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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건한 자 (시 3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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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자 (시 32:6-11)


피에타(Pietà)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가 조각한 것으로 바티칸시 성 베드로성당에 보관되어 있는 르네상스 시대 조각예술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당시 로마에 체류 중이었던 프랑스 추기경 장 드 빌레르(Jean de Bilheres)의 의뢰로 3년에 걸쳐 만든 것이었습니다. 피에타상은 유일하게 미켈란젤로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새긴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안고 비탄에 잠겨 있는 모습으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이 저미는 아픔과 성스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피에타 상이 완성되었을 때 교황과 추기경, 귀족들이 제막식에 모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피에타 상에 압도되었습니다.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당신이야말로 위대한 예술가요” 라고 치하했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대답하기를 “교황성하, 피에타상은 제가 조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하나님이 대리석 덩어리 안에 만들어 놓으신 피에타상이 드러나도록 겉에 붙은 부스러기들을 제거했을 뿐입니다” 라고 했답니다. 피에타는 ‘경건한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즉 경건은 온갖 죄와 탐욕으로 얼룩진 모습을 다듬어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담아 두신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경건한 사람들은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길을 걸어 다니다가 나무에 이마를 부딪쳐 피를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마에 피가 흐르는 사람을 보면 경건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나중에 이 말을 듣고 싶어 하던 바리새인들이 아예 집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의 이마를 벽에 찧어 피를 흘리며 나왔다고 합니다. 그들의 경건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경건은 무엇입니까? 누구나 경건의 시간을 가져보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며 직접 음성을 듣기보다 다른 사람을 통해 들으려고 합니다. 다른 이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이것을 경건으로 생각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경건한 자는 피조물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며 늘 하나님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여야 합니다.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믿기 시작하는 자는 이미 경건의 자리에 이른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고 회개의 눈물을 보이며 하나님을 깊이 알고자 탄식하는 자는 훨씬 더 깊은 경건의 자리에 이른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름지기 하나님과 직접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경건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보시는 경건한 자인가 가름해보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보니 경건한 자의 모습과 결단이 나옵니다. 경건한 자는, 
 
첫째로 주께 기도하리라

제너럴 모터스의 최고 엔지니어 찰스 케터링(Charles F. Kettering)의 일화입니다. 그는 빈틈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동차업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모임에서 사회자가 그의 ‘신화의 손’을 높이 쳐들며 “케터링씨, 이 손으로 한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사회자는 물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동차 탄생’이라는 말을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손으로 한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두 손을 잡고 기도한 일이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신앙인은 경건한 신앙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면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자의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경건한 자의 모습입니까? 밀레의 만종에 나오는 이삭을 주우며 기도하는 농부의 그림에서 경건한 자의 모습을 찾아보게 됩니다.

본문 6절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경건에 이르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경건을 유지하는 방법 또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호홉이라고 말합니다. 육신이 항상 호홉을 해야 하듯이 영혼도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호홉에 장애가 있으면 건강의 적신호가 되듯이 기도에 장애가 있다면 영혼의 적신호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의 깊이를 알 수 없습니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대화이자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만남인 기도가 많아질수록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존 번연 (John Bunyan)은 기도에 대해 말하기를 “기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그만 짓도록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가 인간으로 하여금 기도를 그만 두도록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영혼의 방패요, 하나님께는 희생 제물이요, 사탄에게는 채찍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사람은 주께 기도할 것입니다. 참된 기도는 경건의 불가결한 표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라도 기도하는 일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그것이 악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듯 해 보이고 좋아 보여도 그것 때문에 기도하는 일에서 멀어지게 된다면 그것은 영혼에 해악을 끼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순간순간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를 하나님이 지키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홍수가 범람하듯 갑작스러운 재앙이 올지라도 죄를 자복하고 기도하는 경건한 자에게는 그 재앙이 미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환난 가운데서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구원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경건한 자에게 크신 응답을 베풀어 주십니다. 
 
둘째로 주를 신뢰하리라

홀리데이인(Holiday Inn) 호텔의 클라이머(Len Climber) 회장이 은퇴를 하면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경영하는 호텔에 도박장인 카지노를 두지 않기로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저는 그 약속을 오랜 세월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주총회에서 애틀랜틱시티 지점에 카지노를 시설하도록 결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과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처지에 놓였으니 차라리 내가 회사를 떠나도록 결심한 것입니다.” 클라이머 회장의 신앙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러한 경건의 삶을 살아왔기에 하나님께서 복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재물은 선한 일을 하라고 맡겨주신 것입니다. 소유자가 아니라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오로지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경건한 자의 모습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경건의 모습으로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러나 경건한 삶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경건에 이르기를 계속해서 연습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든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다른 교훈을 좇지 말고 진리의 말씀을 표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한 분으로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물질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경건한 자가 될 것입니다. 
 
셋째로 주로 기뻐하리라

세인트 루이스(St. Louis)를 여행하던 사람이 주일날 교통정리를 하고 있던 경찰관에게 물었습니다. “주일이라 예배를 드리고 싶은데 교회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경찰관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소개해준 교회를 가는 동안 여러 교회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오니 그 경찰이 여전히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행객은 가까운 교회를 두고 왜 그렇게 멀리 있는 교회를 소개했느냐고 묻자 경찰관이 대답합니다. 

“예, 저도 사실 그 교회에 가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수년간 교통정리를 하다 보니 그 교회 교인들의 예배드리고 나오는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고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소개한 것입니다.” 얼굴이 전도지입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얼굴이 기쁘게 보입니까? 그렇지 못하면 거울을 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기쁨이 넘치는 얼굴로 복음을 힘 있게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주안에서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본문11절입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하나님의 사람은 기뻐하며 찬양을 드립니다. 기쁨은 신앙의 꽃이며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기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도전을 받게 됩니다. 돌에 맞아 죽어가는 스데반 집사가 천사의 얼굴을 하였을 때 그를 핍박하던 사울의 마음에 강한 충격이 생겨 바울로 인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기쁨의 얼굴이야말로 믿음의 증거인 것입니다.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은 그의 시 ‘인간 예수’ 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구레네 시몬에게 “너는 가서 십자가를 지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고 묻는 이에게 “나는 얼마든지 십자가를 다시 지겠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놀란 사람들이 “어찌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또 다시 질 수 있겠는가” 물었더니 구레네 시몬은 대답합니다. “처음 십자가를 질 때 힘든 고통에 못 이겨 쓰러지려는 순간 뒤에 계신 예수께서 오른손으로 나의 어깨를 만져주셨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의 손이 닿는 순간부터 십자가가 더 이상 무겁지도 고통스럽지도 않게 느껴졌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경건한 자가 되려고 힘쓰며 살아갈 때마다 그 어깨 위에 예수의 오른손이 얹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디 경건한 자로 살아가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주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주를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매사에 주로 말마임아 기뻐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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