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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들어가기를 힘쓰라 (눅 13: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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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를 힘쓰라 (눅 13:22-30) 
 
 
지난 주에 런던 올림픽경기가 막을 내렸습니다. 대한민국선수단은 종합 5위의 성적으로 받아들고 귀국했습니다. 우리나라와 영국은 시차가 달라서 경기들이 밤중과 새벽녁에 있어서 중요경기때마다 밤잠을 설치면서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메달을 따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메달의 색갈과는 상관없이 힘든 결과물이며 아니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조차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금번 올림픽경기 중에서 최고의 명언을 남긴 사람은 "죽기살기로 했더니 졌고, 죽기로 했더니 이겼다"는 말을 한 유도에서 금매달을 땄던 김재범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허튼생각을 하고 조금으로 편한 맘을 먹었다면 어떻게 금메달을 딸 수 있겠습니까? 순간 상대의 기술이 들어와 넘어뜨리고 마는데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여행하는 중에 주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여행하는 중에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23절)라고 질문을 했고,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의 대답은 많다, 저다, 혹은 몇 퍼센트다, 몇명이다 하시지 않고 오직 한 마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구원받을 자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을 "그 문은 넓지 않고 좁다"고 하신 것입니다. 누구나 다 상받는 것이 아닙니다. 상받는 자는 심히 적다는 것을 올림픽 경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문이 좁다"는 말은 이것 저것 다 가지고는 들어 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들어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것저것 다 짊어지고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 저것 다하고 어떻게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자기 몸을 굽혀야 합니다. 온갖 욕망과 탐심을 다 버려야 합니다.

어떤 도보 여행가의 경험담을 실어놓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 여행을 출발할 때는 이런저런 필요할 것 같은 것들을 많이 싸들고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재적으로 걸어서 여행을 하는데는 그런것들이 짐이 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짐을 줄이기 위해서 다 마른 빨래라도 짜서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덜어내러는 심정으로 "딱 두 권 가지고 온 책 중 한권은 겉장을 찢어내고, 또 한 권의 책은 아예버렸다. 

그 밖에 파스 겉껍질, 인스탄트 커피 10봉지, 약통 하나, 거울이 달린 콤팩트를 버렸다. 그러고 나서 두 눈 질끈 감고 여분의 칫솔도 버렸다. 서울까지 가져 가려던 부로슈어 3점, 베이비벨 치즈 1개, 버터 2개를 버렸다. 여분의 삼푸(견봉용) 하나, 녹용 팩, 둥근 고무줄, 납작한 고무줄, 말린 문어 한 봉지, 콩 한봉지. 사경을 넘긴 다음에는 좀더 단호해졌다. 티셔츠 하나 . 반속내의 하나. 비타민과 글루코사민 그리고 다시마환까지 버리기로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도보순례길을 완주했다고 도장 하나 받으려는 사람도 이런 길을 걸었습니다. 

'좁다'는 말은 고난과 어려움과 불편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의 보다 더 큰 편리함, 손쉬움, 경제성, 즐거움을 무분별하게 추구하며 향유하다 보면 돌이킬 수 없고 감당하기 힘든 환경파괴, 생명위협, 행복상실의 사태를 키우고 말게 될 것입니다. 보다 크고 지속적인 유익과 행복을 위해 당장의 개인적인 작은 편리함과 즐거움을 절제하며 포기할 줄 아는 지혜롭고 착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좁은문과 이 좁은 길은 의식적으로 힘쓰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힘쓰고 애써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하물며 구원을 얻고 영생에 들어가며 상급을 얻는 일인데 그냥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섞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좁은 길을 가려는데 두려워하거나 망설이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생활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힘쓰다"는 말은 스포츠 경기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경기에 승리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경기자의 태도를 나타냅니다. 이 헬라어 단어에서 고투하다(agonize)라는 영어단어가 유래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운동 경기를 하는 것처럼 영적인 일에 분투한다면 성도들의 영적 상태는 매우 좋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교회 상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질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 예수 믿는 것을 고군분투하면서 믿는 성도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택함받은 우리들은 영적 올림픽에 출전할 자격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화려하고 편하고 빨라보입니다. 그렇게 좋아보일수가 없습니다. 매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듭니다. 넓은 문은 이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 풍속을 좇아가는 사람들과 대충 믿고 편하게 천국가려는 사람들이 함께 몰려 들어가는 문으로 넓은 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마 7:13). 그래서 들어가기에 용이할 뿐만 아니라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하고 매우 쉽습니다. 그리고 함께 가는 길동무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래서 그릇된 안도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들어가는데 무슨 일이 있겠느냐는 식입니다. 그리고 혹 무슨 일이 있어도 나 혼자 당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당하는 일이니 괜찮다는 생각하면서 안도감을 갖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도감은 거짓된 안도감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단의 속삭임인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많이 가고 많이 모이는 곳이라고 해서 거기에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님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들어가기 쉬운 큰 문과 걷기 편한 넓은 길이라고 해서 거기에서 우리의 생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당장의 작은 불편과 어려움을 감내할 줄 알아야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혼자서라도 좁은 길, 좁은 문을 가야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서원하시고 약속하시고 결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삶에로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가 담겨져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한 자들에게 주님께서 하실 말씀은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겠지만 그들에게 되돌아오는 대답 역시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는 말씀이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에 들락거리며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다고 해서 곧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사람이라는 보장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주님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여러번 나는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나 주님은 단호하게 너희를 모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만 주님을 안다고 하는 삶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자기 주관, 자기 중심, 자기만을 위한 삶, 그래서 쉽고 편한 넓은 문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주님이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는 하면서도 그대로 행하기를 싫어하는 자들은 한 마디로 말해서 "행악하는 자들"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모르니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하셨습니다(눅13:27). 또한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자들임을 알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리라 하셨습니다(눅13:28).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지 않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에서 쫓겨났으며 슬피울며 이를 갈며 형벌을 받게 됩니다. 들어가기를 힘쓰지 않으면 먼저된 자들중에서 반드시 나중되는 자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들어가기를 힘쓰면 나중된 자로서 먼저된 자가 생기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신앙생활 하기가 때로는 너무나 힘들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 받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백성이 이 세상에서 살 삶은 본래 좁은 문의 삶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모든 위로와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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