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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욱 깊이 기도합시다 (엡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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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깊이 기도합시다 (엡 6:18)


저는 앞으로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해 보고 싶은 것 가운데 하나가 스킨 스쿠버를 배워서 바다 깊이 잠수를 해 보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드넓은 바다를 보면서 늘 “저 바다 깊은 곳은 어떻게 생겼나? 거기에는 어떤 생명체들이 살고 있나?” 궁금했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까, 전 세계 바다의 평균 깊이가 대략 3,800미터랍니다. 우리나라 동해의 평균깊이가 1,350미터니까 그 깊이를 상상하기 힘이 들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 한 가운데로 가면 깊이가 3키로가 넘는 깊은 심해 바닥이 대평원을 이루고 있답니다. 이 심해 대평원은 지구상 육지 면적을 다 합한 것보다도 넓답니다. 여기에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식물들과 동물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바다 표면에서 파도가 치고 풍랑이 일어도, 수심 10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태풍이 일어나고 해일이 일어서 바다 물을 뒤집어 놓아도, 수심 50미터 정도만 내려가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답니다. 그리고 태양 빛이 아무리 강렬하게 내려쬐어도, 수심 200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전혀 태양 빛이 도달하지 못한답니다.

그러니까 저 심해의 대평원은 바다 위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인 것입니다. 그야말로 딴 세상인 것입니다. 바로 “깊은 곳”입니다.

인생의 깊은 곳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인생에도 “깊은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시인은 깊은 곳에서 주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깊은 곳’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깊은 곳이란 바다 저 깊은 곳처럼 평상시에는 상상하기 힘이 드는 곳을 말합니다. 일상 속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곳을 말합니다.

본문을 쓴 시인은 자기가 겪었던 그 ‘깊은 곳’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경 다른 곳에서는 시인의 이 깊은 곳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단서도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그래서 그 깊은 곳이 대략 다윗이 겪었던 눈물의 골짜기와 사망의 골짜기와 같은 것이리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나름대로 인생의 ‘깊은 곳’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가 요나입니다. 요나에게서 깊은 곳은 물고기 뱃속이었습니다.

욘 1:17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그리고 2:2를 보면,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바다 가운데 던져졌습니다. 마침 그 때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습니다. 요나는 그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이곳에서 밤낮 삼 일을 머물게 됐습니다. 이 때 요나는 그 자리를 ‘스올의 뱃속’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스올이란 ‘음부’라고 번역을 합니다. 이 음부란 한마디로 ‘지옥의 대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옥에 들어가기 직전 잠시 대기하는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요나는 이 스올과 같은 물고기 뱃속에서 인생의 깊음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요나의 스올의 뱃속과 같은 인생의 깊은 곳에서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겪게 됩니다.

1. 고통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밤낮 삼일을 머물렀습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100% 암흑 속입니다. 물고기가 먹었던 먹이들이 소화되는 도중 뿜어내는 그 악취들, 오물 속에 뒤섞여 있는 그 불편함들, 먹지 못한 배고픔...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 속에 정말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평상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정신적 충격을 받아 견디기 힘이 드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질병이나 사고로 견디기 힘이 드는 육체적 고통의 시간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내가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내 걸었습니다. 생각하는 나를 보면서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신학자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는 "내가 고통을 겪는다. 고로 내가 존재한다." 라는 명제를 내 걸었습니다. 고통을 겪으며 인생의 깊음을 맛보며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평상시 상상하기 힘이 드는 고통을 겪으며 인생의 깊음, 존재의 깊음을 만나게 됩니다.

2. 두려움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어딜 봐도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머리 속에 쌓아두었던 지식, 온 몸으로 체득해 왔던 인생의 경험들, 자기가 그토록 정성껏 모아왔던 재물들, 그동안 유지해 왔던 인간관계들...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무엇 하나 붙잡고 의지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 두려움이 해질녘 땅거미 밀려오듯 온 마음 가득 밀려들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써 봐도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평상시 상상하기 힘이 드는 두려움을 겪으면서 인생의 저 깊음을 만나게 됩니다.

3. 절망입니다.

요나는 2:5-6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그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절대 절망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절망형 은둔자’들이 늘고 있답니다. 실업과 저임금으로 생계가 어려워지고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깊은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부유층과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목도하면서 사회적 불만을 표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절망형 은둔자들이 저지르는 소위 ‘절망 살인’이 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평상시 상상하기 힘이 드는 절망을 겪으면서 인생의 저 깊음을 만나게 됩니다.

깊은 기도

오늘 본문을 보면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시인은 인생의 깊은 곳에서 주께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평상시 주께 드렸던 기도와는 다른 기도입니다. 바로 ‘깊은 기도’입니다.

본문에서 이 깊은 기도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깊은 만남

본문 2절을 보면, 시인은 이렇게 간구합니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나님께 제발 자기의 기도를 꼭 들어달라는 간절한 호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시인이 지금 처음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참 많은 기도를 드려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간곡하게 자기의 기도를 드려달라고 호소해 본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 자기가 깊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 견딜 수 없는 두려움, 그리고 깊은 절망에 짓눌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발 이번만큼은 자기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5절을 보면,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 도다” 지금 자기는 여호와를 기다리고 있고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인은 지금 처음 주의 말씀을 듣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주의 말씀을 들으려 해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간곡하게 자기 앞에 임재해 주시기를 호소해 본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자기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바란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 자기가 깊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님 외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깊은 기도에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있습니다. 피상적인 기도에는 대체로 일방적인 간구만 있을 뿐입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에는 대체로 기도문을 염불 외우듯 외우는 것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깊은 기도는 내 전 존재로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리고 깊은 기도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고 주의 음성을 듣습니다. 또한 깊은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믿음으로 정성을 다해 간구합니다. 한 마디로 깊은 기도에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에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있기를 바랍니다.

2. 깊은 회개

본문 3절을 보면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모든 죄악을 지켜보고 계심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시인도 양심이 있기 때문에 평상시 죄의식을 느끼며 살았을 것입니다. 잘못을 범했을 때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동체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깊은 곳에서 자신을 깊이 돌이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자신을 감찰하고 계심을 새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기존의 죄의식의 차원이 아닙니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의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준엄하신 심판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와 다른 회개를 하게 됐습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의 속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모든 죄를 다 털어놓습니다. 또 뭐 없나 싶은 생각으로 자신의 인생 구석구석을 뒤지며 자신의 잘못을 다 고백합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죄를 다 쏟아놓습니다.

그렇습니다. 깊은 기도에는 깊은 회개가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두렵고 떨리는 깊은 체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고 죄송하고 그리고 두려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악을 있는 그대로 깊은 눈물과 함께 고백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에 하나님 앞에서의 깊은 회개가 있기를 바랍니다.

3. 깊은 깨달음

본문 4절을 보면,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용서, 하나님의 죄사하심이 있음을 깊이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깊은 회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 회개를 받으시고 자신을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7절을 보면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여호와께서 비록 자신이 죄인이지만 자신을 인자로 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 받기 힘이 드는 죄들까지 다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성악가 가운데 빅 3 중 한 사람으로 인기를 누리던 테너 호세 카레라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인기 최고의 절정에 있던 나이 41살에 백혈병으로 쓰러지게 됐습니다. 오페라 ‘라보엠’의 주인공을 맡아서 열정을 다해 연습하고 있던 도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됐습니다. 검사 결과 백혈병 선고를 받고 가망이 없다는 안타까운 의사 소견을 듣게 됐습니다.

이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 인생의 깊은 곳에서 깊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하던 기도와 달리 정말 생명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나의 생명을 연장해 주시면 남은 평생 주를 위해 충성을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기적 같은 치유가 시작되었습니다. 골수 이식과 힘든 화학치료도 받았습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손톱과 발톱도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찬송을 더욱 힘차게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 회복되어 과거처럼 노래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가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다시 살려주신 것은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삶을 살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전 재산을 팔아 바르셀로나에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재단]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공연 수익금을 이곳으로 보냈습니다. 자기가 깨닫고 서원한 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깊은 기도에는 깊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평상시 잘 모르고 지나치던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쫓기듯 등 떠밀려 살면서 까맣게 잊고 있던 사명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에 이런 깊은 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이제 9월 10일부터 [기도대행진 5]를 시작합니다. 2008년 9월 8일 ‘만 시간 기도대행진’이란 이름으로 기도대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2009년에 ‘오만 시간 기도대행진’으로 이름을 격상하여 기도대행진이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성전건축 도중에 2010년, 2011년 기도대행진이 이어져왔습니다. 이제 금년도에 기도대행진 5 ‘7만시간 기도대행진’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금번 기도대행진의 주제는 “더욱 깊이 기도합시다”입니다. 지금까지 기도의 양에 초점을 맞춰 몇 시간 기도를 했느냐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금년에는 얼마나 깊이 기도했느냐에 관심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선 기도대행진에 빠짐없이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간의 양도 작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금년에는 기도의 깊이에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지금 인생의 ‘깊은 곳’에 계신 분들은 깊은 기도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평상시 일상의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은 ‘깊은 곳’을 연상하면서 깊은 기도를 드리고자 힘쓰십시오.

깊은 기도란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있는 기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깊은 회개가 있는 기도를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있는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대행진에 참여하셔서 깊은 기도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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