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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골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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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 안에 (골 2:6-7)


‘아쿠아플라넷 제주’는 제주 앞바다에서 어민 그물에 걸린 뒤 수족관에 기증됐던 희귀종 고래상어 1마리를 방사하기로 결정했답니다. 이번에 방사하는 고래상어는 지난달 수족관에 들어온 2마리 중 살아남은 1마리 '파랑'입니다. 

이 고래상어를 방사하기로 결정한 것은 또 다른 고래상어 ‘해랑’이 지난 18일 폐사했기 때문입니다. 이 고래상어는 비록 다 자란 것은 아니지만 크기가 4.5m, 몸무게 600∼650㎏으로 그 몸집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이 큰 덩치가 가로, 세로 25미터 깊이 8미터의 비좁은 수족관 안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던 거대한 고래상어가 이 좁은 수족관 안에 갇혀 있다 보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지난달부터 먹이를 먹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끝내 죽고 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체에게 ‘삶의 자리’는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살아가야 할 삶의 자리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닐 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곳일 때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합니다.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영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곳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영생을 잃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이 영적 자리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영적인 자리에 관해 교훈하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곳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머물러야 할 영적 자리인 것입니다.

# 우선 6절을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받았으니’ 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 ‘람바노’의 합성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을 보다 세밀하게 번역해 보면 이런 뜻입니다.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취하다’라는 뜻입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에바브라가 전한 복음을 듣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선교하고 있을 때, 에바브라가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복음을 전해 듣고, 그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 후 자기 고향 골로새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그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이기 시작해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골로새 교회입니다.

바울은 지금 골로새 교인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가서 직접 복음을 전하지 않았지만, 에바브라를 통해 저들이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조상들로부터 전수 받아 율법을 받은 것처럼, 지금 골로새 교인들이 에바브라를 통해 복음을 전해 듣고,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저마다 과정은 다 달라도 한 가지 동일한 것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본문의 골로새 교인들과 시대와 상황은 달라도 한 가지 동일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 예수를 믿은 일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잘나간다는 사람 15명의 명사 이야기입니다. 이 분들이 자기들이 지금까지 한 일 가운데 가장 잘 한 일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강원대 총장을 지낸 문선재 박사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그 순간 나는 너무 가슴이 벅차서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아!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구나”

영화감독 이장호씨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기도 응답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느낌이 즉각적으로 왔고, 너무 감사했다. 그 이후 하나님과 손잡고 다니는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판사였고 서울시장을 지냈던 김상철 장로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굴속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목 놓아 통곡했다. 오랜 울부짖음으로 하나님께 모든 죄를 통회 자복했다”

그렇습니다. 이분들뿐이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 한 일 한 가지만 꼽으라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것 아닙니까? 때로는 ‘예수를 믿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라고 말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본문 6절을 보면 “그 안에서 행하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그 믿음의 자리를 잘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골로새 교인들 가운데 예수를 믿다가 믿음의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특히 8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행하는 철학 사상과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 사상이 널리 확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골로새 교인들 가운데 그런데 넘어가서 믿음의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 안에서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자리를 떠나고 있습니다. 

2005년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를 보면, 개신교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한 인구가 198만 명이고, 개신교를 믿다가 무종교인이 된 수가 560만 명에 이르러 결과적으로 개신교를 믿다가 교회를 떠난 사람들의 수가 무려 758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총 누적 숫자입니다.

그러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떠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교회에 대한 실망 때문입니다. 실천신학 대학원 박영신 교수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침체되는 가장 주된 원인을 교회가 일반 사회와 차별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교회 안에 일반 사회와 마찬 가지로 다툼과 갈등이 그대로 존재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일반 사회의 지도자들처럼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일반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물질주의와 세속주의가 팽배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는 좋은데 교회는 싫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교인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교회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한국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한국교회는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인들도 교회가 실망스럽다고 그리스도 예수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백번 양보해서 교회를 떠난다고 해도 그리스도 예수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더 좋은 것은 교회가 실망스러워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면서 교회의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바꿔가는 일에 앞장을 서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세상풍조의 영향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반기독교적 풍조들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경계해야 할 사조가 종교다원주의입니다. 

인도의 가톨릭 신부 라이문도 파니카는 무지개 이론으로 종교다원주의 현상을 긍정적으로 설명합니다. “인류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종교적 전통은 신적 실재라는 순백의 광선이 인간 경험이라는 프리즘에 투과되어 나타나는 무수한 색깔과 같다. 그 광선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통과 교리, 종교를 통해 굴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백색 광선은 ‘궁극적 실재’이고, 일곱 가지 색깔을 띠고 나타나는 무지개의 색상은 구체적인 역사적 종교들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각 종교는 곧 한 개의 ‘신적 실재’에 대한 서로 다른 문화적, 역사적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다른 종교 안에 우리가 믿는 구원 내용이 없으므로 종교로 인정할 수 없다든지, 그 종교 안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식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신부라는 사람의 이런 주장은 비종교인들이 볼 때 통 크고 멋있어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비종교인들과 타종교인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주장에 동조할 뿐 아니라 동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백만 송이 인조장미는 한 송이 진짜 장미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진짜 장미는 인조장미를 향하여 “너는 꽃의 모양은 갖고 있지만 살아있는 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참된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있습니다. 그럴듯하게 설명이 가능한 구원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만, 그것들은 모두가 다 참된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점에서 동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그럴듯한 주장에 동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심령 깊은 곳에 담아주신 이 소중한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의 믿음을 굳게 지켜 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이단 사이비의 공격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극렬한 이단 사이비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단이란 정통적인 교회의 가르침과 신앙고백에서 벗어나 잘못된 가르침을 전파하는 집단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이비란 저급하고 유치한 짝퉁 종교를 말합니다. 이들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지 못하도록 미혹하고 공격합니다.

성경에는 이들을 ‘무서운 이리’, ‘거짓 예언자’, ‘적그리스도’라 말하고 있고 특히 마지막 때에 극성을 부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미혹받지 않도록 경계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 이단 사이비의 중요한 특징은 우선 이 집단을 이끄는 교주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으레 인간 이상의 존재로 신봉되고 또 그렇게 행세합니다. 신천지 이단에 이만희가 그렇고, 하나님의 교회에 안상홍이 그렇고, 통일교에 문선명이 그렇습니다. 

또한 이들은 대체로 이중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표면상으로 내세우는 그럴듯한 교리가 있고, 실제 내부적으로 강요되는 자기들의 실제 교리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표면 교리로 접근하다가 포섭이 되면, 점차 이면 교리를 가르칩니다. 

어쨌든 이런 이단 사이비는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머물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벗어나도록 미혹하고 공격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분별을 하시기 바랍니다. 저들의 궁극적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경계하시고 우리의 영적 자리를 잘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 본문 7절을 보면 “믿음에 굳게 서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이 믿음을 굳게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를 위해 두 가지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뿌리를 박으라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행하려면 마치 나무가 뿌리를 잘 내리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에게 우리 심령의 뿌리를 잘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을 다니며 ‘모소’라는 대나무를 보았습니다. 불과 6주 만에 15에서 20미터까지 자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까가 궁금했습니다. 

사실 모소는 나무를 심은 지 4년 동안 마치 죽은 것처럼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다 5년이 되는 해 대나무의 연한 순이 자라기 시작하더니 하루에 무려 30센티 이상씩 갑자기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 4년 동안은 나무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바로 뿌리를 뻗는 일입니다. 4년 동안 부지런히 뿌리를 넓게 그리고 튼튼하게 뻗어서 높이 자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려면, 우선 믿음의 뿌리를 튼튼하게 뻗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우리의 믿음의 뿌리를 튼튼하게 뻗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우리의 믿음의 뿌리를 튼튼하게 뻗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철저한 신앙고백을 굳게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신앙고백했을 때, 주님께서 이 믿음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베드로의 신앙고백처럼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확고부동하게 뿌리를 내려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굳게 믿고 고백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심을 굳게 믿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내 삶의 주인이시고, 내 인생을 인도하시는 주님이심을 굳게 믿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하나는 세움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 역시 하나의 비유입니다. 건물을 지어갈 때 우선 기초를 닦습니다. 그리고 그 기초 위에 기둥을 세우고 나아가 건물의 벽을 세우고 인테리어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믿음을 기초로 닦은 뒤에 이 기초 위에 우리의 삶을 세워가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기초 위에 삶을 세워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우선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이며, 인생의 항로를 어느 방향으로 정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믿기 전과 달리 예수 믿고 난 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그 인생의 방향을 다시 정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이고, 또 무엇이 허망한 것인가를 새롭게 정립해야 합니다. 바울이 예수 믿기 전에 귀하게 여기던 것들을 예수 믿고 난 뒤에 오물처럼 버렸던 것처럼 가치관의 재정립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인생관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에 새롭게 답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삭개오가 예수 만난 뒤 그 삶이 달라졌던 것처럼, 우리의 삶 자체가 새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난 뒤 분명히 달라져야 합니다. 인생의 방향이 달라져야 합니다. 가치관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관 자체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새롭게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영적 자리가 어디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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