 육적인 이스라엘은 버리셨더라도 영적인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 

유대인들도 택함을 받은 남은자만 구원을 받고 이방인도 택함을 받은 남은 자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남은 자가 아닌 사람들은 복음을 들어도 믿지 않고 성경을 읽지 않고, 교회에 나오지도 않고, 하나님을 욕하고, 천국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계를 통해서 흩어진 자신의 백성을 모으시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구원의 능력은 결국 메시아를 통해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역사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Ⅲ. 하나님이 능력 주셔서 강하게 하신 결과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세 번째로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강하게 하시는 결과는 무엇인가요? 결과가 12절 후반에 나옵니다.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슥 10:12).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강하게 하신 첫 번째 결과는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받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으로 하여금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신앙을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핍박이 오고 환란이 와도 담대히 예수의 이름을 고백하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능력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예수를 믿는 성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능력으로 강하게 하시면 사람은 담대히 예수의 이름을 믿는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9). 

공회사람들이 핍박을 해도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옳은가 판단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베드로도 며칠 전만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저주하고 욕했습니다. 요한도 옷 벗김을 당하고 도망을 가던 제자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의 능력을 받더니 예수의 이름을 담대히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결과는 왕래하리라는 것입니다. 세계 도처를 다 행하리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지고 증거한다는 말씀이며, 자신의 고백하는 신앙에 따라 산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이 능력을 주신 결과인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어야 합니다. 신앙으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예배를 드리는 성도인 우리들은 모두 약합니다. 약해도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이 내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라 믿고 간구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강한 존재로 만드실 것입니다. 양 같은 존재이지만 준마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 능력이 우리가운데 역사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바울은 약하나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봄비 때에 비를 구하면 하나님은 소낙비를 주십니다. 약할 때에 능력을 구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나의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우상에게 구하지도 말고 능력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지키십니다. 약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능력을 주신다는 이 약속을 믿고 간구하며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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