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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인도, 그 놀라운 진실 (삼상 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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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도, 그 놀라운 진실 (삼상 9:1-10)


안개가 짙게 낀 어느 날 밤 영국 철도회사의 한 급행열차가 헤드라이트를 환히 비추면서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특별 열차 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국 국민들의 극진한 존경을 받는 [빅토리아 여왕] 이 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달리던 기관사는 기차 앞에 나타난 장면에 깜짝 놀랐습니다. 짙은 안개 속에 비추는 불빛에 사람의 모양이 나타난 것입니다. 철로의 중앙에 서서 양팔을 흔드는 모습이었습니다. 놀란 기관사는 급브레이크를 잡아당겼고 기차는 미끄러지며 급정거를 했습니다. 

기관사는 조수와 함께 뛰어 내려 손을 흔들던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차가 멈추어 선 바로 앞에 불어난 냇물에 씻겨서 철교가 떠내려가서 길이 끊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3,4초만 더 달렸더라도 기차는 전복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양손을 흔들며 기차를 세워 자신들의 생명을 살린 존재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그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천사였을까?’ 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기차가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 드디어 그 안개 짙은 밤에 기차 앞에 나타나서 손을 흔들던 존재가 무엇인지 알아냈습니다. 기차를 점검하던 한 기술자가 헤드라이트 속에 죽어 있는 한 마리의 벌레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벌레를 헤드라이트 유리에다 붙이고 기관차의 라이트를 켜 보았더니 바로 벽에 비친 그림자가 안개 속의 그 손을 흔들던 모습이었습니다. 날개를 펄럭이며 헤드라이트 속 유리에 붙어 있던 그 벌레의 그림자가 짙은 밤안개의 스크린에 비추어서 마치 사람이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빅토리아여왕] 에게 보고되었을 때 여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것이 우연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한 마리의 벌레였을지라도 그것은 우리를 보호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이었다고 믿는다.” 

여러분은 성경을 보면서 무엇을 배우십니까? 세상사는 지혜를 배우십니까? 뛰어난 상술을 배우시나요?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합니까? 인간관계를 배워나갑니까? 성공하는 비결을 배우십니까? 다 좋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성경을 통하여 배울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무엇을 배우려고 하고 무엇을 얻으려고 하든지 간에 분명히 깨달아야만 하는 한 가지의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손길을 알지 못하면 그 아무것도 깨달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오늘 내가 살아 숨쉬고, 여기 이곳에 있고, 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는 이 사실 앞에 우리는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루 한 순간을 살아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역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것입니다. 응급환자들이 있는 병원 응급실에 가보면 산소통을 설치해 놓고 호흡을 시키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그런데 산소통의 산소 값이 꽤 비쌉니다. 24시간 동안 일초도 쉬지 않고 계속 공급하는 산소의 값이 얼마나 비싸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무런 사고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은 매일 얼마치의 산소를 무료로 먹고 있는 셈인지 모릅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일생 동안 들이 마시는 산소 값을 계산한다면 실로 엄청난 값일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전기 값을 한번 따져 본 일이 있습니까? 한참 더운 여름날 에어컨을 가동하기는 하지만 우리 교회 전기 값은 한 달에 약 3,4십 만 원가량 나오는데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쓰고 있는 햇빛 값을 전기요금으로 계산한다면 얼마나 될까요? 혹시라도 <한국 전력공사> 에서 1년분의 전기 값을 면제해 준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니 만약에 하나님께서 <햇빛고지서> 를 보내신다면 1년에 얼마나 내야할까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햇빛은 밝게 비추는 <빛(Light)> 으로 뿐만 아니라 햇볕으로서 <열(온도:Heat)> 까지 주고 적당한 <자외선> 까지 주어서 우리 인간들 동, 식물의 성장 및 생존에 얼마나 유익하도록 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요, 특히나 신앙인에게는 기본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여줍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들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합니다. 이방 족들이 쳐들어와도 막을 만한 강력한 힘이 없는 사사들이나 타락한 제사장들의 통치를 더 이상은 받지 못하겠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사실 그 요구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삼상8:7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고자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통치해 나가게 했습니다. 결국 후회할 이스라엘의 요구였지만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 배후에서 언제나 한 결 같이 그들을 친히 돌보시고 인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싫어했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손길로 항상 보살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 날도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싫어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벗어나 살아가려고 불신앙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때도 여전히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혹시 하나님을 잊어버릴지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아니하신다는 진리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부끄러움이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입니다. 그 인도하심 가운데 한 장면이 오늘 본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사울의 아버지 [기스] 가 암나귀를 잃어버리고 그 아들 사울에게 찾아올 것을 명합니다. 왜 잃어 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이러한 손실을 통해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뜻하지 않은 손해를 보거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 수도 있고, 평생 쌓아올린 전 재산을 일순간에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을 수 있는 신앙의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이럴 때 일수록 손실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좋은 계획, 우리가 전적으로 동의하고 이해하며 기뻐할 수 있는 계획을 가지고 인도하실 수도 있지만 때로는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도 없는 계획을 가지고 인도하실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자성어 중에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한 방법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욥을 기억하십니까? 남들은 하나씩 잃어버릴 것들을 한꺼번에 다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열 명의 자녀와 전 재산과 건강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심지어 친구들과 사랑하는 아내마저 그를 마음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큰 손실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인정받을 수 있었고 갑절의 복을 받게 되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이것이 바로 손실을 통해서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낙심하고 낙담하며 사는 세상입니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염려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난 보낸 사람들의 아픔은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상실입니다. 아마 세상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손실일 것입니다. 문제는 빨리 그 실패의 아픔에서 벗어나야하는데 그 길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은 말할 수 없는 아픔이지만 이미 무너져 버린 것이기에 딛고 일어 설 수 용기와 길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 오늘 우리들이 잃어버린 그 무엇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언제까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염려와 저주의식에 빠져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배운다면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방법이라는 믿음으로 그 염려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손실, 그것은 꼭 손해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 좋고 아름다운 은혜의 손길일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실패를 통해서도 인도하시는 분임을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사울은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이곳 저 곳으로 다녔지만 찾지를 못했습니다. 하루하루 계획을 했을 것입니다. 오늘 이곳을 돌아보고 해가지면 저녁에 다시 내일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잠자리에 들었으며, 그 다음날도 역시 그랬을 것입니다. 계속 노력하며 힘을 다했지만 계속 실패만 했습니다. 사울이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있는 힘껏 해보았습니다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최선을 다하고, 노력을 다하고, 있는 힘껏 달려도 때로 우리는 실패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 깨달음보다는 실망이 먼저 찾아오기 마련이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에 앞서 원망이 먼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정당하게 살아 온 결과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노예로 팔려가고, 그 곳에서 옥에 갇히게 된 것은 그의 잘못 때문이 아닌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정당하게 살아갔는데도 그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던 [베드로]가 밤새도록 정당한 수고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셉]과[베드로]가 당했던 실패 뒤에는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그 실패로 민족과 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고, [베드로]는 그 실패의 결과로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오늘 [사울] 역시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 나서서 고생하다가 실패합니다만 결국은 이 실패가 [사무엘]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고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을 왕으로 세웁니다. 세상에는 노력도 하지 않고, 최선도 다 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다가 당하는<가치 없는 실패>도 많습니다만 정당한 노력과 정직과 땀 흘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하는<가치 있는 실패>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치 있는 실패는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돌아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인도, 그 놀라운 진실은 궁극적인 승리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실패는 절망이 아닙니다. 끝도 아닙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만한 가치 없는 일도 아닙니다. 오늘도 비록 실패와 손실의 연속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그것마저도 한 순간 한 순간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손길임을 믿는 큰 믿음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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