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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시 4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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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시 42:1-11)


1. 오빤 강남 스타일

가수 싸이가 부른 <강남 스타일>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 타임지 등 유명 언론들, 그리고 영국, 프랑스, 세계의 언론들이 ‘오빤 강남 스타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지금 19개 나라 언어로 번역 중입니다. 유튜브의 조회수가 어제 오후 기준으로 8,000만을 넘었습니다. 
왜 우리나라 말도 모르는 외국인들까지 이 노래에 미칠 정도로 빠져들까요? 
저는 강남스타일이 뜬 이유 세 가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첫째, 쉽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습니다. 싸이가 추는 말춤은 누구나 쉽게 따라 출 수 있습니다. 몸치인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쉬워야 대중적인 인기를 모을 수 있습니다. 
둘째, 웃긴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잘 생기지도 못하고, 조금은 통통한 싸이가 춤추는 모습이 정말 웃깁니다. 노래로 보나, 춤으로 보나 A급이 될 수 없는 B급 블랙 코미디입니다. 
셋째,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싸이는 요즘 잘 나가는 소녀시대 같은 아이돌 그룹처럼, 예쁘거나, 늘씬하고 근육질이 있는 잘 생긴 사람이 아닙니다. 외모의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도, 재밌습니다. 이 땅의 못 생긴 많은 사람들,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못 생겨도 재밌다”는 걸 보여줍니다. 

저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처럼 목회하면 이 시대의 코드에 맞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제 기질상 싸이와 꼭 같이 할 수는 없지만.... 싸이처럼, 쉽게, 재미있게, 있는 모습 그대로 감사하면서 살아가십시오. 

2. 낙심할 수 밖에 없는 불안한 상황

시편 42편의 배경은 오늘 우리와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느낄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인 상황, 불안하고 낙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3절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을 믿는 너는 지금 왜 이래, 왜 이렇게 고생하느냐고. 왜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느냐고. 
4절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이 내용에 근거하여 학자들은 추론하기를, 이 시편을 쓴 시인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 중 하나로, 성전에서 예배를 집례했던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나님께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는 형편입니다. 노예로서 강제 노역하는 아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인이 얼마나 훌륭한 신앙인인지 7절을 보십시오. 
7절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폭포소리, 파도, 물결은 고난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고난은 주님이 주신 고난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팔자가 기구하여 고생하는 것이 아니고, 재수 없이 당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고통이라는 이 고백이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 뿐이 아닙니다. 9절을 보십시오. 
9절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주신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더 강하게 붙잡습니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 
고통은 신앙의 시금석입니다. 신앙의 수준을 가늠하게 해주는 것이 고통입니다. 
신앙이 약한 사람은 고난 당할 때, 낙심하고 넘어집니다. 고난 중에서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더 자주, 더 많이 기도하는 사람은 훌륭한 신앙인임이 분명합니다. 

3. 감정을 극복하는 신앙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큰 어려움을 겪으면 어느 누구나 예외없이 잠깐 낙심하고 불안해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감정을 지닌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 또한 인간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성으로서 감정을 누르기도 하고 극복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성조차도 마비될 정도의 극도의 불안감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공황장애가 그 한 예입니다. 불안해 할 일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일도 없는 데 갑자기 극도의 불안이 밀려옵니다. 숨이 답답하고, 가슴이 죄여오고,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 때는 이성적인 판단이 그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이성으로 통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수 김장훈씨나 개그맨 이경규씨, 런던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 조준호씨도 공황장애를 겪었거나 겪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성으로도 불안감을 통제할 수 없을 때, 낙심하고 좌절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5절과 11절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만, 5절에 해결책이 있습니다. 
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내 영혼아,” 자아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불안해 하는가? 나는 감정적으로 불안해하고 낙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나 즉 영적인 자아인 나는 불안과 낙심에 빠져 있는 육체적인 자아를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오늘도 불안하고 낙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처한 분들, 그들 중에서 건강한 영혼, 좋은 신앙을 가진 분들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왜 불안하고 낙심하고 걱정하니?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극도의 불안과 낙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을 기대하라. 하나님께 소망을 걸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 그것은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8절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신앙은 감정을 극복합니다. 우리의 감정이 몹시 침체되어 있을지라도, 하루에도 수십번씩 기뻤다가 슬펐다가 변동이 심할지라도, 거기에 우리의 삶이 좌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정의 기복에 춤추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4. 신앙으로 감정을 극복한 요셉

요셉을 보십시오. 그가 어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계모들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 야곱은 12아들 중 요셉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형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요셉을 왕따시켰습니다. 17세 때,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물없는 웅덩이에 빠뜨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웅덩이에서 살아남았지만, 애굽에 종으로 팔아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종 중에서도 책임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것도 잠깐, 요셉은 다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힙니다. 고난에서 조금 살만하면 또 고난이 닥치고, 좀 벗어나나 싶으면 또 고난을 당합니다. 

요셉의 인생에 줄기차게 고난의 줄이 그를 얽어매고 있습니다.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런 연속적인 고난에서도 잘 이겨냅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창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39:21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애굽의 종살이하는 중에서도, 감옥에서도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잘 될 때나 잘못 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문제는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잘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심을 안다면, 어떤 고난 속에서도, 극도의 불안감에서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요셉은 청소년 시기에 상상할 수 없는 고난에 처했지만, 자기를 도와주실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할 때, 요셉은 뿌리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39:9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감옥에 있을 때에도 같은 감방에서 생활하던 애굽왕의 고위관료들의 꿈을 해석해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40:8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바로왕에게 불려가서 왕의 꿈을 해몽해줄 때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창41:16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요셉은 어떤 형편에서나, 늘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이것이 고난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 같은 극도의 고통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해보십시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것입니다. 

5.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시편기자는 불안하고 낙심이 되는 상황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기도를 드립니다. 
1-2절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을 갈망하십시오. 
목마를수록 물을 간절히 찾듯이, 사회가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우리의 힘과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을 갈망합시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이신 주님을 반드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시편 42:1~11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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