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말세의 징조 (막 13:1-8)

첨부 1


말세의 징조 (막 13:1-8) 
  
  
말세는 마지막 세상을 말한다. 말세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어떤 사람들은, 정말 말세가 온다면, 지금 하고 있는 학교 공부, 직장 일, 사업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다 그만두고 주님을 맞을 준비나 하자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지난 1992년에 휴거 열풍이 불었을 때,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다미 선교회가 그렇다. 또한 이단들은 언제나, 말세에 구원을 받으려면, 우리에게 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이렇게 잘 돌아가는데, 무슨 말세냐고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도, 이런 2가지를 말하고 있다.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이 아름답게 재건됨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헤롯은 유대인의 환심을 살 목적으로, 무려 46년에 걸쳐서, 성전을 회복시켜 놓았다. 성전 재건에 사용된 돌 하나의 길이가, 큰 것은 무려 12m, 너비가 3.6m, 높이가 6m나 된다. 이렇게 거대한 돌로 성전을 지었다. 그래서 이 성전만은 영원하리라고 생각했기에, 이 성전이 얼마나 대단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깜짝 놀랄 만한 선언을 하셨다.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의 생각은, 이 견고한 성전이 무너진다면, 이 세상이 무너질 수도 있지 않는가? 생각했다. 

(3-4)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이 질문을 듣고, 예루살렘의 최후와 함께, 세상의 최후를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성전의 최후와, 세상의 최후를 함께 경고하는, 2중 메시지다. 실제로 예수님이 예언하신 말씀과 같이, AD 70년, 디도는 예루살렘을 짓밟고, 100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했다. 성전이 무너진 것처럼, 또한 이 세상의 마지막이 온다고, 성경이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은 먼저 (5-31절)에서 ‘징조’에 대해서 답하셨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32-37절)에서 ‘때’에 대해서 대답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역순으로 대답하셨다. 그러면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가장 길게 대답했다. 그만큼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나타날 징조를 3가지로 말씀했다. 미혹과 전쟁과 재앙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7-8).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시지만,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이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조급하게 여기지 말고, 각자의 삶과 사명에, 충실하라고 당부했다(행1:6-8). 우리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소망 가운데 바라보며, 각자에게 주어진 삶에,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람은 장래의 일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하고, 전지전능하시기에, 다 아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므로, 장래에 일어날 일을 다 알고,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다.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재난의 시작이라 했다(8). 이때의 재난은, 해산의 고통을 의미한다(살전5:3). 해산의 고통은 일단 시작되면,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정도가 심해진다. 그런 후에, 아이가 태어난다. 

예수님의 재림도 마찬가지다. 미혹과 전쟁과 재앙의 속도는, 갈수록 더 빨라지고, 더욱 심해진다. 마지막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섭게 진행된다. 그 후에 예수님은 다시 오고, 이 세상은 끝이 난다. 그러므로 말세를 잘 알고,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자. 

1. 종교적인 미혹이 있다(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종교적으로 우리를 미혹시키는 이단들이 자꾸만 많아진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 사람의 미혹은 계속된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사람의 미혹은 더욱 더 심해진다.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극심해진다. 과연 각 시대와 나라마다, 사람의 미혹은 끊임이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면 사람의 미혹은,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가?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온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는, 거짓 선생이나 거짓 선지자가, 이 땅에 많이 일어난다. 그들은 자기들의 가르침을 따라야만, 구원받는다고, 미혹할 것이다. 
심지어 그들 가운데는 뻔뻔스럽게도 ‘내가 그리스도다’ 또는 ‘내가 바로 재림 예수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마귀의 평생소원은, 예수님을 모방하는 일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 이처럼 마귀도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원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고 있다. 

(눅21:8)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거짓 선지자나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미혹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이 나온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나, 세상이 끝날 때를 예언한다. 
예언자 학교에서, 점을 예언이라 하고,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면서 ‘때가 가까이 왔다’며, 순진한 사람에게 겁을 준다.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택하신 자들도 미혹한다. 

그러면 왜 유달리 기독교에, 거짓 선지자나, 거짓 그리스도들이 많이 일어나는가? 기독교가 진짜 명품이기 때문이다. 진짜 명품에는 가짜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짜는, 더 이상 보고 베끼지 않은다. 불교에서는 ‘나는 재림 석가모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 
이슬람교도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마호메트다.’라고 떠벌리는 사람이 없다. 마귀가 거짓된 종교에, 거짓된 것들을 더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오늘날도 세계 도처에,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그리스도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앞으로는, 더 많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다 마지막 때에는, 거짓 그리스도들의 대표격인,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을 수 있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충실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위에 굳게 서면, 결코 거짓 선지자나,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14上)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예수님이 다시 오기 전, 먼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다. 그러나 아직도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19中)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역사상 전무후무한 환난이다. (슥13:8) 그 때의 환난으로, 온 땅 사람들의 2/3이가, 멸망할 것이다. 큰 환난이 있은 후, 하늘에 여러 징조들이 나타난다. (24-25)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이런 일들이 다 지나간 후에야, 예수님은 비로소 다시 오신다. (26) 말씀처럼, 그 때에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수님이,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심을 보게 될 것이다. 혹시 
우리 주변에 ‘내가 그리스도다, 재림 예수다, 때가 가까이 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가? 

모두 거짓 선지자요, 거짓 그리스도다. 미혹을 받지 말자.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굳게 서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날을 위해, 삶에 최선을 다하자. 그리해서 언제 예수님이 다시 오시든지, 기쁨으로 예수님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2. 전쟁이 있다(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 사람들은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것이다. 
난리는 실제로 전쟁을 치르는 것을 뜻한다. 반면에 난리의 소문은 냉전, 곧 무력을 쓰지는 않지만 전쟁을 방불할 정도로, 심각하게 대립함을 뜻한다. 사람은 과거에도,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었다. 지금도 변함없이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해서 듣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세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가 흘러갈수록, 전쟁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났다. 따라서 앞으로는 사람들이,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더 자주 듣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명이 발달하면서, 전쟁기술도 더욱 발전한다. 
그만큼 전쟁의 규모도, 더 커지고,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더욱 심해질 것이다. 오늘날도 우리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많이 듣고 있다. 이때 세상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문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세상의 역사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마10:29) 참새 한 마리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도, 하나님의 주권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기에, 이런 소문을 들어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왜 이 세상에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끊이지를 않는가? 이 땅에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백과사전에서 전쟁이란 항목을 찾아보면, 전쟁이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학설들이 소개되고 있다. 

공산주의는 부의 불평등 때문이라고 한다. 진화론은 생존 경쟁 때문이라고 한다. 심리학은 사람의 공격적인 기질 때문이라고 한다. 인구학은 과다한 인구 때문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전쟁의 이유를 밝히는 학설들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문에서 전쟁의 이유를, 이렇게 말씀했다.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사람들은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항상 듣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하셨기 때문이다.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이루어진다.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이 예정하신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항상,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도록 되어 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런 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아직 끝은 아니니라.’고 말씀하셨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어도, 세상의 끝이 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 세상은 전쟁으로, 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망하게 하는 것은, 핵폭탄이 아니다. 앞으로 지구가 멸망함은, 유성충돌 때문도 아니다. 하늘의 오존층이 파괴되어, 지구온난화와 같은, 기상이변이 생기기 때문도 아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들을 한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예수님이 이 세상을 만드셨기에, 예수님만이 이 세상을 끝내게 하실 수 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옛 하늘과 옛 땅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한다. 이렇듯 이 세상은 예수님에 의해서, 끝이 난다. (8上)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사람들이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많이 듣는 까닭은,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라들 간에 전쟁이 있다. 중국처럼 한 나라 안에서,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처럼, 같은 민족끼리 대적하기도 한다. 

과거에도 쉴 새 없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났다. 지금도 계속적으로 세계 도처에서,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고 있다. 물론 앞으로는 이러한 일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계16:16) 말씀처럼 온 세계는, 아마겟돈 전쟁에 휩싸일 것이다. 
아마겟돈은 히브리어로 ‘하르 므깃도’이다. 므깃도는 구약성경에 자주 나오는 지명으로, 이스라엘 북쪽 지방에 있는, 전략 요충지다. (왕하23:29) 유다 왕 요시야가, 애굽의 왕, 바로 느고를 맞이하여 싸우다가 전사한 곳이다. 마지막 때에는 열국의 왕들이, 이스라엘에 모여, 큰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성경은 정확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끊임없이,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처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신다. 예수님이 우리와 동행하신다.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삼위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3. 재앙이 있다(8中).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을 것이다. 
(눅21:11)을 보면, 예수님은 이것들에 더해서, 전염병도 있을 것이라고 말씀했다. 아무튼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각종 재앙들이 있을 것이다. 먼저 지진이 있을 것이다. 사람의 타락으로 인하여, 사람이 사는 땅은, 저주를 받고 말았다. 그 결과 이 땅에는, 늘 지진이 있어왔다. 

예수님 이전에도 지진은 있었고, 예수님 이후에도 지진은, 끊이지를 않고 발생해왔다. 그러나 때가 가까울수록, 지진은 더 심해질 것이다. 먼저 곳곳에 지진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 도처에서 동시다발적인 지진이 있을 것이다. (눅21:11) 큰 지진이 있을 것이다. 지진의 규모도 엄청 커진다. 
(2011년, 3월) 일본의 동북쪽 해안에서, 진도 9.0의 강진이 있었다. 그 바람에 쓰나미가 밀려와서 해안에 있는 마을들이 폐허로 변하고,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앞으로는 이보다 훨씬 더 심한 지진들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있을 큰 지진을, 이렇게 말한다. (계16:18중)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그 큰 지진의 결과 (계16:20) “각 섬이 없어지고 산악들도 간 데 없더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 지진과 더불어서, 기근도 있을 것이다. 
저주받은 이 땅에는, 언제나 기근이 있어왔다. 오늘날도 아프리카나, 북한 땅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기근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물론 갈수록 기근은, 더 심해진다. (계6:6下)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 

하루 종일 일해서 번 돈으로, 고작 밀 한 되밖에 살 수 없다. 그만큼 식량난이 심각해질 것이다. 그러다가 마지막이 가까우면, 땅 사분의 일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계6:8下). 검과 흉년으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전쟁의 결과 흉년이 들고, 먹지 못해 죽는 사람들도, 많이 생길 것이다. 
게다가 땅의 짐승들이,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쓰임을 받는다. 예컨대 14세기 유럽에서 발생했던 흑사병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 때 땅의 짐승들, 곧 쥐들이 흑사병을 옮겨서, 유럽에서만 2,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쥐를 신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쥐들이 엄청나게 번식을 해도, 사람들은 쥐들을 잡지 못한다. 그 결과 쥐들은 마음 놓고, 많은 곡식을 먹어치워, 그만큼 사람들은, 기근에 시달려야 한다. 아무튼 때가 가까우면,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눅21:11)을 보면, 전염병도 있을 것이다.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은, 이미 지나갔다. 그러나 얼마 전에는 사스나 조류독감과 같은, 새로운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나돌기도 했다. 우간다에는 에볼라가 발생했다. 에볼라는 구멍마다, 피가 나와서 죽는 병이다.  

그런데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미혹과 전쟁과 재앙은, 재난의 시작이라는 말씀한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감람 산 강화 전체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재난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산고, 곧 해산의 고통을 말한다. 
임신한 여자는, 언제 산고가 시작돼나? 아이를 밸 때가 아니다. 아이를 배고 있는 동안도, 아니다. 해산의 고통은, 아이를 낳기 직전에 임한다. 임신한 여자에게, 어떻게 산고가 찾아오는가? 처음에는 서서히 온다. 고통도 심하지 않다. 그러다가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고통도 점점 더 심해진다. 

그런 후에, 비로소 아이가 태어난다. 예수님의 재림도 마찬가지다. 미혹과 전쟁과 재앙은 늘 있다. 그러나 갈수록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다. 마지막에는 엄청난 속도로, 엄청난 규모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이 세상은 끝이 난다.  
(행1:7) 말씀처럼, 때와 시기는, 하나님이 자신의 권한에 두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알 바가 아니다. 언제 예수님이 다시 오시더라도, 우리는 상관이 없다. (행1:8) 말씀처럼, 우리는 하루하루 예수님의 증인으로, 충성스럽게 살면 된다. 예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